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4월 23일 목요일
◑ 오늘의 말씀 묵상 ◑
※ Hallelujah!!
- 오늘도 계속되는 꽃샘추위가 이어지는 목요일 아침이 시작되고 있으니 따뜻한 옷차림이 필요합니다.
- 예견치 않았던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가 우리 곁에서 소멸되고 있는 소식이 너무 감사하고 행복함을 느낍니다.
- 코로나 사태로 고통당하는 이웃이 있기에 현실을 공유하고 함께 아픔과 기쁨을 함께하여 주의 몸을 이루는 예수 가족으로 섬길 수 있는 아름다운 삶을 나누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 오늘 이 하루는 예수님의 마음을 깊이 생각하고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그 사랑을 깨닫고, 감사하며 믿음의 인내를 이루는 은혜의 하루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본 문 ◑
{시편76편 1- 12절}
1 하나님은 유다에 알려지셨으며 그의 이름이 이스라엘에 크시도다.
2 그의 장막은 살렘에 있음이여 그의 처소는 시온에 있도다.
3 거기에서 그가 화살과 방패와 칼과 전쟁을 없이 하셨도다. (셀라)
4 주는 약탈한 산에서 영화로우시며 존귀하시도다.
5 마음이 강한 자도 가진 것을 빼앗기고 잠에 빠질 것이며 장사들도 모두 그들에게 도움을 줄 손을 만날 수 없도다
6 야곱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꾸짖으시매 병거와 말이 다 깊이 잠들었나이다.
7 주께서는 경외 받을 이시니 주께서 한 번 노하실 때에 누가 주의 목전에 서리이까?
8 주께서 하늘에서 판결을 선포하시매 땅이 두려워 잠잠하였나니
9 곧 하나님이 땅의 모든 온유한 자를 구원하시려고 심판하러 일어나신 때에로다. (셀라)
10 진실로 사람의 노여움은 주를 찬송하게 될 것이요 그 남은 노여움은 주께서 금하시리이다
11 너희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께 서원하고 갚으라 사방에 있는 모든 사람도 마땅히 경외할 이에게 예물을 드릴지로다
12 그가 고관들의 기를 꺾으시리니 그는 세상의 왕들에게 두려움이시로다
◑◑◑◑ 제 목 ◑◑◑◑
◗◗ 마땅히 경외할 여호와 하나님
◑◑◑ 본문 이해와 요약 ◑◑◑
◗ 76편에서는 시인이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앗수르의 손에서 유다를 구원하신 사실이지만, 그것을 통해 시인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만이 그들의 구원자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 그래서 각 구절을 의미하는 내용은 먼저 1절에서 신앙생활은 체험과 경험을 통해 항상 진보하고 성숙하고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2절에서 하나님은 당신을 사모하고 사랑하는 심령 가운데 임재하시는 분으로 증거 됩니다.
- 또한 3절에서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위협하는 사단의 권세를 철저히 무기력하게 부수어 버리시고, 교회를 온전히 보호하시고 지키신다는 것이며, 4절은 하나님을 의뢰하는 성도는 이 세상에서 두려워할 것이 없음을 전합니다.
- 그리고 5,6절에서 교만한 자의 최종적인 운명은 영원한 멸망입니다.
-또한 7절에서 성도는 마지막 날에 있을 긍휼 없는 심판을 두려운 마음으로 잘 준비해야 할 것이며, 8,9절에서 온유함은 구원의 은혜를 입기를 소원하는 사람이 가져야 할 당연한 기본 성품임을 전합니다.
- 마지막으로 10-12절에서 악인들의 악행은 하나님의 선한 목적이 이루어질 때까지만 허용되는 것이고, 위기 앞에서 성도에게는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마땅히 감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앞에 서원하여 간절히 기도를 드렸는데, 이때 그들은 생존의 위험 속에서 구원을 받고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렸지만, 얼마가지 않아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서원한 것을 잊어버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 그들은 다급할 때는 서원 했지만, 다급한 위기 상황이 떠나자 완전히 망각하게 되였으니 시인이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기억하여 그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서의 서원은 반드시 지켜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의 위대한 승리를 기쁨으로 노래하고 있는 시편입니다.
- 그들의 전쟁에서 승리한 체험 신앙은 흔들리지 않습니다만, 아삽의 후손 중에서 남 유다의 히스기야 왕 때 앗수르 제국의 산헤림 왕과 랍사게가 예루살렘을 침략하고자 위협 해 왔던 것입니다.
- 히스기야 시대에 당대 최강의 군대였던 앗수르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위협하던 중 크게 패하여 퇴각한 사건을 그 역사적 배경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 앗수르 군대로부터 구원받은 이스라엘은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신지식과 이해를 깨달았던 것입니다.
-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을 알 수 없으나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셔서 알게 하셨습니다.
- 그리하여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앗수르 군대를 물리치실 때 하나님의 크심과 존귀하심을 깨달은 것처럼 이 시대를 사는 성도들이라면, 누구나 하나님의 빛나는 영광과 권능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 이것을 신약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 시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승리와 마귀에 대한 최후 승리와 심판을 노래하고 있는 교훈을 남깁니다.
◗◗◗ 적용한다면 ◖◖◖
♥ 오늘의 핵심 (P.S)
☞ 체험신앙이 절망을 이긴다. (시편76편1절)
◈ 본 구절의 핵심(PS) 의미를 돕는다면;
▶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체험하고 경험을 통하여 항상 진보하고 성장하여 능력 있는 믿음이 됩니다.
▷1절을 살펴보면 “하나님은 유다에 알려지셨으며 그의 이름이 이스라엘에 크시도다. 그의 장막은 살렘에 있음이여 그의 처소는 시온에 있도다.”라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 여기서 ‘아삽의 시편’ 이라고만 언급 된 시편은 히스기야 시대에 최강의 군대였던 앗수르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위협하던 중 크게 패하여 퇴각한 사건을 그 역사적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 이러한 본 시편에서 시인이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앗수르의 손에서 유다를 구원하신 사실이지만, 그것을 통해 시인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만이 그들의 구원자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 여기서 우리는 특별히 ‘하나님이 유다에 알린바 되셨다’라는 말에 주목해야 합니다.
-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이 사건 이전에는 유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몰랐다는 말입니까? 이전에는 하나님을 몰랐는데 앗수르의 구원 사건을 통하여 비로소 하나님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는 말입니까?
- 그렇다면 이전에 유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긴 것은 무엇이란 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앗수르로부터의 구원 사건 이전에도 이후에도 그들은 하나님을 알았으며, 그들은 그러한 지식에 근거하여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 하나님은 일찍이 당신을 당신의 택한 백성인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계시하여 주시고, 또 율법을 주심으로 당신에 대하여 알게 하시고 그러한 지식으로 당신을 섬기게 하여 주셨습니다.
- 그런데 앗수르로부터의 구원 사건 이전과 이후 유다 사람들의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확연히 달랐습니다.
- 앗수르로부터의 구원 사건 이전 유다 사람들의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단순히 머릿속의 지식이었습니다.
- 따라서 그들의 지식은 매우 피상적일 수밖에 없었기에 비록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있어서 그러한 지식에 근거해서 하나님을 섬기기는 하였지만, 하나님이 그들의 구원자로 온전히 고백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 그들은 비록 하나님을 구원자로 부르며 섬기기는 하였지만, 거기에 대한 확고한 믿음은 없었습니다.
- 결국 그들은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지 못하였기에 이러한 이유로 히스기야 이전에 아니 좀 더 가깝게는 앗수르로부터의 구원 사건 이전까지만 해도 하나님 이외에 다른 우상도 섬기는 잘못을 범하기도 하였습니다.
- 하나님에 대한 불 확신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 이외의 우상에게 눈을 돌리게 하였던 것입니다.
- 그런데 앗수르로부터의 구원 사건은 유다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그들은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한 분인지를 깨닫게 되었으며, 그 동안 유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능력의 주라는 사실을 머릿속으로만 알고 있었으나 이제 그것은 그들의 체험적 지식이 되고 확고한 믿음이 되었던 것입니다.
- 그리하여 그들은 적어도 히스기야 시대에 있어서만큼은 다른 곳에 눈을 돌리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경배할 수 있었습니다.
- 이렇게 하나님에 대한 지식에 있는 체험적 지식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 아무리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것이 체험적인 지식으로 승화되지 않는다면, 그 지식은 지극히 허무한 것이 되고 맙니다.
- 평소에 하나님에 대하여 잘 알고 신앙생활 잘 하던 사람이 환난을 만나서 신앙을 버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의 지식이 체험적 지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을 알되 머리로만 알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하여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을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체험적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물론 이러한 지식은 우리가 가지기를 원한다고 즉각 얻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 하나님에 대한 지식 자체가 근본 하나님의 계시에서 비롯되듯이 하나님에 대한 체험적 지식도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됩니다.
- 그러면 하나님은 어떠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당신에 대한 체험적 지식을 주십니까? 우리로 당신에 대한 체험적 지식을 갖게 하는 데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하시는 방법은 바로 시련과 연단의 방법입니다.
- 하나님은 우리를 시련에 처하게 하시고 우리가 그러한 시련을 인내할 때 우리를 구원하시는 방법을 통하여 우리에게 당신에 대한 체험적 지식을 심어주시는 것입니다.
- 하나님이 유다 사람들에게 앗수르의 침공이라는 위기와 시련을 주신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 그렇다면 오늘 이 아침에 성령님께서 묻는 것은 “ 지금 나의 신앙은 지식으로 믿어지는 신앙인지? 아니면 하나님을 만난 체험적인 신앙인지? 그리고 하나님을 체험하고 경험하는 방법이 무엇이라고 생각했었는지? 그래서 지금 내가 당하는 고난과 고통 그리고 환란을 통하여 지식적인 하나님이 아닌 체험과 경험적인 하나님의 손길을 깨닫고 있는지? 묻고 있으니 스스로 자문자답 해 봅시다.
- 고난과 역경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체험하는 신앙이 절망을 이기고 힘과 능력이 됨을 확신해야 복이 됩니다.
-시편119편 67절에서“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 이런 점에서 우리가 고난과 환난을 당할 때 인내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며, 우리는 환난이 임할 때 그것이 우리로 당신에 대한 체험적 지식을 갖게 하기 위한 것인 줄로 믿고 감사함으로 인내합시다.
- 베드로전서 4장 12-13절에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하였습니다.
- 우리가 하나님의 연단의 과정을 통하여 신앙이 성숙해지는 것만 봐도 환난은 분명 하나님에 대하여 체험적 신앙을 경험하는 매우 중요한 축복의 통로임을 요셉과 모세와 다윗과 다니엘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 그런즉 성도들은 환난과 역경이 올 때 절망이나 낙심하지 말고 인내함으로 하나님에 대하여 체험적 지식을 가지고 더욱 성숙한 하나님의 자녀로 성장 해 나가는 저와 주님의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