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5일
문암 포영제
(曝影祭/영정을 햇볕에 쪼여 지내는 祭)가 다가옵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시
구국과 호국으로
나라를 구하시고
목민관으로서 영남권에서
대단한 업적을 남기신
충장공 신초장군님을
모시고 포영제를 올리는 8월 15일에
많은분 참석하시어 조상님을 기리고
음덕도 듬뿍 받아 가시는 날이 되었으면 합니다.
영산영월신씨
상장군공파
홍보장 신용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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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장공 신초
(辛楚,1549~1618) 장군님의 호는 문암(聞巖)이시며,
전공판서 사천(斯薦)의 八세손이며, 아버지는 희수(希壽)이며, 용궁(龍宮) 현감을 지냈다.
어머님은 ??씨 ??의 따님이다. 부모님 슬하 七男 중 公이 다섯째이다.
公은 청년기부터 문재(文才)와 무재(武才)를 겸비한 기린아(麒麟兒)였다.
당시 나라는 크고 작은 외침으로 인해 국운이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해 있었고, 백성들은 가난과 과중한 징세에 시달리고 있었다.
公의 청소년기는 이렇게 열악한 주변의 환경에서 성장하게 됨에 따라 자연히 그의 정신세계는 우국충정(憂國衷情)이 지배하고 있었다.
청빈한 목민관으로 소문난 부친의 엄격한 가정교육으로 진충보국(盡忠報國)의 국가관을 확립하게 된다.
임진왜란시 이숙(李潚), 박진영(朴震英) 등 주변의 동지들과 의병을 모집하여 곽재우(郭再祐) 장군과 합세하여 왜적과 맞섰다.
영산전투에서 큰 공을 세우자 곽재우 장군이 천거하여 현풍현감(玄風縣監)이 되었다.
현감 재직 때는 많은 백성들이 따랐고, 선정(善政)을 베푸는 목민관으로 유명했다.
또한 정유재란 때는 창녕의 화왕산에서 곽재우의 조전장(助戰將)으로 활약하였다.
보성군수를 지냈으며 사후 병조판서를 증직받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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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TP-Lf3b2v-w?si=3gZ1kQjBgmahaA8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