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루벤] 서울시 종로구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186번지 T.02-738-0321
갤러리루벤 기획 박재웅 개인전
조경(造·眺景)
각각의 식물의 모습을, 각각의 화폭 위에 담아 순차적으로 한 식물의 여러 모습을 재현하여 완성한다.
그의 이러한 행위는 단순히 식물의 변화 과정을 그림으로 남기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시간에 얽매여 사라져 가는 식물의 시간성을 관조적 입장으로서 지켜보며, 참여한 것이다.
글 | 양운철
[2009. 11. 11 - 11. 17 갤러리루벤]
여기에 존재한다는 것은 선천적 조건으로서 시간에 얽매여 있다는 것이며, 모든 게 변화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사람은 이런 진부한 사실에서 벗어나 원하는 기억을 그대로 눈 앞에 머물게 하고자 자연사물로부터 시간을 떼어내어 남기는 행위를 한다.
박재웅, 그도 특정한 자연사물을 화폭에 재현하며 남기는 행위를 한다. 화폭에 담은 것은 식물의 일부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간단히 만날 수 있는 파, 피망, 상추 등으로, 선택된 식물은 그와 어떤 특별한 기억이나 중요한 연관성이 있는 것이 아니다. 왜 그는 그와 특별히 관계없는 식물의 일부를 재현하여 그림으로 남겼을까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처음 시작하는 그의 행위는 하나의 유기체였던 식물이 따로 분리되어 곧, 사라질 식물의 부분을 선택하는 일이다. 그리고 자신의 눈 앞에 선택한 식물을 배열하고, 매 순간 시간에 따른 식물의 변화를 유화물감으로 얇게 붓으로 한번씩 덮어가며, 밝고 투명하게 재현해 나간다. 식물은 다른 자연사물에 비해 빠르게 썩어 사라져 간다. 그는 시간의 차이를 두며, 각각의 식물의 모습을, 각각의 화폭 위에 담아 순차적으로 한 식물의 여러 모습을 재현하여 완성한다. 그의 이러한 행위는 단순히 식물의 변화 과정을 그림으로 남기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시간에 얽매여 사라져 가는 식물의 시간성을 관조적 입장으로서 지켜보며, 참여한 것이다. 그가 식물을 선택한 것은, 짧은 시간 동안 빠르게 사라질 식물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눈으로 쉽게 인식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비록 그 역시 식물과 동등하게 시간에 얽매여 있지만, 그의 행위 과정 내에서는, 대자적 존재가 되어 피동적으로 시간에 의해 사라질 식물을 화폭에 남기는 능동적인 입장을 취하고, 식물에게서 시간성을 떼어 내고 영원성을 부여한다.
이러한 행위는 모든 존재에게 수동적으로 부여된 시간성으로부터 정작, 자신은 따로 떨어져 나와 능동성을 지닌 시간의 관조자가 되는 과정에 머무르며, 식물의 본성을 끄집어 내어 사생(寫生)한 것이다. 그의 또 다른 작품으로서, 인물화를 보면 행위의 목적을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인물은 그와 동등한 현존재다. 그가 그린 인물은 삶을 살면서 능동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만들어 나아가기 보단 쉽게 주어진 관계들에 따라 쫓아가는 무리본능을 지닌 현존재이다. 이는 시간에 의한 식물의 수동적 존재 상태와 동일하다. 인물은 식물처럼 짧은 시간 동안 변화가 눈에 띄게 나타나는 존재가 아니다. 그가 인물을 선택한 것은 이미 지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쌓여져 나온 모습 즉, 그 인물만의 고유한 삶의 모습 형성 과정을 찾고자 하는데 있다. 인물의 얼굴에는 삶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녹아져 있다. 그는 식물을 사생해 가는 과정과 동일한 형식으로, 더 밝고 투명하게 인물의 얼굴에 스며든 시간을 사생해 나아간다. 그에게 인물은 식물보다 더 가깝고 동일한 존재로서, 그도 어쩌면 그려 나아가는 인물처럼 수동적인 삶을 살아 왔으며, 자신의 모습을 인물화에 투영시켰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인물을 화폭에 담아 가는 행위 과정에 있어선, 수동적인 존재와 다른 더 확고한 능동성으로, 그려 나아갈 인물과 상관없는 자, 아무런 사념 없이 바라보는 시간의 관조자가 되어 가는 것이다.
시간의 흐름에 나약할 현존재, 박재웅, 그는 시간의 강 위에 서서 다른 존재들의 변화를 관조하는 자다. 하지만 그저 방관하는 태도로 일관하지 않는다. 시간의 강 위에서 지그시 변화하는 존재에게 시간성 대신 영원성을 부여해 주며, 생생히 우리 눈 앞에 기억을 현재로서 남기는 능동적인 행위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