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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쳐진 내 영혼을 기다려라
영어교육과 4학년
고주영
비박이 오래다. 분명
잘 올라가고 있다고 자신했는데, 모르는 사이 단 한 걸음조차 내딛을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러, 결국 멈춰 서버렸다. 몸을 편히 뉘자고 멈췄다 하기엔, 머물기만 할 뿐 비바람도 불고, 번개도 쳐 더 고단하기만 하다. 그렇다고 산사람이 되겠다 한 순간 마음을 고쳐먹은 것도 아니다. 오히려
목표는 선명히 정상이어서, 내가 머무르고 있는 사이 다른 이가 앞서기 시작하는 꼴이 가장 보기 싫게
느껴진다. 그런데도 여전히 난 그 한 발자국이 내딛어 지지가 않는다.
난 영어 중등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벌써부터
비스무리한 말 뭉텅이가 뭉텅 뭉텅 들려오는 것 같다. ‘그럼 그렇지.
그 시기엔 다 그래,’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공부하는 게 뭐 쉬운 일인 줄 아니?’ 등등. 앉아서
공부한다는 원래 별의 별 생각이 다 드는 일인 줄은 인정한다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의 오랜 비박을 이 시험 하나에만 귀인 하는 거는 좀 억울한 일이다. 그 것만으로 내 온 몸을 덮어버린 공허함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단 말 인가.
나를 나름 잘 알고 지낸 사람이, 조금은 어이가 없다는 투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도대체
네가 열심히 안 하는 일이 있긴 하니?” 처음 대학생이 되었을 때, 난
입시에 실패했다는 마음을 어떻게든 달래보려 그 누구보다 열심히 학교를 다녔다. 학점관리는 물론이고, 혹시 학과에만 인맥이 함몰될까 싶어 사대에서는 흔치 않게 동아리 활동도 했다.
고학년이 되면 하고 싶은 일을 하기가 힘들다고 하길래, 2학년 때 벌써부터 해외 인턴십을
다녀왔고, 3학년 때엔 한 시민단체에서 청년팀장으로 일을 했다. 작년에는
광화문 인문학 과정, 워싱턴 펠로우십 프로그램을 지원해주는 아산서원원생으로 선발되어 1년동안 휴학도 했다. 객관적으로 보나 주관적으로 보나 이보다 더 알찬
대학생활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내가 몇 달 째, 주저앉았다.
생각해보면, 난 늘
위를 바라보고 살았다. 초중고 학창시절 가정의 경제형편이 좋지 않았을 때엔, 얼른 어른이 되어서 성공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정하기 힘들다는
장래희망도 난 진작에 정했다. ‘선생님이 되어야지.’ 나름
지고지순한 꿈이라고, 나의 내러티브를 그 꿈이 더욱 드라마틱하게 그려질 수 있는 재료로서 하나하나 끼워
맞추는 게 나름 기쁨이라면 기쁨이었다. 요컨대 나의 우선순위는 항상 미래의 일이었다. 잠깐 멈칫할만한 거리는 무시하고 살았다. 그러나 아직 다다르지도
않은 정상을 바라보는 일은 점점 막막함에 익숙해져 가는 일이기도 했다.
동시에 난 밑에 두고 온 것,
실패했던 경험 등을 교차하며 기억에 소환시켰다. 밑에 두고 온 것엔 서툰 감정의 산물들이
많았다. 가령, 좋아했던 사람에게 더 진심을 담지 못해, 그 인연이 아무런 인연이 아닌 것처럼 만들었던 일. 또, 가장 마지막 순간에 아이처럼 투정을 부려, 아름다운 마무리이지 않게
내가 망쳐버렸던 일들. 그리 기분 좋지 않은 장면을 무한 반복시키며 몸은 위를 향하면서도, 정신의 한 쪽은 내내 아래를 서성였다. 아예 없었던 일처럼, 잘라내 버리겠다고 하다가도, 그게 도무지 될 것 같지 않으면 맘껏
속상해하다 털어버리겠다고 심심치 않게 변덕을 부렸다.
여느 날과도 같았던 오늘, 과제를
하러 읽었던 책 머리말에서 코 끝을 시큰하게 하는 한구절을 만났다. ‘뒤쳐진 너의 영혼을 기다려라.’ 꼭 나에게 전하는 말 같았다.
생각해보면 나의 ‘열심히’는 유예 같은 것이었다. 진짜를 잘 모르겠어서, 우선 열심히 해놓고라도 보자는 식이었다. 그런데 그저 ‘열심히’란 덕목으로 인생을 살아가기에, ‘열심히’는 또 다른 ‘열심히’를 낳을 뿐, 공허함을 줄여주진 않았다. 그런 나에게 이 구절은 이런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기다리라고. 불일치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살다가 그 어느 삶 속에도 속하지 못할 것이라면, 충분히 기다리다가 너 자신을 먼저 만나라고. 적어도 내가 밟아온
그 발자국이 그 누구도 아니고, 바로, 내가 밟아왔던 길임을
실감할 수 있도록.
어쩌면 ‘철학 하는
삶’이란 불일치한 삶을 인지하고, 기꺼이 멈춰, 기다리는 삶을 사는 것 인줄도 모르겠다. 내 삶의 불균형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살아갈 수도 있지만, 분명 내 부재한 영혼을 어떤 식으로든 알아챌 것이기에, 난 의무적으로 철학을 하고 살아가야 하리라. 또, 무의식을 깨어 진짜 제대로 마주보았을 때야만, 난 정말 정상에 다다를
힘을 얻을 것이다. 비록 지금은 비박 중이지만, 이 비박이
필연의 기간이라면, 언젠가 난 그와 분명 만나 함께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또 한 가지, 왠지 모를 확신이 든다. 한 발자국이기만 한다면, 한 동안은 오래 걸어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 말이다.
첫댓글 실습 잘 다녀왔지요? 메일로도 확인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