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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에서 쿠스코로 향하는 기내에서 창 밖을 본다. 3,000m가 넘는 봉우리들과 만년설을 머리에 인 하얀 봉우리들이 줄지어 있다. 그 사이로 강이 흐르고 안데스 고원이 펼쳐져 있다. 하얀 선으로 이어지는 길만이 이곳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음을 알려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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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발 3,399m 고지에 위치한 쿠스코. 과거 잉카제국의 수도로 쿠스코는 케추아어로 ‘세상의 중심’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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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스 산맥은 태평양에서 동쪽으로 움직이는 해양판인 나스카판과 육지에서 서쪽으로 움직이는 남아메리카판이 서로 부딪치면서 솟아올라 생긴 것이다.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우리는 잘 못 느끼지만, 고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화산활동과 지진이 발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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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쿠스코 중앙광장. 식민지 시대인 1654년에 세운 대성당과 관공서가 둘러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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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6월24일 태양의 축제 열려
해발 3,399m 고지에 위치한 쿠스코. 과거 잉카제국의 중심이요 세상의 중심이라 믿었던 쿠스코는 페루의 남동쪽에 위치한다. 쿠스코(Cusco)는 원주민 언어인 케추아어로 '세상의 중심'이란 뜻이다. 제9대 잉카(왕)인 파차쿠텍이 제국의 기틀을 마련하면서 쿠스코를 재정비했다. 찬란하게 빛나는 황금 도시이자 요새였던 쿠스코는 당시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였다.
식민지 시절인 1654년에 완공된 대성당과 여러 건물들이 둘러싼 중앙광장을 둘러보고, 한때 화려한 영광을 간직했던 태양신전인 코리칸차(Qoricancha)로 향한다. 지금은 산토도밍고 교회가 자리 잡고 있다. 정복자들이 황금으로 가득 찬 신전을 약탈한 후 그 토대 위에 지금의 교회를 세웠다고 한다.
이후 지진이 일어났을 때 교회는 허물어졌지만 정교하게 돌을 다듬어 세운 석벽은 그대로였단다. 지진에 대비한 잉카인들의 뛰어난 건축술을 보는 듯하다. 코리칸차는 사다리꼴 모양으로 쌓아올린 석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돌과 돌을 쐐기모양의 홈을 판 다음 끼워 넣어 지진에도 끄떡없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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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방어용 요새, 또는 제단터로 추정되는 삭사이와망 유적지. 해마다 6월이면 이곳에서 태양의 축제인 인티 라이미가 열린다.(우)쿠스코 인근 켄코 유적지에서 만난 소녀. 벗을 위해 호리카나를 연주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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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로 시내에서 북쪽으로 10분 거리에 있는 언덕 요새인 삭사이와망으로 향한다. 삭사이와망에 올라서니 붉은 황토색 건물이 늘어서 있는 쿠스코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350톤이 넘는 거석으로 만든 성벽 위에는 이름 모를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있다.
성벽은 지그재그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이 성벽은 잉카인들이 지상 최고의 동물로 여기는 퓨마의 이빨을 상징한다고 한다. 쿠스코 전체를 퓨마의 형상으로 볼 때 이곳은 머리 부분에 해당되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6월24일이면 인티 라이미(Inti Raymi)라는 태양의 축제가 벌어진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모여들고 원주민들은 화려했던 지난날을 추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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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토도밍고 교회. 태양의 신전인 코리칸차의 토대 위에 세운 교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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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가까운 곳에 울퉁불퉁하게 파인 석회암을 이용하여 만든 제단의 일종인 켄코(Qenco) 유적이 있다. 가장 높은 바위에는 마치 뇌를 닮은 홈이 파여 있는데, 여기에 치차(옥수수술)를 부어 흘러가는 방향으로 길흉을 점쳤다고 한다.
조금 아래로 내려가니 동굴이 나온다. 안쪽에는 바위를 깎아 만든 탁자가 놓여 있고, 구석구석에 돌선반이 있다. 서늘한 기온을 이용하여 뇌수술을 했다고 한다. 구석의 선반은 미라를 안치했던 곳이란다. 음습하고 한기마저 느껴지는 동굴을 빠져나오니 한 줄기 소나기가 지나간다.
해가 저물자 서둘러 라마와 알파카를 데리고 집으로 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정겹다. 쿠스코에서 숙소가 있는 우르밤바 계곡으로 가는 길에 탐보마차이(Tambomachay)에 들린다. 잉카의 목욕탕이라고 부르는 이곳은 정밀하게 쌓아올린 석벽 사이로 시원한 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목욕탕이라기보다는 과거 제사의식에 앞서 몸을 정결하게 씻는 성스러운 곳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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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마추픽추의 관문 아구아스갈리엔테스에서 만난 잉카의 후예들.(우)알파카 털을 이용해 천을 짜는 원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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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공중도시 마추픽추
남미하면 바로 떠오르는 단어가 마추픽추가 아닐까. 수많은 사람들이 가보기를 꿈꾸는 곳, 잃어버린 잉카제국에 대한 그리움으로, 또 신비로움으로 기억되는 곳이다.
마추픽추로 가는 길은 쿠스코에서부터 시작된다. 쿠스코에서 기차를 타고 북서쪽으로 약 112km 떨어진 아구아스칼리엔테스라는 마을에 내린다. 다시 산을 오르는 버스로 갈아타면 마추픽추 입구에 도달한다. 또 버스로 올란타이탐보까지 이동한 후 여기에서 기차를 타고 가는 방법이 있다.
우루밤바에 여장을 푼 우리는 올란타이탐보까지 미니버스로 이동한 후 기차로 갈아탔다. 쿠스코에서 기차를 이용하는 것보다 시간이 더 단축되는 까닭이다. 올란타이탐보역 주변에는 찐 옥수수며 손으로 짠 가내수공품을 팔러 나온 원주민들로 붐빈다. 아마존 상류의 하나인 우루밤바강을 낀 계곡을 따라 기차가 달린다. 2시간쯤 달리자 마추픽추로 올라가는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아구아스칼리엔테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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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2,400m 고지의 능선에 자리 잡은 마추픽추로 올라가는 길은 구절양장이다. 버스는 아슬아슬하게 일곱 구비를 오른다. 입구에서 ‘굿바이 소년’이라 불리는 아이가 버스에 오른다. 이 버스가 내려올 때 이 소년은 지름길을 이용해 달려내려 모퉁이에서 승객을 향해 손을 흔들어 인사할 것이다. 다음 모퉁이에서 역시 인사해 ‘굿바이 소년’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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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원주민이 털실을 염색하기 위해 불을 지피고 있다.(우)라마, 알파카와 함께 포즈를 취한 원주민. 이들에게 라마와 알파카는 가족 같은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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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가파른 왼쪽 길을 오르자 잃어버린 공중 도시가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일행은 탄성을 지른다. 1911년 하이럼 빙엄(Hiram Bingham·1875-1956)이 이 유적지를 발견했을 당시 기분이 어떠했을까. 경이와 감탄에 찬 얼굴이 그려진다. 조망이 가장 좋은 남쪽 산 중턱으로 향한다. 장례의식에 쓰인 너른 바위가 있고, 그 뒤로 150구의 여자 유골과 23구의 남자 유골이 발견된 묘지터가 있다.
마추픽추는 가파른 능선 위에 돌을 쌓아 만든 많은 건축물과 계단식으로 쌓아올린 경작지가 잘 구획되어 있는 모습이다. 이곳을 크게 나누어 보면 중앙부의 중앙광장을 중심으로 왼쪽으로는 태양신의 제단과 인티와타나(Intihuatana), 콘도르 신전, 잉카(왕)의 집과 목욕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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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발 2,280m에 자리 잡은 마추픽추, 산자락에서는 그 모습이 보이지 않아 ‘공중도시’라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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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티와타나는 ‘태양을 묶는 기둥’이란 뜻이다. 즉 보이지 않는 밧줄이 이 기둥과 태양을 묶어두고 있다고 믿었다. 한편으로는 해시계의 기능도 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오른편에는 일반인들의 주거지가 펼쳐져 있다. 일반인들의 거주 지역에는 방문객 숙소, 수공업장, 감옥으로 사용된 건물들이 있다.
고개를 들어 북쪽을 보면 ‘젊은 봉우리’라는 뜻의 우아나픽추가 우뚝 서 있고, 그 아래로 우루밤바 강이 휘돌아 흐르고 있다. 그 뒤로는 구름에 싸인 연봉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남쪽에는 쿠스코에서 이곳까지 이어지는 잉카인의 길이 보인다.
제법 경사가 진 바위길을 내려가니 채석장이다. 쪼개다 만 바위가 보이는데, 바위에는 일렬로 길게 홈이 파여 있다. 금속을 사용할 줄 몰랐던 이곳 사람들은 이 홈에 나무를 넣은 다음 물을 부어 팽창하는 힘을 이용하여 바위를 쪼개었다. 주거지역으로 들어가는 돌문을 지나 태양신의 제단과 천문대로 알려진 인티와타나를 둘러본다. 천천히 사진을 찍으면서 둘러보는 데 3시간 정도 걸린다. 북쪽에 있는 우아나픽추까지 올라가 보려면 4~5시간은 족히 걸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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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중앙광장을 중심으로 펼쳐진 마추픽추. 200톤이 넘는 돌을 정교하게 다듬어 쌓은 기술이 놀라웠다. 2.면도날도 들어가지 않을 만큼 정교하게 돌을 다듬어 건물을 지었다. 3.감옥 건물로 추정되는 곳. 자연석에 정교하게 다듬은 돌로 마감했다. 4.장례의식에 쓰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바위. 처음 발견 당시 이곳에서 150구의 여자 유골과 23구의 남자 유골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5.돌을 깨다만 흔적. 바위에 홈을 파고 물과 나무를 이용해 분리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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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내려오는 길. 오전에 같이 버스로 올랐던 일명 ‘굿바이 소년’이 인사를 한다. 일곱 굽이를 뛰어내려와서 인사하더니 맨 마지막 구비에서는 땀으로 범벅이 된 붉은 얼굴로 버스에 오른다. 관광객들은 박수를 치며 돈을 건넨다.
마추픽추를 둘러보고 쿠스코로 가는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마을을 둘러본다. 아구아스칼리엔테스 역이 있는 마을이다. 마을은 작지만 성당을 비롯, 시장과 인터넷카페와 안데스풍의 멋진 음식점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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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마추픽추 중앙광장에서 한가로움을 즐기고 있는 여행자들.(우)마추픽추로 올라가는 구절양장 길. 일명 ‘굿바이 소년’은 지름길로 뛰어서 오르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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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삶 속에 수줍은 미소가 아름다워
이곳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치차(옥수수를 발효시켜 만든 술)를 파는 주막을 둘러보기 위해 차를 세운다. 치차를 파는 집은 긴 장대에 붉은 색 봉지를 씌워 놓아 금방 알 수 있다. 저 멀리 붉은 색 봉지를 매단 장대가 있는 집에 들려 치차가 있는지 물어 본다. 집을 지키고 있던 소녀는 “요즘 손님이 별로 없어 치차를 담그지 못했다”며 미안해한다. 대신 양손 가득 복숭아를 건네준다.
저 멀리 또 붉은 봉지를 매단 장대를 세워놓은 집이 보인다. 여기엔 마침 담가놓은 치차가 있단다. 누런 색의 치차. 막걸리와 비슷하다. 커다란 오지독에 담긴 치차를 유리잔에 부어준다. 옥수수향과 신맛이 살짝 어우러진 맛이다. 처음엔 한 모금 맛을 보다 쭉 들이킨다. 옥수수가 잘 발효되도록 이곳 여인들이 옥수수 알갱이를 입으로 씹어 만든다는 말에 일행은 정색을 하고 마시지 않는다.
쿠스코에서 마추픽추로 이어지는 우루밤바 계곡이 참 아름다웠다. 멋진 자연풍경도 아름다웠지만 소박한 삶 속에서도 수줍은 미소로 복숭아를 건네던 그 마음이 더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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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왼쪽부터)쿠스코에서 마추픽추로 가는 기차. 2시간 정도 걸린다. 우루밤바 강이 흐르는 비옥한 우루밤바 계곡. 옥수수가 실하게 익어가고 있었다. 옥수수로 만든 전통술 치차. 우리나라 막걸리와 비슷한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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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Tip
항공 아직까지 페루 리마까지 직항편은 없다. 남미를 여행할 경우에는 란항공이 좋다. 란항공으로 인천~LA~리마~쿠스코로 연결되는 비행편을 이용하면 된다. 리마에서 쿠스코까지 비행편은 매일 10편이 운항하며, 1시간15분 정도 걸린다. 기상악화로 종종 결항되는 경우가 있기에 일정을 넉넉하게 잡는 것이 좋다. 버스는 아방카이를 경유하여 쿠스코로 이어진다(20시간 소요).
기후 쿠스코를 비롯, 안데스 산지는 연중 10~15℃의 기온과 밭농사에 적당한 비가 내린다. 한낮에는 햇볕이 뜨겁고 기온이 올라가지만 아침 저녁으로는 제법 쌀쌀하다. 쿠스코를 비롯해 마추픽추는 고지대라 자외선이 강하므로 선크림, 모자, 긴 옷을 준비하면 좋다.
음식 쿠스코에서 꼭 맛보아야 할 것 중의 하나가 쿠스코의 맥주인 쿠스케냐다. 맛있는 음식으로 돼지고기 요리인 치차론과 피망에 고기를 채운 코토레예노, 쇠고기 꼬치구이인 안티쿠초와 쿠이 요리가 있다. 옥수수술인 치차와 고산병에 효능이 있는 코카차도 맛볼 것을 권한다.
/ 글·사진 김원섭 여행사진작가 gida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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