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에도 뼈가 있다'는 뜻으로 복이 없는 사람은 모처럼 좋은 기회를 만나도 일이 잘 안 풀린다는 말이다.
계란에 뼈가 있으면 어떻게 될까?
먹을 수가 없을 것이다.
실제로 계란에 뼈가 있을 수는 없다.
이 말은 계란이 곯아서, 상해서 먹을 수 없다는 뜻이다.
이것을 한문으로 옮기면서 마땅한 표현이 없어 '유골(有骨)' 즉 '골이 있다'로 적었고, 한자 골(骨)은 뼈를 나타내
지만 우리말의 '곯다'와 소리가 비슷하기 때문에 그리 쓰이기도 한다.
이와 비슷하게 언중유골(言中有骨)이라는 말이 있다.
말 속에 뼈가 있다는 뜻인데, 무슨 말을 하는데 그 속에 감춰 둔 뜻이 느껴질 때
이 말을 쓴다. 계란유골(鷄卵有骨)도 이 말이 주는 느낌 때문에 혼동되어 쓰이기도 한다.
오늘은 소신과 관용의 리더십을 갖춘 명재상 황희(黃喜, 1363~1452)와 관련된 고사를 통해 심심한 역사이야기
를 엮어갑니다.
⚘⚘⚘⚘⚘⚘⚘⚘⚘⚘⚘⚘⚘⚘
1418년, 건국된 지 얼마 안 된 새 왕조 조선에 정치적 파란이 일어났다.
바로 당시까지 세자였던 양녕대군을 폐위시킨 사건이었다.
세자의 교체는 자칫 엄청난 살육을 불러올 정도로 정치적 파장이 큰 사건이었다.
양녕대군을 폐위시킨 것은 계속되는 세자의 잘못된 행동 때문으로 알려져 있는데, 양녕대군을 폐위시킨 태종도
마음에 내키지는 않았을 것이지만 어렵게 세운 새 왕조의 명운이 걸린 문제이기에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황희(黃喜)가 세자의 폐위를 반대하고 나섰다.
당시 이조판서로 재직하던 황희는 대부분의 신료가 세자폐위를 지지하는 상황에서 "폐장입유(廢長立幼 - 장자를
폐하고 아랫사람을 세움)는 재앙을 부르게 되는 근본이옵고, 또 세자가 비록 미쳤다고 하오나, 그 성품은 가히 성
군이 될 것 이오니, 치유에 주력하시기 바라옵니다." 라며 국왕의 판단에 재고를 요청하였다.
그러나 태종과 주위 대부분 신료는 듣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황희를 지탄하였다. 황희(黃喜)는 끝내 주장을 굽
히지 않고 반대하다 마침내 강등되어 유배를 갔다. 황희(黃喜)의 정치적인 소신과 원칙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조선조에서 재상까지 역임하였으면서도 청백리로 거론되는 인물로는 약 18명이 거론된다. 그리고 단연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는 이가 바로 황희(黃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