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사에 감사하라는 것은... (데살로니가 전서 5:16-18)
다음 주일은 추수감사절이다. 새 생명 초청 잔치 행사도 하기 때문에 오늘 추수감사절에 대한 설교를 준비했다.
성경에서 추수감사절에 해당하는 절기는 초막절이다. 그 시기가 우리나라 추석 무렵이다. 연중에 심은 모든 것을 수확하고 지키는 절기이다.
요한복음 7장에 예수님이 초막절을 지켰다는 말씀이 있다.(요7:2) 이 말씀에 근거하여 우리도 초막절을 지킨다. 그것이 추수감사절이다. 초막절을 지킬 때에는 이스라엘이 40년간 지낸 광야 생활을 기억하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사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을 하늘에서 내린 만나를 먹이시고 반석을 깨뜨려 샘물을 마시게 하셨다. 낮에는 구름으로 봄에는 불로 더위와 추위를 막아주셨다. 광야에서 내린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그 은혜에 감사하는 절기가 초막절이다.
오늘의 말씀,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은 모든 상황 속에서 감사하라는 말씀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범사에 감사하고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말씀을 듣고 나를 살펴 감사하고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나간 날들을 돌아보면 좋은 일도 있었고 어려운 일도 있었다. 풍성할 때도 있고 가난할 때도 있었다. 건강할 때도 있고 병에 걸릴 때도 있었다. 이 여러 가지 상황에서 감사하라고 하셨다.
때로는 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지난 화요일 간증한 권사님, 쏠라이트라는 뮤지컬 극단을 가지고 있는 권사님은은 대학생 때에 삼풍백화점 공사장에서 20m아래로 떨어져 온 몸에 철근이 꽂히고 살 수 없다는 의사의 선고를 받았던 분이다.
그 어려운 상황에서 기도하고 하나님을 찾고 결국 나아서 큰 일을 하고 있다. 꽃다운 20대 초반에 사람이 당할 수 있는 가장 고통스런 일을 겪었지만 지나고 보니 하나님의 은혜요, 간증의 주인공이 되었다.
우리가 처한 모든 상황에서 감사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감사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믿음의 고백이다.
첫째, 무엇을 받았을 때 드리는 감사가 있다.
감사의 기본이다. 사람은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반응, 리액션, 호의에 대한 리액션 으로서의 감사이다. 리액션이 좋으면 상대방에게 호감을 얻고, 더 큰 호의를 받을 수 있다.
식당 주인에게 리액션을 잘하면 서비스를 더 받을 수 있다. 리액션은 사람을 기분좋게 한다.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살맛나게 한다.
지방 어떤 교회에 우리가 재정 지원을 했다. 그런데 반응이 없었다. 문자로 ‘감사합니다’ 라든지 전화로 감사합니다. 라든지.. 좀 이상했다. 그래서 다음에 누가 지방 어려운 교회 지원을 하려고 했을 때, 다른 교회를 도와주었다.
사람은 그 마음에 있는 것이 밖으로 나온다고 했다. 감사하다는 말은 마음에서 우러나야 한다. 감사한 마음이 있으면 표현해야 한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좋은 것들, 우리는 많은 것을 받아 누리고 산다. 생각해 보면 고마운데 생각을 안하는 것인지, 마음이 없는 것인지.. 영혼이 없는 것인지... 야고보서 2:26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했다.
감사하다는 말은 리액션, 반응, 응답이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셨구나 하는 반응, 이 때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이렇게 고백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감사하지 않을 때, 서운해 하시는 것 같다.
10명의 나병환자.. 한사람이 자기 몸이 나은 것을 보고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다. 예수님은 나머지 아홉은 어디 있느냐? 하셨다.
사실 우리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은혜를 받아 빚지고 살 때가 있다.
서울에서 목회하는 여자 목사님, 어느 날 전화가 왔다. ‘웬일이야. 전화를 했네?’ ‘응, 문득 생각이 났는데 고맙다고 말하려고?’ ‘뭐가 고마운데?’ ‘이것저것 다.. 항상 챙겨주시고 다정하게 대해 주시고..’ ‘뭘 그런 걸 가지고... ’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으니 고맙더라고.. 내가 이래봬도 어려운 사람들 꽤 챙겨 주었거든요. 그런데 물론 당시에 그냥 고맙다고 말하기는 했지. 그래도 한번씩 문득 생각나면 그 때 정말 고마웠다고 하면 더 좋지 않을까?
순천서 목회하는 동기 목사님이 단감을 보냈더라고... ‘뭘 이런 걸 다 보냈나? 암튼 고맙게 잘 먹겠다’ 했더니, 이 목사님이 ‘나는 우리 동기 중에 최목사님 같은 분이 있어서 너무 좋다고..’ 참 감사한 일이다.
누구에게 좋은 대접을 받았다.. 감사한 일이다. 잊지 않고 감사를 표현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받은 것, 우리가 누리는 것 생각보다 많다. 쌀 걱정, 양식 걱정 없이 사는 것 참 감사한 일.. 배우고 싶으면 다 공부할 수 있는 것, 참 감사한 일이다.
은혜를 받고 사랑을 받고 도움을 받고, 돈을 받고, 식사대접을 받고, 받고 드리는 감사는 감사의 기본이다. 일단 기본을 잘 해야 한다.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를 생각하면 감사할 수 밖에 없다. 감사의 영적 차원을 볼 수 있으면 큰 은혜가 있다. 예수를 믿게 된 것, 하나님의 은혜다. 감사한 일이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 하나님의 은혜다. 감사한 일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고, 그 구원은 이 세상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것이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끊임없는 하나님의 은혜와 풍성한 복을 받는 것, 그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한다.
둘째, 환난이나 고난을 겪으면서도 감사해야 한다.
환난을 당하고 드리는 감사. 고난을 겪으면서 드리는 감사. 일단 감사하고 보는 감사이다. 이것은 믿음으로 드리는 감사이다. 믿음으로 감사를 드리면 상황이 역전된다.
다니엘은 포로로 잡혀 갔던 땅에서 왕의 인정과 신임을 받아 총리가 되었다. 다니엘을 시기하는 사람들이 다니엘을 숙청 할 계획을 세웠고 다니엘은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이유로 사자굴에 던져지는 처벌을 받게 되었다. 다니엘은 이런 상황에서 그 하나님께 여전히 감사하였다고 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나? 다니엘을 모함하고 숙청하려던 음모가 탄로나고 오히려 다니엘의 적들이 사자굴에 던져져서 사자들의 밥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어려운 상황, 환난과 고난이 올 때도 일단 하나님께 감사하시기를 바란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려운 상황에 몰아넣으시는 것은 뭔가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믿음이다. 그러므로 고난 중에 드리는 감사는 믿음으로 드리는 감사이다.
살다보면 여러 가지 환난을 당한다. 사업이 부도가 날 수도 있고 실직을 할 수도 있습니다. 병에 걸리기도 하고 사고가 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믿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해야 한다.
로마서 5:3~4에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했다.
환난은 우리를 힘들게 하지만 즐거워하라. 이렇게 말씀했다. 왜냐하면 이 환난 후에 더 좋은 것을 주시기 때문이다.
제가 아는 장로님 한분은 서울에서 사업을 했는데 사업이 참 잘 되었다. 얼굴이 핸섬한데다 멋쟁이였다. 아주 잘 나가다가 어느 순간 부도를 맞고 길거리에 나앉게 되었다. 나이 40도 되지 않은 한창때에 알거지가 되었다.
오갈데 없는 이분을 어떤 전도사님이 ‘우리 교회에서 같이 살자’ 했다. 교회라고 갔더니 지하 1층에 방이라고는 형편없고 화장실 냄새가 방으로 다 들어왔다. 그 지하 1층 개척교회에서 화장실 냄새를 맡으며 목사님 가족과 함께 살았다.
교회에 사니까 억지로 새벽기도회에 참석했다. 교회에 성도가 없으니까 재정부 일을 맡겼다. 아직도 담배를 끊지 못해서 담배를 꼬나물고 재정을 봤다.
억지 새벽기도회 참석했고 억지로 기도하다가 그러다가 은혜를 받았다. 어느날 어린 아이가 말문이 열리듯이 기도문이 열렸다. 말씀이 귀에 들어왔다. 집사가 되고 권사가 되고 장로가 되었는데, 내가 감리사 할 때 지방 사회평신도부 총무였다.
아주 스마트하고 젠틀한 분이었다. 담임 목사님의 오른팔이 되어 교회를 잘 섬겼는데 하나님이 사업도 회복시켜 주셨다.
아마 이분이 그냥 사업이 잘 되었다면 예수님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 잘생긴 얼굴에 멋있는 모습에 여자들이 그냥 두었겠나? 당시에는 몰랐지만 그 강장로님은 부도맞은 것이 축복이 되었다.
저 같은 사람도 죽을 폐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이렇게 주의 종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죽을병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병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가 당하는 환난은 즐거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성도는 환난 중에도 즐거워한다고 했다. 왜냐하면 환난이 우리에게 희망으로 들어가는 축복의 문이 되기 때문이다.
요셉이 애굽에 팔려가지 않았다면 애굽 총리가 되었겠는가? 다니엘이 나라가 망해 포로로 끌려가지 않았다면 어찌 바벨론의 총리가 되었겠는가? 여러분 염려되는 일이 있으면 일단 하나님께 감사하시고 기도하시기 바란다.
셋째, 하나님께 귀한 것을 드리며 하는 감사가 있다.
행동으로 실천하는 감사이다. 은혜를 입었다면 말이 아니라 뭔가를 드리면서 감사합니다. 이래야 하지 않겠는가? 그냥 입술로만 하는 감사가 아니라, 마음으로만 하는 감사가 아니라 귀한 것을 드리며 하는 감사이다.
요한복은 12장에 보면 어떤 잔치가 있는데, 죽었던 나사로가 다시 살아난 것을 축하하고 예수님을 모시고 식사대접을 한 것을 보면 감사하는 잔치이기도 했다.
그 잔치자리에 나사로의 누이동생 마리아가 나타나서 순전한 나드 향유의 병을 깨고 예수님의 몸에 부어 드렸다. 당시의 관습에 귀한 사람에 대한 최대의 존경의 표시로 향유를 부었다.
향유 냄새가 온 방에 가득하고 누가 그 비싼 향유를 아낌없이 부은 마리아를 비난하는 소리가 있었다. 이 비싼 향유를 팔아서 가난한 사람을 도왔으면 좋았을 건데 비싼 향유를 허비한 것 같다고 했다.
이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가만 두어라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다.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이 여인의 아름다운 행동을 기억 할 것이다.’ 이 여인 마리아는 예수님에게 가장 좋은 대접을 한 사람이다.
마리아는 예수님이 오라버니 나사로를 살려 주신 것에 대하여 어떤 것을 드려도 아깝지를 않았다. 무엇으로 생명을 살 수 있겠는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몸에 부어 드렸던 것이다. 마리아의 행동에 대하여 주님은 기꺼이 그것을 받으셨고 칭찬하셨던 것이다.
마태복은 26장 17-29절에 보면 최후의 만찬이 나온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기 전날 밤, 예수님의 제자들과 마가의 다락방에서 최후의 만찬을 드셨다. 식사 중에 예수님이 떡을 가지시고 감사기도를 드리신 후 ‘받아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다..’ 식후에 또 포도주 잔을 드시고 ‘받아 마셔라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다.’
예수님은 당신의 몸을 유월절 어린양으로 바치시면서 당신의 생명을 우리를 위하여 주시면서 감사기도를 드리셨다. 예수님의 기도는 당신의 생명을 내어 주시며 드린 감사기도이다. 자신을 바치며 드린 감사이다. 이것이 최고의 감사이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께 바치며 감사 할 수 있을까? 마리아가 주님의 몸에 향유를 붓는 것처럼, 내가 주님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내가 바칠 향유는 무엇일까?
우리가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자신이 봉사할 때, 감사합니다. 하는 고백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일꾼으로 사용되는 것에 감사하는 것이다. 주여 나를 목사로 사용하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도 주여 나를 주님의 일꾼으로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를 차량 운전으로 나를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를 교회 청소에 사용하심을 감사합니다.
나를 교회학교 교사로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레바논 선교 몇 년을 해도 열매가 없었다는 마라나타 선교사.. 교회학교 교사들도 낙심하지 말고 버텨내시기를 바란다.
이런 감사가 필요하다. 나같이 부족한 것을 성가대로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 주일에 지방의 어떤 교회에서 나이 80된 권사님이 성가대에서 은퇴를 했다고 한다. 평생을 성가대로 봉사했는데, 이제 나이가 들어 성가대를 그만 하기로... 얼마나 감사한지...
80평생 하나님을 찬양하는 선한 도구로 사용해 주신 것 감사한 일이다. 좋은 목소리를 주신 것도 감사하고, 악보를 볼 수 있는 재능을 주신 것도 감사한 일이다.
나를 기도의 제물로 바치며 감사하시기 바란다. 만민교회는 내가 지킨다는 영혼의 파숫꾼이다. 나를 전도의 제물로 바치며 감사하시기 바란다. 나에게 주님의 몸인 교회를 섬길 수 있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드리는 것, 바치는 것 자체가 감사하는 것이다. 말없이 묵묵히 십일조 하고 감사헌금하고 선교헌금하고 교회 성물 위해 헌금하고, 교회 수리 헌금하신 여러분도 마리아와 같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보고 계시고 반드시 갚아 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