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감 남태량의 비를 찾으러 하니 보이지 않았는데 이곳 저곳 자료를 찾다가 보령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지만 울산에서 멀다.
그래도 가야하는데 언젠가는 가겠지 하다가 5년이 지난 후에 찾으로 갔다.
당일 치기로는 장난이 아닌 거리라 새벽부터 출발하니 먼 길 가는 길이 왜 이리 먼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남태량 비를 관심을 가진 것은 남태량이 경상도 관찰사를 하였기에, 그렇고 지금까지 남태량비는 2좌가
발견되었는데, 하나는 보령 현감이고 하나는 경상도 관찰사 비 이다.
경상도 관찰사를 연구하다가 남태량의 비가 더 있는지 알아 보니 보령에 있었기에 찾아 간 것이다.
보령에 도착하니 빗 방울이 떨어져 사진 촬영이 어려워 한참을 기다리다 촬영 하였으며
남태량의 비는 마을 사거리에 있지만 누구나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승정원일기에는 남태량이 보령현감에 제수되는 기록이 보인다.
영조 9년 (1733년 雍正(淸/世宗) 11년영조 9년 2월영조 9년 2월 1
南泰良에게 관직을 제수함
以南泰良爲保寧縣監。
비석에는 명문이 있으며 풀이는 다음과 같다,
三月爲政 삼개월 동안 다스리니
兩縣之頌 양 고을이 칭송하네
百世不忘 백세에 잊지 못 함이로다
山高水長 산같이 높고 물 같이 깊음이여
甲寅 12월 일 1734년 월일 세움 保結 兩縣 合立
선정비는 1년 3개월 뒤에 세웠는데 3 개월동안 얼마나 많은 일을 하였는지 알 수 없지만
많은 선정을 하였기에 비석을 세운것으로 생각된다.
비석은 밭과 경계에 있고 명문은 희미하지만 남아 있으니 찾는 것이다.
보령은 수영성과 남포성, 보령읍성이 등이 있어 군사적으로 중요하기에 선정을 베푼
비가 많이 있지만 남태량의 비는 찾기가 상당히 어려운 곳에 있는 것 처럼 생각되기도 하지만
지금의 자리는 조선후기에 당시에는 상당한 번화가 였다,
그러기에 사람들이 보라고 선정비를 세운 것이다.
경상도 관찰사를 지냈기에 찾으러 간 것이지만 멀고 먼 길 이 었다,.
비가 오니 더욱 마음이 급해지니 사진이 엉망이다.
비를 찾으로 가니 비가오네
떨어지는 빗방울
답사자의 마음을 흔드니
사진기도 흔들리네
비의 인물은 어떻고
비에 젖은 너는 어떻느냐
오래 된 비가
비에 젖는구나
길 떠나는 답사객
옥산 이희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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