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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예수가좋다오 원문보기 글쓴이: (一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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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10강*거룩함
고린도전서 5장1-8절 / 송태근 목사
오늘은 고린도전서 5장을 중심으로 교회의 거룩함이 무엇인가? 오늘 내용은 음행이 내용입니다. 음행 자체를 다루고자 하는 내용은 사실 아니에요. 음행이라는 주제를 통해서 교회가 왜 거룩해야 되는가? 교회는 뭔가 이런 쪽으로 시선을 좀 돌리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으로 들어가기에 앞서서 이 당시 고린도 지역의 상황을 여러분들이 조금 지식을 가질 필요가 있어요. 아마 헬라 시대에 가장 타락한 지역이 이 고린도 아닌가?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여기에서 발굴된 그 조각이나 또 그림을 보면 요즘 봐도 끔찍할 정도로 그 문란한 그 형상들을 만날 수가 있어요. 이제 선교사님들이 이 지역에서 쭉 그 오래 생활을 하면서 당시의 그 흔적들을 많이 접한 선교사님들 만나보면 또 이쪽에 공부를 한 분들의 그 저서나 또 모아는 자료를 보면 맨 정신으로 보기 힘들 정도로 정말 더럽고 추한 내용들입니다
고린도 사람들 하면 당시에는 그 음란의 대명사 같은 그런 지역이었습니다. 이 지역이 왜 이랬나 보면 영지주의는 그 이단이 갖는 신학 사상이 철저히 이원론적 사상을 갖고 있어요. 영은 깨끗한 것이고 육체는 더러운 것이다. 그래서 이 정확한 구분 가지고 육체는 어차피 더러운 거니까 여기에서 두 극단이 생깁니다. 하나는 도덕 폐기론 자들이 생겼어요. 그래서 뭐 육체 어차피 썩어질 것이고 더러운 거니까 육체가 원하는 대로 그냥 마음대로 살자 도덕 폐기론 자들이 여기서 발생을 합니다. 그래서 이런 쪽의 아류들이 굉장한 문란한 생활을 해요.
그리고 또 하나의 극단이 뭐냐? 금욕주의자들이 생깁니다. 그 반대로 이 몸을 쳐서 복종을 시켜야 된다 그래 가지고 몸을 학대하고 몸을 고달프게 만들고 또 이것도 잘못된 거예요. 그래서 영적인 것과 육체적인 것을 철저히 구분해야합니다. 육체는 어차피 더러운 것이니까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서 이렇게 양극단이 생겼다, 이 정도로 이제 이해를 갖고 보셔야 됩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 지역은 그 스토아 철학이 이 사람들이 밑바닥 정서를 그 지배하고 있었어요. 돈 많은 사람들이 지식을 숭상하지 이렇게 악한 음란한 행위들이 온 도시를 뒤덮고 있어요.
그 이런 것들이 종합적으로 교회까지 파고 들어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고린도교회가 그렇게 탄탄한 교회가 아니에요. 이제 막 태동한지 얼마 안 된 어린 교회다 보니까 사도 바울도 이 교회를 향해서 너희가 틀렸다라고 말하지 않고 어리다고 말을 하잖아요. 어린아이들이 면역성이 없어요. 죄에 대해서 면역이 없고 이 세상의 악한이 부도덕한 한 쓰나미 같은 물결들이 교회 안으로 그냥 서슴없이 들어와서 자리를 잡기 시작하는 거예요.
교회가 좀 탄탄하고 좀 성숙한 교회 같으면 말씀의 가치로 영적인 실력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주장해서 이런 것들을 물리칠 수 있는데 그런 형편이 안 된 시기라 심지어는 교회 안에 음행의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많은 음란의 유형들이 있는데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것은 그중에 일부를 이제 사도 바울이 지적을 해요. 아주 악한 음란을 지적을 하는데 1절을 좀 보십시다. ➤“1. 너희 가운데 음행이 있다는 말이 공공연히 알려졌는데 그런 음행은 이방인들 가운데서도 거론되지 않는 것으로 곧 어떤 사람이 자기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는 것이라.”
음행이 말을 포르네이아(πορνεία) 이렇게 표현을 합니다. 이 음행은 가장 간단한 가치 기준이 정상적인 부부생활 외 모든 관계를 음행이 본주 안에 묶어서 표현을 하는 거예요. 자기 아내 자기 남편 외 모든 관계를 음행이 표현을 해요. 이거는 시대가 아무리 수 천 년이 흐르고 변해도 불변한 가치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특별히 청년 시절에 이런 가치가 선명하게 확고하게 마음속에 자리 잡아야 돼요.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이 가치는 인류 보편적 가치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들만의 것이 아니에요.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전 인류에게 주신 가치입니다.
교회당 안에 음행이 있다는 말을 들었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지금부터 말하고자 하는 음행은 이방인들도 혐오하는 음행이 그 어떤 음행인가 봤더니 누가 그 아버지 아내를 취하였다. 여러분 여기 취하였다는 말은 한 사람이 어쩌다 한 번 실수한 그걸 얘기 하는 게 아니요. 이것은 헬라 말을 드리다 보면 반복적이고 습관적으로 행한 일들을 표현하는 언어입니다. 그 내용이 뭐냐면 누가 그 아버지 아내를 취했다 자 나를 중심으로 아버지 아내는 누굽니까? 어머니 맞지요. 왜 대답들을 못 하세요. 아버지 아내가 누굽니까? 그런데 이거는 친어머니를 얘기 하는 게 아닙니다. 이 아버지 아내라는 헬라 말의 수사법 두 가지 종류를 얘기해요. 아버지가 엄마하고 살다가 무슨 사연으로 헤어졌던 죽었든 사별을 했던지 그리고 이제 다른 아내를 얻었어요. 그럼 그 아내가 계모가 되겠지요.
우리식 표현으로 계모나 또 하나는 어머니 있는데도 이제 헤어지고 둘째 부인을 얻었다 그것도 어쨌든 뭡니까? 아버지의 아내가 돼요. 그렇게 살다가 아버지가 죽어요. 그럼 누가 남습니까? 아버지 아내가 남아요. 여기 표현대로 이 당시 헬라 시대의 그 유산 상속법이 뭐냐면 그 모든 유산이 자식들에게 돌아가는 게 아니라 아버지하고 잠깐이지만 살았던 이 여자에게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아들들이 강제로 혼자 남은 아버지의 아내하고 결혼을 해 버려요.
이게 음란의 문제이기도 하지만은 그 뒤에는 무슨 문제가 결부돼 있나요. 결국은 돈의 문제예요. 그래서 이런 일들이 헬라 시대에 심지어는 어디 안에서도 교회당 안에서도 이런 일들이 용납되는 분위기였다 그 말이에요. 레위기 율법이나 신명기 율법에 보면 아버지 아내 하체를 범한 자는 죽일지니라 그랬습니다. 죽이도록 돼 있어요. 그게 신명기 율법이요. 이것은 이방인들도 악하게 여기는 범죄인데 그 시대가 전부 그렇게 대세니까 그 부도덕한 행태들이에 그 시대의 대세였는데 교회가 그런 부도덕한 논리들을 슬그머니 용납하고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자 그래서 성경 2절을 볼까요? ➤“2 그런데도 너희가 우쭐대며 오히려 슬퍼하지도 아니하고 이런 일 행한 자를 너희 가운데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니라.”
교만이 뭔지 압니까?
하나님의 은혜보다 사람을 중심으로 자랑하는 게 교만이 그니까 은혜가 설자리가 없는 게 교만이 이 음란의 문제는 음행의 문제는 천하장사라도 뭐 아무리 누구라도 맞서서 싸울 죄가 아니에요. 이제는 무조건 피해야 될 죄입니다. 우리 젊은이들 잘 들으세요. 이 음란의 상황과 맞서서 이길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요셉이 남의 나라 종으로 팔려가서 참 아슬아슬한 환경에 있어요. 구약성경 창세기 39장에 등장하는 요셉과 보디발 부인의 이야기는 종으로 팔려간 요셉이 겪은 최대의 유혹과 위기를 다룹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빼어난 외모를 지닌 요셉을 지속적으로 유혹했으나, 요셉은 "하나님께 죄를 지을 수 없다"며 거절했고 이로 인해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감옥에 들어가더라도 피해야 될 죄예요 그런데 반대의 경우가 있었어요.
성경에서는 다윗의 부하인 히타이트 출신 우리아의 아내로 처음 등장합니다. 어느 날 다윗이 밧세바가 목욕하는 것을 보고 그 아름다운 모습에 반하여 우리아가 전쟁터에 나간 사이에 그녀와 여러 차례 성관계를 맺습니다. 결국 밧세바는 다윗의 자식을 가집니다. 다윗왕은 자신의 죄를 숨기기 위해 전장에 있던 우리아를 불러 밧세바와 동침하라 명했으나 그는 곧바로 전장에 복귀하였고 두 번째 부름에 똑같이 행동하자 다윗은 세 번째로 우리야를 불러 군사령관 요압에게 자신의 편지를 보내도록 했습니다. 그 편지에는 우리아를 죽게 하라고 적혀 있었고, 요압은 우리아를 선봉으로 삼아 적진 깊숙이 내보낸 다음 군대를 철수시켜 일부러 죽게 합니다. 우리아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다윗왕은 즉시 밧세바와 혼례를 올렸으나 예언자 나단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다윗을 꾸짖고 저주하였고 밧세바는 임신했던 첫째 아들은 태어난 지 일주일 만에 병으로 죽고 말았습니다. 이후 밧세바는 둘째 아들 솔로몬을 낳았고 이후 솔로몬은 다윗왕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제3대 왕이 되었습니다.
어린 신자들은 가장 방법은 늘 말씀과 예배의 자리에 그리스도인의 건강한 교권 속에 머물러야 돼요. 문만 나가면 죄악의 홍수가 쓰나미 처럼 우리나라가 어쩌다가 대한민국이 동방예의지국이 그런 더러운 오명이 붙었는지 모르겠어요. 우리나라의 무슨 관광을 하러 온다. 무슨 관광을 하러 옵니까? 우리나라에 어쨌든 대한민국의 이지경이 되는지 몰라요. 대한민국은 지금 뭐 선이 다 무너졌어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음행이란 죄는 우리 영혼 속에 둥지를 틀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돼요. 특별히 젊을 때일수록 젊을 때이 잔상이 머릿속에 새겨져 버리면 이 안 지워집니다. 언제 지워지는지 아세요. 지워지는 때가 있긴 있어요. 죽어야 끝납니다. 이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 아세요. 그런데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이 죄를 뭐 당시 사회가 다 그랬으니까 예 그 사회는 플라톤의 국가론이 아는 책에 보면 이미 그때 공창 제도가 있었어요. 그리고 그때 모든 우상들이 전부 그런 성적인 묘사가 거의 999% 있습니다. 그리스 신하의 백그라운드를 보세요. 전부 그 내용이에요. 그래서 그 성전 안에 성전 창기들이 많았습니다. 또 그것들이 밤이 되면 골목으로 으슬으슬 내려와요. 그걸로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서 이게 그 당시 사회 분위기였고 특별히 호는 문제에 대해서 관대한 사회였고 사는 거예요. 이게 짐승이지 그런데 이 고린도 교회 안에는 이런 사람들을 왜 못 물리 쳤을까요? 자 여기서 한 가지 제가 질문을 할게요. 아내가 죽었어요. 아버지의 여자가 남아요. 아들이 그 재산이 엉뚱한 여자에게 몽땅 영원히 빼앗길까? 강제로 아버지의 아내 아버지의 여자를 결혼을 해 버립니다.
그러면 이것이 있는 사람들이 하는 짓이에요.
있는 사람들은 이게 있기 때문에 없는 사람들은 이런 일을 하고 싶어도 못 해요. 쥐뿔도 없는데 뭘 해요. 있는 사람들이 그런단 말이야 있는 사람들이 그럼 그 사람들은 재력이 있으니까 교회 안에서 소위 방귀 끼는 사람들이에요. 행세 하는 사람들이요. 교회 뭐 어려운 일 있다 하면 돈 척척 내고 또 많은 가난한 사람들 구제의 대상들이 있었으니까 그 돈줄이 다 누구에게서 나왔겠나? 말이에요. 그러면 이 사람들 쉽게 내칠 수 있을까요. 그럼 그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가 하나님의 능력이 지배하는 교회입니까? 사람이 지배하는 교회입니까?
사람이 지배하는 교회, 그걸 교만이라고 하는 거예요. 왜 너희가 통한이 여기지 아니하고 물리치지 못하였느냐 내쫓지 못하였느냐 바울은 이 문제에 단호하게 얘기합니다. 내 쫓아라 그런데 보세요. 자 우리 오늘 본문 3-5절 읽어 볼까요. ➤“3. 내가 진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지만 영으로는 함께 있어 마치 거기 있는 것같이 이런 일을 그렇게 행한 자에 관하여 이미 판단하되 4. 너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과 함께 같이 모였을 때 내 영도 함께하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5. 그런 자를 사탄에게 넘겨주어 육체를 멸하도록 판단하였으니 이것은 영이 주 예수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이 말은 무슨 말인가 하면 바울은 지금이 편지를 고린도교회 안에서 쓰는 게 아니고 에베소에서 지금 전도하면서 소식을 듣고 편지를 쓴단 말이에요. 몸은 떨어져 있는데 내가 너희들을 복음으로 나은 자식 같은 교회이기 때문에 내가 지금 그 교회당 안에 일어난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이야기를 듣고 내가 이미 대안을 갖고 있다. 몸은 떨어져 있지만 내가 너희들하고 무관한 존재가 아니다. 계속 기도로 목회를 하고 편지로 목회를 할 것이다. 그리고 나 나름대로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될 것인지 판단이서 있다 그 말입니다.
5절에 앞에는 이런 자를 누구에게 내줘요.
사탄에게 내 준대요. 그런데 뒤에는 또 뭐라 그래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자 이제 고개를 들고 조용히 한번이 본문을 조합을 해보세요. 전반부는 이런 자는 사탄의 먹잇감이 돼야 된대요. 사탄에게 내 줘야 된대요. 그런데 뒤에는 주 예수님의 날 구원을 받게 하려 한다고요. 육체 일이에요. 자 여기서 우리 독자들이 즉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읽을 때 이제 개념정리를 좀하고 성경을 읽을 필요가 있어요. 하나님과 반대되는 모든 것을 또 다른 표현으로 육체이다 이렇게 표현합니다. 오늘 아주 중요한 복음의 정수로 여러분들이 지금 안내된 겁니다. 자 예수님께서 2천 년 전 갈보리 언덕의 십자가에 달려 우리 죄 값을 짊어지시고 속죄양으로 못 박아 죽으실 때 거기 누가 같이 죽었어요. 이거 대답 못 하면 인생이 복잡해집니다. 자 누가 같이 내 죄와 같이 죽었어요. 이따 그 증거를 다른 성경에서 제가 밝혀 드릴게요.
갈라디아서 2장 20-21절을 보세요.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노라. 그러나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느니라. 나는 지금 내가 육체 안에서 사는 삶을,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사노라. 21.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가 율법에 의해 온다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여기 산다는 말은 살아간다. 그 말이에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모든 삶의 동기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믿음으로 통하여 살아가는 거예요. 자 이제 한 가지 정리가 됐어요. 뭐냐면 저를 보세요. 여러분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으실 때, 그때 같이 죽었어요, 난 그때 없었어요. 자 보세요. 시간이라는 과정은 인간에게 필요한 겁니까? 하나님에게 필요한 겁니까? 인간에게 필요한 거예요. 하나님은 시간 개념이 필요하지 않아요. 예수님이 잘 생각하셔야 돼요. 이것이 이제 CS 루이스가 설명하는 개념인데 이 아주 중요한 개념이에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나와 함께 죽었다는 말은 뭘 생략한 겁니까? 시간을 생략한 거예요. 왜 그분에겐 시간이 필요해요 필요하지 않아요 하나님이신데 왜 시간이 필요합니까? 예수님은 십자가에 모든 걸 단숨에 이루어 놓으셨어요. 우리가 설득되고 시간이라는 과정 속에서 풀어 가시는 거예요.
그니까 앞으로 우리가 더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그래서 이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사는 것은 어떤 율법적 차원에서 죄를 해결하기 위해 사는 삶이 아니라 우린 죄를 해결할 수가 없어요. 해결할 자본이 없는 사람이었어요. 이미 십자가에 예수님이 그거를 해결하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사는 것은 그분의 사랑 안에서 그 사랑의 감격스러워서 그 사랑의 은혜 속에서 사랑 때문에 감사해서 그분 눈치도 보고 그분 마음에 들려고 하고 그래 누구의 신부로서 사는 겁니까?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사는 거 그게 교회의 중요한 거룩성이 믿습니까? 자 신랑을 기다리는 귀한 가치는 그 정절이 교회 거룩함이 말이요.
그게 계약서 때문에 율법 조항 때문에 지키는 정절의 개념입니다. 무슨 개념이에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을 한다는 것은 인생일대의 최대의 사건이에요. 내가 너만 이제 섬긴다 그 말이에요. 우리 지난주도 예배 때 사랑이었어요. 사랑의 고백이에요. 그게 거룩함의 정점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 주님이 나를 사랑하신 사랑에 매여서 그분 눈치도 보고 그분 좋아하는 거 하고 싶고 그래야 그게 정상이라 말이에요. 그런데도 아직 우리는 연약한 육체에 매어 있어서 아직도 투성이고 약 해요. 그런데 반드시 이 문제는 끝장이 나고 해결이 날 문제 왜 십자가에 이미 주님이 값을 다 지불해 놓으셨기 때문에 사랑의 주도권을 그분이 갖고 계세요.
그래서 우리가 실력이 없어도 하나님과 우리의 계약은 일방적인 계약입니다. 쌍방 계약이 안 돼요. 원래 계약은 쌍방이 정확한 맞는 개념이에요. 그런데 우리하고 하나님과의 계약은 쌍방 계약이 안 돼요. 왜 우리가 계약을 지킬 실력이 안 되잖아요.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속전 재물로 피 값으로 지불하시고 일방적으로 계약하여 그 능력 있는 하나님이 그러면 그 계약은 반드시 완성될 계약입니다. 이게 안 될 수도 있는 계약입니다. 반드시 완성될 계약이란 말이요. 쌍방 계약 같으면 문제가 심각합니다. 내가 자본이고 내가 실력이 안 되는데 그 계약이 어떻게 되겠어요. 이 계약은 하나님이 혼자 하신 계약이 아들을 걸고 그러면 그 하나님이 시작한 사랑의 역사가 완성이 될까요?
확인 들어갑니다.
➤로마서 6장 4-9절입니다. ➤“4. 그러므로 우리가 죽음 안으로 침례를 받아 그분과 함께 묻혔나니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에 의해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지신 것같이 그렇게 우리도 생명의 새로움 속에서 걷게 하려 함이라. 5. 만일 우리가 그분의 죽음과 같은 모양으로 함께 심겼으면 또한 그분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되리라. 6. 우리는 이 사실을 아노라. 즉 우리의 옛 사람이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절되어 이제부터는 우리가 죄를 섬기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니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이라. 8. 이제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분과 함께 살줄을 우리가 믿노니 9.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지셨으므로 다시는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는 그분을 지배하지 못하는 줄 우리가 알기 때문이라.”
그리스도께서 자 보세요. 아까 사탄에게 내어준 바 되었다는 말은 바로 무슨 말인가? 하면 율법의 요구에 내줬다 그 말이에요. 육체를 그니까 죄 값을 누가 지불하신 거예요. 그리스도께서 지불하신 거예요. 그리고 우리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의 영으로는 살림을 받도록 하기 위해서 자 그러면 이게 무슨 얘기가 되냐면 비록 교회당 안에 연약해서 음행의 죄 빠진 사람들이 있지만 그 죄 자체에 대해서는 단호히 잘라내고 물리쳐야 되지만 그 사람도 마지막 날에 하나님이 구원받기를 원해요.
이제 끝내야 되겠습니다.
오늘 본문으로 넘어가십시오. 자 5장 3-10절 ➤“3. 내가 진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지만 영으로는 함께 있어 마치 거기 있는 것같이 이런 일을 그렇게 행한 자에 관하여 이미 판단하되 4. 너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과 함께 같이 모였을 때 내 영도 함께하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5. 그런 자를 사탄에게 넘겨주어 육체를 멸하도록 판단하였으니 이것은 영이 주 예수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6.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좋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를 뜨게 함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7. 그러므로 묵은 누룩을 제거하라. 그러면 너희가 누룩 없는 자들이듯이 너희가 새 덩어리가 되리라. 우리의 유월절 어린양 곧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희생물이 되셨느니라. 8. 그러므로 우리가 그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의와 사악함의 누룩으로도 말며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빵으로 하자. 9. 내가 음행하는 자들과 사귀지 말라고 서신에서 너희에게 썼으나 10.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들이나 강탈하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자들과 전혀 함께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반드시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하리라.” 아멘
여기 왜 유월절이 등장하고 어린 양이 등장합니까?
바로 그리스도의 죽음 때문에 우리가 그 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아는 옛사람의 상징적인 땅에서 400년을 살다가 마지막 밤 그 땅을 나올 때 무슨 밤을 지나지 유월절 어린 양의 죽음에 대가를 지으라는 밤을 지나요. 그래서 그 어린양의 피가 발라진 고센 지역의 히브리 공동체만은 죽음의 그림자가 지나갑니다. 그 공로와 그 은혜로 그 밤을 지나 나와요. 그리고 홍해에서 세례를 받고 가나안 땅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유월절 어린양의 밤을 지날 때 빵을 먹어요. 무슨 빵 먹습니까? 누룩 없는 빵을 먹어요. 누룩은 퍼지게 하고 부패하게 하고 번지게 하는 속성을 갖고 있어요.
이 음행의 죄가 그렇습니다. 음행의 죄는 모든 삶의 성결한 기반을 다 무너뜨려요. 그래서 누룩 없는 빵을 먹으라는 말은 유월절 어린 양의 그 명절을 다시 기억하라는 말은 교회 가장 거룩한 기초와 출발은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서부터 출발해야 된다는 거요. 누룩 없는 빵이라는 것은 우리가 얻은 구원과 그 시작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만 시작이 되고 인간의 조건은 일절 개입할 수 없다는 얘기를 그렇게 하는 겁니다. 어린양의 흘리신 보혈로 구원받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녹취 / 김은영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