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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부활절 설교
○ 요한복음 11장 25-26절 부활의 주님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부활절은 말 그대로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이신 우리 주님이 다시 사신 것을 기념하며 축하하고 감사하는 날입니다. 부활이라는 것은 죽었었던 것을 전제로 합니다. 완전하게 죽은 것이 아니면 그것은 고침받은 것이지 살림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기독교의 부활은 완전하게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부활은 기독교외에는 없습니다.
다른 종교는 영혼의 문제는 다루더라도 육체의 죽음이후에 다시 살아나 영생을 사는 것에 대하여는 가르치지 않고 있습니다. 왜냐햐면 그들 종교창시자들이 죽음 이후의 문제를 말할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죽음 이후의 문제는 몰랐습니다. 그들이 믿는 신들은 참 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하여 말해줄 수 없었습니다. 자기들의 운명도 알수 없었던 그들이 어떻게 죽음 이후의 문제를 알수 있었겠습니까? 물론 마호멧처럼 확신이 없으면서도 거짓말하는 이단들은 무수히 많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하여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우선 죽음은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죽음이 끝이라고 하면서도 죽음을 매우 두려워합니다. 그들은 무언가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죽음 후에 있을 것같기 때문에 두려워합니다. 그러면서도 죽음의 문제를 회피하면서 더 이상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생각하면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죽으면 자기들이 이 세상에서 수고한 모든 것들이 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후손들에게 매달립니다. 마치 후손이 자신의 생명의 연장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입으로는 “죽으면 끝이지”하고 말합니다.
하지만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죽음은 영원한 세계로 들어가는 문과 같습니다. 하지만 불신자들에게 있어서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는 미지의 세계와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죽음의 세계에 대하여 간간히 언급하셨지만 많은 것을 말씀하지는 않으셨습니다. 많은 것을 말씀하실수록 사람들은 상상력을 더하여 덧붙이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일시적인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여도 진리에서 벗어나게 하는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지금도 보면 천국에 갔다왔다는 사람, 지옥에 갔다 왔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그런 사람들을 초청하여서 간증을 듣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의 천국과 지옥에 대한 간증이 다릅니다. 심지어는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도 자기들이 죽어서 천국과 지옥에 갔다 왔다고 말들을 합니다. 이것은 대부분 자신들 안에 잠재되어 있는 어떤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진 현상일 수도 있습니다. 인간의 상상력은 놀랍도로 뛰어납니다. 그 상상력은 진리를 돕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진리를 왜곡시키는데도 쓰여집니다.
물론 어떤 간증은 실제적으로 갔다 온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하나님의 허락하에 보여진 환상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환상의 대부분은 실제라기보다는 비유로 이루어진 것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 증거하시는 천국에 대한 확실한 증거는 거기에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이신 여러분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며, 셀 수 없는 많은 천군천사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서 믿음을 지켰던 수많은 성도들이 주님을 뵈면서 간구하기도 하고 찬송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성경을 통해서 증거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먼저 요한게시록 6장 9-11절을 보면 이렇게 증거합니다.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예수님 안에서 죽은 자들이 하나님께 자신들을 죽인 자들에게 자신의 피값을 값아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요한계시록 7장 9-10절을 보면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하고 있습니다. 여기 흰옷 입은 큰 무리들은 큰 환난에서 나온 자들로써 순교자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구원의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셨다고 말입니다. 구원받은 그들 모두가 살아있습니다.
하지만 지옥은 다릅니다. 예수님은 지옥에 대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이 세상에서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았던 사람들이 가는 곳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음부로 표현하셨습니다. 음부는 지옥에 가기 전, 그러니까 공식적인 심판을 받기 전에 불신자의 영들이 존재하는 곳입니다. 그들은 고통속에서 후회하며 부르짖지만 아무도 그곳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마가복음 9장 48절을 보면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음부와 지옥이 다른 점이 있다면 음부는 영만 들어가지만 지옥은 육체와 영이 함께 들어가서 고통을 당하는 불못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공포심을 불어넣어주기 위해서 기록된 말씀이 아니라 구원의 확실성과 신실하신 하나님이 예비하신 나라가 어떤 곳인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기록한 책이기 때문에 음부나 지옥에 대하여 많이 말씀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천국은 요한계시록을 통해 그 화려함의 일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10-12절입니다.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천국은 마치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세워진 거룩하고 큰 성과 같습니다. 그 많은 건물들이 모두 하나님의 영광과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원한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통과식을 치루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지구를 만드신 이후로 죽지 않고 하나님 나라인 천국에 들어간 사람은 에녹과 엘리야 밖에는 없습니다. 예수님조차도 죽음을 겪고 나서 천국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자신을 믿고 따르는 모든 성도들, 다시 말해 자신에게 속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처소를 예비하고 계십니다. 요한복음 14장 1-3절은 이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다음으로 부활은 지구상에 태어났던 모든 사람이 경험하게 될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았던 모든 사람들은 다 부활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교인들이 부활은 믿는 자들에게만 있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믿는 자와 불신자 모두에게 부활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만 부활시기와 부활의 형태가 다르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믿은 사람은 생명의 부활로, 예수님을 믿지 않은 사람들은 사망의 부활로 나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5장 29절에 이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나오지만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옵니다. 문제는 어떤 사람이 선한 일을 행한 사람이고 어떤 사람이 악한 일을 행한 자인지를 세상의 도덕과 윤리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의 기준과 사람들이 말하는 선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선한 사람은 없어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선하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마가복음 10장 18절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선한 분은 하나님 밖에 없다는 것은 인간이 인간의 기준으로 선하다고 말하는 많은 것들이 실상은 하나님의 선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러니까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인간의 기준으로 볼 때 선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으로 볼 때 선한 일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기준으로 볼 때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하나님의 기준으로 볼 때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기준으로 볼 때 선하다고 볼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행위 이전에 여러분들이 하나님이 보내신 독생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선하다고 하십니다. 믿는 자의 모든 죄가 아들의 피로 깨끗이 씻김 받고 거룩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과 자신이 하신 모든 일들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여 따르는 사람들을 선하다고 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사도 행전 24장 15절에 이렇게 부활에 대하여 증거합니다. “저희의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라”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그것이 소망이 됩니다. 하지만 불신자들은 하나님께 대한 이 부활소망이 없습니다. 그래서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선인의 부활이 있고, 악인의 부활이 있다는 사실을 무엇으로 확신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부활을 믿을 수 있으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시는 모든 자들을 구원하실 것이라는 확신 때문에 부활을 확신 할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첫열매가 되셨습니다. 첫 열매가 되셨다는 것은 다음 열매들도 역시 많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점에 대하여 고린도전서 15장 20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그리고 23절에 가서는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하면서 그리스도의 부활에 이어 그리스도께 속한 자들의 부활이 일어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부활은 모두 생명의 부활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죽음에 참여한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6장 5절을 보면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하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기 때문에 부활에도 역시 함께 연합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누구를 위해 죽으셨습니까? 먼저는 하나님 아버지를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아버지의 뜻은 온 세상이 진리를 알고 구원을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백성이며 자신의 백성들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예수님 자신을 믿고 하나님 앞에 나와 회개하고 주님의 제자가 되어 일평생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며 주님의 제자들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살리심으로 인해 온 세상에 하나님이 선하신 분이며 사랑이시라는 것을 알리고자 죽으신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은 예수님이 완전하게 죽으셨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죽으셨습니다. 죽은 자는 죽어 있는 자신을 스스로의 힘으로 살릴 수가 없습니다. 죽어 있기 때문입니다. 죽은 자는 생각할 수도 없고 일을 할 수도 없습니다. 죽어 있기 때문입니다. 죽은 자가 자기자신을 살린다는 것은 그가 아직 안 죽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완전히 죽어 있는 사람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죽은 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죽은 예수님을 살리신 것은 예수님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와 성령이셨습니다. 하나님이 살리신 것에 대해서는 사도행전 2장 32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성령 역시 죽은 자를 살리십니다. 성경은 성령이 죽은 자를 능히 살리시는 분이심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로마서 8장 11절입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 살리신 이의 영은 성령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성령은 예수님의 죽어있는 육체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이처럼 성령은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따르는 일생을 사는 사람들이 죽었을 때 다시 살리시는 일을 하십니다.
그렇지만 그때가 다가 아니라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자신의 주로 믿고 영접할 때 거듭나게 하심으로 인해 일차적으로 살리시는 일을 하십니다. 그러니까 일차적으로 살림을 받은 사람들의 육체가 죽었을 때 이차적으로 다시 살리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불신자들은 다시 살라심을 받아도 그들은 사망의 부활로 살아나기 때문에 영원한 불못에 떨어지게 됩니다. 거기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떨어진 사탄과 그를 따르던 모든 거짓선지자들과 거짓말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먼저 요한계시록 20장 10절에서는 마귀와 심승과 거짓선지자의 최후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그리고 그 뒤를 이어서 사망과 음부도 역시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사람들과 함께 불못에 던져집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4-15절입니다.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그러면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이 누구입니까? 그들이 어떠한 삶을 삽니까? 요한계시록 21장 8절에 나와있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이들의 죽음을 두 번째 사망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들은 영원히 죽지도 못하는 불못에서 다시는 빠져나올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믿을 기회가 다시는 없기 때문에 둘째 사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없는 사람들은 마귀에게 노출될 수밖에 없고 또한 그가 도덕적인 양심을 가지고 살지라도 그것은 어떤 위기에 몰리면 티협하게 됩니다. 설사 그가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도덕성을 지켰을 지라도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입지는 못합니다. 예를 들어 세상으로부터 성인이라고 추앙을 받았던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하면서 법을 지키기 위해 권력자들이 주는 독주를 마시고 죽었습니다. 그렇다면 소크라테스가 천국에 갔을까요? 그는 감옥에 갇히기 전에 술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자기들의 신인 제우스를 찬양한 일들이 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이 아닌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쥬피터라는 거짓신을 찬양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가 어찌 하나님 나라인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겠습니까?
또한 불교를 창시한 석가모니 역시 도덕적으로는 성인의 반열에 들정도로 사람들에게 추앙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그 역시 신은 없다고 말하면서 사람들의 신성을 제거해버렸습니다. 물론 그당시 사람들이 믿는 신관이 엉터리였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찾았던 것이 아니라 신이 없는 세상에서 인간이 죽지 않고 윤회를 거듭하여 죄인들은 동물로, 의를 행한 사람은 다시 인간으로 태어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해탈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무”라고 말한 것입니다. 없을 “무”자를 써서 실제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가르친 것입니다.
여러분 도덕적인 사람이 천국에 갈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또한 도덕적인 사람이라고 해서 생명의 부활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믿고 하나님의 원하시는 대로 산 사람들이 생명의 부활에 참여하여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영적 법칙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입과 손에서 나왔기에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매우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뜻대로 사는 사람을 하나님은 선하게 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하나님은 생명의 부활로 나오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사실을 나사로의 죽음을 통해 마르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나사로와 마르다, 그리고 마리아 삼남매는 예수님께서 각별히 사랑하시는 가족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사로가 갑작스럽게 죽었습니다. 그가 병들었을 때 마르다와 마리아는 황급히 사람을 보내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 “오셔서 우리 오라비를 살려주세요”하고 청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말을 들으시고도 그들 집에 가실 생각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사로의 생명이 다 끊어지고 무덤에 묻은 다음에야 삼남매 집으로 찾아들어가셨습니다.
마르다는 원망어린 소리로 말합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었다면 우리 오라비는 죽이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자 그 말을 들으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그러자 마르다가 말합니다. “예 부활때는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을 믿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게 될 것이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 그러자 마르다가 “네 믿습니다”하면서 부활때에 살아날 것을 믿는 믿음을 바꾸지 않습니다. 그런 마르다와 마리아를 이끌고 예수님은 무덤으로 가셔서 죽은 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자신이 부활이요 생명이라는 것을 증거로 보이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부활이요 생명이라는 것을 믿으십니까? 이 부활절에 단순히 부활절을 기념하는 것으로 끝나는 믿음이 아니라 예수님이 실제로 자신을 믿고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다 포기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다시 살리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이미 그 일이 여러분 안에서 영적으로 이루어졌고 후에는 육체적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의 완성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완성하신 이 부활의 은혜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이 부활절에 다시한번 부활신앙으로 완전히 무장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한 자로써 함께 죽은 만큼 함께 살되 부활의 주님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증인으로써 영원히 사시는 여러분이 다 되시길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