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기가 중학생이 된지 일주일이 되었습니다.
이번 주부터는 저도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게 되어서 이제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잘 맞추어지는 느낌입니다.
초등 고학년 학습장애 부모님들과 ADHD 부모님들을 위한 부모교육을 준비하고 있고,
또 발달장애 영유아부모님들을 위한 교육도 준비중입니다.
승기가 학교에 오가는 모습을 보며, 저는 스스로에게 다시 묻습니다.
"중학교에선 뭘 배울수 있을까요?" 혹은, "학교에선 뭘 가르치죠?"
한동안 '통합교육'에 대한 "광풍"이 불더니 요즘은 조금 잠잠한 것 같습니다.
당위적인 명제로써 '반드시 내 아이는 통합을 하여야 한다'라는 생각에서
아이에게 적절한 학습공간을 찾아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전환된 것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에는 각각의 공간에서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배울까를 고민해야 할 터인데,
그 부분은 아직 미흡한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특히 유치원 교육과정과 초등교육과정에 대한 관심은 많아졌고 체계화되어가는 반면,
아직 중등과정에 대한 안내는 부족하며 현장의 상황은 더욱 그러한 것 같습니다.
우리집 어리버리는 요즘 인지치료실에서 기적의 계산법 7권을 복습하고 있습니다.
사칙연산과 분수, 소수의 혼합계산까지 할 수 있지만 사실 개념을 완전히 이해한 것이 아니어서
그 단원이 넘어가면 또 다시 엉뚱한 방식으로 풀어가곤 합니다.
국어는 지금 서울 경인지역 특수학급 교사 연구회에서 만든 선생님이 만든 쓰기 공부2, 3을 학교에 보내서 시키고 있습니다.
문장을 연결하는 접속사와 원인/결과, 사실과 느낌 등에 관한 내용이 들어있는 간단한 문장이 나와 있습니다.
아마 기탄 국어로는 초등 1, 2학년 수준을 넘어가고 있고, 3, 4학년 수준은 어려울 것입니다.
학교에 보내놨더니 도움반교실에서 요리책 하나를 발견했나봅니다.
전번에는 야채튀김 만드는 법을 적어왔고, 이번 주엔 꼬치불고기 만드는 법을 적어와서
만들어달라고 보채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보는 진단평가는 원래 예비소집일에 가서 일괄적으로 보는데 승기는 어제 보고 왔습니다.
아마 20~30점 받았을 것이고 어떤 과목은 0점이겠지요.
승기는 음악이나 미술, 체욱을 특별히 좋아하거나 잘하지 않습니다.
승기가 좋아하는 것은 공간지각력이 요구되는 분야, 그래픽이나 조형물을 만드는 작업입니다.
아이클레이 작업은 자기가 즐기며 놀 만큼 하고 있으니 충분하고
가정에서 인터넷 검색을 하여 자신이 좋아하는 동영상을 저장하거나 그림판에 그림을 옮겨 수정하는 일은
특정한 사물이나 사건에 대한 집착으로 굉장히 자폐적인 특성을 보이는데
그것을 학습과 연결시켜 확장하려면(간단한 플래시 몹을 배우려고 해도)
지금의 승기의 인지력보다는 한두단계 이상 높아져야 가능할 것 같습니다.
부모님들은 유치원이나 초등 저학년때 인지학습에 매진하시던 것과 달리
중등정도가 되면 많이 지치고 포기하기 쉽습니다.
저는 아이가 어릴때는 이 아이의 특성이 어떠한지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과 관계 맺고
자기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지를 아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이제 조금씩 승기가 '학습'할 준비가 되어간다고 생각합니다.
냉정하게 말해서 지금 당장의 모습만으로 승기를 평가한다면
지금 승기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들은 여가기술로써 심리적 안정을 줄 수는 있으나
그것을 개발하여 직업을 구하기는 어려울 듯 합니다.
언어능력, 다른 사람과 함께 어울리는 능력들이 더 있어야 일정 이상의 복잡한 사무능력을 가질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나 현재 한국의 교육제도 안에서 지나치게 개별적이고 세분화된 내 아이의 특성과 요구를 다 충족시키며 개발해주기를 기대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냥 그러려니 받아들이고 지금 연습시켜줄 수 있을만한 다른 부분들에 집중합니다.
요즘 저는 승기가 단순작업 능력을 요하는 직업, 혹은 그 이상을 추구할 때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덕목들이 무얼까 점검해보고 있습니다.
기본적인 문해, 의사소통 능력- 어느 정도 갖추어진 셈입니다.
대소근육의 유연성-좋은 편입니다.
정서적인 안정성-전체적으로는 많이 안정되고 우호적인 편이지만 감정의 기복이 있어서 투덜거리고 산만한 경우가 많습니다.
미성숙-아직 어린 아이처럼 자신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보살펴주는 것을 당연히 여깁니다.
특정한 과제 집착이나 자기 방식을 고집함으로써 생기는 과제간 전환의 어려움-자신의 장애 특성에 비해서는 정말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 일정 정도 어려움이 있습니다.
상황 맥락에 대한 이해-자기중심적이긴 하지만 전체 상황을 이해하고 다른 사람들의 분위기를 파악하는 능력이 좋아졌습니다.
적절한 자기 주장-항상 주장이 강한 편이지요. 조금 더 순응적인 태도와 타협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정상화'란 아이가 가진 특성들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삶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러한 정상화된 삶의 모습은 사회에 '통합'됨으로써 가능합니다.
성인기가 되었을때 그러한 '통합'된 삶을 살아가려면, 승기는 지금 부지런히 '통합'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중학교는, 승기에게 좀더 안전하게 '사회'를 '공부'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승기가 다른 아이들과 말싸움을 하였다거나 도움반에서 선생님 심부름을 잘 해서 칭찬을 들었다거나
시험치는 중에 문제가 어려워 힘들어하면서도 끙끙거리며 마지막까지 잘 풀어서 제출하였다는 모든 일들이
지금 승기에게는 사회로 나아갈 준비들이 됩니다.
승기가 중학교에서 과연 무엇을 배우냐고 묻는 이들에게,
아니, 학습과 학교 적응에 어려움이 있는 모든 아이들에게 과연 학교가 무슨 의미냐고 물어보는 모든 이에게 대답하고 싶습니다.
급식만 먹고 오는 것 같아도 아이는 학교의 모든 공간과 시간 속에서 충분히 배우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배움들의 의미를 더 잘 이해하고 소중하게 여겨주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