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 일박
이은봉
자꾸만 내 마음 흔들어대는 놈, 요놈, ‘나’라는 놈 때문에 요 며칠 또 갈팡질팡했다 갈팡질팡하다가 훌쩍 집 떠났다
초겨울 몇 안 남은 나뭇잎들, 나처럼 갈팡질팡하는데, 내 차가 나도 모르게 나를 데려다준 곳은 전라북도 고창 선운사였다
꽃처럼 피어 있는 대웅전 옆 감나무의 감들, 손 흔들며 나를 반겨주었다
환한 낯빛으로 웃어대는 대웅전 뒤 동백나무들, 초록치마 펄럭이고 있었고, 살비듬 떨구고 있는 대웅전 옆 배롱나무들, 벌거벗은 몸 간지러워하고 있었다
도솔암 쪽 수리산 바라보다가, 붉게 저무는 저녁노을 바라보다가 공양간에 들어 공양을 했다
곧이어 범종각 앞에 모여 북 치는 소리 들었다 종 치는 소리 들었다 밤 오는 소리 들었다 소리들, 가슴 깊은 곳에서 둥둥둥 밀고 올라왔다
대웅전 안으로 자리를 옮겨 느려터진 저녁 예불을 올리고는 어둠이 밀려오는 선운사 템플스테이 일박을 시작했다
따듯한 방 한 칸에 들어 더는 나, 흔들리지 않기 위해 가부좌 틀고 앉았다 요 며칠의 마음 갈팡질팡한 까닭 묻고 또 물었다
그러다가 한 소식했다 요즈음의 나, 자꾸만 흔들리는 ‘나’, 있으면서도 없는 참 한심한 놈, 이놈, ‘나’ 때문에 한 소식도 하고, 한 깨달음도 한다는 것을.
―《작가마루》 2020년 하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