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8월 12일 “오늘의 말씀 묵상 편지”
“ 그 명령을 거역하여 죄를 지은 그 죄가 알려지면”
“만일 이스라엘 온 회중이 무지로 인하여 범죄하고 그 일이 집회의 눈에 감추어지면 그들이 마땅히 행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관한 주의 명령들 중에서 하나라도 거역하여 행하였으니 그들은 유죄가 되느니라. 그들이 그 명령을 거역하여 죄를 지은 그 죄가 알려지면 그때에 회중은 그 죄로 말미암아 어린 수송아지를 바칠지니 회중의 성막 앞으로 그것을 끌어다가 회중의 장로들이 주 앞에서 그 수송아지의 머리에 안수하고 그것을 주 앞에서 잡을 것이요,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은 그 수송아지의 피를 회중의 성막으로 가져다가 자기 손가락을 그 피의 일부에 담그고 주 앞에서 곧 휘장 앞에서 그 피를 일곱 번 뿌릴 것이며 또 그 피의 일부를 주 앞에 있는 곧 회중의 성막 안에 있는 제단의 뿔에 바르고 그 피 전부를 회중의 성막 문에 있는 제단 곧 번제단 밑에 쏟을지니라.(레위기 4:13-17)
('Now if the whole congregation of Israel sins unintentionally, and the thing is hidden from the eyes of the assembly, and they have done something against any of the commandments of the LORD in anything which should not be done, and are guilty ; 'when the sin which they have committed becomes known, then the assembly shall offer a young bull for the sin, and bring it before the tabernacle of meeting. 'And the elders of the congregation shall lay their hands on the head of the bull before the LORD. Then the bull shall be killed before the LORD. 'The anointed priest shall bring some of the bull's blood to the tabernacle of meeting. 'Then the priest shall dip his finger in the blood and sprinkle it seven times before the LORD, in front of the veil.)”
임마누엘!!
하나님은 명령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주 만물 곧 천지 만물을 ‘말씀’으로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니 그 말씀과 같은 실체가 그대로 이 땅에 임재해 주어졌습니다.
하늘이 있으라 하시니 하늘이 있었습니다. 땅이 있으라 하시니 그대로 땅이 있으셨습니다. 해와 달과 별들이 다 하나님의 말씀 따라 있으셨습니다.
이런 천지 창조의 역사가 6일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이 죄입니다. 모든 죄는 그냥 없어지지 않습니다. 죄값을 반드시 치루어야만 합니다. 이는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특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속죄의 방법을 말씀하셨습니다. 속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의 죄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합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도 “만일 이스라엘 온 회중이 무지로 인하여 범죄하고 그 일이 집회의 눈에 감추어지면 그들이 마땅히 행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관한 주의 명령들 중에서 하나라도 거역하여 행하였으니 그들은 유죄가 되느니라. 그들이 그 명령을 거역하여 죄를 지은 그 죄가 알려지면”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가 눈여겨 보고 깊이 말씀 탐구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닌 ‘그들이 그 명령을 거역하여 죄를 지은 그 죄가 알려지면’고 하심입니다. 그런데 한글 개역 개정 성경에서는 이 부분을 ‘그 범한 죄를 깨달으면’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 'yada'(야다)'. ‘알다(know, RSV와 ASV는 비슷하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944회 나오며, 모든 어간에서 사물이나 사람 또는 상황등을 감각 기관으로 얻은 약간씩 차이 나는 여러 가지 지식을 나타냅니다. 이미 알려진 것은 감각으로 나타나야 하며 그 자체는 그렇게 알려지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듣는 것(듣다)과 보는 것(보다)에 관한 동사가 아는 것에 관한 동사와 병행되어 나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예: 출 16:6 이하, 신 33:9, 삼상 14:38, 사 41:20). 야다는 인간(창 18:19, 신 34:10)과 그의 길(사 48:8, 시 1:6, 시 37:18)에 대한 하나님의 지식에 사용되었으며, 여기에서 지식은 심지어 탄생 이전에서부터 시작됩니다(렘 1:5). 하나님은 들새들까지도 아십니다(시 50:11).
야다는 또한 인간의 지식과 짐승의 지식에도 사용되었습니다(시 1:3).
야다는 구약성경에서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1) 야다는 '알아채다, 인지하다, 경험하다, 관찰하다'를 의미합니다(예: 창 3:7, 창41:31, 삿 16:20, 전 8:5, 사 47:8, 호 5:3).
2) 야다는 '구별하다(distinguish)’를 의미합니다. '선악을 아는 것'(창 3:5, 창 3:22)은 하나님께 불순종한 결과입니다. 좋고 흉한 것을 구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삼상 19:36). 어린 아이는 왼손과 오른손을 구별하지 못하며(욘 4:11) 또 선과 악도 구별하지 못합니다(사 7:15). 후자의 구절의 문맥과 사 8:4에 나오는 이와 비슷한 언명은 이 언급이, 어린 아이는 유익한 것과 해로운 것을 구별할 줄 모른다는 것에 관한 것이라는 점을 시사해 주는 것 같습니다.
좋고 흉한 것, 좌우와 같은 것에 대해 관찰하는 것은 결국 그것들을 구별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3) 야다는 '관계하다, 관심을 가지다'(시 1:6, 시 37:18, 시 119:79), '~와 관계를 맺고 싶다'(예: 신 33:9). 신학적인 문맥에서 자주 이 단어가 적절한 지식을 얻지 못해서 결국 관심의 결여를 초래하고 마는 것에 대한 문제로 나온다(예: 렘 8:7, 시 95:10).
4) 야다는 '성적 관계를 가지다'라는 의미를 나타냅니다.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를 알았다"고 하는 유명한 완곡 어법과 그 병행구들(창 4:1, 창 19:8, 민 31:17, 민 31:35, 삿 11:39, 삿 21:11, 왕상 1:4, 삼상 1:19)에서 남녀 쌍방의 성적인 관계를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단어는 남색(창 19:5, 삿 19:22)이나 강간(삿 19:25)과 같은 성적 도착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5) 야다는 '다른 사람과 인격적이며 친숙한 관계를 맺다'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이름으로, 대면하여 모세를 아십니다(출 33:17,신 34:10). 하나님께서 어떤 개인이나(렘 1:5) 어떤 민족을(암 3:2) 아실 때 하나님께서 그를 선정하시거나 선택하십니다(참조: 민 16:5 70인역본). 선택으로 이해되는 이 지식은 은혜롭고 자애로운 것이지만 이것은 인격적인 응답을 요구합니다.
6) 요약하면 희랍인들이 초연한 지식을 갖고 있으며 또한 사물의 형이상학적 본질에 사변적인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반해, 구약성경은 지식을 끊임없이 인격적인 만남에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이 하나님과 창조에 관해서 언급한 것을 보고서, 우리가 이 언급들을 존재론적 추론으로 여겨서는 안되고 하나님의 계시에 응답하는 믿음의 선포로 간주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역사적 과거와 약속된 미래 즉 하나님의 피조물들이 존재하고 있는 이 지상의 영역 속에서의 하나님의 계시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끊임없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 속에서의 하나님의 계시를 찾았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예배와 행동 가운데서 하나님의 목적과 요구를 식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서울에서
이 우복 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