박 집사님의 콩나물
수요일 저녁예배 시간입니다. 교회버스에서 내린 성도님들이 삼삼오오 예배당으로 들어오십니다. 반갑게 목례와 눈인사를 나누는데, 박길이 집사님은 부시럭부시럭 들고 온 비닐꾸러미를 엽니다. 그리곤 기도하고 있는 몇몇 성도들 옆에 한 봉지씩 살포시 내려놓습니다.
내게도 한 봉지를 주어서 설핏 열어보니 집에서 기른 콩나물입니다. 소밥 주고 밭일 하고 아흔 넘으신 시어머니 끼니 챙겨드리느라 바쁠 텐데도 언제 물 줄 틈이 있었는지, 콩나물은 연하고 뽀얘서 예쁘기만 합니다. 무엇보다, 한두 해 전만 해도 거리를 두고 지냈던 같은 마을의 성도님 옆에도 한 봉지를 내려놓는 것을 보고 코끝이 찡해 옵니다.
직접 농사지은 검정콩 가운데 모양 좋은 것만 골라서, 오며가며 정성스레 물을 주었을 것입니다. 먹는 사람이야 하루 저녁에 요리해 먹으면 그만이지만, 물주고 기른 사람은 며칠을 신경써가며, 잔뿌리 많이 안 나도록, 너무 웃자라지 않도록, 빛이 들어가지 않도록 정성을 다해 길렀을 것입니다.
몇 천원이면 손쉽게 살 수 있는 콩나물이건만, 농사짓는 이에게는 그 몇 천원이 아쉬운 돈입니다. 슬하에 자식이 없으니 용돈이 다달이 생기는 것도 아니요, 수입이라고 해봐야 농사 짓고 소 대여섯 마리 키우는 것이 전부인 박 집사님입니다. 나눌 것 없는 빤한 살림이라고 핑계 대어도 누가 뭐라 할 수 없는 형편이건만, 집사님은 하나님이 주신 콩을 재료로 하여 마트에서는 살 수도 없는, 돈으로는 계산할 수도 없는 정성어린 콩나물을 길러서 나누고 섬기는 것입니다.
박 집사님은 우리 교회에서 김치 집사님으로도 불립니다. 농사지은 열무, 배추, 무를 부지런히 뽑아다가 김치를 담가서는 목사님 가정에, 우리 가정에, 주일낮 점심상에, 이웃 성도님들에게 퍼주고 나눠주고 베풀어 주는 것입니다. 김장철이 되면 서울 사는 친척네에 보낼 김장을 담그느라 집사님네 마당은 배추 포기가 산을 이루고 김치통, 김치 항아리, 김치박스가 줄을 섭니다. '가난한 자 같으나 모든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분이 박 집사님입니다.
야무지고 똑부러지는 박 집사님을 존경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집사님의 십일조 생활은 올곧은 믿음이 아니고서는 드릴 수 없는, 제가 보기에 세상에 둘도 없는 귀하고 값진 십일조입니다.
농사나 축산에서 나오는 이득이라는 것이 샐러리맨의 월급처럼 꼬박꼬박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수확하고 판매하여 들어오는 돈도 딱히 순수익이라고 할 수 없는 애매한 구석이 있으니, 종자값ㆍ기계 빌리는 값ㆍ사료값ㆍ 농자재값 등 모든 비용이 수확 전에 선지불되는 것이어서, 실제로 수확 후의 수입에서 그 돈을 빼고 나면 이득이라고 하기가 무색하리만치 남는 돈이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박 집사님의 십일조 계산은 특이하고도 기발합니다. 매번 소 사료를 살 때마다 그 사료값의 십의 일을 떼는 것입니다. 좀 의아한 계산법이긴 한데, 그만한 까닭이 있습니다. 사료값이라는 게 결국 소를 판매한 이익금에서 지불된다고 본 것입니다. 사실 소를 팔아 큰돈을 만질 즈음에는 뭉텅이 돈이 들어갈 곳부터 마음이 쓰이게 되고 그것부터 떼어놓게 되니, 차일피일 미루다 보면 십일조는 어느새 남의 일이 되기 십상입니다. 그리고 십일조 금액을 판매총액에서 계산할지, 순이익으로 계산할지도 난감한 일이 됩니다. 더군다나 남편이 교회에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는 십일조 계산을 놓고 왈가왈부하여 오히려 남편의 전도에 걸림돌이 될 우려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박 집사님의 십일조 계산은 여러모로 보아 지혜로운 방법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박 집사님의 그런 중심을 하나님이 모르실 리 없습니다. 대개 소를 키우면 소가 병들거나 소끼리 서로 뿔을 받거나 하여 느닷없이 죽는 일이 드물지 않게 일어납니다. 그런데 여물을 줄 때마다 소 앞에서 기도하는 집사님네는, 서울서 내려와 소를 키우기 시작한 때부터 20여년 동안 그런 시련을 겪은 적이 두어 번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판매할 때 등급도 항상 최우수등급으로 받습니다. 두어 번 있었던 그 시련마저 없었으면 좋을 것 같지만, 오히려 그 시련을 통하여 박 집사님의 믿음이 단단해진 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헌금생활에 대해 남편이 "또 갖다 바쳐라, 다 갖다 바쳐라" 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할 때마다, "이 십일조 때문에 우리 두 사람 자식 없이 남의 집에 살아도 두 다리 뻗고 살고, 끼니 걱정 없고, 내 지갑에 돈 마르지 않고, 우리 누렁이들도 병 걸리지 않고 사는 것이여" 라고 담대하게 대답하였다는데…. 그 중심을 하나님이 어여삐 보시고 작년 성탄절, 마침내 남편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주일낮 예배 때 남편을 위하여 성경 본문을 찾아주는 박 집사님의 모습은 천사가 따로 없습니다.
9년 전, 세상에 이런 마을이 있는 줄도 모른 채 서울에서 아등바등 살았던 저는, 훌륭한 사람들은 서울의 높은 빌딩 속에만 있는 줄 알았고 '시골 어수룩한 곳에 무슨 존경할 만한 인물이 있을까' 교만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저를 인도해주셔서 이 작은 마을과 시골교회에서 삶이 간증인, 삶이 설교인 성도들을 만나게 하셨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섬기라고 목자 가정 삼아 주셨건만 박 집사님 같은 성도들로부터 더 큰 섬김을 받기만 하니 눈물 그렁한 눈으로 콩나물 봉지를 쳐다보며 주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
첫댓글 좋은글 감사합니다.
읽으니 너무나 은혜롭고 저렇게 섬기는 분이 계시는구나...감탄을 하게 만드는 귀한 글입니다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코끝이 찡하네요
나누고 사는 삶을 실천해야 할텐데... 잘 읽었습니다
아름다운 나눔의 사랑에 기쁨이 넘칩니다.박 집시님께 주님의 사랑과 은혜와 강건함의 축복이 항상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아름다운 모습이 눈에 그려집니다...고운 마음들 고운 모습들 닮고싶습니다...순수함에 가슴이 져려오네요.. 하나님은 아시겠죠..우리 삶의 모습들을~~
참을려고 해도 눈물이 줄줄 나오네요. 정말 행복하고 아름다운 마음에 감동예요.
항상 감사하고 진솔한 마음으로 읽고 은혜말씀에 힘됨니다..........
너무 감동적입니다.... 그리고 나의 거만함이 무색해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