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덕회는 중국의 10대 원수의 하나이다.빈농출신으로 중국의 해방에 기여하였는데 생김새가 꼭 나무 토막과 같다. 글자도 잘 몰랐다는데 배짱은 대단했다. 팽덕회 자서전을 읽다가 보면 그의 말을 대필한 작가가 있겠지만 그래도 진솔한 입김이 보인다. 그러나 그의 자서전에 나타나지 않은 비밀이 하나 있다.
팽덕회는 북한을 도운 중국식 표현으로 항미원조전쟁의 지원군 사령관이었다. 이자가 끌고온 군사란 절강성과 복건성에서 중공군에 항복한 국민당소속의 군인이 많았다. 이들은 겨울이 없는 따뜻한 지방의 출신이고 술이나 마시고 행팰르 부리는 건달이고 그대로 고향에 보내기도 어려울 정도로 농사에도 부적당하였다. 패잔병군인이란 실제로 농사를 비롯한 생업에도 익숙하지 못한 폐인이었다. 이들을 편성하여 숫자를 불리고 추운 만주로 향하게 하고 남으로 가면 따뜻하다고 술을 먹여 꽹과리를 울리며 총탄 받이로 사용하였다. 인해전술이란 팽덕회에게는 쓰레기를 소각하는 임무와 다름이 없었다. 전쟁의 장군이란 때로는 군량만 축내는 쓸모 없는 군인을 죽이는 일이 살리는 일보다 중요하였다.
중국에서는 전쟁이란 자주 인간의 폐물인 쓰레기를 소각시키는 작전이었다. 대강의 쓰레기가 소각되자 퍙덕회는 이른바 땅따먹기 작전으로 들어갔다. 모두가 땅굴을 파고 야간 등화 통제를 하고 밤에만 움직이게 하였다. 유엔군의 폭격기를 피하는 작전이었다. 그래서 그나마 땅을 지켜주고 북한을 떠나갔다. 팽덕회에게 가슴 아픈 일이 있었다. 모택동은 아들 모안영을 경력을 쌓도록 보냈는데 김일성은 신주처럼 편안하게 후방의 방공호에 모셨다. 팽덕회는 일선에 있었고 모안영은 후방에서 호화생활을 하면서 북한의 누구의 말도 겁나지 않았다. 그래서 답답한 밤에 방공호에서 나와서 불을 켜고 호기를 부리다가 미군의 야간 공습에 노출되었다. 미군기가 한방 때려서 불나방처럼 죽었다. 미군기는 누구를 죽였는지 파악하지도 못하였음이 기밀문서에서 확인된다.
김일성은 이 사실을 차마 자기 입으로 모택동에게 알리기 어려웠다. 그래서 팽덕회가 돌아가도록 이를 알리지 않았다. 팽덕회는 북경에서 30리 떨어진 곳에서 전승의 영웅으로 모택동의 마중을 받았다. 모택동은 팽덕회의 거친 손을 덥석 잡고 "동지 수고했소!"라고 말했다. 다음에 응당 나서야할 모얀영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모택동은 경상도 말로 "아는?(우리아이는?)"이라고 말했다나 그랬더니 팽덕회가 "아직도 모르셨오?" 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모택동은 그 자리에서 털석 주저앉더란다. 문화대혁명은 모택동이 늙고 후계자가 없는 상황에서 모택동을 앞에 세우고 강청이 중국을 말아먹은 작난이었다. 김일성과 팽덕회의 인간상이 보이는 재미 있는 장면이다. 팽덕회는 문화대혁명까지 숨도 쉬지 못하고 연금 상태로 고생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