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부활절에 맞춰 프로젝트를 했다. 평생을 봉사와 기도로 보내신 수녀님들의 낡은 수녀복을 받아다 해체해서 치유의 베개로 부활시키는 프로젝트였다. 일생 동안의 헌신과 기도가 베개 속에 담기면 그 베개를 품에 안고 있기만 해도 성모 마리아께서 곁에서 어루만져주시는 듯 위안과 용기를 얻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프로젝트를 하게 된 동기였다.
수녀님들께 부탁을 하니 “아유~ 우리가 오래 입은 수녀복을 뭣에 쓰시려구요?”라고 하셨다. 하지만 프로젝트 취지를 듣고는 흔쾌히 동의를 해주셨다. 성당이나 수녀원에서 늘 보는 수녀복이라 익숙한 옷이었는데도 막상 오래된 수녀복을 받아서 자세히 들여다보니 절로 탄식부터 나왔다.
“우리 옷은 오래오래 입어야 해서 아주 질긴 천으로 만들어요. 하하하.” 웃으면서 말씀하셨지만 사실 내가 받은 수녀복의 천은 옷을 만들어 입기에 적합한 천이 아닐 정도로 질기고 거칠었다. 그래야 오래 입는다고 하지만 평생 이런 천으로 만든 수녀복 몇 벌로 살아가는 수녀님들께 절로 머리부터 숙여지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수녀복을 해체하기 위해 뒤집어 자세히 보고는 베개를 디자인하고 만든 디자이너는 물론이고 프로젝트 팀원 전체가 참으로 숙연해졌다. 수녀복을 얼마나 오래 입으셨으면 그 질긴 천 곳곳이 닳아 해져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해진 곳을 바느질로 기워서 입고, 그 기운 부분이 다시 해지면 천을 덧대서 꿰매 입은 흔적이 그대로 드러났다.
게다가 그렇게 덧댄 천마저 다 해져서 너덜너덜한 옷이 대부분이었다. 예수님의 상처가 그대로 옷에 남은 듯 수녀복 안은 상처투성이였다. 그렇게 소중한 헌신과 기도의 증거물을 조심스럽게 해체하고 십자가 디자인을 만들어 넣어 작은 베개들을 만들었다. 그 과정을 담은 영상과 베개는 2021년 부활 시기에 명동성당 지하 갤러리에서 전시를 해 많은 분이 보고 가셨다.
전시가 끝나고 받은 사연 중 참으로 아픈 사연이 있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느 아이의 부모가 보내 준 사연이었다. 아이는 골육종(골암)이 발생해서 다리 한쪽의 허벅지 뼈를 잘라내고 어른 뼈로 이식을 했을 정도로 중증이었다. 게다가 어린 나이에 받은 독한 항암 치료의 부작용으로 급성 백혈병까지 생겨있는 상태였다. 프로젝트 팀이 모여 의논을 한 결과 아이에게 치유의 베개를 전달하기로 했다. 치유 베개 하나를 준비해서 수녀님들께 갔다. 수십 명의 수녀님 한 분 한 분이 베개에 손을 얹거나 품에 안고 아이의 회복과 건강을 위해 너무나도 간절하게 기도를 해주셨다. 그렇게 수녀님들의 기도가 깃든 베개를 들고 바로 염수정 추기경님을 뵈러 갔다. 일정을 끝내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추기경님을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사정 설명을 드렸다. 염 추기경님은 그 자리에서 기도를 해주셨다.
그렇게 추기경님께서 축복해 주시고 수녀님들의 기도가 담긴 치유 베개를 아이에게 전달했다. 걱정하며 찾아간 내게 아이가 생각보다는 씩씩하고 상태도 좋다며 아빠는 말했다. 베개를 전달하며 나도 아이의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고 간절한 기도를 했다. 그렇게 베개를 전해주고 돌아온 지 일년 만인 지난 달, 아이의 아빠에게서 전갈이 왔다. 아이가 백혈병 치료 종결을 판정받았고 이제 다시 건강한 몸으로 학교로 돌아간다는 소식이었다. 차 안에서 메시지를 받고는 눈물이 나서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를 얼마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기적 같은 치유의 소식에 프로젝트 팀 모두가 눈물이 가득했고 저절로 감사의 기도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