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2017-11-11)
<
음식의 맛
>
문하 정영인
음식의 맛은 혀가 아니라
뇌(腦)
맛보는 것이라
한다.
영국의 옥스퍼드대학 찰스 스펜스 교수가
연구한 결과다.
그는 미식물학을
개척하는 교수다.
즉 음식을 먹기 전에
느끼는 오감에 의하여 이미 뇌에서 맛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우선 눈으로 맛을 보고,
코로 냄새를
맡고,
만져보고 소리 듣으면
혀로 직접 맛도 보기 전에 맛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거기다가 숱한 맛
경험을 통하여 축적된 기억 맛이 결정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아마 마지막 관문은
혀일 것이다.
집사람은 음식을 먹어보지도 않고 맛을
결정한다.
음식의
색깔,
향,
모양,
경험 등에 의해서
맛의 호불호(好不好)를 결정하는 버릇이
있다.
한번은 딸네 식구와
강원도 양양쪽으로 맛기행을 떠난 적이 있다.
동치미막국수,
섭지국,
자연송이탕수육,
전복해물탕,
명태냉면,
물회
등.
한끼도 같은 것을
먹지 않는 호사를 누린 적이 있다.
저녁에 섭지국과
산초유로 부친 시골 손두부를 먹으러 갔다.
집사람은 산초유의
특유한 냄새를 맡더니 자기는 산초유로 부친 두부를 안 먹겠다는 것이다.
생각보다 맛이 있길래
몇 번 귄해도 막무가내다.
두툼한 시골 손두부를
솥뚜껑을 엎어 놓고 산초유(山椒油)를 두르고 부친 두부는 생각을 뛰어 넘는
맛을 풍미가 있었다.
한 점 남은 두부를
내가 억지로 먹게 보게 하였다.
오만상을 찡그리고
맛을 보던 집사람은 맛이 있다고 야단이다.
결국 한 접시 더
시켜서 게걸스럽게 먹기까지 하였다.
아마 이런 것이 뇌가
먼저 맛을 보는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이렇게 맛의 결정은 우선 보기 좋은 떡이
먹기 좋다고 속담처럼…….
먹기 전의 외적요소는
색깔,
향,
모양,
배열 등이 맛의
요인으로 작용하나 보다.
그래서
명기(皿器)라는 말이 생겼나 보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니깐.
어떤 신부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술을 먹을 때 잔을
부딪치며 건배(乾杯)
이유는 술을 귀로
맛보기 위해서란다.
술도
오감(五感)으로 맛보는 것이다.
술의
향기,
색깔,
촉감,
혀의 감촉은 사전에
인지하지만 소리로는 맛을 볼 수가 없다.
그래서 잔을 부디쳐
귀로 맛을 본다는 것이다.
와인을 먹을 때 코로
우선 맛을 보고,
잔을 흔들어 색깔이나
감촉을 느껴보는 것이다.
우리가 막걸리를 먹을
때 새끼손가락으로 휘휘 저어 오감으로 맛을 보듯이 말이다.
또 어떤 술잔으로
먹느냐,
술의 온도는 어떤
때가 가장 술맛이 나느냐 등.
맥주나 와인은 투명한
유리잔에다 마셔야 제격일 것이다.
막걸리는 투박한
질그릇 대접에다 안성맞춤이다.
사케는 날렵하고 작은
잔에,
커피는 머그잔이
어울리는 것처럼 다 제 맛의 짝이 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행복은 우선 배가 불러야 한다.
그렇게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암환자가 항암 치료
후 우선 먹어야 살 수 있다.
하기야 먹기 위해서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아주 소박한 밥상이라도 음식의
맛,
질감,
향기 등을 음미하면서
먹자.
꼭꼭 씹고 공손하게
감사하며 먹자.
쌀 한 톨에
일미칠근(一米七斤
)이고,
팔십팔수(八十八手)이다.
먹는 것을 허투루
대하는 자에겐 아귀(餓鬼)가 달라 붙는다고 한다.
귀신 중에 굶어죽는
귀신이 가장 무섭단다.
같은 음식도 좀 우아스럽게
먹자.
같은 음식이라도 마구
담은 것보다는 정갈하게 담은 것이 더 손이 간다.
내가 30년간을 주일마다 모이는
아주머니(실은 할머니지만)에게 감명 깊게 들은 이야기가
있다.
자기는 화가 나
있거나 마음이 좋지 않을 때는 절대 김치를 안 담근다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음식은
거룩한 것이다.
생명이 달린
문제이니깐.
쌀 한 톨 허투루
버리지 않던 우리 조상들의 삶의 지혜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먹기 전에 음식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미리
간을 보는 기대치가 맛을 결정한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음식을 먹기 전에
‘맛있겠다’
라는 기대치 있는
주문을 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