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박한 겉모습에 깃든 야들야들한 감성
춘천 낭만골목
낭만이란 수식어를 붙이기에 춘천만큼 잘 어울리는 도시가 또 있을까. 듣기만 해도 괜히 설레는 ‘봄’이란 단어처럼 춘천 역시 이유 모를 설렘을 선사한다. 소양강댐, 의암호, 청평사, 공지천처럼 오래전부터 사랑받아온 명소들이 춘천을 낭만 도시로 만드는 데 일조했겠지만, 사실 춘천 곳곳에 오밀조밀 숨어 있는 잔잔한 요소들이 춘천을 더욱 낭만적인 공간으로 만드는지도 모른다. 널리 알려진 춘천낭만시장에 이어 이제 낭만골목이 등장했다.
골목길의 온기, 예술과 문화의 열기
춘천의 ‘낭만골목 프로젝트 1호’ 효자마을 낭만골목 입구에 서면 익살스런 호랑이가 반갑게 맞아준다. [왼쪽/오른쪽]효자동이라는 동네 이름이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효자 반희언이 있었다. 효자동의 유래를 설명해주는 ‘반희언과 새끼호랑이’/ 가상 효자문을 배경으로 사진 촬영을 해보는 3D 포토존. 그림과 어울리지 않을 듯한 ‘화기엄금’이란 글자가 눈에 띈다.
골목길만큼 정감 넘치고 개성 가득한 공간이 또 있을까. 세상의 모든 골목길이 저마다 사연을 안고 있겠지만 여기 춘천 효자동의 골목길은 남다른 이야기와 개성을 자랑한다. 이름하여 효자마을 낭만골목. 이름만 들어도 궁금해지고 마구 걷고 싶은 욕구가 솟구친다. 춘천의 낙후된 마을을 예술과 문화가 깃든 공간으로 변화시키는 ‘낭만골목 프로젝트’라는 이름 아래 효자동 주민과 지역 예술가들이 함께 마을 환경을 개선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그렇게 낭만골목 프로젝트 1호, 효자마을 낭만골목이 탄생했다.
좁은 골목이 시작되는 어귀에는 산삼을 든 청년과 아기호랑이 설치 작품이 세워져 있다. 작품 제목은 ‘반희언과 새끼호랑이’. 반희언은 효자마을의 탄생과 관련된 인물이다. 조선 중기의 효자 반희언은 중병에 걸린 노모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다. 어느 날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대룡산에 가면 시체 3구가 있는데 그중 가운데 시체의 목을 잘라와 고아서 어머니께 드리면 병이 나을 것이라고 했다. 반희언은 산신령이 시키는 대로 따랐다. 어머니께 약을 드리려고 솥뚜껑을 열어보니 시체 머리 대신 산삼이 있었다. 그리하여 노모는 목숨을 건졌다. 그해 겨울에는 노모가 갑자기 딸기가 먹고 싶다고 하자 또 딸기를 구하러 산으로 갔다. 우여곡절 끝에 딸기를 구하지만 눈보라에 길을 잃고 헤매다 호랑이를 만났다. 하지만 호랑이는 반희언을 해치는 대신 그를 집까지 태워다주고 사라졌다. 조선 선조 41년, 반희언의 효행을 칭송하는 효자정려가 내려졌다. 이후 마을 입구에 효자문이 세워지면서 효자문거리라 불리다가 효자동이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반희언과 새끼호랑이’는 바로 효자동의 유래를 설명해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보면서 효자동이라는 동네를 이해한 후 골목길로 들어서보자. 골목길 입구에 자리한 ‘그린마트’라는 가게가 보인다. 편의점에 밀려 점점 사라져가는 동네 가게가 골목길의 운치를 살려준다. 음료수라도 하나 사서 가게 앞 평상에 앉아 잠시 쉬어 가도 좋다. 그린마트 바로 맞은편 벽에는 익살스러운 표정의 호랑이가 방긋 인사한다. 무미건조했을 시멘트벽에 호랑이를 비롯한 십이지신 캐릭터와 효자동 풍경이 어우러진 벽화가 그려지면서 포근하고도 유쾌한 느낌을 준다. 이 작품의 제목은 ‘효자상 가는 길’이다. 사랑꽃, 웃음꽃, 행복 노래 가득한 효자마을이 되기를 염원하고 방문객들을 환영하고자 마을을 수호하는 호랑이와 십이지신 동물들을 그려놓았다. 그 벽을 끼고 오른쪽 골목길로 들어서면 ‘동일석유’라는 간판 아래 3D 낭만포토존이 있다. 이곳에서 사진을 찍으면 효자문으로 들어서는 듯한 느낌으로 연출이 가능하다.
낭만골목에 숨은 비밀 아지트, 담작은도서관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면 가족들의 즐거운 놀이터, 담작은도서관이 나타난다. 오래된 동네 분위기와 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현대적인 도서관 내 집처럼 편안한 분위기에서 책을 볼 수 있어 가족이 함께 찾는다.
이 길을 따라 올라가면 놀이터가 나타나고 동네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번듯한 현대식 건물이 등장한다. 바로 어린이 전문 도서관인 ‘담작은도서관’(033-256-6363)이다. 3층 규모로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구조여서 내 집처럼 편안한 분위기다. 2008년에 문을 연 담작은도서관은 번화한 시가지가 아니라 문화적으로 소외되고 오래된 작은 동네에 들어섰다는 점부터 특별하다. 동네 분위기와 어우러져서일까. 담작은도서관은 다른 어떤 곳보다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이다. 영유아를 위한 1층 공간부터 3층까지, 어디서든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 앉으면 거기가 자리가 된다. 마치 집에서처럼 벽에 기대도 되고, 엎드려도 되고, 자유롭게 책과 친구가 될 수 있는 공간이다. 딱딱한 분위기의 여느 도서관과는 거리가 멀다. 부모도 편하고 아이들도 편해서 가족이 함께 찾는 경우가 많다. 1층에는 카페도 있다. 카페라떼, 카푸치노, 아이스티 등 음료와 각종 빵이 모두 1,000원이라 부담 없다. 이 공간에는 어른들이 볼 만한 책도 갖춰져 있어 아이들과 함께 차 한잔 마시며 독서 삼매경에 빠져들기 좋다.
언제나 재미난 일들이 넘쳐나는 동네 골목
오래된 돌담 벽의 동화 같은 변신 돌담 벽에 숨은 동물들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골목이 배경이 되어 더욱 특별한 작품들 골목길 끝에 서면 춘천 시가지가 살짝 내다보인다.
도서관에서 나와 오른쪽 길로 올라가면 돌담 아래 작은 나무의자와 과일나무를 심은 상자 등으로 골목길의 정취를 표현한 ‘돌담에서 핀 낭만꽃’, 기존 돌담의 형태와 성질을 그대로 보전한 채 자연의 생명들을 동화적인 이미지로 구현한 ‘소원을 말해봐’ 등이 설치되어 있다. 이끼 낀 벽의 돌들이 하나둘 컬러풀한 옷을 입은 모습이 사랑스럽고, 그 속에 숨어 있는 동물들의 모습이 어여쁘다. 동네 할머니들이 골목길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모습에서 온기가 느껴진다. 죽어 있는 골목이 아니라 살아 숨쉬는 골목이다. 이 골목을 따라 작품들을 감상하며 골목 끝에 이르면 지붕들 사이로 춘천 시가지가 내다보인다.
[왼쪽/가운데,오른쪽]한손에 효자손을 든 우스꽝스러운 정크로봇 / “안녕, 태권V!” 오래된 담장이 최고의 캔버스가 되었다.
왔던 길을 따라 다시 ‘효자상 가는 길’ 벽화가 있던 곳으로 내려가보자. 이번에는 3D 낭만포토존이 있는 곳에서 꺾어져 들어가지 말고 그대로 직진해서 올라간다. 이 길에는 폐가전제품을 활용한 ‘하늘지킴이 정크로봇’이나 나무로 만든 태권V 등이 나타난다. 태권V가 있는 언덕을 따라 올라가면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정자가 보인다. 정자에 잠시 앉아 있노라면 맞은편 효자문경로당에서 할머니, 할아버지의 시끌벅적한 소리가 새어나온다. 여느 경로당과 달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손수 만든 물품을 걸어둔 게 눈에 띈다. 이 점이 바로 낭만골목이 다른 지역의 벽화마을과 차별화되는 부분이다.
낭만골목 프로젝트는 생활문화공동체 만들기 사업의 일환이다. 단순히 벽화나 작품 등으로 겉치장만 하는 게 아니라, 효자1동 주민들이 서로 교류하면서 시골마을처럼 공동체를 복원하기 위한 작업들이 함께 진행된다. 도자기, 리폼 등 주민들을 위한 강좌를 개설하고 소통할 수 있는 카페를 만들어 주민들이 서로 인사하고 알아가는 기회를 마련해준다. 올해는 학력에 관계없이 효자1동 주민들이 학장이 되고, 교수가 되고, 동시에 학생이 되는 ‘효자마을대학’을 시작했다. 겉모습만 아니라 속살까지 제대로 들여다보면 효자마을 낭만골목만의 매력을 깨닫게 될 것이다.
낭만시장으로 이어가는 춘천 낭만 산책
낭만시장은 간판마저도 낭만적이다 낭만시장 곳곳에는 숨은 볼거리가 가득하다.
낭만골목으로 끝내기가 아쉽다면 낭만시장까지 산책을 이어가자. 낭만골목에서 ‘축제극장 몸짓’까지 걸어 내려온 후 약사고개길을 따라 걸어가면 춘천낭만시장(중앙시장)이 나타난다. 춘천의 대표적인 전통시장 중 하나인 중앙시장은 2010년 문화관광형 시장 육성 사업에 따라 단순한 시장의 개념에서 벗어나 문화와 예술, 휴식이 어우러진 새로운 공간으로 변모했다. 시장 곳곳에 아기자기한 벽화가 그려지고 간판도 특색 있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낡고 오래된 시장 골목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어떤 골목에서는 옛 시장의 따뜻한 정과 추억을 낚는 태공이 나타나는가 하면, 또 어떤 골목에서는 벽면의 낡은 전선줄을 타고 미니카들이 질주하기도 한다.
낭만시장의 안내소 같은 역할을 하는 ‘낭만살롱’, 중앙시장의 역사를 보여주는 ‘낭만상회’, 지역 예술가들의 작품활동을 볼 수 있는 ‘공간 오동’, 손님과 상인 누구나 쉬어 갈 수 있는 시장 라운지 등 다른 시장에서 볼 수 없는 이색적인 공간이 많다. 낭만시장에서는 물건을 구경하고 사는 재미에, 시장 곳곳에 숨어 있는 문화예술 작품과 공간 들을 찾아다니는 재미가 더해진다. 시장 안 이 골목 저 골목으로 흘러 다니다 보면 낭만 몇 봉지 정도는 챙겨가게 될 것이다.
여행정보
효자마을 낭만골목
위치 : 강원 춘천시 효자1동 일대
문의 : 033-262-1360(낭만골목추진위원회), 033-251-3474(춘천시 문화재단)
1.찾아가는길
* 자가운전
서울춘천고속도로 → 춘천IC → 공지로 국립춘천박물관 방면 우측 도로 → 효자사거리 → 효명1길 좌회전
* 대중교통
서울→춘천 : 동서울터미널에서 수시(06:00-24:00) 운행, 1시간 10분 소요
용산역 또는 청량리역에서 1시간 간격(06:00-22:00)으로 ITX청춘 운행(일부 시간대는 30분 단위), 용산역에서 약 1시간 15분 소요
2.주변 음식점
별당막국수 : 춘천막국수 / 춘천시 효자1동 490-7 / 033-254-9603
원조숯불닭불고기집 : 숯불닭갈비 / 춘천시 낙원길 28-4 / 033-257-5326
1.5닭갈비 : 닭갈비 / 춘천시 후만로 77 / 033-253-8635
팬더하우스 : 분식 / 춘천시 명동길 49 / 033-256-0920
커피첼리 : 커피 / 춘천시 아침길 10 / 033-252-5953
3.숙소
춘천고택(김정은 전통가옥) : 춘천시 신동면 솟발1길 44 / 010-2582-2923 / korean.visitkorea.or.kr
나비야 게스트하우스 : 춘천시 서면 툇골길 15 / 011-377-2402
춘천세종호텔 : 춘천시 봉의산길 31 / 033-252-1191~5 / korean.visitkorea.or.kr
베니키아 춘천호텔 : 춘천시 중앙로68번길 12 / 033-257-1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