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神)들의 마을로 간 봄꽃 나들이
1. 사랑을 나누자, 벚꽃이여
일본 헤이안(平安) 시대(794-1185) 중기 아키타현(秋田県) 출신으로, 황진이와 비교될 정도의 재색을 겸비한 여류시인 오노노 코마치(小野小町)는 9세기 일본의 와카 문학(和歌文學)을 발전시킨 여섯 명의 선구자인 육가선(六歌仙)의 한 사람으로 선정될 만큼 시가(詩歌)에 출중할 뿐 아니라, 일본에서는 세계 3대 미인으로 꼽힌다고 한다. 그녀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육가선(六歌仙) 9번의 시는 이러하다.
“벚꽃색이 바래졌구나
덧없이, 봄비 내리는 사이에”
이시는 중의적으로도 해석되어 자신의 늙음을 한탄하는 자조적인 모습으로도 읽힌다.
“내 얼굴색이 바래졌구나
사랑과 세상일을 고민하는 사이에”
이 시가 서양으로 번역되어 전해지자,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그의 「일본기행」에서 이와 비슷한 내용의 시를 소개하였다.
“꽃피는 벚나무
삶을 그리도 닮았구나
꽃피는 것을 보는 순간
어느새 지는구나.”
“꽃의 색깔이 바래어 버렸어.
그것을 감탄하는 순간에
허무하게도 그만
이승을 지나가는 나의 신세”
여기에 그치지 않고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일본 승려들의 가사도 소개하고 있다. 구도에 여념이 없는 승려들의 마음에도, 봄날에 피어오른 그 꽃을 보면, 문득 속세(俗世)에서 품었던 아름다운 기억이 되살아날지도 모른다. 그래서 꽃들에나마 그 아련한 심정을 나눌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사랑하고 싶네
사랑하고 싶네
산에 핀 벚꽃아
너밖에 없네.”
“사랑을 나누자, 벚꽃이여
세상에서 너밖에는
아무도 모른다네.”
이제 우리의 연수(年數)가 산수(傘數)의 나이에 접어드는 4월이 시작하는 봄날, 점차 무거워지는 발걸음을 재촉이나 하듯이, 온 땅이 벚꽃으로 뒤덮인 일본 나고야와 시즈오카지역을 찾았다. 그곳에서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보며 ‘사랑과 세상일로 바래진 우리의 얼굴’을 다시 소생시키려는 안간힘이 아니라, 지난 모든 것을 한가로이 관조(觀照)하며 다가올 느린 시간을 유유자적(悠悠自適)하게 보내기 위한 모형의 하나로, 4박 5일의 봄꽃 순례를 택하였다.
2. 봄의 축제
첫날 나고야성 천수각이 보이는 벚꽃 축제는 대지(大地)의 부활을 알리는 봄의 사육제(謝肉祭)였다. 이런 시구를 써보았다.
‘어느새 섬광(閃光)처럼
피어났다가 사무라이 죽음같이
뒤끝 없이 산뜻하게 사라지는
꽃잎은 너의 짧은 이름이야.
그래서 너밖에 없다고 했나 봐.’
이제 그 화려한 벚꽃 나무 뒤에 숨겨진 칼과 대포는 없었다. 일본은 더는 그러할 여유가 없다. 그 대신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일본을 찾았을 때 비단부채에 씌어 진 감상적인 하이쿠를 보았을 것이다.
“벚나무의 향긋한 꽃
매년 봄마다 네 모습 물 위에 어려있구나
너를 꺾으려 일어섰다가 예쁜 소매만 물에 적시었네.”
이는 마치 채석강에서, 뱃놀이하며 술을 마시다, 물 위에 비친 보름달을 따러 뛰어 들어갔다가 고래를 타고 승천했다는 이태백의 큰 몸짓에 비하면, 이 하이쿠는 연약한 여인의 섬세한 감정의 기미(幾微)를 보여주는, 소소한 너무나 일본적인, 예쁜 풍경이다.
이처럼 벚꽃은 일본의 나라꽃이다. 그런데 그들은 벚꽃보다 가을에 피는 국화꽃을 더 좋아한다. 그 이유는, 오상고절(傲霜孤節)의 가치로 칭송하는, 그 꽃이 그들의 황실(皇室)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계층(hierarchy)사회에서 익숙하게 살아왔고, 개인이나 국가가 ‘저마다의 알맞은 위치’에 자리 잡는 안분지족(安分知足)을 최상의 가치로 생각해왔다. 미국의 인류학자인 루스 베네딕트(Ruth Benedict)는 그녀의 저서 「국화와 칼」에서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원인으로 지목한 것이, 바로 이러한 천황을 중심으로 한 황도(皇道)의 질서인, 계층(hierarchy)사회를 대동아권(大東亞圈)에 구축하기 위함이라는 명분이었다. 물론 이 질서의 지도자는 일본이다. 그러나 불행한 일은 이러한 대동아 이상(理想)을 점령당한 나라들이 동의하지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루스 베네딕트가 주목한 일본의 장점은, 그들이 어떤 행동방침을 따른 행위가 참된 ‘실패로 끝났다’라고 인정한 뒤부터는, 다른 방향을 향해 노력한다는 점이다. 즉 일본인은 잘못을 범하였다고 판단하면 실패로 끝난 주장을 집요하게 고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 일본이 항복한 지 닷새 후에, 미군이 상륙하기 전, ‘마이니치 신문’과 ‘아사히 신문’의 논설에서 앞으로 일본이 평화 국가의 길을 가야 할 것과 국제협조와 평화 애호의 태도를 채택해야 한다고 논평하였다는 사실이다.
이같이 유연성 있는 방향 전환은 어디서 왔을까? ‘아싸리-하다’라는 제주지역의 사투리가 있다. ‘깨끗하다’라는 말이다. 아마 어느 봄날 섬광같이 대지를 화려하게 물들이다가, 사라질 때는 사무라이나 가미카제와 같이 ‘아싸리 하게’ 산화(散華)하는 벚꽃의 속성이 그들에게 끼친 영향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