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진주만> 속에 숨은 ‘미국의 음모’
제2차 세계대전 때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고립주의적 국민정서로
인해 어려움이 많았다. 영국이 독일 공습에 초토화되고 독일의 유대인 학살이 계속되자 루스벨트는 미국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문 제는 개입 명분이었다. 그래서 루스벨트 대통령이 2차대전 참여의
명 분을 찾기 위해 일본의 진주만 공격을 알면서도 기다렸고, 더 나아가 서 이를 유도했다는 것이 소위 ‘음모론’의 핵심이다.
피츠버그대 도널드 골드스타인(Donald Goldstein) 교수는 “루스벨트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은 전쟁에 개입하기 위해 재난이 필요했다”며
“그것도 작은 피해가 아니라 큰 피해가 필요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평온한 일요일 아침의 대공습으로 2,433명의 미국인이 죽고 많은
군함 과 비행기가 박살난 일본의 진주만 공격은 큰 피해라고 할 수 있다. 해군 출신 언론인 로버트 스틴네트(Robert Stinnet)는 많은 비공개 자 료와 인터뷰를 인용한 그의 저서 <거짓의 날(Day of Deceit)>에서 루 스벨트 대통령과 참모들이 공습 전 하와이 주변 해상 정찰을 중지시 켜 일본의 대규모 공격을 유도했다고 쓰고 있다.
태평양을 사이에 둔 미·일 양국은 전쟁이 있은 지 60년이 지난 오늘
날 세계 1·2강대국이 되어 21세기를 맞고 있다. 그런데 최근 다시 진
주만과 관련 또다른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다. 이번에는 미국의 월트디 즈니가 만들어 지난 5월 25일 개봉한 영화 〈진주만〉이 흥행에 관계 없이 미국인들의 애국심을 고취시키기 위한 프로젝트라는 것이다. 이 런 음모론이 작용했는지 영화는 개봉 첫 주 흥행
실적 1위를 기록했 다.
미국은 소련 붕괴 이후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패권국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이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최근 구체화하고 있는 것이 적으로
부터의 미사일에 대한 방어, 즉 MD체제이다. 그러나 여건이 호의적이 지만은 않다. 지난 5월 제퍼즈 상원의원의 공화당 탈당으로 상원의
통 제권이 민주당으로 넘어갔고 우호적인 것으로 기대했던 NATO의
반응 또한 신통치 않다.
이보다 중요한 것은 미국 국민의 반응이다. 탈냉전 시대의 미국인은
이제 적이 사라진 마당에 무슨 미사일 방어냐고 정부에 대해 반문하
고 있다. 그들은 오히려 그 돈을 의료보험과 교육에 더 할당하라고 요
구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개봉된 〈진주만〉은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어설프다는
혹평에도 불구하고 미국인의 애국심을 부추기는 데는 일단 성공한 것
으로 평가됐다. 주부가 빨래를 널고 아이들이 야구를 하는 한가한 일
요일의 공습 장면은 미국인의 감정을 한껏 자극했다. 일본계 시민연맹 (JACL)이 “반아시아 감정을 부추길 수 있다”는 성명을 발표하고
친MD 주창자인 안보정책연구센터(CSP)의 가프니 프랭크 소장이 “영화 상영 중 MD 배치를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을 정도다. 이쯤 에서 이미 ‘진주만 음모론’의 실체가 느껴질 만하다.
도덕적 기준에 치우치는 음모론으로 냉엄한 현실을 보는 것은 적합하
지 않다. 진주만 공격은 전쟁 종반을 맞이한 일본의 어쩔 수 없는 선
택이고, 영화 〈진주만〉은 ‘실리우드’(실리콘 밸리+할리우드)라는
미국의 문화적 패턴의 확산으로 보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다만 〈진주만〉을 보면서 당혹스러웠던 점은 우리의 위치에 대한 인
식 문제였다. ‘미개한 아시아인들을 개조’하려던 일본 군국주의에
동조하여 미국 전함의 침몰에 환호를 보낼 수도 없고, ‘미개한 황인
종’에게 영토를 유린당하자 반격으로 일본을 대대적으로 공습하는
복수 장면에 박수를 보낼 수도 없었다.
진주만 공격이나 MD 배치는 음모이론을 넘어서 힘을 추구하고 힘이
부딪히는 국제정치의 현상이다. 우리는 국가 이익을 위하여 얼마나
단 합된 정신으로 어떤 전략을 세우고 있는가. 영화 〈진주만〉의 포성은 우리에게 묻고 있다. “당신들은 그때 무엇을 하였으며 지금은
무엇을 하는가?”
〈김정열/조지 메이슨대 객원연구원 kimjy21@simman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