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전(世典) 제3장 가정(家庭) 5. 형제 친척의 도
형제는 한 부모의 기운을 받아 나서, 한 기운으로 자라난지라 형이 아우와 우애하고 아우가 형을 공경함은 천륜의 자연한 차서니, 형제는 좋은 일에 같이 기뻐하고 낮은 일에 같이 걱정할지언정 부당하게 이해를 다투거나 공명을 시기하지 말며, 형은 형의 도리만 다하고 아우의 공경을 계교하지 말며 아우는 아우의 도리만 다하고 형의 우애를 계교하지 말아서 그 천륜의 정의를 길이 지킬 것이요, 모든 친척은 일체 대중을 두루 친애하는 가운데 한 층 더 챙겨서 허물이어든 서로 깨우치고 어려운 일이어든 서로 구원하고 좋은 일이어든 서로 권하여 한 가지 복락의 길로 나아가야 할 것이니라. 그러나, 형제 친척이라 하여 옳지 못한 의뢰를 구하거나, 부당한 의세를 행한다면 이는 형제 친척의 도가 아니니, 내가 먼저 힘을 써서 혜택이 형제와 친척에게 미치게는 할지언정 내가 먼저 형제와 친척에게 구하고 바라는 마음을 가지지는 아니하여야 영원한 화목을 누리게 되나니라. |
[콤플렉스]
반갑습니다. 세전에 대해서 같이 공부를 하고 계시는데 부부의 도를 준비하면 정토한테 미안한 생각이 들고 부모의 도를 준비하면 자녀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고, 자녀의 도를 준비하면 부모님한테 죄송한 마음이 들고, 형제 친척의 도를 공부 하니까 동생과 친척들한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하면서 조금 철이 드는 것 같습니다. 형제자매는 같은 환경에서 함께 자랐기 때문에 서로 가장 잘 의지할 수 있는 존재인 동시에 영원한 경쟁자이기도 합니다. 성인이 돼서 작은 문제로 서로 다투기도 하고 심한 경우에는 복수극을 벌이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죽음에 까지 가는 경우도 있죠.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계속 그래 왔습니다. 그래서 어느 심리학자는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인류의 절반은 동생을 죽인 살인자 의 후예이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그리고 형제는 타인의 시작인 동시에 살인의 시작이다. 구약성경 창세기 아담과 하와가 나오잖아요. 히브리어로 하와라고 하고 영어로 번역 되면서 이브라고 하는데 원어는 하와입니다. 아담과 하와 사이에 태어난 두 아들이 있어요. 드라마에도 많이 나왔습니다. 카인, 그 다음에 아벨 그 다음에 잘 모르시겠지만 셋째 아들인 셋이 있습니다. 구약성경 창세기에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형 카인은 농사를 짓고 아우인 아벨은 목축업을 한 건데 양을 쳤습니다. 그런데 신은, 하나님은 아벨이 바친 양은 좋아했지만 카인이 바친 작물에는 냉담 했어요. 그래서 카인이 분해하면서 고개를 숙이면 신은 오히려 그를 꾸짖으셨습니다. 질투심에 쌓인 카인은 아벨을 초원으로 불러서 살인을 했죠. 카인과 아벨 검색해보시면 카인이 아벨을 살해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것이 역사상 최초의 살인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카인이 아벨을 그토록 미워했을까요? 원래 성격이 안 좋아서? 아벨이 자신보다 사랑 받는데 질투심을 느껴서 그랬던 거죠. 신의 편애? 아담에게는 카인과 아벨 외에도 한명 더 자녀가 있었죠. 카인이 아벨을 죽였잖아요? 그 다음부터는 카인과 셋의 후손이고 셋은 살인을 않았으니까 인류의 절반은 살인자의 후예라는 이야기입니다. 이해가 되시죠? 역사적으로 형제간의 갈등이 살인을 불러온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어떤 것이 기억나세요? 세계로 까지 가지 않고 우리나라에서 보면 역사적으로 가장 많이 떠오르는 것이 왕자의 난이 있죠. 태조 이성계한테 자식이 많았습니다. 첫 번째 신의왕후 한 씨와의 사이에서 방우, 방과, 방원 등 6명에 자녀가 있었습니다. 그 이후에 채로 이제 부인을 들여서 신덕왕후 강 씨 사이에서 방번, 방석이 있었습니다. 이 난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순리대로 가면 좋은데 태조가 후계자를 책정할 때에 한 씨의 소생 첫 번째 부인의 아들보다는 두 번째 부인은 더 총애 했나봐요. 두 번째 소생의 여덟째아들 방석을 세자에 책봉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한 씨 소생의 왕자들이 ‘그래 네가 왕을 해라 훌륭한 사람이니까’ 이렇게 했을까요? 못마땅해 했죠. 특히 정몽주를 비롯한 개국 반대 세력을 제거하고 조선 건국에 큰 역할을 했던 가장 큰 능력자 방원의 불만이 가장 컸습니다. 그래서 두 번의 난을 통해서 형제를 두 번이나 죽이죠. 첫 번째는 여덟 번째 아들인 방석을 제거하기 위해서 1차 왕자의 난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정몽주를 비롯해서 조선의 개국에 반대하던 세력과 방석을 죽이고 그리고 나서 자신의 형인 정종이 왕이 되죠. 후계자 구도가 자기하고 두 명만 남게 되니까 또 세력 간의 다툼 일어나서 두 번째 난을 통해서 또 자기의 형을 죽이죠. 이와 같이 형제자매 간의 갈등과 반목은 서로에 대한 질투에서 유래합니다. 가족을 보면 우수한 아이와 열등한 아이 혹은 부모에게 사랑받는 아이와 사랑받지 못한 아이 간의 불평등이 엄연히 존재하죠. 부모 입장에서는 평등하게 사랑을 준다고 하는데 자식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안 느끼는 거 같아요. 아니면 부모가 평등하게 사랑을 못 주는 것 같기도 하고요. 제 자신을 보니까 평등하게 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엄연히 불평등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모든 자녀는 자신도 다른 형제자매처럼 부모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어 하죠. 그 마음은 똑같잖아요? 사랑은 다르게 갈 수 있지만 사랑받고 싶은 마음은 똑같아요. 그리고 때로는 자기가 독차지하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그런데 어렸을 때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슬픔과 분노와 원망이 한데 뒤섞여서 불안한 정서가 싹이 틉니다. 부모의 불평등과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자녀의 불안한 심리가 합쳐지면 콤플렉스가 만들어집니다. 유명한 정신분석자 칼 구스타프 융은 이러한 다양한 감정이 뒤섞인 관념의 복합체, 심리의 복합체를 콤플렉스로 불렀습니다. 쉽게 얘기하면 뭔가 정리되지 않은 느낌 있잖아요. 뭔가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정리되지 않은 그 느낌, 정리하고 싶지만 찜찜한 그 느낌. 내 안에 있는 감정이지만 나도 이해할 수 없는 그 감정 있지 않으세요? 그것을 심리적 복합체 관념의 복합체 콤플렉스라고 합니다. 여러 가지 환경과 내 안에 것들이 뒤엉켜서 있는 거예요 더 정확히 말하면 콤플렉스라는 것은 무의식적인 것인데 자기 스스로는 자기 콤플렉스를 자각할 수가 없어요. 근데 그 콤플렉스의 지배를 당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옛날에 독특한 사람이 있었어요. 빌리지도 않은 우산이나 돈을 필사적으로 돌려주려고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우산도 안 빌리고 돈도 안 빌렸는데 상대방한테 반드시 그 우산을 쥐어주고 돈을 쥐어 주면서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이상한 충동에 사로잡힌 사람이 정신분석학자이자 수필가인 기시다 슈라는 사람인데 어렸을 때 계모한테 사랑을 받지 못했어요. 그런데 그 계모가 기시다 슈라는 사람한테 귀가 따갑도록 이런 얘길 했다고 합니다. 키워준 은혜를 갚아라. 계모니까 낳아준 은혜 보다는 키워준 은혜겠죠. 그래서 머릿속에 세뇌가 된 거예요 나중에 크면 은혜를 꼭 갚아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깊이 박혔어요. 돌려줘야 한다는 의무감이 계모를 사랑하는 마음과 연결이 돼서 하나의 콤플렉스가 형성돼서 빌려주지 않은 우산을 돌려주고 빌려주지도 않은 돈을 준거에요 갚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머릿속에 있어서요. 사랑받기 위해서는 갚아야만 한다는 콤플렉스가 기묘한 행동을 낳는 거죠. 그런데 그 사람이 나중에 책을 써서 자기의 그 사실을 자각한 겁니다. 내가 하는 게 행동이 부모한테 받았던 그 콤플렉스가 원인이 돼서 나타난 거구나 알아 차려서, 그 사실을 자각하자 그 행동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콤플렉스라는 것은 무의식적인 작용이라 자각하는 순간 사라지게 됩니다. 내가 인식하지 못하지만 내 행동을 지배하고 있는 거. 이것을 콤플렉스라고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업력이라고도 하겠고, 전생의 습관이라고 하겠죠. 콤플렉스라는 것은 복합적인 것을 의미하는 단어인데 말 그대로 여러 가지 감정과 생각에 뒤엉켜서 마음의 응어리를 형성해요. 콤플렉스로 또 쉽게 이야기하면 마음에 응어리거든요. 그 응어리가 점점 커서 덩어리로 불어나는 것이 콤플렉스가 되는 것입니다. 콤플렉스는 이렇게 복합적이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또 다른 특징은 서로 반대되고 모순되는 감정들이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복합적으로 있지만 또 모순되는 감정도 같이 있어요. 외국 사람들이 이해 못하는 단어가 있어요. 시원섭섭하다. 어떻게 영어로 표현 할 수 있을까요? 시원섭섭하다. 우리는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죠. 모순되는 것들이 같이 있어요. 형제자매들도 이런 콤플렉스가 서로 있습니다. 그리고 모순되는 감정이 같이 있어요. 가족들한테는 모순되는 감정들이 같이 있거든요 가족들이 명절 때 있다 가면 시원섭섭하잖아요. 가고나면 좀 아쉽기도 하지만 또 가고 나면 시원하기도 하죠. 그리고 형제자매 간에는 미운 마음도 있고 애틋한 마음도 있죠. 그런데 또 하나 그 감정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형제자매 관계는 콤플렉스가 형성돼 있어서 서로 복잡 미묘합니다. 거기에다가 모순된 감정도 같이 있어요. 그런데 그 관계를 본질적으로 흔드는 것이 있어요. 우리가 오늘 배우는 것이 형제자매의 관계잖아요? 부모입니다. 많은 심리학자나 사람들이 형제 관계는 본질적으로는 2인 관계가 아니라 삼각관계라고 합니다. 나와 형제자매 관계가 나하고 형제 사이의 둘만의 관계인 것 같지만 실제로 보면 삼각관계인 거예요 그 뒤에 부모의 그림자가 다 숨어 있어요. 형제 관계는 본질적으로 삼각관계입니다. 그래서 둘이서만 해결해야 할 수가 없어요. 부모가 항상 뒤에 도사리고 있어요. 역사를 잘 보면 카인과 아벨 사이에는 누가 들어가 있어요? 둘만의 관계에서 이렇게 됐나요? 신이 편애 했죠? 아벨 것만 받고 카인 것은 안 받았잖아요 그리고 방원은 어땠어요? 형제들의 관계가 2인 관계인가요? 누가 그렇게 만들었죠? 태조가 장자한테 물려주면 될 것을 뒤에 애한테 했잖아요. 편애 한 거죠. 그러니까 형제 관계에는 부모가 반드시 끼어 있고 그래서 형제자매 관계는 본질적으로 삼각관계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래서 부모의 애정이 한 아이에게만 치우치거나 부모가 한 아이만 소홀히 했을 때 자녀는 또 다른 자녀에게 내가 마땅히 받아야 할 애정을 빼앗겠다는 억울한 마음이 들고 다른 형제의 행복을 기뻐하기 보다는 자신이 상처 입었다는 피해 의식을 갖게 됩니다. 부모가 잘못하게 되면 내 사랑을 형제에게 뺏겼다고 생각하고, 다른 형제 행복에 기뻐하지 않아요. 형제자매에 대한 콤플렉스를 받는 상황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부모다. 특히 부모의 예정이나 관심을 빼앗긴 채 자라나는 상황 그 상황이 형제자매에 대한 콤플렉스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형제자매 관계는 본질적으로 2인 관계가 아니라 삼각관계라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래서 건강한 형제자매 관계를 위해서는 건강한 부모 자녀 관계가 반드시 선행돼야 합니다. 부모가 형제들을 보고 너희들끼리 싸우지 말고 잘 지내라고 말합니다. 부모가 다 싸우게 만들어 놓고 원인제공을 하고 나서 너희들 이 잘해라, 너희들이 문제다. 이렇게 부모가 한쪽만 편애한다거나 잘못된 방식으로 접근해서 자녀 입장에서 차별 감을 느끼고 질투심을 느끼고 박탈감을 느끼고 피해 의식을 느끼게 한 뒤에 왜 이렇게 싸우냐, 너희들이 문제다 라고 하는 것은 본질을 모르는 거죠.
[출생순위와 성격]
또 제가 알고 있는 작은 지식으로 봤을 때 형제자매 관계에서 가장 많은 연구를 한 사람 중에 한 명이 정신의학자인 알프레드 아들러라는 사람이에요. 정신분석학 쪽에 유명한 세 사람이 있어요. 프로이트, 융, 아들러 세 사람이거든요. 프로이트의 애제자 두 명입니다. 이 아들러란 사람이 얼마 전에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베스트셀러 미움 받을 용기라는 책과 관련된 사람입니다. 책의 내용은 인간관계를 편하게 하려고 하면 모든 사람한테서 이쁨 받으려고 하지 말고 미움 받을 용기가 있어야한다. 미움 받을 용기가 52주간 베스트 셀러였을겁니다. 엄청 유명 했었죠. 저자인 일본 사람이 쓴 책인데 그 사람을 통해서 아들러라는 사람이 새롭게 재조명 됐는데 그 사람의 핵심이론이 우월감과 열등감 이론입니다. 그리고 출생 순위라는 것이 있어요. 자녀의 출생 순위에 따라서 성격이 다르게 형성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아들러는 인간의 행동을 부추기는 가장 큰 원동력으로 우월해 지려는 우월감과 열등감이 인간을 움직이는 동기의 기본으로 보고, 이 우월감과 열등감은 형제자매 관계에서 시작된다고 본거예요. 우리가 태어나서 처음에 우월감과 열등감 느끼는 사람이 누구겠어요. 멀리 떨어진 사람 아니잖아요 형제자매거든요 우월감과 열등감의 시작은 형제자매입니다. 근데 그 우월감과 열등감의 시작이 어떻게 형상이 되냐 출생 순위에 따라 달라지는 거죠. 저도 여동생이 한 명 있거든요. 저도 제 인생을 돌아보니까 여동생한테 우월감과 열등감을 같이 느끼고 살아왔더라고요. 제 여동생은 원불교의 성직자입니다. 저희가 딱 두 명인데 둘 다 출가를 했어요. 저와 같은 성직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현재는 원불교 종법실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데 살면서 같이 못 봤어요. 저도 기숙사 학교를 다니고 동생도 기숙사 학교를 다녔어요. 동생이 중학교 때 저는 고등학교 기숙사 다녔으니까 못 봤고 동생도 기숙사 학교 다니고 또 둘 다 원불교 학과 들어갔잖아요. 그래서 거의 10년 같이 살았나요? 그 이후론 서로 본 적이 없는데 제 열등감이 뭔가 한번 돌아보니까 초등학교 때로 거슬러 가더라고요 제가 어렸을 때 동생보다 작았어요. 여동생인데 지금도 키가 크거든요 170이에요. 동생이 좀 키가 컸습니다. 초등학교 때까지 제가 작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어딜 가면 동생을 누나로 알았습니다. 그때 제 열등감에 시작이었습니다. 중학교 가서야 누나에서 벗어났죠. 두 번째 열등감의 기억은 제가 고등학생 때 만덕산 훈련원에 가족들이 간 적이 있어요. 아버님이 거기서 훈련 나자고 하셔서 그 때 제 고등학생 1학년이고 제 동생이 중학교 2학년 이었습니다. 그때 강연을 시켰습니다. 강연 주제도 기억이 나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이냐였습니다. 제 동생도 강연을 같이 했는데 동생 강연이 더 반응이 좋더라고요. 저는 제 얄팍한 지식을 얘기 했던 거 같고 동생은 체험 위주로 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도 상처를 받았네요. 내가 동생보다 강연을 못하는구나. 열등감은 느낀 사람만 기억하지 그 대상자는 모르니까요. 이것이 두 번째 저의 열등감이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동생하고 서로 열등감이 없을 줄 알았는데, 동생하고 또 같은 길을 가잖아요. 같은 길을 가면 비교가 좀 될 수 있죠. 저는 석 박사 공부를 한다고 3년을 쉬었어요. 3년을 쉬면서 이제 대학원 공부를 했었는데 그때 총부에서 장학금을 받게 돼서 인사를 가게 됐어요. 근데 총부에는 제가 3년에 쉬니까 저를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소개 하냐면 제 동생 이름이 박진수 인데 박진수 교무의 오빠입니다 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래서 가는데 마다 저 자체는 모르고 제 동생을 통해서 저를 아는거에요 누구의 오빠다 라고 항상 소개가 되었죠. 제 동생이 그때 총부에서 국제부에서 근무했었기 때문에 총부에 오래 있으니까 총부 교무님들이 다 동생은 알아도 저를 잘 몰라서 저는 항상 이제 박진수 교무의 오빠로 소개가 됐죠. 그때 마음속에서 미묘한 감정이 일어나서 좀 더 열심히 해서 인지도를 높여야겠다. 이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ㅎㅎ 열등감이 상당히 유치한 감정이기 때문에 쟤가 박세훈 교무 동생입니다. 이렇게 말장난도 했었습니다. 같은 성직의 길을 가다 보니까 이런 감정들이 나와서 같은 길을 걸어가지만 경쟁심도 느낍니다 서로. 그래서 이 삶이란 것은 우월감과 열등감의 연속인데 그것을 느끼는 가장 가까운 대상은 형제다. 유치했던 거 있을 거예요 찾아보시면. 이렇듯 한 사람의 인생은 우월감과 열등감의 연속이며 그 가장 큰 대상은 엄마 친구 딸 엄친딸 엄마 친구 아들 엄친아 가 아니라 주로 형제 친척인 거죠. 열등감을 대상, 우월감의 대상이요. 또한 아들러는 태어나는 순서가 우리의 성격 형성과 삶의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을 했어요. 몇 번째로 태어났는가가 우월감이나 열등감이 나타날 수 있는 환경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자세히 보면 저는 장남이면서 첫째였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보니까 풍족하게 자랐고 동생의 고충에 대해서 별로 느껴보지 못했던 것 같아요. 공부를 하고나서 지나 보니까 동생이 좀 힘들었겠다 하는 생각이 들고 제 자녀들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들이 듭니다. 왜냐하면 형이나 언니, 오빠, 누나, 첫째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동생을 이길 수가 있어요. 그래서 제가 딸이 두 명인데 첫째 딸이 둘째 딸한테 한다는 것이 넌 이것도 모르냐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모르는 게 당연한 건데 엄청 무시합니다. 우리가족끼리 대화할 때 얘는 아직 이해할 수 없다고 대화할 때 제외시킵니다. 동생 무시하고 내리깔고 그런데 저도 그랬던 거 같습니다. 그래서 첫째는 힘 하나도 안 들여도 동생을 이길 수가 있어요. 지적 능력에서 앞서가고 신체적으로도 앞서 가니까 노력하지 않아도 이기게 되죠. 그래서 어떤 관점에서 보면 동생은 태어날 때부터 열등감을 안고 살아가는 거예요. 제가 동생이 안되어 봐서 잘 모르겠는데, 상담 해 보니까 동생들은 일단은 열등감을 안고 시작할 수밖에 없어요. 일단 태어나면 형이나 누나나 모든 면이 있어서 뒤질 수밖에 없잖아요 이런 것이 출생 순서에 따라서 생기는 거죠 그래서 아들러는 태어난 순서에 따른 성격을 4가지로 나누어서 설명을 했습니다. 그래서 첫째아이 그 다음에 둘째아이 중간 아이라고 하죠. 그 다음에 막내, 외동 근데 오늘은 형제 친척의 도니까 외동은 빼버리고 이 세 명에 대해서 얘기를 해보면 요즘은 우리가 이제 둘째이자 막내인 사람도 많고 또 우리나라 같은 경우엔 좀 특이한 케이스가 있어요. 장남 같은 경우에는 첫째가 아니더라도 첫째 대우를 받는 경우가 많고 그런 것도 따지고 보면 출생 순서 외에 영향을 미칠 수가 있습니다. 또 하나 형제자매 간의 몇 살 차이가 있냐에 따라서도 상당히 영향을 미쳐요. 두 살 차이하고 세 살 차이가 다르거든요 왜 그러냐면 만 2세 때가 아이가 예민해요 만 2세까지는 부모의 사랑을 일방적으로 받아야 되는 시기인데 두 살 터울이면 중간에 부모의 사랑이 옮겨 가잖아요. 근데 이제 3세가 넘어가면 부모가 사랑을 좀 덜 줘도 버틸 수가 있는 에너지가 있는데 두 살 터울은 아이의 성향에 따라서 버틸 수 없는 아이도, 버틸 수 있는 아이도 있어요. 그래서 나이 차이도 문제가 있죠. 3살 차이, 4살 차이 훨씬 더 안정적이게 되는데 두 살 차이는 조금 위험할 수도 있죠. 사랑이 나뉘면서 동생을 미워할 수 있어요. 이런 것들이 영향을 미치는 겁니다. 기본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출생 순서인데 첫째 아이의 성격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낙천적이고 친절한 대인배. 저는 첫째 성격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 것이고 이것을 다시 한 단어로 바꾸면 허당인 것 같습니다. 허당 기질이 좀 있어요. 그래서 뒤에 얘기 하겠지만 사업 실패 하는 거 보면 거의 첫째가 많이 실패를 해요. 왜냐하면 첫 번째 아이는 부모에게 특별하고 귀한 대접을 받습니다. 저도 보니까 첫째한테는 온갖 것들을 다 해줬어요. 그러다가 둘째는 좀 막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 거였구나!ㅎㅎ 첫째는 조금만 울어도 가서 보고 하다가 이제 둘째는 울어도 그냥 내 할 일을 조금하다가 가기도 하고 이렇게 돼요 바뀝니다. 부모가가 아직 육아에 대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정말로 최선을 다해서 열정적으로 살피게 됩니다. 첫째는 또 애정을 독점하는 기간이 있어요. 둘째는 그게 있어요 없어요? 둘째는 애정을 독점할 수 있는 기간을 부여 받지 못해요. 이미 있잖아요? 이미 박힌 돌이 있습니다. 근데 첫째는 애정을 독점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요. 둘째가 2년 후에 태어나면 2년간 독점을 하고 3년 뒤에 태어나면 3년간 독점하고 외동이면 평생 독점하죠. 이것이 특징입니다. 그래서 이 애정을 독점하는 기간에 따라서 성격이 달라집니다. 부모의 애정을 독점하는 기간이 길어지면 성격이 좀 느긋해집니다. 왜냐하면 애정을 동생한테 뺏어 와야 되는 시간이 좀 늦춰지잖아요. 그래서 좀 느긋해지고 그것이 짧아지면 욕구불만이 생기기도 합니다. 대부분 첫째는 느긋하면서 낙천적이면서 이상적이에요. 왜냐하면 특별하게 경쟁을 겪지 않거든요. 태어날 때부터 그리고 남을 잘 챙겨주고 배려심이 있고 어떤 경우에는 동생들의 모범이 되어서 리더십도 있죠. 그래서 통계학적으로 봤을 때 육군 장군이나 해군 장군들을 봤을 때 상당한 비율로 첫째가 많대요. 근데 이러한 상태가 조금 잘못 가면 남을 지나치게 간섭하거나, 사랑을 독점 있기 때문에 자기본위적인 성격으로 자라기도 합니다. 첫째가 가지고 있는 조심할 점은 첫째는 지나치게 잘 챙겨주는 사람 앞에서는 경계심이 완전히 풀어집니다. 달콤한 말을 늘어놓는 사람을 좋은 사람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한테 좋은 얘기 해주면 금방 넘어가요. 이것을 전문용어로 귀가 얇다. 속여 먹기 쉽다. 그래서 첫째들은 남들에게 한턱내기 좋아하고 속임수에 잘 넘어가요. 그래서 큰 손해를 보기도 합니다. 제가 아까 말한 것처럼 사업에 실패한 사람 중에 첫째가 많아요. 현실성이 떨어지거든요. 그리고 첫째는 상대의 마음에 들고 싶고, 좋은 사람으로 기억에 남고 싶은 마음이 다른 둘째나 셋째보다 훨씬 강해요. 이미지 관리를 잘하고 싶어 해요. 그래서 주변 사람들한테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는 실수를 많이 범하기도 합니다. 둘째가 가지고 있는 특징은 권위에 저항하는 야심가에요. 왜냐하면 둘째는 태어나면서부터 주변에 관심을 받는 첫째와 달리 태어나는 순간부터 경쟁 속에 있게 되잖아요. 첫째를 이겨내고 관심을 획득해야 돼요. 항상 압박을 받고 그리고 항상 형이나 누나를 이겨내야 되기 때문에 경쟁으로 부터 시작합니다. 그것이 둘째의 성격에 영향을 미치는데, 첫째의 약점을 찾는 요령을 발달시켜요. 첫째의 실수를 자기의 보감으로 삼아요. 제가 보니까 제 둘째가 첫째 약점은 저한테 상당히 많이 얘기해요. 그리고 첫째가 실패한 것을 자기는 성공시켜 가지고 부모한테 칭찬을 받아냅니다. 그래서 첫째는 성격 좋고 허당이다. 그냥 좋다 좋다 해서 비현실적이고 이상적인데, 둘째는 현실적인 거에요. 첫째의 약점을 찾아내고 실패한 것을 자기가 달성해서 이런 경향이 있습니다. 셋째가 태어나면 또 경쟁자가 더 생기잖아요? 그래서 샌드위치 상황이 됩니다. 그러니까 둘째는 항상 자기 상황이 불만적이에요. 그리고 부모의 사랑을 안정적으로 오래 받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비판적이고 권위에 복종하지 않고 반항적이고 저항하고 이런 성격들이 강해요. 그래서 부모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둘째는 고분고분하지 않다, 말을 안 듣는다 라고 생각해서 오히려 더 강하게 푸시가 들어가니까 그것이 악순환이 돼서 조금 더 저항적인 반항적인 성격이 형성됩니다. 그리고 둘째는 첫째나 막내보다 부모의 사랑을 더 적게 받았기 때문에 부모가 조금 관심을 덜 가져도 그거에 대해서 불만이 적어져요. 세 번째 막내가 있어요. 막내의 성격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뭘까요? 사회성. 사회성으로 표현됩니다. 첫째가 제일 사랑을 많이 받을 것 같지만 일반적으로 막내가 가장 사랑을 많이 받거든요. 첫째는 외동이 아닌 이상 둘째가 태어나고 셋째가 태어나면 애정이 넘어가지만 막내는 부모가 살아 있는 한 평생 애정과 관심을 누릴 수가 있어요. 그래서 막내들이 보통 느긋한 성격이 되기 쉽고 또 막내는 둘째와 달리 첫째한테 대항하려 하지 않아요. 첫째나 둘째에게 내가 힘으로 맞설 수 없다라는 것을 일찍 파악해요. 둘째는 첫째와의 대항을 통해서 쟁취한다면 셋째 막내는 충돌을 피하면서 자기 잇속 챙기는 능력이 뛰어납니다. 그것이 사회성이죠. 그리고 셋째는 첫째나 둘째를 많이 관찰해요. 보통 혼날 때 첫째를 혼내고 둘째를 혼내잖아요. 그래서 첫째가 혼난 거 보고 둘째가 혼나는걸 보기 때문에 인간관계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래서 셋째가 사회성이 좋고 뛰어나다고 하죠. 반면에 셋째 같은 경우 지나치게 부모의 과보호 속에 있게 되면 의존성과 중독에 빠지기 쉽다고 해요. 그래서 알코올 중독에 빠진 것을 봤을 때 막내가 가장 많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형제에 대해서 가장 많이 연구를 했던 아들러가 본 출생 순위에 따른 성격의 형성이죠. 이런 것들을 부모입장에서 파악하고 자기 스스로 자기가 몇째인가를 봐서 조금 더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겠죠.
[형제자매간의 갈등]
이런 출생 순위에 따라서 형제자매 간의 갈등은 크게 3가지 원인이 있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부모의 편애 때문에 생기는 갈등입니다. 그것은 부모에 대한 분노와 형제에 대한 질투로 나타나는데 이에 대해서 세전에 자녀의 도에서는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부모가 나에게 사랑과 자비가 적은 경우가 있다 할지라도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오직 자녀의 도리만 다하라. 이게 자녀의 도입니다. 부모가 나한테 편애를 하든지 사랑을 주든지 간에 계교하지 말고 나는 자녀의 도를 다하고. 형제 친척의 도에서는 이렇게 얘기하죠. 형은 형의 도리만 다하고 아우의 공경을 계고하지 말며, 아우는 아우의 도리만 다하고 형의 우애를 계교하지 말아서 그 천륜의 정의를 길이 지켜라. 그러니까 부모가 편애를 하고 형제자매간의 우월감과 열등감이 공존하더라도 그것에 대해서 계교하지 말고 자녀는 자녀의 도리로서 부모를 대하고 형제는 형제의 도리로써 형이나 아우를 대하는 거에요. 그래서 우애라는 것은 동생을 감싸 안아 주는 것이 우애입니다. 공경이라는 것은 형을 형으로서 대접해주는 것이 공경이잖아요. 이것을 하라는 것이죠. 이게 첫 번째고, 우리가 유달리 부모한테는 엄격한 잣대를 댑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잘 이해해주고 잘 용서 해주면서 가족들, 특히 부모한테는 엄격해가지고 용서를 잘 못해주고 엄격한 잣대를 대거든요. 부모도 아직 공부해가는 중생이죠. 완벽한 존재가 아니잖아요? 그리고 현실의 인과라는 것이 복잡다단해요. 그래서 자로 잰 듯이 공정하게 부모가 자녀를 대할 수가 없어요. 왜냐면 부모도 전생에 습관과 업력이 있어서, 그 자녀와 자녀마다 서로 얽힌 업력이 달라요. 똑같이 대할 수가 없어요. 똑같이 마음이 나갈 수가 없어요. 그게 인과잖아요. 오히려 똑같이 대하는 것이 인과에 안 맞잖아요. 자녀와 사이에 얽힌 인과가 서로 달라요. 그러니까 당연히 다르게 반응이 나가는 거죠. 마음은 똑같이 주려고 하지만 서로 얽힌 업력이 달라서. 그래서 똑같은 자녀의 행동에 다르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게 당연한 거예요. 그게 인과에요. 따라서 우리는 부모나 형제자매의 행동에 수동적으로 반응한 거에요. 부모가 잘해주면 나도 잘해주고 부모가 못해주면 못해주는. 환경에 마음이 지배당하는 운명론적 인과론으로 가면 안 되죠. 그럼 평생 악순환인거에요. 수동적인 사람이 되면 안 돼요. 그것을 운명론적 인과라고 해요. 환경에 따라서만 반응하는 거에요. 좋은 일 했으면 좋아하고 싫은 일 했으면 싫어하고. 부모가 잘해주면 잘하고 부모가 못해주면 못하고 그것을 운명론적 인과 그리고 환경에 마음이 지배당하는 것. 이것을 벗어나서 마음으로 환경을 지배하는, 음양 상승의 도를 잘 활용하는. 이것을 천업을 돌파 한다고 하죠. 상대방이 어떻게 대하든지 간에 나는 내 할 도리를 다하는 것. 이것이 세전에서의 핵심입니다. 모든 세전의 도리에서 나와요. 상대방에 따라서 내가 춤추는 게 아니라 나는 나의 할 도리만 가는 거예요. 주도권이 나한테 있어야 되는 건데, 주도권을 빼앗기면 마음이 환경의 지배를 당하는 거죠. 이렇게 되면 안 된다. 이것이 첫 번째입니다. 두 번째로는 형제자매 간의 갈등이 나타나는 원인은 마음속에 이상적인 존재로 각인된 형제자매에게 얽매어 있는 거예요. 너무나 뛰어난 형, 누나, 언니, 오빠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할 때 갈등이 생기는데 우월감이나 열등감이라는 것이 원래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중생심이 만들어낸 환상이다. 거품이다 라는 것을 깨달아야 해요. 아까 같이 콤플렉스라는 것은 알아차리는 순간 사라지잖아요. 그것을 우리는 분별주착심이라고 하죠. 잘났다는 생각에도 사로잡히지 말고, 못났다는 생각에도 사로잡히지 말아서 원래 잘나지도 못나지도 않은 그 자리에서 형제자매한테 차별심을 둬야하죠. 형제자매한테 차별심 나는데 그 차별심은 차별이 없는 자리에서 나투는 차별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형제의 우애와 공경이 되는 거에요. 그래서 우월심에도 사로잡히지 말고 잘났다는 것에도 사로잡히지 말고 못났다는 것에도 사로잡히지 말아서 그것이 없는 자리에서 마음에 써야 된다. 이것이 두 번째입니다. 세 번째는 내가 애착을 쏟아온, 내가 사랑할 준 존재한테 배신당하고 버려졌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 갈등이 생겨나거든요. 근데 이 대표적인 갈등이 뭐냐면, 배신당한다는 느낌이 들 때가 언제냐면 부정당한 의뢰를 할 때에요. 정산종사님께서 그래서 여기 형제 친척의 도에도 이렇게 해놓으셨습니다. 친척이라고 하여 옳지 못한 의뢰를 구하거나 부당한 의세를 행한다면 이는 형제 친척의 도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먼저 힘을 써서 그 혜택이 형제와 친척에게 미치게는 할지언정 내가 먼저 형제와 친척에게 구하고 바라는 마음을 가지지 아니하여야 영원한 화목을 누리게 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옛날부터 누구 하나 잘사는 사람이 있으면, 누구하나 성공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한테 다 붙어서 얻어내려고 하는 예전의 병폐가 있었다고 대종사님이 말씀하셨어요. 부정당한 의뢰의 병. 그것 때문에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온갖 비리가 일어나잖아요. 비리를 보면 다 가까운 사람이지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이 아니에요. 지금 공무원들도 다 주요 장관들 임명할 때 가장 발목 잡는 게 누구에요 자녀문제잖아요 계속 자녀가 발목 잡고, 친척이 발목 잡죠. 자녀친척이에요 99%. 자녀하고 친척이 부정당한 의뢰를 하는 거잖아요. 한생각 사심이 동하면 부정당한 의뢰심이 싹트고, 그 마음이 배신자를 만들어내고, 버려진 자를 만들어 내고, 서운한 마음을 만들어 내요. 그래서 부정당한 의뢰심은 가족 전체를 망치는 길입니다. 내가 정신의 자주력, 육신의 자활력, 경제의 자립력을 길러서 내가 자력이 있는 사람이 되면 부정당한 의뢰심을 할 마음이 안 일어나는데 내가 자력이 없으면 부모를 죄 짓게 할 수도 있어요. 내가 자력이 없으면 자력 있는 사람한테 부담을 주잖아요. 그리고 내가 자력이 없으면 사심이 일어나요. 자력 있는 사람한테 의뢰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죠. 아무래도 형제 중에 잘 사는 사람이 있으면 뭔가 부탁하고 싶잖아요. 근데 그것이 가족 전체를 망치는 길이다. 그래서 정산종사님께서는 부정당한 의뢰를 절대 해서는 안 된다. 영원한 화목을 누릴 수가 없다 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세 가지 형제자매 간에 나타나는 갈등의 원인과 그에 대한 대응이고요. 마지막으로 정산종사님께서는 맨 앞에 강조하신 것이 있어요. 형제는 한 기운을 받아서 한 기운으로 자라났다고 했어요. 이것이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형제자매는 비슷한 업을 지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서로 녹여야 될 비슷한 업장들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형제 친척들 특히 형제간에는 얽히고설킨 매듭을 해결하지 않고는 공부에 진전이 나타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이 순간 이 사람하고 형제자매가 된 것은 분명히 어떤 이유가 있거든요. 내 마음의 성장을 위해서 꼭 필요한 요소를 서로 갖고 있어요. 그 매듭을 해결해야 되는데 그냥 외면해버리고 관계를 끊어 버리면 내가 진급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거죠. 그리고 다시 만나야 되는 거에요. 서로 한 기운으로 자랐고 한 기운을 받았으니까 서로 녹여야 될 비슷한 업이 있습니다. 그것을 절대로 외면하지 말고 어떻게 해서든지 그 매듭을 풀고 해결을 해야 돼요. 그래야지 혈연이 법연이 되어서 서로가 진급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데, 안 그러면 가장 가까운 사이에서 원수가 생기고 가장 가까운 사이에서 지옥 생활을 할 수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정산종사님께서 형제자매는 한 기운으로 나고 한 기운으로 자란다고 한겁니다. 그 본의를 잘 살려서 혈연이 법연이 되고 진급하는 인연으로, 상생하는 인연으로 갈 수 있도록 공들이시기를 기원 드리면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첫댓글 우와 준성 교우님 감사합니다
은혜롭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