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범죄자 중 하나로
요절 :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사53:12)
예수께서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으신, 이 놀라운 겸비(謙卑, 비천하게 되심)는 많은 유력한 이유에 의하여 정당화되고 있습니다. 즉 그러한 겸비한 인격으로(in such a character), 주님은 더욱 죄인들의 대변자(변호자)가 되실 수 있었습니다. 공적인 재판(공판)에서는 소송의뢰인과 의뢰를 받은 변호사는 동일성을 갖고 있습니다.(즉 그 변호사와 그 의뢰인은 같은 편으로서 동일시됩니다. 그 변호사의 주장이, 바로 그 의뢰인의 주장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이치로 죄인이 심판의 법정에 소환되었을 때 그곳에 예수님이 그 모습(그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왜냐하면 그 고소 사건(우리의 범죄들)에 대한 답변(변호)을 위하여 서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자신이 대변(대리하여)하고 있는 죄인의 어떤 죄도 다 가져와서 십자가에서 찔린 그의 옆구리와 그의 두 손과 그의 발을 가르키며(보이며) 의로움(justice)을 도전(주장)하십니다.(즉 그 죄인의 죄는 예수님의 피로 다 지워지고 그 죄인은 죄없는, 의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주장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흘리신 피를 당당하게 내세워 주심으로 해서 재판관(심판관)은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이 사람들의 가는 것을 용납하라.(역자주1) 그들이 지옥에 떨어지지 않도록 구원하라 왜냐하면 그가(예수님) 속죄금을 지불했기 때문이다."라고.(원문의 'found'는, 공급, 또는 지불의 뜻임)
우리 주 예수님은 죄인들의 마음을 주님께로 이끄시기 위하여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습니다.(사53:12) 우리와 똑 같은 죄인의 명단에 쓰여진(기록된)분을 누가 두려워 하겠습니까?(즉 예수님은 우리 죄인의 친구가 되셨음으로) 확실히 말하거니와 우리는 담대히 주님께 나아가서 우리의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와 함께 헤아림을 입은 분은 우리를 정죄할 수 없습니다.(오히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스스로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으신 분입니다.)
본래 우리는 죄인이지만, 주님은 거룩하십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의 이름을 거룩한 자들의 명부에서 이 검은 고소장(심판 받을 죄인의 명부)으로 옮기시고, 우리(죄인)의 이름들은 그 고소장에서 빼내어서 용납의 명단(하나님의 양자의 명부)에 기록하셨습니다. 예수님과 그의 백성사이에 이루어진 완전한 이체(移替)가 또 있습니다. 즉 우리의 죄와 비참이란 모든 재산을 예수님이 취하시고, 예수님의 모든 소유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예수님의 것과 우리의 것을 완전히 바꾸어 주셨습니다.) 믿는 자여, 그대가 범죄자들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은 주님과 연합(하나)되었음을 기뻐하십시오. 주안에서
분명히 새로운 피조물이 된 자들의 하나로 헤아림을 받음으로써(역자주2) 그대가 진실로 구원 받았다는 것을 입증하십시오.
첫댓글 그리스도의 낮아짐과 죽으심은 우리의 죄를 그리스도께 전가하고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에게 전가하셨습니다. 이렇게 의롭다 함을 받은 자들은 칭의의 결과로 성화의 삶을 살아 나아가게 됩니다. 이것을 묵상에 스펄전이 잘 녹여 넣었습니다.
네, 공감합니다.
시30:6 내가 형통할 때에 말하기를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하였도다
시30:10-12 여호와여 들으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를 돕는 자가 되소서 하였나이다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이는 잠잠하지 아니하고 내 영광으로 주를 찬송하게 하심이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원히 감사하리이다
아멘!
아멘!
아멘22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죄인들을 대신하여 형벌을 받으신 것이므로, 실은 우리가 나무에 달리고 손에 못이 박히고 옆구리에 창에 찔려 피를 흘려야 했습니다. 흉악한 사형수로서 우리가 처형되는 모습을 그리스도의 처형 장면과 겹쳐서 보니 고통과 처참함이 생생해집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사형수였습니다. 그런데 나를 대신하여 주님이 죽어주셨고 새생명을 주셨으니 이것이 웬 은혜란 말입니까, 웬 사랑이란 말입니까...
네, 그 대속의 은혜에 깊이 감사합니다.
매우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