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문> 쉬운 성경 시편 139편 13 - 24절
13 주께서 나의 가장 깊은 곳을 지으셨으며, 나의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를 만드셨습니다.
14 내가 주를 찬양합니다. 이는 내가 신기하고 놀랍게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하신 일들은 놀랍습니다. 나는 그것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15 내 몸은 주께로부터 피하여 숨을 수 없습니다. 이는 내가 은밀한 곳에서 만들어질 때에 그러했습니다. 내가 땅의 깊은 곳에서 만들어졌을 때,
16 주의 눈이 아직 형태를 갖추지 않은 내 몸을 보셨습니다. 내게 정해진 모든 날들이 주의 책 속에 기록되었습니다. 이 날들의 하루가 시작되기 전에 이미 기록되었습니다.
17 오 하나님, 주의 생각들이 내게 얼마나 소중한지요!
18 만일 내가 그것들을 셀 수 있다면, 아마 모래알의 숫자보다 더 많을 것입니다. 내가 잠에서 깰 때도, 나는 여전히 주와 함께 있습니다.
19 오 하나님, 주님은 반드시 악한 자들을 죽이실 것입니다. 피에 굶주린 사람들이여, 내게서 떠나십시오!
20 그들은 악한 의도로 주에 대해 말합니다. 주의 원수들이 주의 이름을 욕합니다.
21 여호와여, 주를 미워하는 자들을 내가 어찌 미워하지 않으며, 주께 대항하는 자들을 내가 어찌 싫어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22 내게는 그들에 대한 미움만이 있을 뿐입니다. 나는 그들을 나의 원수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23 오 하나님, 나를 살피시고 나의 마음을 알아주소서. 나를 시험하시고 나의 뜻을 살펴 주소서.
24 혹시 내 안에 무슨 악한 길이 있는지를 살피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해 주소서.
<묵 상>
본문은 모든 것을 아시고, 어디에나 계시고, 인간을 창조하시고, 모든 것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학적 내용이 다윗의 신앙고백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풍성한 신앙고백이 가능했던 이유는 다윗에게 하나님에 대한 깊은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에 대하여 알고 싶어 집니다. 그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집니다. 이처럼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했기에 늘 하나님을 알고자 묵상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 다윗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날로 더해가며 더 깊은 신뢰와 관계로 성장해 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하나님에 대한 깊은 사랑이, 하나님에 대한 깊은 지식으로 자라고 그것이 우리의 온전하고, 성숙한 신앙고백으로 바뀌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1. 인간의 창조에 대한 신기함과 놀라움(13-16)
"주께서 나의 가장 깊은 곳을 지으셨으며, 나의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를 만드셨습니다. 내가 주를 찬양합니다. 이는 내가 신기하고 놀랍게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하신 일들은 놀랍습니다. 나는 그것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13-14절) 다윗은 인간 창조의 기이함에 대하여 고백합니다. 여기서 '가장 깊은 곳'은 히브리어로 '마음, 신장'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의 깊은 곳을 의미합니다. '만드셨다'는 단어는 '직조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어머니 몸을 베틀 삼아 자신의 몸과 마음의 깊은 곳까지 직조하셨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모를 베틀 삼아 사람을 창조하셨음을 알려줍니다. 다윗은 자신을 신비한 방법으로 창조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내 몸은 주께로부터 피하여 숨을 수 없습니다. 이는 내가 은밀한 곳에서 만들어질 때에 그러했습니다. 내가 땅의 깊은 곳에서 만들어졌을 때, 주의 눈이 아직 형태를 갖추지 않은 내 몸을 보셨습니다. 내게 정해진 모든 날들이 주의 책 속에 기록되었습니다. 이 날들의 하루가 시작되기 전에 이미 기록되었습니다."(15-16절) 여기서 ‘은밀한 데’와 ‘땅의 깊은 곳’이란 보이지 않는 어머니의 자궁을 의미합니다. 초음파도 없던 당시 육안으로 볼 수 없던 어머니의 뱃속도 하나님 앞에서는 비밀의 장소가 될 수 없음을 이야기합니다. 또한 자신이 태어나 하루를 살기도 전에 이미 하나님은 다윗의 삶 전체를 꿰뚫고 바라보고 계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시편 139편 앞부분에는 하나님의 편재하심을 고백하며 장소의 제한을 받지 않는 분이심을 고백했습니다. 여기서는 모든 시간을 꿰뚫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모두 자신의 목전에 두고 계시는 하나님의 영원성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시간을 초월해 계십니다. 처음과 마지막, 시작과 마침이 되시고 시간의 주인이 되십니다. 다윗은 그런 하나님의 영원성을 묵상하며 자신의 출생과 죽음이 모두 시간의 주인 되신 하나님 앞에 놓여있음을 겸손히 고백하고 있습니다.
2.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신뢰(17-24)
"오 하나님, 주의 생각들이 내게 얼마나 소중한지요! 만일 내가 그것들을 셀 수 있다면, 아마 모래알의 숫자보다 더 많을 것입니다. 내가 잠에서 깰 때도, 나는 여전히 주와 함께 있습니다."(17-18절) '생각들'이란 '계획'을 의미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너무나 소중하다고 찬양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 계획하심이 너무 많아서 감히 셀 수 없고, 측량할 수도 없다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고귀한 생각을 세어 보려 해도 마치 모래알을 세는 것보다 더 많아서 불가능하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고귀한 생각들을 세다가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깨었을 때에도 여전히 셀 수 없을 정도라고 찬양합니다.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사 55:9)
"오 하나님, 주님은 반드시 악한 자들을 죽이실 것입니다. 피에 굶주린 사람들이여, 내게서 떠나십시오! 그들은 악한 의도로 주에 대해 말합니다. 주의 원수들이 주의 이름을 욕합니다."(19-20절) 다윗은 하나님의 통치하심 속에 악인들에 대한 심판이 엄밀하게 이루어질 것을 신뢰하고 있습니다. ‘악한 자들’은 '불경건하고 교만한 죄인들'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에게도 악을 저지르는 것을 서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여 주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자들입니다.
"여호와여, 주를 미워하는 자들을 내가 어찌 미워하지 않으며, 주께 대항하는 자들을 내가 어찌 싫어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내게는 그들에 대한 미움만이 있을 뿐입니다. 나는 그들을 나의 원수로 생각하고 있습니다."(21-22절) 다윗은 악한 자들을 보며 하나님의 편에 서서 분노를 표출하고 있습니다. 골리앗이 여호와의 군대를 향해 조롱할 때에 이스라엘 왕과 군대는 침묵했습니다. 도리어 골리앗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그 앞에서 도망쳤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골리앗을 향하여 의분을 일으켰습니다.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느냐고 소리쳤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조롱당했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사랑하는 하나님과 그 백성이 조롱당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치 부모님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자신의 부모님을 욕할 때 느끼는 감정과도 같습니다. 다윗은 골리앗의 말을 들었을 때 치욕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 그를 제거하고자 하였습니다. 똑같은 말을 들었는데 왜 이렇게 반응이 다른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의 차이입니다. 다윗은 부모 이상으로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원수가 곧 자신의 원수라고 고백합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내 원수의 원수가 되어 달라고 요청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원수를 자신의 원수로 삼고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들을 미워하였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오 하나님, 나를 살피시고 나의 마음을 알아주소서. 나를 시험하시고 나의 뜻을 살펴 주소서. 혹시 내 안에 무슨 악한 길이 있는지를 살피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해 주소서."(23-24절) 이 고백에서 다윗의 용기를 봅니다. 하나님께 내 마음과 뜻을 살펴달라고 고백합니다. 강도의 소굴 같은 마음을 깨끗하게 할 용기가 없으면 불가능한 고백입니다. 다윗은 개인의 욕망을 위해 원수를 무찔러달라는 기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원수들에 대하여 하나님 편에서 간구하고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 부분에 있어 얼마나 철저했는지 모릅니다. 감정적으로 한 칼에 없애고 싶은 사울 왕도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자이기에 거역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감정을 누르고 참아 냅니다. 결코 자신의 감정과 원한에 따른 복수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자신을 살펴달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해 달라’고 고백하며 노래를 마무리합니다. 여기서 ‘영원한 길’은 ‘하나님과 함께 걷는 길’을 의미합니다. 곧 주님가 함께 동행하는 길을 걷고 싶은 것입니다. 욕망의 길, 성공의 길로 인도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길로 인도해 달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인간이 만든 욕망의 길이 아닌 하나님의 길이 영원한 생명의 길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기도>
창조의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의 섭리를 보이시고, 다양한 계획과 좋은 생각들로 나를 인도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 욕망의 파도가 불어와 중심을 지키기 쉽지 않기에 나의 마음을 지켜 주옵소서. 날마다 주님의 말씀으로 마음을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정직함과 성실함이 위협을 당하고, 진리와 거짓이 불분명한 이 세상 속에서 믿음을 지켜 걸어갈 용기를 더하여 주옵소서. 나의 힘과 의지가 아니라 오직 주님으로 인하여 승리하게 하옵소서. 어디서 무얼 하든지 시공간을 초월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나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과 생각들을 미처 깨닫지 못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고귀하신 뜻이 나를 통하여 반드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들 속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감으로 찾아오는 불편함을 이겨낼 수 있는 용기가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