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12월10일
겨울에 태어난 아름다운 당신
‘아니, 달력에 저렇게 해놓으셨습니까? 이모 생신 축하드립니다.’아침 일찍 조카에게 축하 카톡이 왔습니다. 달력에 붉은 하트 문양에 ‘생일’ 이라고 써서 생일 날짜에 붙여놓았거든요. 그냥 맨숭맨숭 지나가기에 그래서 웃자고 한 일입니다. 아들도 남편도 달력을 보더니 배꼽을 쥐고 웃더군요. 그렇게 생일까지 즐겁게 지내는 것도 재미있잖아요.
생일에 잊지 않고 남편은 미역국을 끓여줍니다. 장모님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는 것입니다. 설령 감정이 상한 날에도 아침에 일어나서 미역국을 끓여놓았습니다. 지방에서 근무해도 전날 밤에 내려와서 미역국을 끓여놓고 새벽에 갔습니다. 그 마음 하나로 생일이 얼마나 빛나고 소중한 날인지 모릅니다. 모든 것이 풀리고 이해가 되고 감사했습니다.
아들과 하양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습니다. 대학가 근처 감성이 넘치는 일식집이었습니다. 아들과 버스를 타고 데이트를 합니다. 아침에 립스틱과 아이섀도랑 쪽지 편지를 동봉해서 생일 선물로 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엄마께, 생신 축하드려요. 엄마 아들로 태어난 건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이에요. 항상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언제나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편지를 읽는데 눈물이 왈칵 났습니다. 아들의 진심이 내 심장을 뜨겁게 만들었습니다. 그래. 엄마도 우리 당찬이가 엄마 아들로 태어나줘서 세상 부러운 것이 없다고 속삭였습니다.
대학교가 여러 개 있어서 작은 읍내지만 활기가 넘칩니다. 젊은이들이 꽃처럼 걸어 다니는 향기로운 거리를 아들과 팔짱을 끼고 다정하게 걸으니, 세상이 전부 내 것인 듯 행복했습니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은 일은 내가 한 일 중에 제일 잘한 것 같습니다. 내가 우리 엄마 아버지 딸로 태어난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오늘 같은 생일이면 엄마 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고 그립습니다.
계단을 오르니 뭐지? 하는 느낌이 먼저 느껴지는 만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작은 식당이었습니다. 라멘 맛집으로 유명한 스토리가 있는 ‘1058면’ 식당이었습니다. 칸칸이 가로막이 있었습니다. 필요하면 여닫이문이라서 밀면 공간이 커졌습니다. 앞에 발이 내려져 있었습니다. 키오스크로 주문한 요리는 발이 올라가면서 나왔고 다시 발이 처졌습니다. 알밥과 돈코츠라멘과 일본 구슬 사이다인 라무네, 치킨 너깃을 시켰습니다. 접시도 예쁘고 음식도 정갈하게 나왔습니다. 사진을 찍고 신기해서 싱글벙글하면서 음미했습니다. 아들이 주문한 라멘은 부드러우면서 고소하고 편안함이 고스란히 담긴 요리였습니다. 처음 접하는 일본 구슬 사이다에 촌스러울 정도로 탄성을 지르면서 아이처럼 좋아했습니다. 입으로 들어가는지 귀로 들어가는지 모를 지경입니다.
대학교 앞이라 학생들이 혼자 식사하기에 좋은 곳 같습니다. 그다지 비싸지도 않고 공간도 좁아서 사생활도 침해받지 않고 무언가 나만의 공간에서 식사하는 묘한 기분이 들 것 같았습니다. 비 오는 날, 혼자 오고 싶은 곳, 그런 식당입니다.
못 말리게 달콤한 겨울 빽다방에서 시원한 커피를 마셨습니다. 아담한 공간에 남학생이 커피를 앞에 놓고 연신 휴대전화를 들여다봅니다. 옆에 앉은 여학생도 혼자 주스를 시켜놓고 휴대전화 삼매경에 빠졌습니다. 휴대전화보다는 나는 아들과 함께 커피를 마신다는 것 하나로도 너무 행복한 여자입니다.
시내 나온 김에 <다이소>에 들렀습니다. 제법 큰 곳입니다. 매장을 돌아다니는데 아들을 잃어버릴 뻔했습니다, 정신이 없습니다. 물건이 너무 많으니, 눈은 즐거운데 서서히 피곤해졌습니다. 바셀린과 먼지떨이. 새해 달력을 샀습니다. 낡아서 사야지 벼르던 화장품 파우치도 샀습니다. ‘빨강머리 앤’이 그려진 그림동화 같은 파우치입니다. 생각나는 친구가 있어서 하나 더 샀습니다. 요즘에는 <다이소> 화장품 진열장에 여자들이 복작거립니다. 어린 친구부터 어린 친구들을 자식으로 둔 엄마까지 관심이 많습니다. 제법 쓸만한 화장품이 있습니다.
올해는 크리스마스에 카드를 보낼 생각입니다. 문자로 연말연시 인사를 하다 보니 너무 인색한 것 같습니다. 카드를 몇 장 샀습니다. 직접 만들기고 했는데 말입니다. 고르는 중에도 마음은 벌써 크리스마스입니다.
케이크를 들고 퇴근하는 남편 얼굴이 산타할아버지같이 행복해 보입니다. 아끼던 와인도 꺼냈습니다. 남편의 생일 선물은 현금입니다. 지금처럼만 행복하면 좋겠습니다. 생일을 축하해준 모든 분께 사랑을 보냅니다. 가장 빛나는 보석 같은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