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지친 심신을 위로받고자 덕유산으로 번개산행을 다녀왔다
덕유산(德裕山)은 이름에서도 넉넉함이 묻어난다.
덕이 많고 너그러운 어머니의 산(母山)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웅장한 자태를 자랑하지만 어느 한 곳 거친 곳 없이 부드러운 산세를 지니고 있다.
평일인데다가 코로나19까지 겹쳐서 무주리조트는 한산하였다
우리는 연식을 고려하여 힘든 산행을 지양하고 곤돌라를 타고 올라갔다
곤돌라도 우리의 연식을 닮아서 많이 낡았지만 걱정할 수준은 아닌 것 같았다
곤돌라로 20분 가량 이동하면 어느새 해발 1,525m 설천봉에 다다라 있다.
설천봉은 올 때마다 항상 짙은 안개로 뒤덮여 있었는데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스틱을 가지고 오르는 사람들은 우리팀 밖에 없어서 여유롭게 올라갔다
스키장으로 내려가는 언덕에 고사목이 처연한 모습으로 서있었다
세 여인들이 팔을 힘차게 들어올리며 화이팅을 외친다
여인들의 화이팅 소리에 짝짓기 하던 야생동물이 놀라지 않을까 걱정하였다 ㅎㅎ
향적봉으로 올라가는 입구에서 다시 한번 이름을 적었다
여러번 명단을 작성하는 수고로움이 있었지만 전혀 불평하지 않았다
이렇게라도 해서 하루 빨리 코로나19의 악령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하였다
한 삼년 묵은 홀애비 ☆☆ 빼듯이
온몸이 바람에 풀어지고 잇었다
세상 물정 멀쩡한 아내의
속뚫을 듯한 눈동자일랑 하루쯤 외면하자..........................................강우식 <민들레> 전문
우리가 걸어가는 데크 옆에는 박새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깊은 숲길에서도 박새는 오랫동안 우리와 동행이 되어주었다
깊은 산 습지에서 군락을 이루며 자라는 박새는 독성이 있다고 한다
야생화 중에 가장 힘찬 기상을 가진 꽃을 꼽으라면 단연코 박새일 것이다.
다양한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서있는 주목들은 덕유산이 주는 또 하나의 선물이다.
수많은 풍상이 할퀴고 지나갔지만 여전히 푸르름을 유지하고 있다
팔순을 앞둔 황보회장님께서 주목 앞에서 건재함을 뽐내고 계신다
향나무가 군락을 이루어 향적봉이라 불렸다는 덕유산의 주봉 향적봉(1,614m)에 올라섰다
코로나19로 인해 사람들이 모이는 걸 방지하기 위해 정상석 주위에는 금줄이 둘러쳐져 있었다
금줄을 넘어 들어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우리는 밖에서 인중샷을 담았다
향적봉에 올라 둘러보면 첩첩한 산줄기가 물결치며 이어져 있어 그저 아스라하기만 하다.
향적봉에서 바라보는 덕유산 산줄기는 마치 소의 부드러운 등걸을 닮았다.
북으로는 가까이 적상산이, 멀리 황악산과 계룡산이 있다.
서쪽으로는 운장산, 대둔산, 남쪽으로는 남덕유산을 앞에 두고 지리산 주능선도 아스라하다.
우리 일행은 중봉과 오수자굴을 거쳐 백련사로 하산하기로 하고 방향을 틀었다
향적봉대피소는 사람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아 쥐죽은듯이 고요하였다
하루빨리 대피소가 열려서 등산객들로 북적거리는 모습을 보고 싶다
꺾인 나뭇가지는
허공을 수식하는 문장이다
숨찬 몇 권의 눈부심이 사리처럼 반짝인다
새떼들 젖은 울음이 밑줄을 긋고
구전하는 말씀들
일편단심이다
생은 뼈를 삭이는 절명시다..........................................................................고경숙 <고사목> 부분
지도에도 없는 숲길을 갑니다
태양이 호수에서 금발을 흔들고
이름 모를 산새들이
등성이를 넘어갑니다
바하의 악보를 오솔길에 깔았더니
무반주 첼로의 서늘한 그림자가
지구의 머리칼에 고요히 걸립니다
내가 당도할 문은 아직 멀었습니다..............................................고정희 <천둥벌거숭이의 노래 > 부분
중봉은(1,594m) 덕유산의 대표 조망터다.
사방 막힘없는 가운데 남쪽으로 뻗은 덕유산 줄기는 매끈하니 영락없는 소의 등을 닮았다.
그 뒤로 웅장하게 솟은 남덕유는 우락부락한 황소의 어깨를 닮았다.
덕유평전을 지나 백암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질주 본능을 자극헸으나 자제하였다
중봉에서 잠깐 내려온 안부에서 간식거리를 꺼내어 놓았다
토마스 형님의 배낭에서 나온 돼지머리와 참이슬이 단연 으뜸이었다
산정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안개가 술맛을 배가시켜 주었다
바위들이 널려있는 날멩이에서 범꼬리가 하늘거리고 있었다
범꼬리는 1000m 이상 되는 고산의 정상 부근 풀밭에 무리 지어 자라는 들꽃이다
모양이 범의 꼬리를 닮았다 하여 '범꼬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가벼운 바람에도 끊임없이 일렁거리는 범꼬리들을 바라보면서 '굽히기는 하지만 꺾이지는 않는다'는 말이 떠오른다
날카로운 봉우리는
부드러운 산등성이를 사랑하기 위해
저 혼자 솟아 있다
사람들이 편안하게 걷는 모습을 보고
저 혼자 웃음을 머금는다
부드러운 산등성이가
어찌 곧추선 칼날을 두려워하랴
이것들이 함께 있으므로
서로 사랑하므로
우리나라 산의 아름다움이 익는다......................................................이성부 <날망과 등성이> 부분
중봉을 떠나서 오수자굴로 내려가는 숲길로 들어섰다
등산로가 다듬어지지 않아 불편한 곳이 많았지만 야생의 본능을 자극해서 더욱 좋았다
해발 1,470m에서 느끼는 공기는 맑디맑고 풋풋해서 참으로 상쾌하였다
6월의 숲은 싱그럽고 찬란하였다
원추리는 개화를 앞두고 꽃봉우리가 한껏 부풀어 있었다
오수자굴로 내려가는 등산로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아 산죽이 길을 막았다
오수자라는 고승이 수도해 득도했다는 전설이 전해 오는 오수자굴이다.
제법 넓고 큰 동굴인데 겨울에는 얼음 기둥이 위로 자라는 역고드름의 모습이 신기해서 인기가 있다
이곳에서 점심식사를 하려고 했는데 먼저 자리잡은 여인들이 있어서 그냥 지나쳤다
숲속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백련사 입구까지 내려와서 주저앉았다
반대쪽 숲에서는 새로운 탐방로를 개설하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놓여지고 나무데크길이 조성되고 있어 기대가 된다
백련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의 말사이다.
신라 신문왕 때 백련이 초암을 짓고 수도하던 중 그곳에서 흰 연꽃이 솟아 나와 이 절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6·25전쟁 때 대웅전이 불타버린 뒤 1961년에 건립하였고 한다
백련사에서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6.3km의 길은 지루하고 힘들기로 악명이 높다
중간 쯤에 있는 송어양식장이 있는 덕유산휴게소에서 쉬면서 송어회를 시켰다
펄쩍펄쩍 뛰는 송어의 에너지가 몸속으로 들어오자 새로운 힘이 솟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