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내 내기 / 계환 스님
어떤 관헌이 부임받은 지방을 순시하게 되었다.
이때 고을 사람들은 새로 부임한 군수의 얼굴을 보려고
길거리로 나와 군수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군중 속에 늙은 어머니를 업은 아들이 있었다.
그를 본 군수는 저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고,
수행원은 어느 마을에 사는 아무개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대단한 효자인 것 같으니 상을 주라고 명하였다.
그리고 3∼4일 후, 군수는 또 다른 마을을 가게 되었는데
그 곳에서도 역시 노모를 업은 아들이 길가에 서 있었다.
군수가 저 이는 누구냐고 묻자, 지난번 그 사람인데
또 상을 받으려고 나온 모양이라고 하였다.
군수는 또다시 상을 주라고 지시하였다.
수행비서가 속이 보이는 행동을 하는 저런 사람에게
상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하자, 의도야 어쨌든
좋은 흉내는 한번 이라도 좋은 행동이니 상을 주라고 한 것이다.
말하자면 좋은 일은 흉내일지라도 좋은 것인 반면에,
나쁜 일은 흉내조차도 나쁜 짓이 된다는 뜻이다.
비록 그 군수가 불교의 業 사상까지는 몰랐을지언정
흉내를 내는 행위 그 자체에 무게를 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업인 것이다.
<법화경>에도 아이들이 장난삼아 모래로 탑을 쌓은 공덕으로
다음 생에 성불의 인연을 맺은 내용이 나온다.
우리가 5분간 눈을 감고 있으면 그는 5분간 앞을 못 보는 사람이 되고,
10분간 다리를 절면 그는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불구자인 셈이다.
이처럼 우리가 수행자이든 불자이든 하루에
부처님을 5분 동안 흉내 낸다면 5분간은 부처님인 것이고,
1시간 부처님의 마음을 가진다면 그 시간 동안은 부처님인 것이다.
이러한 시간들을 점차 늘려간다면 부처님 흉내에 그치지 않고,
진정한 부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불교를 얼마만큼 아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실천하고 사느냐가 중요하다고 하겠다.
이것은 부처님이기 때문에 존경받아야 마땅한 것이 아니고,
부처님다운 삶을 사셨기 때문에
우리가 존경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불교신문]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