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등산(574m)
봉황 날아와 깃든 봉정사 품은 산
멀리 백두대간이 흐르고 낙동강 물줄기가 어슴프레 보이는 천등산(574m)은 안동의 서쪽에 있고 그 산에는 봉정사, 개목사
같은 고색창연한 옛 절이 있다.
천등산은 그렇게 높지는 않지만 소나무와 잡목들이 울창하고 산세가 온화하며 수려하다. 아침이나 늦은 저녁에 바람결
을 따라 나서는 둣한 산책처럼 산을 오른다면 그 역시 아름다운 산행이 될 것이다. 자신으로부터 기쁨을 끌어내는 완전한
산책같은 산행을 위해 예비된 산이 바로 안동의 천등산이다.
주차장을 지나 산길로 접어들면 숲길은 아늑하고 계곡 물소리가 제법 요란한 곳 좌측에 정자가 한 채 있다. 퇴계 이황이
봉정사에 묵으면서 공부하다가 자주 나가 쉬었다는 정자의 옛 이름은 낙수대였다. 밋밋했던 이름을 "정자에서 듣는 물소리
가 옥을 굴리는 듯 아름답다"하여 명옥대로 바꾸었다.
바위 사이로 흐르는 물소리가 멎기도 전에 절에 닿는다. 빼어난 문화재들이 보석처럼 숨어있는 봉정사는 의상이 세운 절
로서 창건설화는 이렇다.부석사를 창건한 의상스님이 부석사에서 종이로 봉황을 만들어 날려보냈는데 종이로 만든 봉황이
앉은 이곳에 절을 짓고 봉정사라고 이름지었다. 이후의 확실한 역사는 전하지 않으나 참선도량으로 이름을 떨쳤을 때에는
부속암자가 9개나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한국전쟁 때 경전과 사리 등이 모두 불타 역사를 제대로 알 수가 없다.
이 절에는 고려 때 지은 극락전(국보 15호)과 더불어 조선초기 건물인 대웅전과 조선후기 건축물인 고금당과 화엄강당
이 있어서 우리나라 목조건축의 계보를 고스란히 간직해왔기 때문에 건축박물관 같은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일주문을 지나 숲길을 걸어 들어가 돌계단을 숨가쁘게 올라가면 봉정사의 강당인 덕회루 밑으로 지나게 된다. 마치 부석
사 안양루를 지나 무량수전 석등 앞으로 올라가듯이 그 문을 들어서면 석축이 나타나고 대웅전을 중앙에 두고 요사채와 화
엄강당이 눈 안에 들어온다. 그 좌측으로 갗은 위치,같은 높이에 극락전이 고금당과 함께 있다. 봉정사 극락전은 정면 3칸,
측면 4칸의 다정한 맞배지붕으로 나라 안에 현존하는 건물 중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다.
그러나 극락전은 1972년 해체와 복원공사 때 금, 은, 구리의 옛날식 삼색 단청이 지워져 버렸고,그 중요한 일부분이었던
귀중한 벽화가 뜯겨 포장된 채로 내버려져 옛맛을 상실했다. 법당으로서 소박하고 간결하게 지어진 이 건물은 필요한 구조
만 있지, 장식이 거의 없는 고려중기의 단아한 건물로 바닥에는 검은 전돌을 깔았다.
이런 방식은 고려시대의 일반적인 양식이었는데 중요한 것은 보수할 때에 대웅전과 화엄강당, 고금당을 새집같이 지어
버려 몇 백년을 새월속에 묵어온 온갖 풍상이 돌이킬 수 없게 되어 찾는 이들의 마음을 섭섭하게 한다.
극락전 앞에는 아담하면서 새까만 석탑이 있으며 극락전 우측에 고금당(보물 449호)이 있다. 고금당은 이름그대로 옛
금당이었고 금당은 삼국시대에는 절의 가장 중요한 건물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봉정사 스님들이 거처하는 요사채로 쓰이
고 있다. 고금당 앞쪽에 화엄강당이 서있다. 한때는 강당으로 쓰였을 이곳 역시 스님들의 요사채로 쓰이고 있는데, 정면 3
칸, 측면 2칸에 주심포식 맞배지붕이다.
화엄강당 좌측에 대웅전이 자리잡고 있다. 1625년과 1809년에 대대적인 손질을 거친 대웅전은 앞이 열려있는 일반적인
건물들과는 다르게, 건물 앞쪽에 조선시대 양반집 사랑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툇마루가 있다. 처음 볼 때는 어색해 보이
지만 볼수록 정감이 간다.
대웅전에는 가운데에 석가모니불과 양쪽에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을 모셨다. 구보다는 뒤편의 후불벽화를 유심히 볼 필
요가 있다. 후불벽화는 얼마 전 보수하려고 걷어낼 때 발견된 4m가 넘는 거대한 벽화로, 강진 무위사의 벽화보다 앞서는
조선초기의 벽화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대웅전에서 전면에 보이는 누각 덕회루의 누마루다. 법고와 목어 사이로 봉정사의 오랜 역사를 적은 편액들이 걸려 있다.
스님들이 머무는 무량해회라는 요사채를 돌아 영산암으로 향한다. 원래에는 천등산에서 흐르는 골짜기 그대로가 길이던
것이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 촬영되고서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골짜기를 메우고 계단을 만들었다. 지조암
과 더불어 봉정사에 딸린 암자 중의 하나인 영산암은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지인의 집을 찾아 가는 느낌이다.
봉정사 대웅전 앞에 있다가 옮겨진 우화루의 작은 문을 지나 영산암의 작은 마당에 들어서면 큰 바위 곁에 잘 드리워진
소나무가 한 그루 있고 목백일홍 나무와 여러가지의 나무들이 요사채, 삼성각, 응진전들과 조화를 이루며 서 있다.
산길로 접어든다. 소나무와 잡목이 우거진 숲길은 눅눅하다. 간간이 붉고 하얀 버섯들이 피어 있고 골짜기에는 졸졸졸
흐르는 개울물 소리... 길은 이리저리로 뻗어 있다. 계곡을 벗어나자 멀리 산들이 보인다. 소나무 숲이 제법 울창한 곳을 지
나자 누군가의 무덤이다. 한참을 올라 천등산 삼각점 앞에 선다.
나뭇가지 사이로 학가산(870m)이 구름을 머금은 채 모습을 드러내고 천등산으로 밀려오는 구름 건너로 안동의 산들이
구름 속으로 숨는다.
내려가는 길에 의상스님이 도를 닦았던 큰 바위와 그나마 남아 있는 개목산성을 찾고자 했으나 구름 속에 어느것도 찾지
못하고 20여분쯤 내려오니 개목사다. 넓게 펼쳐진 인삼 밭 너머에 있는 개목사는 신라시대에 의상이 창건하였으며, 고려말
에는 포은 정몽주가 이 절에서 공부를 하였고 조선초기에는 안동부사로 와 있던 맹사성이 중수하였다. 그 무렵 안동지역엔
유난히 장님이 많아 맹사성이 이 절 이름을 개목사(開目寺)로 바꾸었는데, 그뒤부터 안동지역에 장님이 생기지 않았다고
한다. 현재의 당우는 법당인 원통전과 요사채 그리고 문을 겸한 종루가 있을 뿐이다.
허물어져 가는 농촌의 빈집이나 여염집 같은 문루를 지나자 한갓지게 서 있는 원통전이 보인다. 허물어질 듯 싶은 요사
채에서 노스님이 나오시고 그 옆방에선 나이드신 보살이 나물을 다듬고 있다. 나라안의 수많은 절집을 두루 찾아다녔어도
이 절의 요사채처럼 퇴락한 곳이 또 어디에 있을까?
원통전을 보고 나오자, 윤경스님이 요즘 스님들의 세태에 대해 "마음을 가지고 중질을 해야 하는데 옷을 가지고 중질을
한다" 고 한마디 한다. 그러나 어디 그게 사찰뿐인가. 너라 구석구석이 썩지 않은 곳 하나 없고 나만 무사하면 세상이 다 무
너져도 상관없다는 사람들이 넘쳐나는데... 스님이 건네주는 떡을 나누어 먹고 나서 김현준 기자는싸가지고 온 오이 한
뭉치를 스님에게 내놓고 기약없는 인사를 나누고 절을 나왔다.
푸르른 은행나무 사이로 안동 시내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개목사에서 봉정사에 이르는 길은 산책길처럼 부드럽다.봉정
사 영산암에 다시 들러 내 집처럼 편안하게 앉는다. 윤달이라 삼사(三寺) 순례객들이 끊임없이 드나들고, 덕회루를 지나
봉정사에 작별을 고하고 답사여정은 병산서원으로 향한다. 낙동강변에 위치한 병산서원은 서애 유성룡과 그의 아들 유전
을 모신 서원이다. 병산서원으로 들어선다.
입교당에 올라 만대루 넘어 병산(옛 지도에 청천절벽인데, 그 뜻은 그토록 맑은 물이 우뚝 솟은 절벽이라는 뜻이다) 아래
를 흐르는 낙동강물을 바라보고 만대루에 오른다. 정면 7칸에 측면으로 2칸으로 시원스럽게 열려진 만대루에 오르면 유유
히 날아가는 한 마리 새가 된다. 돌아갈 길은 언제나 아득하고 멀다. 흐르는 낙동강에 고적한 영산암의 툇마루에 마음을 던
져두고 귀로에 오른다.
*산행길잡이
천등산 산행은 봉정사 주차장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다. 고려 때부터 조선 초기와 중기에 이르는 고건축 박물관 같은 봉정
사의 절집들을 돌아보고 영화<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을 촬영한 영산암으로 향한다.
영산암의 고적한 맛에 한껏 취한 뒤, 뒤편으로 난 길을 40분쯤 오르면 천등산 정상이다. 학가산을 비롯 전망 좋은 안동
일대의 산들을 돌아보고,능선길을 따라 내려가면 개목사에 닿는다. 개목사에서 봉정사까지의 거리는 30여분쯤 되므로 2시
간30분에서 3시간이면 산책하는 느낌 같은 부드러운 산행을 마칠 수 있다.
거꾸로 안동 삼베공장 쪽으로 올라가 개목사로 해서 봉정사로 빠지는 산행도 가능하다.
*교통
고속버스는 서울종합터미널(02-782-5552)에서 안동까지 08:20~17:00까지 2시간 20분마다 운행된다. 대구에서 안동은
06:40~19:00까지 1시간마다 운행한다. 시내버스는 안동역에서 안동역에서 봉정사까지 06:00, 08:15, 10:30, 12:20, 14:
40에 출발하고 40분쯤 걸린다.
*숙박
봉정사 근처에는 주차장에 천산산장(054-855-9616) 휴게소가 있으며 손칼국수, 냉국수가 3,000원이며 그 아래 천등
산가든(852-1055)이 있다. 토종닭 백숙이 4인에 25,000원이며 비빔밥은 5,000원이다. 민박도 겸한다.
천등산(574m)은 안동의 진산인 학가산(870m)과 마주보고 있는 산이다. 산세가 부드럽고 풍수지리상 명당이 많은 곳
으로 알려져 왔으며, 천년 고찰 봉정사가 자리하고 있다.
안동시내에서 34번 도로를 따라 서북방향으로 6km쯤 가면 송야교가 나타난다. 이 일대는 고려가 건국된 후 삼태사(고
려개국 공신 김선평, 권행, 장길)가 태조 왕건을 도와 후백제의 견훤을 물리쳤다고 전해져 오는 곳이다. 이때부터 안동이
라는 지명을 처음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삼태사 위패를 모신, 안동시 북문동에 위치한 태사묘에서 매년 안동 권씨,
안동 김씨, 안동 장씨 가문에서 제사를 올린다.
송야교에서 천등산 봉정사라고 써 있는 푯말을 따라 오른쪽 2차선 포장도로를 가면 서후면사무소가 나타나고 여기서
10분쯤 달리면 산행의 들머리인 봉정사 주차장에 닿는다.
이곳에서 봉정사를 향해 5분 정도 가면 계곡 왼편에 명옥대가 나타난다. 퇴계 이황이 후학들에게 학문을 강연하던 것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된 정자다.
봉정사 경내에 들어서면 하늘을 찌를 듯한 오래된 참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다. '천등산 봉정사' 라는 현판이 걸린
일주문을 통과하면 고요한 산사에 울려 퍼지는 풍경소리와 대나무 숲을 스쳐 가는 싱그러운 바람소리가 등산객의 마음속
까지 깨끗하게 만들어 준다.
천등산 남쪽 기슭에 위치한 이 사찰은 신라 문무왕 12년(672년), 의상대사와 관련된 전설을 지니고 있다. 명찰을 지을
만한 명당을 찾기 위해 지금의 소백산 부석사에 갔다 의성은 종이로 학 모양을 만들어 공중에 날렸다. 하늘로 솟구친 종이
학은 동남쪽으로 칠십 오리쯤 날더니 천등산 산자락에 떨어졌다. 이때 종이학이 떨어진 자리가 가장 좋은 길지라고 헤서
지은 사찰이 지금의 안동 제1의 사찰인 봉정사라고 한다.
그러나 이 사찰 극락전에서 발견된 상량전에 의하면, 의상대사의 제자인 능인대덕이 창건한 후 조선시대까지 여러 차례
중수한 기록이 있어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확인됐다. 이외에도 조선시대에 건립된 대웅전, 고금당, 화엄강당
등이 있어 우리나라 건축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특히 극락전은 기둥이 굵고 신라시대의 석조물에서 볼 수 있는 여러가지 기묘한 점과 단청채색이 세밀하고 우아한 국보
(15호)이며, 대웅전(55호), 화엄강당(448호), 고금당(449호)은 보물로 지정돼 있다. 경판고에는 대장경판본이 보관돼 있
으며 장판각에는 시문집 판본이 있다.
경내를 지나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건축한 지 오래된 듯한 암자가 나타난다. 이것은 봉정사 교육연수원으로 등산로는 그
옆으로 나 있다. 10분 정도 올라가면 부도가 나타나며 길은 솔잎이 가득히 쌓여 마치 양탄자 위를 밟고 가는 느낌이 든다.
경사가 완만한 등산로 좌우에는 잡목이 거의 없으며 제멋대로 생긴 재래종 소나무들이 많이 들어차 있다. 이 소나무들은
천등산의 특징 중 하나다.
능선을 따라 20여분 오르면 능선 건너편으로 밭 한가운데에 개목사가 보인다. 개목사는 신라 신문왕 때 창건됐다. 원래
흥국사로 불려졌다고 하나 당시 안동지방에 소경이 많아 개목사로 이름을 바꾼 후 소경이 없어졌다는 전설이 전해오는 사
찰이다. 이곳의 원통전은 보물 제242호로 지정돼 있다. 고려 때 이곳에서 정몽주가 공부하였으며 조선시대에 안동부사 맹
사성이 중수하였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원통전은 조선초기 건물이다. 법당의 건물 전면은 마루를 깔았고 후면은 온돌방을 만들었다. 법당
에 온돌방을 만든 것은 조선초기 건물 중 매우 희귀한 것이라고 한다.
개목사에서 등산로를 따라 1시간쯤 오르면 화강암 동굴에 닿을 수 있다. 비박하기에 적당한 이 굴은 7~8m 깊이로 천장
높이 또한 3~4m되는 규모가 제법 큰 굴이다. 내부에는 어린 동자를 거느린, 호랑이를 탄 산신과 산삼을 든 산신상이 있다.
산신상 앞에는 기원할 수 있도록 초와 향이 여러 개 마련돼 있다. 굴 앞에는 공간이 넓어 쉬어가기가 좋은 곳으로 안동시가
지와 봉정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5분 정도 오르면 정상이다. 조그마한 무덤이 하나 있다. 서나무가 둘러싸여 있어 주변조망이 시원치 않으나,
조금만 벗어나면 서쪽으로 방송용 송신철탑이 있는, 기아절벽이 볼만한 학가산이 보이며, 북쪽으로 백두대간의 주릉 소백
산 연봉이 펼쳐진다. 남동쪽으로는 낙동강이 굽이굽이 유유히 흐르며 서쪽으로는 하회마을로 이어지는 풍산 들녘이 끝없
이 펼쳐진다.
정상 아래에도 천등굴이 있으나 현재는 폐쇄됐다. 이 굴은 의상이 젊었을 때 수도한 곳이라고 한다. 수도 중에 하늘에서
큰 등불이 내려오는 것을 보고서 도통하여 하산하여 절을 짓고 산이름을 천등산이라 지었다고 한다.
등산로는 동북쪽과 남서쪽으로 나 있는데 동북쪽으로 30분쯤 하산하면 개목사와 만난다. 남서쪽 능선으로 이어지는 길
은 소나무가 많아 갈잎이 수북히 떨어져 있다. 따뜻한 날씨라면 멘발로 걸었으면 좋을 만큼 촉감이 좋다. 10분 정도 내려
오면 넓은 공터가 나오며 다시 10분쯤 하산하면 길은 세 갈래로 갈라진다.
나서쪽으로 곧게 뻗은 능선은 부봉과 상산으로 이어지며, 오른쪽 길은 골이 깊고 물이 제법 많은 편인데 울림목장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목장까지는 30여분이 소요된다. 왼쪽의 동쪽으로 난 길은 완만한 계곡으로 30여분 내려오면 봉정사 경외
주차장에 도착하게 된다. 산행시간은 총 3시간이면 충분하다.
산행 후 안동시내로 들어오기 전 이천동 도로변에 있는 고려석불을 볼 수 있다. 화강암벽에 11m에 달하는 몸통을 새기고
그 위에 별도의 바위로 새긴 머리를 얹어 놓았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이여송이 이 앞을 지나가는데 말발굽이 떨어지지 않
아 칼로 불상을 내리쳐 불상이 피를 흘리고 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산행길잡이
천등산은 산세가 완만한 전형적인 육산이다. 등산로도 뚜렷하여 가족끼리 오붓한 산행을 즐기기에 적격이다.
산행은 울림목장이나 봉정사 어느 쪽에서 하더라도 3시간이면 충분하다. 정상에서 학가산까지 산행을 연장하더라도 2
시간이면 학가산 정상에 닿을 수 있다. 울림목장으로 내려가 감리마을 뒤로 올라가면 된다.
식수는 봉정사나 사찰 앞 천수휴게소에서 준비하면 된다. 휴게소에서는 간식거리도 구입할 수 있다.
*교통
안동시에서 봉정사까지는 16km쯤 되며 시내버스가 하루 7차례 운행하며 40분이 걸린다.
*숙박
봉정사 앞에는 대형버스 10대가 주차할 수 있으며 천산산장휴게소(054-855-9616)ㄱ 있어 숙박(네칸 20명 수용)이 가
능하다. 휴게소에선 안동특산품인 하회가면탈을 판매한다. 식사는 비빔밥과 칼국수가 가능하며 가겨은 3,000원이다.
안동시내에는 호텔을 비롯해 여관이 200여곳 있다.
참고: 월간<사람과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