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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속 숫자 13의 의미
완전 파괴하는 배반과 불신의 수 13
여섯 번째 소수인 13에 대한 의문
소수를 나열해보면 2, 3, 5, 7, 11, 13, 17, 19, 23, 29, 31, 37, 41, 43, 47.... 등이며, 숫자 1과 100 사이에는 25개의 소수가 있다. 앞서 살펴봤지만 소수의 개수는 무한개이다. 그런데 오염되지 않은 깨끗하고 근본이 되는 소수 중에, 여섯 번째 위치한 13만큼은 완전한 숫자로 여겨지는 12에 1을 더한 것으로 완전함을 파괴하는 수로 간주된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서양에서 13은 공포와 죽음, 불운의 숫자로 여겨지기도 한다.
완전을 상징하는 12를 파괴하는 숫자 13
일반적으로 완벽한 수로 여겨진 12라는 수는 인간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예로, 춘분점을 기준으로 태양의 원 궤도를 30도씩 12등분하여, 하늘의 12별자리 이름을 붙인 것이 황도 12궁(zodiac)이다. 성경에서도 12궁성이라는 명칭이 등장한다(왕하23:5, 욥38:32). 또 1년의 시간을 12개월로 나누고 하루를 12시간으로 나누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고대 중국이나 한국에서도 시간과 방위를 나타내는 십이지(十二支)를 그 시간대에 활동하는 동물들을 상징화시켜 표시했다.
▲ 일반적으로 완벽한 수로 여겨진 12라는 수는 인간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음악의 세계에서도 작곡가 아르놀트 쇤베르크(Arnold Schönberg)는 7음계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세밀한 부분을 검은 건반인 반음(#, b)을 사용해 표현할 수 있는 12개 음계를 정립했다
음악세계에서도 처음엔 ‘만물은 수의 근원’이라고 주장한 피타고라스는 한 옥타브를 ‘도레미파솔라시’라는 7음계로 표현하여 사용했다. 하지만 나중엔 빈 출신의 작곡가 아르놀트 쇤베르크(Arnold Schönberg)는 7음계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세밀한 부분을 검은 건반인 반음(#, b)을 사용해 표현할 수 있는 12개 음계를 정립했다.
고대 인도에서는 완벽한 숫자로 12를 인식했다. 왜냐면 손가락 10개와 발 2개를 합친 12수가 완벽수라는 것이다. 하지만 완전수 12에 1을 더한 13은 ‘완전함을 파괴하는 수’로 간주했다.
13은 완전함을 파괴한 배신과 불신의 수
성경에서도 12 수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을 나타내는 3수와 더불어 하늘의 완전수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하늘의 완전수 3과 동서남북을 가리키는 땅의 완전수 4의 곱인 12는 완전한 완전수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야곱은 12아들을 낳았고(창35:22), 예수 그리스도는 12제자를 두었다(막11:11).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준비시키신 유월절 만찬에는 예수를 포함한 12제자, 즉 13명이 참석한다(막14:12-25). 그 자리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예수를 팔기로 모의했던 가룟 유다가 참석했다(막14:11-12, 눅22:2-6). 예수를 배반하기로 결정한 이유에 대해 성경은 ‘사단이 들어갔다’라고 기록하고 있다(눅22:3).
▲ 예수님과 12제자를 합한 13명이 모인 마가의 다락방 최후 만찬에서 가룟 유다의 배반이 일어났기 때문에, 13이라는 수는 불신과 배반, 저주와 심판의 뜻이 담겨져 있다.
이 제자에 대해 예수님은 “너희 중에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막14:18), “열 둘 중 하나 곧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막14:20), “나를 파는 자의 손이 나와 함께 상 위에 있도다”(눅22:20),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 하였더면 제게 좋을뻔하였느니라”(막14:21, 눅22:22)고 예언하셨다.
이처럼 13명이 모인 마가의 다락방 최후 만찬에서 가룟 유다의 배반이 일어났기 때문에, 13이라는 수는 불신과 배반, 저주와 심판의 뜻이 담겨져 있다고 여겨진다. 또한 가룟 유다의 배반의 시작인 ‘사단(Satan)의 수’라고 볼 수 있다(눅22:3).
공포와 불운의 대명사로 여겨진 13
그래서 그런지 미국에선 ‘13일의 금요일’(Friday the 13th)은 공포의 대명사로 여겨진다. 13일이 금요일인 이 날은 공포가 엄습하는 불길한 날로 전해져온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13일의 금요일’(1980년)이라는 미국공포영화가 속편으로 10편이 넘게 제작되기도 했다.
▲ 완전수 12에 1을 더한 13은 ‘완전함을 파괴하는 수’로 간주됐다.
‘13일의 금요일 바이러스’로 이름 붙여진 ‘예루살렘 바이러스’가 1987년 이탈리아에서 처음 발견되기도 했다. 이 바이러스는 감염된 컴퓨터는 잠복해 있다가 ‘13일의 금요일’에 집중적으로 나타나 실행된 파일을 파괴하고 지워버린다.
우리나라엔 숫자 4를 ‘죽을 사’(死)자로 여겨져, 4층이라는 말을 아예 빼거나 ‘F’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이처럼 서양에서도 층 번호를 매길 때, 13층을 빼고, 12층 다음에 14층이 되게 하거나, 12A나 12B를 붙이기도 한다. 방 번호나 비행기의 좌석번호도 이렇게 적용하는 경우가 있다. 스포츠의 경우도 13이라는 공포증 때문에, 등번호로 13을 배정받기 싫어한다.
배반과 구속사 훼방, 죄악의 수 13
2, 3, 5, 7, 11, 13, 17, 19, 23, 29, 31, 37... 이 소수 중에 여섯 번째 숫자인 13은 성경에서 부정의 뜻을 가진다. 곧 하나님의 은혜를 배반하는 반역의 수이며, 하나님의 구속사를 훼방하고 대적하는 수이다. 뿐만 아니라, 배반과 반역, 구속사 훼방의 원인인 13가지 더러운 죄악을 나타낸다.
배반과 구속사 훼방 상징하는 수, 13
13은 배반의 수이기도 하다. 창세기 14장 1~4절에는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과 벨라 곧 소알의 여섯 왕들이 12년 동안 그돌라오멜을 섬기다가 제 13년에 배반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당시 그돌라오멜이 시날과 아므라벨과 엘라살과 아리옥과 연합하여 지금 염해인 싯딤 골짜기에서 싸웠다는 얘기가 나온다. 12년을 섬기다가 ‘13년’ 만에 배반했다는 내용이다.
“이들이 십 이년 동안 그돌라오멜을 섬기다가 제 십삼년에 배반한지라”(창14:4)
또한 13은 하나님의 구속사를 훼방하고 단절시키기 위한 적그리스도의 역사를 가리킨다. 바사 제국 아하수에르왕 때에,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은 1월 13일에 조서를 써서 12월 13일에 127도에 있는 유대인들을 남녀노소를 무론하고 다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려고 했다(에3:12~13).
“정월 십 삼일에 왕의 서기관이 소집되어 하만의 명을 따라 ...... 이에 그 조서를 역졸에게 부쳐 왕의 각 도에 보내니 십이월 곧 아달월 십 삼일 하루 동안에 모든 유다인을 노소나 어린 아이나 부녀를 무론하고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또 그 재산을 탈취하라 하였고”(에3:12-13)
하지만 하나님의 절대주권의 섭리로 상황이 뒤집어졌다. 유대인을 진멸하려 했던 12월 13일에, 127도에 있는 아각과 그 민족들이 오히려 진멸 당했기 때문이다(에9:1-19). 그리고 유대인이 대적에게서 벗어나 평안함을 얻은 이 날을 기념하기 위해 12월 14일과 15일을 ‘부림절’로 지키게 됐다(에9:17~32).
“아달월 곧 십이월 십 삼일은 왕의 조명을 행하게 된 날이라 유다인의 대적이 저희를 제어하기를 바랐더니 유다인이 도리어 자기를 미워하는 자를 제어하게 된 그 날에”(에9:1)
▲ 성경에서 13은 하나님의 은혜를 배반하는 반역의 수이며, 하나님의 구속사를 훼방하고 대적하는 수이다. 뿐만 아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13가지 더러운 죄악을 가리킨다.
사람을 더럽게 만드는 13가지 악한 것
이러한 배반과 반역, 구속사 훼방의 원인은 결국 사람의 마음에서 나온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경계하신 ‘사람을 더럽게 만드는 13가지 죄악’은 무엇일까? 마가복음 7장에서 예수님은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13가지를 죄악이 사람을 더럽게 만든다고 규정하고 있다.
마가복음 7장 21~23절에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①악한 생각 곧 ②음란과 ③도적질과 ④살인과 ⑤간음과 ⑥탐욕과 ⑦악독과 ⑧속임과 ⑨음탕과 ⑩흘기는 눈과 ⑪훼방과 ⑫교만과 ⑬광패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본문에서 ‘악한 생각’이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12가지를 대표하는 말로 표현된 듯하다.
하지만 이와 동일한 내용을 기록한 마태복음 15장에서는 ‘입, 곧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며, ①악한 생각과 ②살인과 ③간음과 ④음란과 ⑤도적질과 ⑥거짓 증거와 ⑦훼방을 말씀하고 있다. 13가지 중, 7가지만 언급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악한 생각’이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 전체를 대표하는 말이 아니라, 사람을 더럽게 만드는 한 가지의 예로 언급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마가복음 7장에 언급된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12가지가 아니라, 13가지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한마디로, 여섯 번째 소수인 13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배반하는 반역의 수이며, 하나님의 구속사를 훼방하고 대적하는 수이다. 뿐만 아니라, 사람을 더럽게 만드는 13가지 죄악을 상징한다.
7에서 1이 모자란 불완전 수 6
13은 소수에서 여섯 번째에 위치한 수다. 그 여섯 번째에 해당하는 13이라는 수는 6과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6은 여섯 째날 창조된 사람을 가리키며, 그 사람의 타락을 뜻한다. 이 타락으로 인해 일곱 째날 하나님의 안식일이 깨졌다. 즉 숫자 6은 하늘의 완전수 3과 땅의 완전수의 4의 합인 하나님의 완전수 7에서 1이 모자란 불완전한 수이다.
▲ 하늘의 완전수 3과 땅의 완전수의 4의 합인 하나님의 완전수 7. 하나님은 여섯째날 하나님의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신 것을 포함해, 6일 동안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일곱 째 날에 안식하셨다.
궁극적으로 볼 때, 숫자 6은 하늘의 완전수 3과 땅의 완전수의 4의 합인 하나님의 완전수 7에서 1이 모자란 불완전한 수이다. 하나님은 여섯째날 하나님의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신 것을 포함해, 6일 동안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일곱 째 날에 안식하셨다(창1장, 창2:1-3).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1:27)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창1:31)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창2:1)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 째 날에 안식하시니라"(창2:2)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창2:3)
▲ 6은 여섯 째날 창조된 사람의 타락을 뜻한다. 이 타락으로 인해 일곱 째날 하나님의 안식일이 깨졌다.
즉 숫자 6은 하나님의 완전수 7에서 1이 모자란 불완전한 수이며, 타락 수가 된 것이다.
그런데 여섯째 날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사람이 간교한 뱀의 말(거짓말, 꾀임) 때문에, 타락하게 된다(창1:27, 31, 창3:1-24).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한, 이 타락으로 하나님의 일곱 째날 안식은 깨어지고 말았다(창2:8, 16-17, 창3:1-6). 그리고 아담과 하와는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다(창3:17-1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도 있더라"(창2:8)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창2:16-17)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창3:1)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창3:6)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창3:17)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3:19)
결국 여섯 째 날 지음 받은 사람이 타락함으로, 하나님의 일곱 째날 안식일이 깨어진 것이다. 예수님께서 안식일날 병자를 고치며, 많은 기사와 이적을 행하시자, 유대인들이 그를 핍박하고 죽이려 들었다(요5:1-18). 이 때 예수님은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말씀하셨다(요5:17). 이는 아담이 타락하여 하나님의 일곱 째 날 안식이 깨어지고 난 후, 하나님은 인류 구속사를 위해 지금까지 계속 일하고 계신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핍박하게 된지라"(요5:16)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요5:17)
그래서 7에서 1이 모자란 6은 불순종과 타락, 그리고 사망을 의미한다. 궁극적으로 볼 때, 숫자 6은 하늘의 완전수 3과 땅의 완전수의 4의 합인 '하나님의 완전수' 7에서 1이 모자란 '불완전한 수'인 것이다.
적그리스도인 짐승과 사람의 수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타락하게 만들었던 뱀은 적그리스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하나님의 구속사를 훼방하는 적그리스도의 실체에 대해,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요한계시록 13장이 구체적으로 기록했다. 요한계시록 13장에서는 적그리스도의 실체를 ‘짐승’이라고 지적하면서, 이에 대한 모습과 행적을 설명한다(계13:1-18). 즉, 용으로부터 능력과 큰 권세를 받은 이 짐승은 ‘하나님을 훼방하고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하고 성도들과 싸워 이기는 적그리스도'를 가리킨다는 것이다(계13:1-8).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가로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계13:4)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훼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게 거하는 자들을 훼방하더라"(계13:6)
적그리스도의 상징인 짐승의 표에 대해, 요한계시록 13장은 ‘짐승의 이름’ 또는 ‘그 짐승의 수’가 ‘사람의 수’라고 말하면서, ‘666’(육백 육십 육)이라고 기록하고 있다(계13:17-18). 이에 대해 ‘게마트리아(수비학)를 적용한 로마 네로 황제’, ‘바코드 또는 베리칩’, ‘666을 상징한 문양을 사용하는 이슬람의 비스밀라(bismillah)’ 등 많은 설이 있다.
▲ 적그리스도 유형 중에 하나인 '(옛) 뱀'의 거짓말(꾀임)에, 여섯 째 날 지음 받은 사람의 영과 혼과 육이 타락했다.
또한 요한계시록은 적그리스도의 3가지 유형을 ‘옛 뱀, 마귀 또는 사단, 큰 용’으로 기록하고 있다(계12:9, 20:2). 이 적그리스도 유형 중에 하나인 (옛) 뱀의 거짓말(꾀임)에, 여섯 째 날 지음 받은 '사람의 영과 혼과 육'(먹음직, 보암직,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러움)이 타락했기 때문에, 666이라 볼 수 있다(창3:1-6).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인 ‘짐승의 이름’ 또는 ‘그 짐승의 수’를 ‘사람의 수’라고 한 이유이다(계13:18).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계12:9)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년 동안 결박하여"(계20:2)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창3:1)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창3:6)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계13:17)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 육십 륙이니라"(계13:18)
▲ 요한계시록은 적그리스도의 3가지 유형을 ‘옛 뱀, 마귀 또는 사단, 큰 용’으로 기록했다. 그 중 하나인 뱀의 거짓말(꾀임)에, 여섯 째 날 지음 받은 사람의 영과 혼과 육이 타락했기 때문에, 666이라 볼 수 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13장에서, 적그리스도인 ‘짐승의 이름’ 또는 ‘그 짐승의 수’를 ‘사람의 수’라고 했던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이 재림할 때까지, 우리의 영과 혼과 몸이 흠 없이 보전되기를 원하신다’고 기록했다(살전5:23). 또한 흠 없이 온전히 보전될 수 있는 방법은 '영원토록 살아계시고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만이 가능하다(히4:12). 길과 진리와 생명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만이 우리를 온전케 하실 수 있고 하나님 아버지께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요14:6).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5:23)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4:12)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정리하면, 성경에서 13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대적하게 하는 적그리스도의 속성을 상징한다. 창세기에 기록된 옛 뱀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는 사단 또는 마귀, 큰 용인 적그리스도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이와 함께, 특별히 요한계시록 13장은 그 짐승의 수를 사람의 수 666이라고 기록했다(계13:17-18). 가룟 유다에게 들어가 예수를 팔게 했던 존재 역시 사단이었다(눅22:3). 소수 중 13이 여섯 번째에 위치해 있다는 것 역시, 결코 우연의 일치만은 아닐 것이다. 이처럼 13은 하나님의 창조사역과 구속사역을 대적하는 적그리스도의 속성을 나타낸다 하겠다.
'지혜가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보라'고 했다(계13:18).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시49:20)라는 시편기자의 말씀을 통해 성경을 깊이 상고하고 깨닫는 지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