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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 한국사 세종시 원삼국~고구려 시기 유적 현황
마법의활 추천 1 조회 288 23.09.17 18:53 댓글 13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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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3.09.17 19:58

    첫댓글 한국사판 남북조의 대립..

    북조는 남조의 멸망을 위해 노력하였지만 결국 실패하였죠.

    결국 꿈을 이룬 것은 후대의 왕씨들이 이루네요

  • 작성자 23.09.17 21:22

    남한 일대가 일치단결하면 겨얼코 북방에 위치한 세력이 함락하기 쉽지 않습니다. 이후 후삼국 시기 외에 한반도에 독립 세력이 자리잡지 못하는 건 한반도 지형이 문제가 아니라 삼국의 정체성이 고려 정체성, 더 나아가서는 조선 정체성으로 통합되기 때문입니다. 그 한성백제도 끝내 꼴랑 경기충청전라 한반도 1/4 되는 지역도 직접지배화에 실패했는데, 한반도에 독립 세력이 자리잡지 못한다는 건 잘못된 편견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생산력 발달 운운도 잘못된 것으로, 신라는 겨얼코 당나라 힘 없이는 사비백제를 통합할 수가 없었습니다.

  • 23.09.17 21:05

    박제상 이야기처럼 고구려가 가야를 정벌하고 남해 일대에 일종의 조자치 혹은 영토를 가지고 있다는 학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작성자 23.09.18 10:04

    미친 소리입니다. 삼국사기 원문만 들이파는 돌대가리들이 간혹 그따위 소리나 하는데 저언혀 고고학적으로 근거가 없습니다. 그런 일 벌어지면 백제는 아마 자진 항복했을 겁니다. 제대로 된 연구서는 하나도 안 보고 원문만 들여다보고 지멋대로 학설 싸질러대는 놈들 진짜 문제네요. 어휴......

  • 23.09.18 12:01

    검은색으로 표시한 곳이 장밧뜰(?) 정도로 부르던 동네 뒷산이었던 것 같은데, 거기에 백제시대 산성이 있었나보네요.
    저기서 금강변쪽은 길이 없어서 배로 공격할게 아니면 웅진성으로 가기 힘들었을거고, 결국 지금의 36번 국도변의 고갯길들을 넘어가야 하는데, 거기에 매복하기 좋은 장소들도 많아서 어쩌면 그곳에 백제가 산성이나 요새를 빽빽하게 설치해서 방어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리고, 새롬동쪽 백제유적지가 우리동네이고 그 아래는 송원리인데, 백제시대 혹은 그 이전에도 사람들이 살았을 가능성이 충분한 지형들이긴 합니다.
    또, 어렸을때는 잘몰랐는데, 우리집 옆의 개울을 건널때 사용하던 커다란 반구형 돌이 어쩌면 고인돌 상판이고 그 옆에 있었던 돌들이 하판이지 않았을까 생각이 드네요.

  • 작성자 23.09.18 10:31

    고구려 군사령부 소재지기도 했습니다. 백제군이 쓰던걸 재활용했더군요. 음....그렇게 우주 방어했다면 가까운데도 못 뚫은 게 이해는 되네요. 다만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영 좀 그렇긴 합니다 ;;

  • 23.09.18 12:35

    @마법의활 저기가 조치원쪽에서 넘어오는 고갯길 (구1번국도)에서 2km 이상 떨어져있는 곳이다보니, 그쪽에 있는 요새나 성곽을 점령하고 병력을 주둔하지않으면 고립될 가능성도 컸을 것 같아 저기까지는 못오지 않았을까 하는데, 거기까지 뚫고들어와 장기주둔했다는건 정말 의외네요.
    물론, 그쪽말고 금강변쪽에 요새를 쌓아 수로로 보급할 수도 있긴하겠지만, 어쨌거나 양쪽 루트 모두 반격받으면 고립되기 쉬운 포켓지역이니깐요.

  • 23.09.18 13:53

    @jyni 지도를 보고 생각해보니깐, 답파니고개 (윗 지도의 36번국도 서쪽끝)쪽 라인을 고구려가 점령해서 목책 등으로 요새화했으면 장밧뜰에 위치한 산성 겸 주둔지를 안정적으로 방어할 수 있었을 것 같네요.
    그러면 백제군은 대교천 건너편 도계리쪽을 최전선 삼아 방어할 수 밖에 없었을 것 같구요.

  • 작성자 23.09.19 17:42

    @jyni 일단 저 시기에 청주-조치원-저 축선까지는 확실히 고구려 영역입니다. 저 고구려군사령부에서 부강면까지는 확실히 고구려 영역이었습니다 .일명 남성골산성이 부강면에 있거든요. 한편 유성구 포함한 서대전은 백제가 어떻게든 지키고 있는데 동대전은 홀라당 넘어간 상황. 생각해보면 오늘날 세종-대전 BRT 노선 지나는 데는 다 고구려 땅이었다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딱 동대전으로 들어가거든요. 신라가 백제에게서 넘겨받은 보은 삼년산성을 기점으로 날카로운 반격을 가하면서 동쪽에서 고구려를 압박해주지 않았다면 진짜 백제가 망했을 것 같습니다. 신라 또한 월평동까진 못 왔지만 고구려에게서 대전 일대를 빼앗아 대전 동쪽 변두리까진 먹은 게 충공깽 ;;

  • 23.09.19 20:54

    @마법의활 그쪽까지 내려온건 예전에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저렇게 여러 방면으로 알박기를 하면 주둔병력이 너무 많이 필요하고 병력분산에 따른 취약점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신라의 뒤치기식 반격에 쉽게 무너졌던 것 같기도 하구요.

    그리고, 저 백제산성에서 금강쪽으로 이어진 산줄기가 주위보다 높은 고지대이고 나루 역할을 할 수 있는 지점과 연결되기 때문에, 목책이나 보루 등으로 방어시설을 연결해서 주변 금강의 수운을 통제하려던 거점으로 건설한 것으로 보입니다.
    저 산성의 동쪽 평야지대가 제방을 쌓기 전에는 금강이 범람하던 지역이다보니, 산성이 고립되기 쉽고 웅진성 공략에도 직접적인 역할을 하기는 어려워 보이기 때문에, 웅진성을 공격하고 백제의 반격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답파니 고개쪽에 산성이나 보루 등을 쌓고 상당수의 병력을 주둔했을 것 같습니다.

  • 23.09.18 12:52

    수도 앞에 두고 어떻게 참았지. 이걸 참네

  • 23.09.21 01:12

    근데 사실 지금도 서울은 휴전선에서 25킬로미터(북한 개풍군 최남동단~강서구 최서단 기준)에서 38킬로미터(북한 개풍군 최남동단~서울시청 기준) 정도랍니다(...)

  • 작성자 23.09.21 07:57

    @Alyosha 그래도 10~20KM 보다는 야악간 여유는 있죠.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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