년말 해넘기 전에 보고싶은 산친구도 볼겸 눈산행도 해 볼겸 2012. 12. 22 ~ 23일 이틀 꼬박
울나라 최고의 오지 강원도 홍천 내면, 평창군 노동리에 있는 계방산에 다녀왔다
....
계방산은 96년 강릉 잠수함침투 사건때 무장공비들이 도주하던 곳이고, 계관산 아랫 마을은 68년 울진삼척지구에
침투했던 무장공비 5명이 북상하며 이승복일가를 참살했던 곳으로 기억되는 곳이다.
첫날 22일 아침일찍 산악회원이자 여친 남숙과 같은 산악회회원 2명을 태우고 계방산산행을 위해 강원도
홍천에 있는 산친구의 집으로 향했다. 대전 지날 무렵 타이어가 펑크나는 곡절을 겪었지만 8시간만에 난로불 따뜻한
홍천 친구집에 도착하였다
< 금강다리 찬바람 맞으며 펑크난 타이어를 바꾸어 끼는 님들의 모습 >
< 홍천 친구집에 배낭을 풀고 따뜻한 정종한잔 마시며 몸을 녹이는 친구와 후배님 >
둘째날, 오랫만에 만난 산친구와 긴시간 수다를 떨고 새벽에 겨우 일어나 계관산 산행 초입지인 운두령에 도착하였다.
산행초입지까지 차를 태워준 친구는 하산지점인 이승복 생가터에서 13;00에 만나자는 말을 남긴체 얼어붙은 운두령길을
떠났다
< 계방산 산행초입지인 해발 1050m인 운두령 고개 마루에서 폼잡고 있는 회원들 ... 07:00경 >
나무테크를 힘차게 올랐지만 얼마못가 능선을 강타하는 찬바람을 피하지 못하고 두불을 감싸며 무거워 지는 발걸음을
옮겼다. 찬바람이 얼마나 매서운지 칼날에 베이는듯 두볼이 아렸고 남숙의 두볼은 홍시처럼 빨개졌다
평소 자전거를 많이 타서 그런지 살금살금 걷는 남숙이의 발걸음은 나보다 훨씬 더 가벼웠다.
< 이름을 불러야 알 수 있는 친구의 모습 >
< 뜨거운 코코아 찻물이 목구멍을 타고 내리자 얼음장같이 언몸이 녹아내리는듯 생기가 돌았다 08: 50경 >
된비알 3.5km를 겨우 올라서니 계관산 주능에 이를 수 있었다. 숨도 좀 고르고 원기보충도 할겸
바람을 피해 능선을 비켜 내려섰지만 추워서 제대로 쉬지 못하고 종종걸음으로 다시 정상으로 향했다.
정상으로 향하는 길에 잠시 멈춰선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강원도 첩첩산중의 파노라마가 장관이었다
아! 대한민국, 조국의 산하. TV 화면으로 느낄 수 없는 감동이 밀려들었다.
< 칼바람에 쫓기듯 정상으로 향하는 님들 >
< 막영지 넘어 정상이 펼쳐저 있다 >
편하게 바라보는 풍경이 아니라 추위를 무릅쓰고 숨가프게 찾아온 곳이라 감동 또한 다른 것이다. 잠시나마 가슴뿌듯
한 성취감을 고생한 이들과 함께 느껴보았다. 아마도 이런 순간은 어디에 기록하지 않더라도 좋은 추억으로 각인되리라
생각되었다.
< 잠시 햇살이 찾아든 능선에서 ...>
< 설악산을 비롯한 대간의 파노라마 >
< 얼어붙은 계방산 정상에서 ...>
정상에 서니 바람이 더욱 거세고 차가웠다. 저멀리 설악산, 오대산, 석병산 ... 잠시 바라보다 손,발가락이 시리고
볼테기가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아 뭐.구경이고 감상이고 할 것없이 쫓기듯 하산길을 찾았다.
눈으로 다져진 미끄러운 경사길을 스키타는 자세로 반쯤은 미끄러지며 바람이 덜 부는 안부에 도착하였다.
GPS를 보며 현재 위치를 확인하고 하산점을 찾았다. 이승복 생가터가 있는 오토켐핑장까지 4km 남짓한 거리가
남았다. 13:00 약속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었다.
후배 승용이가 건네는 따끈한 꿀차 한잔과 쵸콜렛 과자 한토막을 받아 먹으니 한결 살것 같았다.
< 주목나무옆에서 잠시 바람을 피해 간식을 나눠먹는 님들 ...>
여유로운 하산길 후배의 익살스런 폼에 웃음이 메아리 친다
< 심설을 헤쳐나가는 럿셀장면을 연출하는 후배님의 인상이 경이롭다 >
< 눈덮힌 겨울 풍경을 바라보며 넉넉한 걸음으로 하산길로 접어든 님들 >
<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치는 후배님 ... 입은 재앙의 근원이니 조심하세요 >
< 1968년 11월 당시 이승복 생가 >
예나 지금이나 북한정권은 바뀌질 않고 총질 대포질,핵폭탄질, 미사일질을 하고 있지만 진보라 자칭하는 종북좌파들,
일부 전교조들은 그릇된 역사관을 시대의 양심인양 젊은세대들에게 심어주고 과거의 뼈아픈 역사와 작금의 현실을
그릇되게 바라보도록하고 있지 않는가.
이승복 일가의 억울한 죽음마져 편향된 이념의 잣대로 부인하고 있는 님들에 의해 아직도 피비린내가 가시지않은 듯한
이곳의 비극이 되풀이 되지나 않을까 하는 섬득한 생각이 들었다
< 생가가 있는 노동리 마을 60대 마을 토박이 내외분들이 비닐하우스에서 오뎅과 봉평막걸리를 팔고 계셨다 >
비닐하우스에서 이승복일가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동네 토박이 분들께 직접묻고 들었다.
빙판길을 능숙한 솜씨로 달려온 친구들 다시만나 구룡령넘어 주문진 포구로 향했다.
늦은 점심시간이었지만 동해바다 바라보이는 현지에서 "도루목 찌게"를 먹어보기 위해서 였다.
< 백두대간길인 구룡령을 앞서가는 친구차를 따라 ... >
< 백두대간 구룡령에서 ... >
< 주문진 포구 어느 허름한 식당을 찾아 "도루목찌게"
< 생선모듬구이..>
< 명태찜 ...>
< 옥수수막걸리 ...>
차가운 바람피해 찾아간 식당집에서 갯내음 가득한 싱싱한 도루목 안주에 강원도 옥수수 동동주로 친구와의 이별을
달랬다
< 주문진 어시장에 널린 도로목 ....>
도루목.
임진난 피난길에 선조가 맛있게 먹고는 목어란 본래 이름대신 귀하디 귀한 금어라는 이름을 하사했는데 막상
궁궐로 환궁하여 다시 맛을 보니 형편이 없어 원래 이름인 목어로 도로 되돌리라는 뜻에서 " 도로목어"이라고 했다는 그
유명한 괴기 .. 도로목 혹은 도루묵
그날 생산지인 주문진 포구에서 맛본 도로목의 맛은 명태보다 갈끔하고 담백하면서 구수하여 막걸리와는 찰떡궁합
이었다. 친구가 헤어지기 섭섭한 마음에 한보재기 싸주어서 고맙게 챙겨 받았었다.
통영집에 도착한 다음날 주문진식당에서 배운대로 준비한 도로묵찌게는 어제의 맛이 아니었고 몇해전 속초위판장
순이네집에서 먹던 그맛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말짱 도로묵"이었다.
선조가 느낀 맛의 배신감. 이런 게 아니었을까
아마도 이괴기는 산지에서 싱싱하게 먹어야 귀한 맛을 내고, 산넘고 해넘어 선도가 떨어지면 천한 맛을 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금 혓바닥이나 이놈의 혓바닥이 뭐 다를 게 있겠어.
입맛 배릿다
첫댓글 울아들 한태 쏫은 정도 말짱 그렇게 될까 겁납니더^^
행님~ 수고 하셨십니더ㅎ
그래도 믿을 게 아이들 밖에 없다 ... 보험보단 못하겠지만
음식에 대한 입맛은 변할 수 밖에 없지만.... 옛추억 까마득하게 남아있는 그리운 향수와 같은 게 아닐지 ... 그래서 어머니의 막연한 손맛이 그리워지는것 같기도 해... 도루목의 옛 맛, 그래서 말짱 도루목이야
추운만큼 좋은 눈산행이었네요,,먹거리도 풍성하고...함께 못해 아쉬웠습니다...
강원도사는 친구분이 "백두대간가는길"이란 책을쓰신 민병준님이실줄은...따땃한집에서 맘편하게 신세지고 왓네요 ㅎ
산행에서 눈은 실컷보고 왓는데 울동네에 또 눈이 왕창 내립니다. 조옿습니다 ^^
매운 초고추장에 쓱쓱 버무린 다대기 문절이도 좋지만 매콤한 도루목탕도 막걸리 안주로 아주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