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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언트] 22
씬1. 요정 집 방안 (전 회에 이어서) (낮)
(조필연과 성모가 단 둘이...)
필연 : 너한테 긴히 부탁을 할 게 있어.
성모 : (미소) 부탁이라뇨. 그냥 명령이라고 해주십시오.
필연 : 니가 잡은 이강모 말야.. 지금 삼청교육대에 가 있어.
성모 : ..!! (놀란다)
필연 : 내가 그렇게 만들어 놨어. 그 놈한테 땅이 있거든..
성모 : ..
필연 : 그 땅.. 절대 그 놈이 가져서는 안 될 땅이야..
성모 : 저한테 하실 말씀이..
필연 : 이강모를 없애.
성모 : ..!! (놀라서 본다)
필연 : 죽이라고.. 쥐도 새도 모르게..
(성모, 놀란 표정을 감추기 위해 술 한 모금 마신다.
필연, 핸드백만한 손가방을 상 위에 올려놓는다. 성모가 보면...)
필연 : 이 돈으로 교관부터 매수해.
성모 : .. (가방을 보는데)
필연 : 너도 알겠지만, 삼청교육대에서 죽어나가는 사망자가 한 둘이 아냐. 이강모 하나 없애는 건...
성모 : (OL) 식은 죽 먹는 것보다 쉬운 일입니다. (가방 가져온다) 저한테 맡기십시오.
필연 : .. (보다가, 웃는다) 널 안기부에 남겨 두길 잘한 거 같아.
성모 : 민홍기 과거를 밝힐 제보자는 찾았습니까?
필연 : 조만간 나타날 거야.
성모 : ..
필연 : 넌 이강모 쪽만 신경 써. 선거에 관한 문제는 따로 복안이 있으니까..
성모 : ... (마신다, 눈빛)
씬2. 요정 밖, 승용차 안 (그 낮)
(운전석에 찬성이 있고.. 성모가 가방을 보며 앉아 있다. 심각한 분위기)
찬성 : 어쩌실 생각이세요?
성모 : ... 삼청교육대에서 빼내 와야지.
찬성 : 빼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그렇게 되면 선배님 정체가 탄로 날 수도 있어요.
성모 : .. (생각)
찬성 : 차라리 그 개펄 땅, 줘버리는 건 어때요?
성모 : (본다)
찬성 : 저 놈들이 노리는 건, 땅이잖아요. 그 땅만 줘버리면..
성모 : 우선, 강모가 지금 어느 부대로 가 있는지 알아 내.
찬성 : 알겠습니다. (시동 걸면)
성모 : 미주한테 가자. 그 땅문서, 미주한테 있을 거야.
씬3. 달리는 차 안 (전회, 60씬에 이어서) (낮)
(굳은 표정의 민우가 운전 중이다. 미주가 그 옆에서 불안해하며..)
미주 : 어디 가는지 얘기는 해줘야 할 거 아니에요..!
민우 : .. (운전만)
미주 : 제 말 안 들려요? 대체 왜 이러시는 거예요?
민우 : ... (생각중이다. 내가 왜 데려왔지?)
미주 : 안 내려주면 나 여기서 확 뛰어내려 버릴 거예요?
민우 : (보지 않고, 버럭) 조용히 해.! (보는) 왜? 정식이하고 좋은 기회 놓쳐서 아쉽냐?
미주 : (기가 막혀서) 저, 실장님이 생각하는 그런 애 아니거든요?
민우 : ... (알고 있다. 괜히 미안해지고) 집이 어디야?
미주 : ...
민우 : 집까지 데려다 줄게.
미주 : .. (보다가) 버스 타고 갈게요. 아무데나 내려 주세요.
민우 : ... (핸들 꺾는다)
씬4. 어느 길가 / 승용차 안 (낮)
(주택가나 시내 도로쯤의 적당한 길가.. 민우의 승용차가 다가와 선다.
그 승용차 안... 미주, 민우를 슬쩍 보더니 안전띠를 푸는데..)
민우 : 정식이 조심 해.
미주 : ...? (보면)
민우 : (본다) 그 자식 조심하라고... 너, 내가 생각하는 그런 애 아니라며?
미주 : ... 저 어린애도 아니거든요? 내 몸은 내가 지킬 수 있어요.
민우 : ... (본다) 지킬 수 있어?
(민우, 미주의 의자를 뒤로 확 젖힌다.
미주, 놀라서 얼른 일어서려는데 민우, 팔로 감싸 안듯이 막으며...)
미주 : (놀라서) 뭐, 뭐하시는 거예요?
민우 : (내려다보며) 정식이가 이렇게 나오면 어떡할 건데?
(미주, 민우를 빤히 본다. 민우, 그 시선과 마주치고.. 짧은 순간 잠깐 흔들리는 민우의 눈빛...
이때, 미주가 몸을 일으키며 냅다 민우의 얼굴을 들이 받는다. 민우, 억, 하며 코 쪽을 감싸는데...)
미주 : (몸을 일으키며) 이렇게 하면 되죠.
민우 : (얼굴을 감싼 채, 아프고)
미주 : (걱정돼서) 코피 나요? 어디 봐요. (손대려는데)
민우 : ..! (차갑게 뿌리친다. 화나고)
미주 : (얼굴 보고, 픽 웃으며) 멀쩡하네요, 뭐.
민우 : 웃어? 너, 지금 웃음이 나와?
미주 : 실장님, 생각보다 좋은 사람인 거 같아요.
민우 : 뭐?
미주 : 곧 고소도 취하해 주실 거죠?
민우 : 야, 너.. (하는데)
(미주 배에서 꼬르륵 소리... 미주, 창피하다. 민우, 그런 미주를 보고..)
씬5. 갈비 집 (낮)
(실비 집 분위기.. 석쇠 위에 고기가 올려 있고..
미주, 열심히 고기를 뒤집고 있는데 민우, 팔짱을 낀 채 보기만... 연기가 민우 쪽으로 간다)
민우 : (짜증, 인상 쓰며) 좋은 데로 가자니깐.. 옷에 냄새 다 배겠네..
미주 : 그러니깐 얼른 고기 뒤집어 봐요.
민우 : 할 줄 몰라.
미주 : 젓가락질 못해요?
민우 : 한 번도 안 해 봤어. 고기 뒤집는 거..
미주 : 그 입 한번 되게 편하게 사네... 그럼 얼른 먹던가요.
민우 : 고기 탄 거 싫어 해.
미주 : 관둬요, 나 혼자 다 먹을 수 있으니까.. (맛나게 먹어댄다)
민우 : ... (그런 미주를 보다가) 내일부턴 내 앞에 나타나지 마.
미주 : (본다, 기대감) 그럼, 고소 취하해 주실 거예요?
민우 : 헛물켜지 말고, 때려 치라고. (연기 땜에 기침 콜록대고)
미주 : (굳어지며) 저 포기 안 해요. 고기 먹고 힘내서, 허락 받아낼 때까지 찾아갈 거니까 그렇게 아세요. (먹는다)
(민우, 연기 때문에 콜록 거리며 손부채질.. 잠시 미주를 보는데.. 미주, 열심히 먹어대고)
씬6. 미주네 집 방안 (낮)
(성모가 와 있다. 도마며 칼이며 김밥을 싸고 난 흔적들.. 여자 옷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고..
성모, 옷 한 벌을 집어 들고 보면 짧은 미니스커트다. 성모, 의외인 듯... 이때, 미주가 들어선다)
미주 : 큰 오빠..! (얼른 옷가지들을 치운다) 집이 엉망이지? 치우고 나갔어야 되는데..
성모 : 요즘 우리 미주, 바쁜가 보네?
미주 : 어, 쬐금...
성모 : (냄새, 킁킁 맡는다) 저녁때 뭐, 맛있는 거 먹었니?
미주 : 입에선 맛있었는데 속은 불편해... 근데, 연락도 없이 큰 오빠 어쩐 일이야?
성모 : 너 혹시.. 강모가 너한테 문서 맡기지 않았니?
미주 : 맞다, 땅 문서..!
(미주, 비키니옷장 깊숙이에서 땅문서를 꺼낸다. 성모에게 건네며)
미주 : 이거.. (건네고) 작은 오빠가 언제 돈 모아서 땅을 다 샀데?
성모 : .. (문서를 살펴본다, 심각하게)
미주 : 그거 개펄 땅이지 그치? 강모 오빠두 참 별나. 이왕 땅 사는 거...
성모 : 미주야... (본다) 이제 강모 면회 안가도 돼.
미주 : ..? 왜?
성모 : 교도소 다른 데로 옮겼어. 멀리 지방 쪽으로...
미주 : (불안하다) 강모오빠한테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성모 : ... 걱정 마. 더 편한 데로 옮긴 거니까.
미주 : 진짜? 다행이다.. 작은 오빠만 편하면 됐지 뭐...
성모 : .. (미소 짓다가, 이내 씁쓸하게)
씬7. 삼청교육대 전경 (낮)
씬8. 동, 내무반 막사 안 (낮)
(기훈과 지친 수련생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휴식중이다. 다들 무표정한 모습들...
강모가 한쪽 침상에 걸터앉아 있는데 그 옆에 앉아서 생각에 잠겨 있던 소태...)
소태 : (혼잣말처럼) 이건 아닌 거 같아... 뭔가 잘못됐어... (강모에게) 야, 내가 왜 여기 끌려와서 이 개고생을 하는 거야?
강모 : ... (차갑게 본다)
소태 : (강모에게) 분명히 뭔가 착오가 있어. 서류가 잘못됐던가, 아니면..
강모 : 아직도 모르겠냐?
소태 : 뭐? 내가 뭘 몰라?
강모 : 우릴 여기로 보낸 놈들.. 조민우하고 황정식이야.
소태 : ..!! (놀라서) 너만 보내면 되지, 왜 나까지...
강모 : 날 못 죽였으니까..
소태 : 뭐?
강모 : 힘없고 무식한 너 같은 놈... 걔들이 인간으로 봐줄지 아냐?
소태 : (분기) 이...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놈들...
(이때, 교관과 조교들이 들어선다)
조교 : 동작 그만..!!
좌중 : .. (모두 침상 앞에 선다)
교관 : (좌중을 노려보며) 밖에 방송국 취재기자들이 와 있다. 교육받은 사항 외에는 모든 불필요한 언행을 금한다..!! 알겠나?
좌중 : 네..!!
교관 : 자아비판 대회에 나설 사람..!
좌중 : .. (잠시 서로 눈치만)
교관 : 누구든, 맘에만 들게 하면 내무반장을 시켜주겠다.
소태 : (눈치 살피다가, 손을 든다) 제가 하겠습니다.
교관 : (본다) 좋아. 다들 연병장에 모이도록...!!
씬9. 연병장 안 (낮)
(수련생들이 오와 열을 맞춰서 서 있다. 단상에서 웅변 중인 소태...
KBC방송국 로고가 선명한 카메라들이 수련생들과 박소태를 잡고 있다.
수련생들 사이에 있는 강모와 기훈.. 일각에서 교관과 조교들이 웅변중인 박소태를 내심 흡족하게 보고 있고...)
소태 : 삼청 순화교육을 만나지 않았다면, 저는 평생 개처럼 살았을 겁니다. 이곳에서 순화교육을 받으면서,
비로소 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저 같은 놈한테 이런 기회를 주신 대통령각하께 깊은 감사를 드리면서,
이 박소태.. 남은 인생을 애국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겠다고 목청 높여 외.. 칩니다..!!
(수련생들이 무표정하게 박수를 치고 있다. 강모, 기훈... 굳은 표정으로 박수를 치는데..)
씬10. 동, 연병장 안 (낮)
(오와 열을 맞춰서 서 있는 수련들을 카메라맨이 주욱 훑고 들어선다. 강모... 굳은 표정으로..
교관과 조교들이 감시를 하듯 뒤를 따르고.. 기자가 윤기훈에게 마이크를 대며 인터뷰를 한다)
기자 : 대한 방송에서 나왔습니다. 이번 순화교육을 받는 수련생으로서 소감 한마디만 부탁합니다.
기훈 : .. (카메라를 노려보며 응시한다)
기자 : 긴장하지 마시고, 그냥 편안하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카메라맨에게) 다시 갈게요.
(기훈에게, 마이크 대며) 소감 한마디만 말씀하시죠.
기훈 : 여긴... 순화교육장이 아니라... 무차별 폭력이 자행되는 인간도살장입니다.
강모 : ..!! (놀란다)
기훈 : 여기 끌려온 사람들이 다 깡패, 도둑놈인줄 아십니까? 경찰서마다 할당을 채우기 위해서 무고한 시민들을 끌고 왔습니다.
기자 : 저, 이러시면 곤란하신데..
기훈 : (마이크를 빼앗아 든다, 카메라를 응시하며) 똑똑히 보십시오, 국민 여러분..! 어제도 한 사람이 구타를 못 이겨서
죽어나갔습니다. 여러분의 아버지와 형, 동생들이 죄목도 모른 채 끌려와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교관 : 저 새끼 잡아..!! (달려든다)
조교들 : .. (기훈을 잡는데)
기훈 : (뿌리치며, 카메라를 끝까지 응시하며) 여러분들은 속고 있습니다. 여긴 지옥입니다.
죄 없는 사람들이 가혹한 구타로 죽어가고...
(이때, 교관이 곤봉으로 기훈을 내리친다. 쓰러지는 기훈.. 조교들이 곤봉으로 일제히 기훈을 집단으로 때리는데...
강모, 기훈에게 뛰어들더니 조교 한 명을 잡아서 쓰러뜨린다. 기훈을 끌어 앉고...)
강모 : 선생님..!
(이때, 다른 조교가 곤봉으로 강모의 머리를 후려친다. 강모, 쓰러지는데.. 이어지는 구타...
교관과 다른 조교들이 카메라를 빼앗는다)
교관 : 취재는 여기까집니다.
기자 : 카메라 돌려주세요.
교관 : 오늘 취재는 군사 보안상, 방송 불갑니다. (조교들에게) 야, 그놈들 끌고 가...!!
(조교들이 피를 흘리며 축 늘어진 강모와 기훈을 질질 끌고 간다.
소태와 수련생들, 눈앞에서 끌려가는 강모를 보며 겁에 질린 채...)
씬11. 목욕탕 안 (낮)
(허름한 군대내의 목욕탕 안이다. 엄청난 수압의 물대포를 쏘고 있다.
구석에 몰린 채, 강모와 윤기훈이 물대포를 맞으며.. 강모, 실신직전의 기훈을 감싸 안으며 보호해 주려 하지만 역부족이다)
씬12. 창고 안 (낮)
(어둠속에서 강모와 기훈이 머리 위로 팔이 묶인 채 늘어져 있다. 여기 저기 깨지고 터진 구타의 흔적들..)
강모 : 선생님...
기훈 : ..
강모 : 괜찮으세요, 선생님?
기훈 : 홍기표 회장.. 나 때문에 죽었어...
강모 : .. (본다)
기훈 : 조필연 국장이... 처자식들을 잡아들이겠다고 협박하는 바람에.. 내가 양심을 팔아먹었다..
강모 : 누구라도.. 어쩔 수 없었을 거예요.
기훈 : 그런 말로.. 면죄부가 될 수는 없어... 난 지금.. 그 벌을 받는 거야.
강모 : ... 사주만 지나면 보내 준댔잖아요. 조금만 버티세요, 선생님...
기훈 : (쓰게 웃는다) 넌... 저놈들 말을 믿냐?
강모 : ..? (본다)
기훈 : 절대 사주로는 끝나지 않을 거다...
강모 : ...
씬13. 내무반 막사 안 (낮)
(패잔병들처럼 앉아 있는 수련생들...
이때, 교관과 조교들과 함께 강모와 기훈이 다 죽어가는 모습으로 들어선다.
노란색 내무반장 완장을 찬 소태가 얼른 앞에 나와서..)
소태 : 동작 그만..! (경례한다) 멸공..!!
교관 : (경례를 받지 않고) 다들 침상에 정렬..!
(소태와 수련생들이 일제히 침상 끝에 정렬해 선다. 강모와 기훈도 절뚝거리며 정렬하고..
교관, 수련생들을 날카롭게 노려보며..)
교관 : 이곳에서의 모든 잘못은 연대책임으로 묻는다. 따라서, 오늘 니들은 이 상태로 취침한다.
좌중 : ...
교관 : 내일 기상나팔이 불기 전까지, 한 놈이라도, 침상에서 떨어지는 놈이 있으면, 아침밥은 없다. 알겠나..!!
좌중 : 네..!!
(강모와 기훈을 노려보는 수련생들의 사나운 눈초리들...
소태, 이를 갈듯이, 인상 쓰며 강모와 기훈쪽을 노려보는데)
씬14. 부대 안 전경 (그 밤, 시간 경과)
(초병들의 삼엄한 경계... 간간히 서치라이트가 지나가고..)
씬15. 동, 내무반 막사 안 (밤)
(조교가 의자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다.
강모와 기훈, 소태와 수련생들이 여전히 침상 끝에 서 있다. 졸리고 지쳐가는 수련생들...
534번을 단 남자가 꾸뻑 존다. 소태, 534번의 옆구리를 쿡 쥐어박으며 정신 차리라고 눈을 부라린다.
이때, 조교가 잠에서 깬다. 똑바로 해..! 한마디 하고는 정신 차리기 위해 밖으로 나간다.
강모, 아픈 몸으로 억지로 버티는데.. 기훈, 식은땀을 흘리며 괴로운 듯...)
강모 : 버티세요. 선생님...
기훈 : 절대 사주로 끝나지 않을거다. 어쩌면.. 죽는 게 편할지도 몰라..
강모 : 전 절대 못 죽어요... 끝까지 살아서 나갈 겁니다.. 선생님도, 죽지 마세요. 그건 너무 비겁해요...
기훈 : .. (본다)
강모 : 선생님이 본거.. 아는 거.. 느낀 거...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 살아나갈 생각만 하세요.
그게 선생님처럼 똑똑한 사람들이 할 일이에요.
기훈 : .. (보는데)
씬16. 교도소, 면회실 (낮)
(정연과 시덕이 와 있다)
시덕 : 친구, 시덕이가 왔다고 하면 면회 나올 거라니까요.
간수 : 이 사람들, 말귀 참 어둡네. 이강모, 여기 없어요. 없는 사람을 어떻게 면회 해?
정연 : 무슨 말이에요? 이강모가, 여기 없다니요?
간수 : .. (말을 할까 말까)
시덕 : 다른 데로 이감 된 거예요?
간수 : 이감된 게 아니라... 삼청교육대 끌려갔어요.
정연 : ..!! (놀란다) 삼청교육대라니요? 강모가 거기 끌려갔단 말이에요?
간수 : 아무튼, 그런 줄 알고 다신 면회 오지 마세요. (가려는데)
정연 : 거기가 어딘데요? 강모, 끌려간 데가 어디냐구요..!
(간수, 들어가 버리면 정연과 시덕, 놀라서..)
씬17. 만보건설, 회장실 안 (낮)
(조필연이 와있다. 황태섭과 주영국, 재춘, 민우가 있고...)
필연 : 개포지구에 있는 그 개펄 땅... 규모가 상당하더군요.
태섭 : 그 땅 주인, 이강모라고 말씀 드렸을 텐데요?
필연 : 하필 그 땅이.. 내 지역구 안에 있습니다.
태섭 : 사업 얘기라면 제 앞에서 안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필연 : .. (본다, 눈빛) 난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닙니까?
태섭 : .... (외면하듯, 차 마신다)
필연 : 이번 선거만 당선되면, 그 땅에다가 황회장께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다 유치할 생각이오.
(차 한 모금 마시고) 생각해 보세요, 황회장.. 내가 가진 정치권력에다가 황회장의 사업수단이 합쳐지면...
그 개펄 땅, 강남에서도 노른자위가 될 수 있습니다.
태섭 : 우선 이번 선거부터 승리하시고, 이강모가 출소하면 그때 다시 말씀 하시죠.
(필연, 뭔가 의미 있는 시선으로 민우를 본다. 민우, 그 시선 의식하고 차 한 모금 마시는데..
이때, 정연이 급히 들어서며...)
정연 : 아버지, 강모가... (말하려다가, 필연과 시선 마주치고)
필연 : 오랜만이야, 정연양.
정연 : (차갑게) 오셨어요?
필연 : ... (일어서서 다가간다) 요즘 회사 일 열심히 한다고?
정연 : .. (본다)
필연 : 아무리 바빠도, 집 한번 안 찾아오는 거, 너무 섭섭해.
태섭 : ..! (긴장한다)
민우 : (긴장해서, 일어나서) 저, 아버지.. 그만 가시죠.
필연 : (아랑곳 않고) 나야 이해하지만, 정연양 시어머니 되실 분이..
정연 : (OL, 민우에게) 아직 말씀 안 드렸나 보죠?
민우 : ... (당혹)
필연 : (뭔가 이상해서) 무슨 말? (민우를 본다) 나한테.. 뭐 숨기는 거 있냐?
민우 : 오늘은 그냥 들어가시죠. 집에 가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정연 : 아뇨, 아직 모르시면 제가 말씀드릴게요.
민우 : 정연씨...
태섭 : 두 사람 파혼했습니다.
필연 : ..!! (놀라서 태섭을 본다)
태섭 : (일어서서 다가온다) 저도 어떡하든 파혼만은 막아보려 했는데... 연분이 아닌 가 봅니다.
필연 : (굳어진 채, 정연을 보며) 누구 뜻인가?
정연 : 제가 파혼하자고 했어요. 사랑도 없는 결혼, 도저히 못하겠다고요.
필연 : 그래서.. (민우를 본다) 넌 동의를 한 거고?
민우 : 예... (정연을 본다) 아주 흔쾌히요.
(필연, 정연, 민우를 노려보더니 밖으로 나간다. 고재춘이 따라 나가고...
정연, 민우를 보는데... 민우, 그 시선을 차갑게 외면하고는 밖으로 나간다)
정연 : (민우가 나가자마자) 아버지, 강모 소식 아세요?
태섭 : ..? 무슨 소식?
정연 : 강모.. 삼청교육대 끌려갔데요.
태섭: ..!! (놀라서) 뭐? 삼청교육대? (영국에게)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알아 좀 봐.
영국 : 알겠네. (급히 나간다)
정연 : .. (걱정스럽게)
씬18. 동, 주차장 안 (낮)
(세차를 마친 미주, 이마의 땀을 훔치며 깨끗해진 승용차를 흡족하게 보고 있다.
차 안을 들여다보며 차 문을 잡아당기는데 문이 열리고..)
미주 : 차문 안 잠갔네? 잘됐다.
(미주, 씩 웃으며 도시락 가방을 조수석에 둔다. 이때, 뒷자리가 서류들로 지저분하고..)
미주 : 어휴, 지저분해.
(미주, 차 뒷자리에 들어가서 청소하는데.. 이때, 시끄러운 소리..)
민우 : (E) 아버지..! 제 말씀 좀 들어 보세요..!
(미주, 차 뒷 유리로 보면 입구 쪽에서 조필연과 고재춘이 나온다. 민우가 따라 나오며...
미주, 얼른 도시락 가방을 집어 들고는 차 문을 닫고 뒷좌석에 몸을 숨긴다)
필연 : (노려본다) 뭘 들어보라는 거냐? 날 속이고, 니들끼리 쉬쉬한 거?
민우 : 아버지..
필연 : 아니면..! 여자한테 바람이나 맞은 멍청한 아들 놈 변명 따위를 들어보라는 거냐..!
민우 : 시간이 좀 필요 했어요. 선거 끝날 때까지 어떡하든 정연이 마음을...
필연 : ..!! (민우의 뺨을 후려친다)
미주 : .,.!! (화들짝 놀라서)
필연 : 내가 고작 며느리 하나 얻자고 이러는 줄 아냐? 니 목표가 뭔지 잊었어?
민우 : .. (본다)
필연 : 우선, 니 머릿속에서 정연이란 애부터 지워 내..! 사랑이니 뭐니 하는 값싼 감정들 다 비워내란 말이다.
민우 : ...
필연 : 그런 다음 다른 방법을 찾아 내. 남한테 의존하지 말고, 니 힘으로 만보건설을 장악 할 방법..! 알겠냐?
(필연, 승용차에 올라탄다. 재춘, 운전석에 오르면 승용차가 출발하고...
민우, 독기 어린 눈가에 눈물이 고여 있다. 이를 악물며 차 쪽으로 다가가는데..
미주, 얼른 몸을 숨긴다.
차에 오르는 민우... 이를 악물며 시동 걸고 차를 출발시키는데... 뒷자리의 미주, 몸을 숨긴 채 어쩔 줄을 모르고..,)
씬19. 달리는 차 안 (낮)
(민우, 괴롭다, 심각한 표정..
뒷자리의 미주... 모습을 드러내지도 못하고 죽을 맛이다.
민우, 길게 한숨 내쉬고 무심코 옆자리를 보는데 도시락 가방... 뭔가 이상한 듯 생각하다가.. 갑자기 급제동을 한다.
미주, 자동차 시트에 머리를 쾅 부닥치고..
돌아보는 민우.. 미주, 머리 만지며 몸을 일으킨다)
미주 : 죄송해요.. 청소하다가 그만..
민우 : ... (기가 막히고)
씬20. 어느 강변 (낮)
(승용차가 서 있다. 민우가 소주병을 들고 강을 바라보며 앉아 있고..
미주가 그 옆에서 민우를 살피다가 도시락을 연다. 김밥이 가지런히 담겨져 있고..)
미주 : 배고프지 않아요? 이것 좀 드셔 볼래요?
민우 : .. (거들떠도 안보고 소주를 벌컥벌컥)
미주 : (언성, 조금 높게) 술 마시면, 운전 어떻게 해요?
민우 : .. (날카롭게 본다)
미주 : (찔끔해서) 여긴... 차도 별로 없는데..
민우 : ... (답답하다 괴로운 듯 한숨 내쉬는데)
미주 : ... (조금 안쓰럽고, 김 밥 한 개 집어 들고) 하나만 먹어 봐요. 난 기분 우울할 때 뭐 먹으면 좀 낫던데..
민우 : ... (노려본다)
미주 : ...! (아차 싶고) 볼라구 본 건 아니구.. 근데, 아까 그 분 아버지세요?
민우 : (듣기 싫다) 입 닫어.
미주 : 그래도 행복한 줄 아세요. 맨날 혼내두 좋으니까.. 나두 아빠가 계셨으면 좋겠는데..
민우 : (본다)
미주 : 울 아빠 일찍 돌아가셨거든요.
민우 : 기분 더러우니까 그만 해.
미주 : 김밥도 싫고.. 어떡하면 기분이 좋아지지?
민우 : .. (화 참는다) 가든가.. 조용히 입 닥치고 있던가..
미주 : 희희... (소리 내서 웃는다)
민우 : ..! 너, 지금 비웃었냐?
미주 : (민우의 손을 꼬옥 잡는다)
민우 : ..? (보면)
미주 : 일분, 아니 삼십초만이라도 가만히 있어 봐요. 기분이 조금씩 좋아질 걸요?
민우 : ...
미주 : 괴로울 때 누군가가 손 잡아주면, 힘이 나거든요. 어때요? 조금씩 좋아지는 거 같지 않아요?
민우 : (어이없어서, 헛웃음)
미주 : 거 봐요, 웃잖아요. 이게 특효약이라니깐..
민우 : 야, 너 도대체 정신 연령이...
미주 : (입 안에 김밥 한 개 쏙 넣어준다)
민우 : .. (벙쩌서 보는데)
미주 : 기운 났으면 이제 맛난 거 먹어요. 그럼 우울한 거, 싹 가시니까.
민우 : .. (본다)
미주 : 뭐해요? 씹어야지. 안씹구, 그냥 삼킬 거예요?
민우 : (입에 든 김밥을 퉤, 뱉으며) 더럽게 손으로..
미주 : 내 손 깨끗해요.
민우 : (미주를 노려보며 소주를 마시는데..)
미주 : (화나서) 관둬요, 관 둬.. 다신 주나 봐라. (먹는다)
(민우, 소주만 들이키는데.. 미주도 화나서 우적우적 김밥을 씹고 있고..
두 사람, 마치 싸운 연인처럼 각기 다른 모습으로...)
씬21. 달리는 차 안 (밤)
(민우가 운전석에 앉아 있고... 미주가 옆자리에서 잠들어 있고..
민우, 힐끔 보면 미주 무릎 위에 도시락이 올려져 있다. 반 쯤 열린 뚜껑 안에 한줄 남은 김밥이 보이고..
민우, 애써 외면하는데... 배고프다. 다시 김밥에 시선을 두더니 조심스럽게 한 개를 집어 먹는다. 맛있다.
미주를 슬쩍 살피고는 서너 개를 한꺼번에 입에 넣고 우적우적 먹는데.. 이때, 미주가 잠에서 깬다)
미주 : 술 다 깼어요?
민우 : ..!! (입 안에 가득 든 김밥, 씹지도 못하고)
미주 : (주변을 보며) 난 버스 타는데 까지만 데려다 주면 되는데...
(민우, 아무 대꾸도 못하고..
미주, 도시락 뚜껑을 닫으려다가 김밥이 없어진 걸 안다. 표 안 나게 씩 웃고는..)
미주 : (시침 떼고, 장난기 어린) 김밥이 몇 개, 비네? 쥐가 물어 갔나?
민우 : .. (입 안 가득 한 채 인상 구겨지고)
미주 : 실장님이 먹었을 리는 없고.. 혹시, 얘들 어디 갔는지 못 봤어요?
민우 : (참다못해서, 버럭) 내가 먹었다, 왜..!! (밥알이 미주 쪽으로 다 튄다)
미주 : 었다 뿜어요? 깨끗한 척은 혼자 다하더니... 어휴, 드러.. 증말. (머리며, 옷에 묻은 밥알을 떼어내고)
민우 : ... (신경질) 맛두 드럽게 없네. (씩씩대며 운전하면)
미주 : .. (그 모습 보고 피식 웃는데)
씬22. 태섭 집 거실 (밤)
(경자가 훌라후프 시범을 보이고 있다. 남숙과 복자가 보고 있고..)
경자 : (돌리며) 이렇게, 힘 빼고 엉덩이만 살살 돌려주시면 돼요. 봐요, 쉽죠?
복자 : 내 딸, 못하는 것 없지. 누굴 닮아서 그러게 잘 돌린다냐?
남숙 : 이래 줘봐. (훌라후프 빼앗고) 이까짓 게 뭐 대단하다고..
(남숙, 열심히 돌려보지만 잘 안되고.. 복자, 킥킥 웃으며..)
남숙 : 이게 왜 안돼, 신경질나게? (열심히 돌려보는데)
(이때, 태섭과 재수가 막 퇴근을 해서 들어선다)
태섭 : 집구석에서 뭐하는 짓들이야?
남숙 : 오, 오셨어요, 여보?
(복자와 경자, 화들짝 놀라서 얼른 나가고.. 이때, 정연이 이층에서 내려온다)
정연 : 아버지.. 강모, 어떻게 됐어요?
태섭 : .. 올라가자. (이층으로 올라가는데)
씬23. 동, 정연 방 (밤)
(태섭과 정연이 있고..)
태섭 : 주이사가 백방으로 찾아 봤다는데.. 도무지 어디로 갔는지 알 길 없다는 구나.
정연 : ... (생각)
태섭 : 계속 찾아보고 있으니까 곧 어딨는지 알아내겠지.
정연 : 뭔가 좀 이상해요.
태섭 : ..? 뭐가?
정연 : 저도 삼청교육대가 뭐하는 덴지 알아 봤어요. 감옥에 있는 사람을 데려가는 경우, 그렇게 흔치 않다던데...
태섭 : 그럼? 누군가가 강모를 억지로 끌고 갔다는 거냐?
정연 : 그렇지 않고선..
태섭 : 혹시..? (뭔가 의심스러운)
정연 : 왜요, 아버지?
태섭 : (얼른 표정 감추며) 아니다.. 피곤할 테니 그만 자... (나간다)
정연 : .. (마음 무겁게)
씬24. 연병장 (낮, 몽타주)
(수련생들이 선착순 달리기를 하고 있다. 강모, 반환점을 돌더니 이를 악물고 뛰어온다. 절대 질 수 없다..
일등으로 도착하는 강모.. 순서대로 줄을 서고... 소태와 기훈이 겨우 들어서면, 그 다음부터 다시 뺑뺑이..
534번을 단 사내가 힘에 겨운 듯 계속 꼴찌다)
씬25. 식당 안 (낮)
(미친 듯이 허겁지겁 밥을 먹고 있는 수련생들.. 식판 위에 감자 한 알씩 부식으로 나와 있고..
박소태가 감자를 먹다가 맞은편에서 밥을 먹고 있는 강모의 식판에서 감자를 집어 든다)
강모 : 뭐야?
소태 : (얼른 빼며) 너 땜에 저번에 한 끼 굶었잖아, 임마.
(강모, 손을 뻗으려는데 소태, 얼른 감자를 바지춤에 집어넣고... 이때, 빨리 나가라는 조교의 고함소리..!
수련생들이 일어나는데.. 강모, 식판을 들고 퍼 먹으면서 허겁지겁 나가는데..)
씬26. 군사 훈련장 (낮)
(수련생들이 밧줄이 드리워진 수직 장애물을 넘고 있다. 뒤쳐진 수련생들에게 쏟아지는 조교들의 곤봉세례...
강모, 맞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줄을 잡고 장애물을 넘는데..)
- 시간경과
(강모와 소태, 수직 장애물을 넘은 수련생들과 함께 앉아 있다. 뒤에 남은 수련생들이 수직 장애물을 넘고 있고..
기훈, 힘겹게 넘는데.. 534번 남자가 계속 미끄러진다. 조교들의 곤봉에 얻어맞으며..)
소태 : 아, 저 고문관 새끼 땜에 또 단체기합 받겠네.
강모 : ... (무관심하게 본다)
(소태, 슬쩍 주변을 살피더니 감자를 꺼낸다. 훈련 중에 으깨져 있고... 허겁지겁 먹어대는 소태... 살기 위한 본능..
강모, 그런 소태를 보는데..)
소태 : 왜? 먹고 잡냐? 근데, 어떡하냐? 우선 나부터 살고 봐야 되는데..
강모 : .. (무표정하게)
씬27. 부대 정문 (낮)
(성모가 한쪽에서 부대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위병소 쪽에서 찬성과 교관이 뭔가 이야기 하고 있고..
교관, 찬성의 이야기를 듣고 성모와 시선이 마주치자 거수경례를 한다. 성모, 무표정하게 답례 없이...)
씬28. 동, 면회소 (낮)
(아무도 없는 면회소 안에 성모 혼자 있다. 이때, 교관에게 이끌려 들어서는 강모...
두 사람, 잠시 말없이 본다. 교관, 나가고 나면...)
강모 : 형..
성모 : .. (눈물 고인다) 강모야...
- 시간 경과
(강모가 미친 듯이 통닭을 뜯고 있다. 성모, 그런 강모를 안쓰럽게 보다가 사이다를 컵에 따라준다.
강모, 그제야 성모를 의식하고...)
성모 : 시간 많아. 천천히 다 먹어.
강모 : ... (쑥스럽게 살점 하나 뜯어서) 형도 좀.. 먹어..
성모 : ... (보다가) 조필연이 나한테 널 죽이라고 하더라.
강모 : ...!!
성모 : 강모야... 차라리 그 땅, 그 놈들한테 줘버리자.
강모 : (본다) 나 그 땅 절대 포기 못해.
성모 : 강모야...
강모 : 땅문서 형이 갖고 있지? 그거, 제 삼자 명의로 돌려 놔줘. 차명 같은 걸로..
성모 : 니가 그 땅을 갖고 있는 한... 저 놈들, 끝까지 포기 안 할 거야. 널 계속 죽이려고 들 거다.
강모 : (옷소매로 입 주변을 닦는다) 나 죽은 걸로 처리해 주면 되잖아.
성모 : 뭐?
강모 : 이강모.. 사망자 처리 해 달라고...
성모 : ... (본다)
강모 : 남들이 여길 지옥 같다고 해... 근데.. 나한텐, 지나온 세월이 더 지옥이야.
성모 : ..
강모 : 이 까짓 것들.. 아무것도 아냐.. 두고 봐, 형... 내가 여기서 어떻게 살아나가는지.. 내가 그놈들한테.. 어떻게 복수하는지..
진짜 지옥은 그때부터 시작될 거야.
(강모, 무섭게 통닭을 뜯기 시작한다.
성모, 그런 강모를 안타깝게 보며... 눈물을 삼키는데...)
씬29. 내무반 막사 안 (낮)
(면회를 마친 강모가 들어선다. 소란스런 분위기.. 소태가 534번을 마구 짓밟고 있다. 기훈이 심각하게 보고 있고...)
소태 : (짓밟으며) 우리가.. 너 때문에.. 이게 무슨 꼴이야, 이 꼴통 새꺄.. (다 짓밟고 나서, 씩씩대며, 좌중을 본다) 잘 들어..
(완장 가리키며) 나, 여기 내무반장이야. 누구든 내, 눈 밖에 나지 마라?
(소태, 으쓱대며 밖으로 나가다가 강모와 시선 마주친다)
소태 : 너두 마찬가지야, 임마. 알겠냐, 523번?
(소태, 밖으로 나가면 강모, 534번을 힐끔 보더니 그대로 지나쳐 침상에 걸터앉는다. 윤기훈이 강모에게 다가오고...)
기훈 : 정말 너무들 해. 다들 자기만 살겠다고 난리야.
강모 : (군화를 벗으며) 여기선 값싼 동정 필요 없으니까요.
기훈 : .. (본다)
강모 : 낙오되면 죽는 겁니다. 독기 외엔, 다른 감정 품지 마세요.
(강모, 군화 다 벗고 침상에 오른다. 기훈, 차가워진 강모를 보는데..)
씬30. 선술집 방안 (그날 밤)
(부대 근처의 대포집 방 안이다. 성모와 찬성이 있고.. 군복 차림의 교관이 와 있다.
교관, 막걸리를 마시는데 성모가 가방 안에서 돈 다발 몇 개를 꺼내 놓는다.
교관, 곁눈질로 보고는 놀라서 푸, 막걸리를 흘리고...)
성모 : 이건 착수금입니다. 나머진 일이 다 끝난 후에 주는 걸로 하죠.
교관 : ... (믿기지 않는 듯이 돈을 만져보며)
성모 : 대신, 비밀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교관 : 안기부라고 하셨죠?
성모 : .. (본다, 눈빛)
교관 : 대체 무슨 공작을 하시길래 죽은 사람을 돈 주고 사신다는..
(성모, 권총을 꺼내 교관의 이마에 겨눈다. 교관, 사색이 되는데..)
성모 : 알려주면 넌 죽어야 돼. 그래도 알고 싶나?
교관 : 아, 아닙니다.
성모 : 다시 한 번 말해두지. 만약 기밀이 조금이라도 새나가면... 그땐, 이 돈... 네 놈 장례비로 쓰일 거다.
교관 : 무, 무덤까지.. 갖고 가겠습니다.
(성모, 총을 거둔다. 교관, 허겁지겁 돈 뭉치를 가슴팍 쪽에 구겨 넣더니 밖으로 나간다.
성모, 막걸리를 한 모금 마신다)
찬성 : 너무 겁준 거 아니에요?
성모 : 저런 놈들한텐.. 당근만 가지고는 안 돼.
찬성 : 조필연이, 죽이라고 준 돈으로 오히려 동생을 살리게 됐네요.
성모 : (마음 편치 않다) 강모 그 녀석.. 견디기 쉽지 않을 거야..
찬성 : ...
성모 : 강모가 나오기 전에.. 조필연은 내 손으로 파멸시켜야 돼. 지금 내가 강모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다.
씬31. 고아원 교실 안 (낮, 몽타주)
(허름한 고아원이다. 가난해 보이는 아이들이 모여 있고... 몇몇 기자들이 와 있다.
선거 띠를 두른 조필연이 원장 수녀에게 금일봉을 건넨다. 사진으로 박히고..
영문도 모른 채 박수를 치는 아이들...
어린 아이를 무등에 태운 조필연... 사방에 아이들로 둘러싸여 있고.. 그들을 한 아름에 끌어안으며 환한 미소...
연신 터지는 플래쉬..
고재춘과 양명자, 수행원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썩 달가운 표정은 아닌 듯..)
씬32. 한옥집 안방 (낮)
(백파와 경옥이 앉아 있다. 오병탁과 민홍기, 한명석, 엄가가 와 있고..
경옥, 돈이 든 검은 가방을 상 위에 놓는다)
백파 : 열어 보시오.
홍기 : 아닙니다. 이 안에 담긴 격려만으로 충분 합니다.
병탁 : 선거가 격려만 갖고 되는 건 아니지... (가방을 조금 열어서 들여다보고는, 좋아서) 회수권 한 장 안 들어갈 정도로
꽉꽉 채우셨구만, 그래. (하하 웃는데)
경옥 : 판세는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요?
명석 : 조필연 후보쪽에서 선전을 하고는 있지만, 아직까진 민후보쪽이 앞서 있어요.
백파 : 그래.. 그 돈, 이자는 어떻게 쳐줄 거요?
홍기 : 글쎄요.. 솔직히 돈으로 갚아 드릴 자신은 없습니다.
백파 : 돈으로 받을 생각이었다면, 거래조차 하지 않았겠지.
홍기 : 좋은 정치로, 지역 발전에 이바지 하겠습니다.
백파 : .. (보다가) 경옥아, 돈을 잘 못 건넨 거 같다.
경옥 : 예, 어른신.. (가방에 손을 대면)
병탁 : (얼른 먼저 손대서 막으며) 어허, 이거..? (홍기에게) 말씀 좀 잘 드려 봐.
홍기 : 평생 곁에서 어르신을 모시겠습니다.
백파 : (경옥에게) 뭐하나, 가방 안 가져가고.
경옥 : .. (가방에 손대려는데)
홍기 : (마음 급하게) 승리를 바치겠습니다.
백파 : ... (본다)
홍기 : 반드시 조필연을 꺾고 이겨 보이겠습니다.
백파 : 세상에서 가장 무능한 사채업자가, 받지도 못할 돈을 꿔주는 자요.
선거도 마찬가지요. 이기지도 못할 전쟁에 뛰어드는 것처럼 미련한 것도 없지..
홍기 : ..
백파 : 절대, 내 돈을 믿고 방심하지 마시오. 조필연 그 사람.. 절대 함부로 상대가 아니오.
홍기 : (깊숙하게 머리 조아리며) 어르신의 뜻을 잘 새겨 놓겠습니다.
경옥 : .. (보는데)
씬33. 선거 사무실 복도 (낮)
(조필연과 명자, 고재춘이 들어서고 있다)
명자 : (불만스럽게) 당신,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투표권도 없는 고아들은 왜 찾아다니면서 돈을 뿌려대요?
필연 : 당신은 전략이란 걸 잘 몰라.
명자 : 무슨 말이에요?
필연 : 아이들을 이용하면 어른들을 움직일 수 있어. 내 돈에 사심이 없다는 걸, 세상에 알릴 수도 있고...
재춘 :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당장 내일신문이 나가면 반응들이 올 겁니다.
필연 : 민홍기쪽 캠프 동향은 어때?
재춘 : 가두연설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필연 : 여전히 반공인가?
재춘 : 그것 밖에는 달리 호소할 것이 없잖습니까?
필연 : .. (자신 만만하게 미소)
씬34. 동, 사무실 안 (낮)
(조필연과 고재춘, 명자가 들어선다. 신문을 보며 기다리고 있던 성모가 자리에서 일어서고...)
필연 : 성모 왔구나?
성모 : 좋지 않은 소식입니다.
필연 : ...? (보면) 이강모에 관한 거냐?
성모 : 아닙니다... (본다) 민홍기가 사채시장의 거물인 백파의 지원을 받기 시작했다는 정봅니다.
필연 : 뭐? 백파가?
재춘 : ..! (놀라서) 백파의 돈이 들어가면, 이번 선거 장담할 수가 없게 되질 않습니까?
필연 : 그 늙은이가 날 속여?
명자 : 어떡해요? 현금 동원력에선 우리가 밀리잖아요.
필연 : 황태섭 회장한테 연락 해. 그 놈들이 돈을 삽으로 뿌리면 우린 트럭으로 쏟아 부어야 돼..!
(재춘, 급히 전화기를 드려는 순간, 벨이 울린다)
재춘 : (수화기 들고) 네... 맞는데요,. 말씀하세요. (사이, 놀란다) 그게 사실 입니까? (급히 메모를 한다) 예.. 예, 알겠습니다.
(사이) 아닙니다. 우리가 직접 찾아뵙겠습니다. (수화기 놓으면)
필연 : 무슨 일이야?
재춘 : 민홍기 집안의 친일 행각을 알고 있는 제보자가 나타났습니다.
필연 : ..!! (놀란다) 지금 어디 있어?
재춘 : 주소를 적어 놨습니다.
필연 : 지금 당장 출발 해.
성모 :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필연과 성모, 재춘이 급히 나간다. 명자, 뭔가 희망이 보이고..)
씬35. 판자집 안 (낮)
(산동네쯤의 판자 집 안이다. 계십니까? 고재춘의 목소리.. 이어서 재춘과 필연, 성모가 들어선다.
좁고 어두운 부엌 안... 필연, 인상 쓰며 살피는데..)
재춘 : 아무도 안 계십니까?
(이때, 방문이 드르륵 열리면 남루한 형색의 공씨가 내다본다. 성모와 짧게 시선 마주치는데...)
씬36. 동, 방안 (낮)
(빈 술병들이 널브러져 있는 궁색한 방안... 조필연과 성모, 재춘, 공씨가 앉아 있고..)
공씨 : 민홍기하고 전.. 어릴 적부터 한 동네에서 살았습니다.
필연 : 알려진 바로는 민후보 부친께서 약방을 운영 하셨다던데... 좋은 일도 아주 많이 하셨구요.
공씨 :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인근에서 악독하기로 소문난 일제 앞잡이 순사였어요.
재춘 : ..! (필연을 보며 의미심장하게)
성모 :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공씨 : 우리 부친께서, 독립운동을 도와줬다는 이유로 민홍기 아버지 손에 돌아가셨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거꾸로 돌아가도
그렇지, 어떻게 독립유공자 후손인 저는 이렇게 살고, 친일파 자식이 국회의원이 된단 말입니까?
필연 : 그 심정, 이해합니다. 근데.. 다른 야당 후보들도 있는데 저한테 제보를 한 이유가 뭡니까?
성모 : .. (공씨를 본다, 짧은 눈짓)
공씨 : (그 시선과 마주치고는) 선거공약이 맘에 들었습니다.
필연 : 제 공약이요?
공씨 : 예.. 서민들을 위한 정치.. 저처럼 억울한 사람들의 한을 풀어 주실 것 같아서..
필연 : 그러셨군요.
성모 : 선생 말고, 다른 증인들이 있습니까?
공씨 : 한 동네 살던 사람들이 몇몇 남아 있어요. 그 사람들한테 협조를 구하면,
민홍기 부친에 관한 자료들을 얻어 낼 수 있을 겁니다.
필연 : 곧 합동유세가 있을 겁니다. 그때, 절 좀 도와주실 수 있으십니까?
공씨 : 자료를 넘겨드리면 되겠습니까?
필연 : 아니, 그것보다는.. 직접 그 자료들을 들고 연단에 나와 주십시오.
공씨 : (놀라서) 제가요?
필연 : 어려운 부탁인 줄 압니다. 하지만, 민홍기를 낙선 시킬 수 있는 방법은 그것이 최선입니다.
공씨 : ..
성모 : 사례는 충분히 해 드리죠. 도와주시겠습니까?
공씨 : (결정한 듯) 그러죠. 이렇게라도, 제 응어리를 풀어야겠습니다.
(재춘, 흡족한 듯, 필연을 본다. 필연, 입가에 그려지는 미소... 필연을 노려보는 성모의 눈빛...)
필연 : ... (E, 웃음소리)
씬37. 달리는 승용차 안 (낮)
(재춘, 운전 중이다. 성모가 조수석에 있고.. 뒷자리의 필연이 웃고 있다)
필연 : 드디어 민홍기를 무너뜨릴 필살기를 찾아냈어.
재춘 : 아무래도 이번 선거는 하늘이 돕는 것 같습니다.
필연 : 제 아무리 백파가 도와준다고 한들, 하늘의 도움만 하겠냐? (재춘에게) 재춘이 넌, 저 사람 뒷조사를 해 봐.
재춘 : ...
필연 : 저 자의 고향이 민홍기와 같은지, 그 부친이 뭘 하다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 샅샅이 조사해 놔.
재춘 : 알겠습니다.
성모 : .. (뭔가 생각하는데)
필연 : 이강모는 어떻게 됐어?
성모 : ..! (생각하다가) 만반의 조치를 다 끝내 놨습니다.
필연 : 그럼..? 이제 사망통지서만 날아오면 되는 건가?
성모 : 오래 안 기다리셔도 될 겁니다.
필연 : (흡족하고) 이제 곧, 이 조필연의 시대가 열릴 거야. 성모하고 재춘이.. 너희들도 이제 고생 다 끝났어. (크게 웃는다)
성모 : .. (싸늘한 비웃음)
씬38. 안기부, 성모 방 (낮)
(찬성이 뭔가를 타이핑 하고 있다. 성모가 들어서고..)
찬성 : 어떻게 됐어요?
성모 : (격앙 된) 됐어..! 조필연이 우리가 던진 미끼를 물었다.
찬성 : 잘됐네요.
성모 : 공 선생님의 신상은 다 바꿔 놨겠지?
찬성 : 네.
성모 : 수고했다, 찬성아.
찬성 : 그딴 거, 식은 죽 먹긴데요, 뭐.
성모 : 두고 봐라.. 이번 합동 유세가.. 조필연의 마지막 유세가 될 거다.
씬39. 어느 부대 앞 (몽타주) (낮)
(정연과 시덕이 위병소의 장교와 뭔가 얘기 중이다.
장교, 인명부를 뒤적이다가 고개를 젖고... 실망하는 정연의 표정..
정연과 시덕, 걸어 나오는데... 정연, 아쉬움에 돌아본다. 눈가에 눈물이 고인 채..)
씬40. 훈련장 일각 (낮)
교관 : 뒤로 취침.. 앞으로 취침... 좌로 굴러.. 우로 굴러...
(교관의 구령대로 구르기를 반복하는 강모와 소태, 수련생들... 534번이 열외로 나와 원산폭격을 하고 있다.)
교관 : 오늘도 너희 중대에서 낙오자가 나왔다.
소태 : .. (534번 남자를 노려본다)
교관 : 이대로, 뱀처럼 기어서 막사까지 간다. 실시..!
- 시간경과
(기어가기 시작하는 수련생들... 강모, 이를 악물며 죽기 살기로 기는데..
소태, 뒤에서 힘겹게 기어오는 534번을 돌아보더니 발로 얼굴을 확 차버린다.
입모양으로 욕을 하며 다시 기는 소태.. 그 옆쪽에서 이를 보는 강모, 표정 없이..)
씬41. 부대 안 전경 (밤)
(초병들의 삼엄한 경계... 간간히 서치라이트가 지나가고..)
씬42. 동, 내무반 막사 안 (반)
(강모와 기훈, 소태와 수련생들이 침상 끝에 서서 단체기합을 받고 있다.
조교가 의자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고.. 졸리고 지쳐가는 수련생들...
이때, 맞은편 침상의 534번 남자... 코피가 흐르기 시작한다.
어지러운 듯이 앞뒤로 몸을 비틀거리다가 쿵, 침상에서 떨어지며 쓰러진다)
소태 : (낮게) 야, 임마.. 일어나.. 일어나란 말야..
(534번 정신을 못 차린다. 소태와 수련생들이 입모양으로만 얼른 일어나라고 눈을 부라리고..
이때, 조교가 눈을 뜬다. 534를 보더니)
조교 : 다들 대가리 박아, 이 새끼들아..!!
씬43. 훈련장 일각 (낮)
(휴식시간이다. 수련생들이 기진맥진 한 채 삼삼오오 앉아서 쉬고 있다.
땀에 흠뻑 젖은 강모가 지친 듯이 앉아 있고.. 그 옆에 534번 사내가 앉아 있다.
이때, 소태와 몇몇 조폭 출신 수련생들이 다가 온다)
소태 : 야, 고문관...
534 : ... (긴장)
소태 : 너, 차라리 그냥 뒤져버려라. 너 땜에 뭐냐구, 아침두 못먹고..
534 : (풀이 죽어서, 사투리) 미안 허구먼이라.
소태 : 미안? 너 때문에 우리가 죽게 생겼어, 임마. (발을 쳐들고) 확 이걸 밟아죽일 수도 없고...
534 : (찔끔하고)
소태 : 아무튼, 너 교육 끝나고 밖에 나가서 봐. 우릴 이런 생고생 시켜놓고 무사할 줄 아냐? (때릴 듯이) 어휴, 고문관 새끼..
(소태와 사내들, 534번을 협박하듯 노려보고는 간다.
강모, 무관심하게 수통에 담겨진 물을 마시다가 문득 옆을 보면... 534번이 침울하게 앉아 있다.
말없이 수통의 물을 건네는 강모..
534번,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가로 젓더니... 팔을 걷어서 손목 위쪽의 싸구려 문신을 보여준다.
하트 모양에 큐피드 화살이 그려져 있고.. 그 밑에 ‘재숙’이라는 글씨가 조잡하게 새겨져 있다)
534 : 재숙이라고.. 어릴 적에 고아원에서 만난 애여... 얼굴은 달덩이를 닮아서... 얼매나 이쁜지...
강모 : .. (본다)
534 : 마르고 닳도록 변치말자고, 나가 여기다가 새겨 놓았당께.
강모 : ...
534 : 근디, 불신검문 때 이거 땜에 잡혀왔어,야... 몸에 문신 있다구..
기멕히지 않냐? 사랑하는 여자땜시롱, 개고생을 허구 있으니 말여.
강모 : 그래도 넌.. 돌아가면 반겨줄 여자라도 있잖아.
534 : (문신 보며) 죽었어... 광주사태 때...
강모 : ..! (의외라, 약간 놀라고)
534 : (슬픈 미소) 술집년이 도청은 뭐땀시 지키것다고 고집을 부려 쌌는지. 그때 나보구 같이 가자구 그러더랑께?
이 꼴로 살아 있을 줄 알았으면.. 그때 같이 가는 건디...
강모 : (본다)
534 : 너 그거 아냐? 거기 사람들.. 살아서 더 괴롭다... 죽은 사람한테 미안혀서..
(눈물 고인다) 나가 그때.. 재숙이랑 같이 못 죽은 게 철천지한이랑께..
강모 : ...
534 : 너두.. 여자 사랑한 죄밖에 없다구 그랬제? 세상에, 하지 못할 사랑?, 야... 날 보랑께.
(문신 보며, 눈물 흘린다) 재숙이 고게, 죽고 없어졌는디.. (문신 보며, 눈물 흘린다) 아직도 요로코롬 사랑하잖여.
강모 : .. (본다)
씬44. 동 내무반 막사 안 (밤)
(취침시간이다. 강모, 소태, 기훈과 수련생들, 이제 막 누워서 잠을 청하려고 한다. 강모 옆에 534번이 누워 있고...
강모, 잠이 안 오는데..
이때, 534번이 나지막히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534 : 사노라면.. 언젠가는 밝은 날도 오겠지.. 흐린 날도 날이 새면 해가 뜨지 않더냐..
(강모, 옆을 보면 534의 눈에서 눈물이 옆 볼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다)
소태 : (낮게) 조용히 안해, 이 새꺄?
534 : (노래 계속)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 밑천인데.. 쩨쩨하게 굴지 말고...
소태 : 저게 증말..! (확 일어서며 베개를 집어던진다)
(534번, 끝까지 노래한다. 수련생들 눈에도 눈물이 고여 있고.. 기훈, 묵묵히 그 노래를 들으며...
강모, 굳은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잠을 청하는데서...)
씬45. 만보건설 주차장 안 (아침)
(승용차가 막 들어서고... 민우, 차에서 내린다. 습관적으로 주변을 둘러보는데 아무도 없다.
인서트로 짧게.. ‘안녕하세요, 인사하는 미주’
민우, 그런 자신이 짜증난다. 인상 팍 쓰며 걸어가는데..)
정식 : 민우야.. (다가온다) 지금 출근 하냐?
민우 : ..
정식 : 근데, 요즘 그 촌닭이 안 보이네? (슬쩍 떠보듯) 니들.. 뭔 일 있는 건 아니지?
민우 : 무슨 일?
정식 : 아니, 뭐... 매일 나와서 차 닦던 애가 갑자기 안 보이니까... 혹시, 너... 그날 밤에...
민우 : (인상 확 쓰며) 내가 너 같은 줄 아냐? (간다)
정식 : ... (따라가며) 그 촌닭이, 벌써 제풀에 지친 건가? 쉽게 물러설 기세가 아니었는데..
민우 : 귀찮은데 잘됐어. (간다)
정식 : .. (따라가고)
씬46. 동 기획실 안 (아침)
(직원들이 업무 중이다. 정연은 보이지 않고..)
민우 : (들어서며) 좋은 아침입니다.
(직원들,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이에요.. 인사들을 하고.. 민우, 들어가려는데)
성중 : 오늘도 도시락 없습니까?
민우 : .. (본다)
직원남 : 덕분에 며칠 동안 점심시간이 즐거웠는데..
여직원 : 먹고 싶어요, 실장님.
민우 : 김밥 같은 거, 앞으로 없을 겁니다. (안으로 들어간다)
씬47. 동 실장실 (아침)
(민우, 겉옷을 걸어놓고 자리에 앉는다. 잠시 생각...)
미주 : (E) 실장님, 생각보다 좋은 사람인 거 같아요.
- 인서트 (회상)
미주 : 곧 고소도 취하해 주실 거죠?
- 다시, 현실
(민우, 수화기를 든다. 다이얼을 돌리려다 말고 어이없다는 듯 픽 웃고는 다시 내려놓는데...
이때, 성중이 들어온다.)
성중 : 실장님... 이번 유출 사건의 장본인이 잡혔답니다.
씬48. 오로라 레코드사 복도 (낮)
(민우가 나온다. 지나가 사무실 앞까지 나와서 인사하고.. 민우, 걸어 나오는데... 위로...)
지나 : (E) 사실 미주도 피해자에요.
씬49. 병원 복도 (낮)
(민우, 병실을 찾는다, 문이 열려져 있고.. 민우, 들여다보는데...)
지나 : (E) 이번에 가수 데뷔할 수 있었는데, 정미 때문에 물거품 됐거든요.
씬50. 병실 안 (낮)
(병색이 짙은 정미 모가 누워 있다. 미주가 물수건으로 열심히 팔 다리를 닦아주고 있다)
정미 모 : 내일부턴 안와두 돼요.. 나 혼자 다 할 수 있어.
미주 : 힘든 일도 아닌데요, 뭐.
정미 모 : 우리 정미는.. 언제 와요?
미주 : 지방에 공연 갔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쫌만 기다리면 정미가 돈 많이 벌어서 올 거예요.
정미 모 : 내가 얼른 죽어야지.. 그래야 내 딸,. 고생 안 시키지..
미주 : 정미 위해서라도, 얼른 일어나세요. 엄마라고 부를 수 있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아세요?
정미 모 : ... (손잡는다, 눈물 글썽이며) 고마워요.
(미주, 정미모의 손을 잡아준다, 눈물 고인 채...
민우, 그런 미주를 물끄러미 보고 있다. 그 위로...)
지나 : (E) 근데도 병원에 정미 어머니 혼자 있게 된 거 알구... 그 날부터, 병간호 하고 있어요.
민우 : .. (미주를 보는데, 달라진 눈빛이다)
씬51. 군사훈련장 (낮)
(수련생들이 높은 다이빙대에서 줄을 타고 진흙탕을 건너고 있다. 무사히 착지한 수련생들이 ‘000번 올빼미 하강 끝..!’ 외치고..
534번이 겁에 질려 줄을 잡은 채 뛰어내리지 못한다. 그 뒤에 박소태가 있고.. 그 뒤, 뒤쯤에 강모가 보고 있다)
조교 : 야, 534번..! 뭐해, 빨리 안 뛰어 내려?
534 : .. (겁에 질려서)
소태 : 빨리 뛰어, 임마.
조교 : 534번..!!
(534번, 겁에 질려서.. 소태, 연대 기합을 받을까 답답하다. 확 밀어버리는데.. 534번이 밑으로 뚝 떨어지고..
강모, 감정의 동요 없이 보기만...)
씬52. 연병장 안 (낮)
(구보중인 수련생들... 뒤쪽에 강모와 소태, 534번이 있고.. 534번, 다리를 다쳐서 절뚝이며 자꾸 쳐진다.
소태, 인상 쓰며 돌아보고는 빨리 뛰라고 재촉하는데... 강모, 차갑게 외면하는...
이내, 비틀거리며 넘어지는 534번.. 뒤따르던 조교가 곤봉으로 후려치는데..)
소태 : 아, 저 새끼 때문에 또 단체기합이네..
강모 : ... (무표정하게, 이를 악물고 뛰는)
씬53. 훈련장 일각 (낮)
(수련생들이 반합에 담긴 꿀꿀이죽을 먹고 있다.
내무반장 표시인 노란 완장을 찬 소태가 주머니에서 날계란 하나를 꺼내든다)
소태 : (입맛 다시며) 내무반장이 이런 맛이라도 있어야지...
(소태, 이빨로 톡톡 계란 끝을 깨뜨리는데 다른 수련생들이 눈이 뒤집혀서 미친 듯이 달려든다.
소태, 계란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다가 손에서 버석 깨져버리고..
소태, 미친 듯이 손바닥을 핥아먹는다. 다른 수련생들도 흘린 계란을 먹으려고 난린데...
다른 일각.. 강모, 허겁지겁 먹고 있다.
이때, 534번이 자기 반합 안에 들어 있던 반토막짜리 꽁치 몸통을 떠서 강모 반합에 넣어준다. 강모, 보면...)
534 : (미소) 먹어, 난 괜찮은께..
강모 : (도로 반합에 넣어준다) 먹어 둬... 살아서 나가려면 돌이라도 씹어 먹어야 돼.
534 : .. (다시 강모 반합에 넣는다)
강모 : .. (보면)
534 : 먹어... 먹으랑께..?
강모 : ... (보다가, 먹는다)
534 : ... 밥두 밥값 하는 사람이 먹어야제.. 난 밥값두 못하잖여..
강모 : .. (먹는데)
534 : 나가.. 더는 못 버틸 거 같다...
강모 : ..! (본다)
534 : 더는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까정 고통 받는 것도 못보것고..
강모 : 남 생각 하지 말고, 니 생각만 해. 여기선 그래야 돼.
534 : (문신 보며, 눈물 고인다) 나.. 재숙이 보고 싶어서 미치겄다..
강모 : ...
534 : 밥두 안 넘어가, 야.. 보구 싶어서.. (우는데)
강모 : .. (먹는다)
씬54. 부대 전경 (밤)
(경계병들의 삼엄한 경계... 서치라이트가 지나간다)
씬55. 내무반 막사 안 (밤)
(다들 골아 떨어져 있다. 강모, 몸을 뒤척이다가 깨어나는데 옆자리가 비어 있다. 534번이 보이지 않고..
강모, 뭔가 이상해서 몸을 일으키고 주변을 살피는데...)
씬56. 부대 안 (밤)
(철조망이 쳐져 있는 담장 근처... 534번이 다리를 절뚝거리며 천천히 다가온다. 담장 너머에 떠 있는 둥근 달...)
534 : (미소, 달을 잡으려고 손을 뻗으며) 재숙아.. 나여.. 나랑께.. 재숙아..
(이때, 서치라이트가 534번을 비추고... 거기 누구야..!! 경계병의 날카로운 목소리..!
534번, 놀라서 돌아보는데 눈이 부시고...
이어지는 긴급 싸이렌 소리... 곧이어 총소리가 요란하더니 534번이 총에 맞고 쓰러지는데...)
씬57. 동, 내무반 막사 안 (밤)
(총소리에 놀라서 몸을 일으키는 강모... 소태와 기훈, 다른 수련생들도 잠에서 깨며 일어나고...
불길한 듯, 놀란 강모의 표정...)
씬58. 동, 부대 안 (밤)
(534번, 달... 달을 잡으려고 마지막 안간힘을 쓰더니 이내 눈을 뜬 채 숨이 끊어지고..)
씬59. 동, 막사 안 (밤)
(밖에 나갔던 소태가 들어선다)
소태 : 아, 진짜 그 자식... 죽어서까지 민폐네.
(이때, 기훈과 수련생들이 몰려들더니 소태를 에워싼다)
소태 : 어떻게 그렇게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냐? 내무반장 더러워서 못해 먹겠.. (뭔가 심상치 않고)
기훈 : 사람이 죽었다. 니 입에서 그게 할 소리야?
소태 : 뭐야?
기훈 : 534번, 니가 죽였어. 네 놈이 죽인 거나 마찬가지야.
소태 : 왜들 그래? 다들 미쳤어? 니들두 걔 때문에 힘들었잖아. 차라리 그 새끼 없어지는게...
(기훈과 사내들이 살기등등하다)
소태 : 나, 내무반장이야, 이것들아.. 이 완장.. 완장 안보여? 어?
(수련생들이 한꺼번에 달려들더니 무지막지하게 소태를 짓밟기 시작한다. 소태, 몰매를 맞는데...)
소태 : 잘못했어.. 살려 줘... (강모와 시선 마주치자) 강모야. 날 좀 살려 줘.. 강모야.. (얻어터지는데)
강모 : .. (차갑게 보기만)
씬60. 연병장 안 (그 밤)
(집합해 있는 강모와 기훈, 수련생들... 소태, 얻어터져서 엉망인 모습이다.
조교 두 명이 리어카에 534번의 시신을 담아서 끌고 나온다. 거적으로 덮여있고...
교관이 수련생들 앞에 나선다)
교관 :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이 상태로 대기한다.
만약 한 놈이라도 그 자리를 이탈하면.. 그땐, 너희들도 무사치 못할 것이다.
(교관과 조교들, 안으로 들어간다. 리어카에 죽어 있는 534번...
강모, 애처롭다. 수련생들, 침통하게...)
씬61. 그곳 연병장 안 (시간 경과, 아침)
(비가 쏟아지고 있다. 모두 젖은 채로 사시나무 떨듯이...
강모, 리어카 안의 534번을 본다. 거적 밖으로 드러난 팔 문신.. 재숙이라는 이름... 그 위로..)
534 : (E) 먹어... 먹으랑께..? 밥두 밥값 하는 사람이 먹어야제.. 난 밥값두 못하잖여..
- 인서트 (회상)
534 : 나가.. 더는 못 버틸 거 같다...
강모 : ..! (본다)
534 : 더는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까정 고통 받는 것도 못보것고..
- 다시 현실
(강모, 어느새 눈물이 고인다.
옆자리의 소태가 비틀거리기 시작한다. 뒷줄의 사내가 옆구리를 쥐어박으며 똑바로 서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이때, 지친 기훈도 앞뒤로 몸이 흔들린다.
강모, 놀라서 다른 사람들을 보면 꽤 많은 수련생들이 곧 쓰러질 듯이 비틀거리기 시작한다.
강모, 옆에 있는 소태의 손을 잡는다. 소태, 놀라서 강모를 보는데...
소태 다음의 기훈이 강모를 본다. 강모, 고개를 끄덕이면 기훈이 소태의 다른 쪽 손을 잡는다.
강모, 다른 쪽 사내의 손을 잡고는 눈짓으로 옆 사람을 잡으라고... 수련생들.. 조심스럽게 옆 사람에게 손을 내민다.
그렇게 도미노처럼 서로의 손을 잡고 잡아주는 수련생들... 어느새, 서로의 손을 맞잡은 채 하나의 띠가 되어 있는 수련생들...
강모, 잠시 534반을 보더니 나지막히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강모 : 사노라면.. 언젠가는 밝은 날도 오겠지...
(수련생들이 천천히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한다.
... 흐린 날도, 날이 새면 해가 뜨지 않더냐..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 밑천인데 쩨쩨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 펴라...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어느새, 강모의 눈에도, 기훈과 소태, 다른 수련생들의 눈에도 눈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쏟아지는 빗줄기에 묻히는 그들의 노래... 죽어 있는 534번...
이때, 교관과 조교들이 나온다. 다들, 노래가 끝이 나도 손을 놓지 않는다. 교관 잠시 좌중을 훑어보다니...)
교관 : 523번..!
강모 : ..? (나선다) 예, 523번, 수련생..!
교관 : 리어카를 끌고 따라 와라.
(다들, 의아한 듯 강모를 본다. 강모, 영문을 모른 채, 534번이 누워 있는 리어카를 끌고 교관을 쫓아간다)
씬62. 어느 창고 안 (아침)
(534번이 누워 있다. 교관과 강모가 단 둘이 있고...)
교관 : 523번...
강모 : 네.
교관 : 지금 당장 534번과 옷을 바꿔 입어라.
강모 : ..? (본다)
교관 : 넌 이시간부로, 523번이 아니라 534번이 되는 거다.
강모 : ..!! (그제야 그 말의 의미를 안다.)
교관 : 내말 안 들리나..! 어서 옷 갈아입어..!!
(강모, 웃옷을 벗더니 534번 수인 번호가 찍힌 옷을 미친 듯이 벗겨낸다. 쏟아지기 시작하는 눈물...
이를 악물며.. 강모, 마치 살기 위해 무덤을 파헤치는 사람처럼 미친 듯이, 처절하게 울면서 옷을 벗기는데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