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 살인’이 또다시 화제다. 엊그제 인천에서는 “2010년에 일어난, 이른바 ‘산낙지 질식사 사건’은 보험금을 노린 남자 친구의 치밀한 계획 살인”이라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서울에서는 모 사찰의 대처승이 내연녀를 아내인 양 속여 생명보험에 든 다음 ‘진짜부인’을 죽이고 보험금을 타내 외국으로 도망쳤다 7년 만에 붙잡힌 사건도 일어났다. 모두 돈에 눈이 멀어 가장 가까운 사람을 계획적으로 죽인, 그야 말로 ‘막장 범죄’라 할 수 있다.
1930년대 첫 보험금 노린 살인사건 보도
익사를 가장하야 삼만 오천원을 사기
1934. 4. 7 [동아일보] 3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보험금을 노린 살인사건이 보도된 것은 1930년대다. 평양에서는 보험금을 탐내 아버지를 죽인 패륜아가, 부산에서는 친형과 부인 장모를 독살한 이른바 ‘보험마’(보험금 목적 살인마)의 기사가 대서특필됐다.신문은 “조선은 자고로 동방군자지국이라, 기계가 중심인 근대문명에는 뒤졌다 해도 보험금을 노린 귀축(鬼畜)의 범행은 흔하지 않았다”고 통탄하며 “악마의 재판을 지켜보려 수많은 사람이 법원에 운집했다”고 썼다.
사실 일제 때만 해도 이런 범죄는 간단치 않게 보도됐다. 일찍이 보험 제도를 도입하고 사기사건도 끊이지 않던 일본에서 배운 것이었다. 해방 후 얼마간 이런 보험범죄는 자취를 감추었다. 광복에 뒤이은 한국전쟁과 전후복구, 보릿고개와 경제난 등 하루하루 먹고살기가 힘들어 생명보험을 드는 것 자체가 사치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1970년대 친정언니 일가 살해한 보험 살인사건 발생
보험금 노려 언니 일가 살해·시동생 독살
1977. 9. 19 [동아일보] 7면
그래서 1977년 부산에서 친정언니 일가에 이어 시동생 등 4명을 살해하고 동거남까지 죽이려다 붙잡힌 40대 여인 사건이 발생하자 온 나라가 들썩였다. “가족이 더 무섭다”는 공포심이 빠르게 확산됐고 가족대상 금전만능 범죄에 대한 분노에 사람들은 치를 떨었다.
‘희대의 보험 살인녀’로 명명된 당시 48세 박 여인의 범죄는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엉성하기 이를 데 없었다. 보험회사 외판사원인 초등학교 동창들로부터 보험지식을 얻어 범행한 그는 연쇄 살인이 발각될 당시 죽인 언니 명의 4구좌, 시동생 명의 5구좌의 특약보험에 가입해 이미 수 천만 원의 보험금을 타냈다. 이외에도 동거남(7구좌), 동거남의 본처(1구좌), 본처 아들(1구좌)과 자신(5구좌)및 친아들 등 모두 15구좌의 생명보험에 가입해 보험료만 월 58만원을 내고 있었다. 계약총액은 1억5천만 원에 이르렀다.
요즘처럼 계약이 전산화되고 보험사기 전문조사요원들이 활동하고 있었더라면 이렇게 수많은 다른 사람 명의로 보험에 드는 것은 불가능할 터였다. 또 살인을 하고도 문제없이 보험금을 타낼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는 ‘보험 살인’이라는 말조차가 생소하던 때. 보험회사는 오히려 그를 “특등 손님처럼 대우하고 이것저것 ‘영양가’ 있는 보험을 권유해” 가입하게 해줬다. 범행이 발각된 후 밝혀졌지만 그는 살인을 저지르고 보험금을 타낼 때는 보험회사 직원들에게 은밀히 뇌물까지 건넨 것으로 밝혀졌다.
첫 보험 살인 성공하자 시동생도 살해
충격파 던진 최초의 보험 살인
1977. 9. 20 [경향신문] 7면
74년부터 언니 명의의 보험에 들었던 그는 75년 1월 언니 집 제사에 가 함께 잠을 자다 몰래 일어나 불을 질렀다. 이 화재로 언니와 조카가 현장에서 숨지고 형부는 이튿날 숨졌다. 박 여인은 화인조사를 나온 경찰에게 중풍으로 말을 더듬던 형부의 진술을 대신 옮겨준다며 “형부가 ‘내 잘못으로 석유난로를 넘어트려 불이 났다’고 한다.”는 허위 진술을 꾸며 전달했다. 이를 그대로 믿은 경찰은 단순 실화에 의한 일가족 사망사건으로 처리하고 사건을 종결했다. 이 방화 살인으로 그는 보험금 1천7백38만원을 받아냈다.
언니 일가를 죽인 범행이 성공해 목돈을 쥔데 고무돼서일까, 그는 바로 동거남의 동생 명의로 4천만 원대 생명보험을 5구좌나 들었다. 그리고 다방으로 시동생을 불러내 사업 얘기를 하는 척하다 음료에 독극물을 풀어 넣었다. 시동생은 집에 돌아가자마자 심한 복통과 구토 증세를 보이다 숨졌다. 시동생 가족들은 평소 지병이 있던 터라 사인에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 박 여인은 대담하게도 죽인 시동생 부인에게 찾아가 “시동생 명의로 4백만 원짜리 생명보험에 들어놓았다”며 인감증명을 받아 보험금 청구를 했다.
군대갔던 언니 아들의 추궁으로 밝혀진 범행 일체
허술한 수사…날뛴 ‘보험 살인녀’
1977. 9. 20 [경향신문] 7면
그러나 문제는 보험회사 직원이 시동생 집을 사실 확인 차 방문해 벌어졌다. 직원으로부터 “보험금 액수가 4백만 원이 아니라 4천만 원대”라는 걸 들은 시동생 부인이 박 여인에게 항의하고 나섰고 박 여인은 결국 받은 보험금을 모두 시동생 부인에게 줘야만 했다. 이런 판에 보험회사도 박 여인이 보험을 든 뒤 석연치 않은 사건이 연달아 발생하자 계획적 보험 살인 가능성이 있다며 경찰에 철저한 사인 규명과 재조사를 진정했다. 일이 이쯤 됐으니 그의 범죄는 들통이 나야 마땅했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
박 여인은 오히려 보험회사를 상대로 “엉뚱하게 살인죄를 씌우는 등 명예훼손을 했다”며 위자료 청구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80만원의 위자료까지 챙긴 박 여인은 더 담대해졌다. 동거남과 그의 본처, 아들 명의로까지 보험을 드는 등 제3, 제4의 범행을 준비했다. 그러나 악행은 오래갈 수 없는 법. 언니 집에 불을 질러 일가를 살해할 당시 군대에 가있던 아들이 제대해 돌아와 불이 나기 전 이모가 보험에 들어놓은 사실을 확인하고 이를 추궁하기 시작했다. 박 여인이 “받은 보험금”이라며 수표를 건네자 아들의 의심은 더 깊어졌고 대검에 진정해 전면재수사를 벌인 끝에 범행 일체가 드러났다.
보험 살인 범죄의 전모에 ‘아연실색’
개막된 보험 대중화 시대…보험범죄
1978. 5. 18 [매일경제] 3면
‘해방 후 첫 보험 살인범죄의 전모가 밝혀지자 신문들은 아연실색했다. “사람이 이토록 철저하게 악마일 수 있다는 사실에 소름이 끼친다.”거나 “외국 일로만 여기던 선진범죄가 끔찍한 현실로 등장했다.”고 개탄했다.
특히 박 여인이 죽인 언니 동네에서는 “박 여인이 보험만 들면 그 보험에 든 사람이 꼭 죽는다.”는 소문이 돌았고 보험회사도 계획살인 수사를 진정했으나 경찰이 아무 의심도 없이 사건을 종결 처리한 것을 집중적으로 성토했다. 신문들마다 사설과 칼럼을 총동원해 “부모자식, 부부, 친척과 애인의 목숨을 담보로 걸고 또 빼앗아 돈을 벌겠다는 악마의 심보가 더 이상 우리 사회에 발붙이게 해서는 안 된다.”고 소리를 높였다.
이후 끊임없이 일어난 보험금 노린 강력 범죄들
그러나 모든 일은 처음이 어렵다고 했던가. 한번 세상에 얼굴을 드러낸 보험 살인은 이후 거의 매년, 한 두 번씩은 꼭 일어나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특히 생명보험의 특성상 가족 친척이 보험을 들어놓고, 또 그들이 범행을 하는 반인륜 범죄인 탓에 그 충격파가 엄청났다. 첫 보험 살인자 박 여인이 대법원에서 사형확정 판결을 받은 79년 20대 젊은이가 어머니를 살해한 사건이 일어났다. 범인은 어머니 몰래 보험에 가입한지 3개월 만에 범행하고 이를 은폐하기 위해 집에 불까지 질렀다. 이 사건 역시 경찰은 분신자살로 처리했으나 다른 아들이 “어머니가 자살할 이유가 없다”며 재수사를 요구, 시체를 부검한 결과 살해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80년에는 춤바람이 난 부인이 보험금 5백만 원을 타내려고 카바레에서 사귄 하수인을 시켜 남편을 살해한 사건이 일어났다. 81년엔 계를 들고 돈놀이를 하던 여인이 계가 깨져 빚을 지게 되자 이를 갚으려고 시동생 명의 보험을 든 다음 살해한 사건이 일어났다. 또 일식집 주인이 보험금을 타내 빚을 갚기 위해 자기 식당에 불을 지른 바람에 종업원 5명이 한꺼번에 숨지는 참사도 발생했다.
82년에는 50대 여인이 소아마비에 정신박약 증세가 있는 20대 딸을 죽이고 보험금을 타내려다 적발됐다. 여인은 이웃집 남자와 눈이 맞아 딸을 살해한 후 보험금을 타기로 하고 딸이 자는 방에 연탄화덕을 들여놓아 가스중독으로 숨지게 했다. 이들 남녀는 또 불구인 딸이 정상적으로는 생명보험 가입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보험회사 대리점 주인에게 1천만 원을 주기로 하고 보험에 가입한 것도 밝혀졌다. 돈을 타내려고 가족 친지를 살해하는 수법이 점점 조직화, 지능화한 것이었다.
그리고 83년, 이번에는 대형병원에서 ‘묻지마 범죄’를 위장한 아내의 남편 독살사건이 일어났다. 이 보험 살인에는 철모르는 어린 아들까지 개입시킨 것이 밝혀져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도대체 보험사기, 보험 살인은 어디까지 진화할 것이냐를 놓고 사람들은 정말로 크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 글
- 민병욱
- 전 한국간행물윤리위원장
- 1976년 동아일보에 입사해 편집국 사회1부장, 정치부장, 부국장, 논설위원을 거쳤다. 2009년 7월까지 한국간행물윤리위원장을 지냈다. 저서로는 <들꽃 길 달빛에 젖어> <민초통신 33>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