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감독, 맷 데이먼, 앤 해서웨이 주연의 영화 "오디세이"가 개봉했습니다.
3시간 가까운 상영에 맞춰 크리스토퍼 놀란, 맷 데이먼이 방한하기도 했습니다.
3800억원이 투입된 대작입니다.
1998년 스티븐 스필버그감독, 톰 행크스와 공연하며 라이언일병으로 출연했던 영화 "라이언일병 구하기"의 맷 데이먼은 이제 55살이 되었네요.
오디세우스의 아내 페놀로페역으로 줄연한 앤 해서웨이는 묘하게도 세익스피어의 아내 이름이기도 합니다.
1954년에는 커크 더글러스,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여배우 실바나 망가노가 출연한 이탈리아 영화 "율리시즈(Ulysses)"가 고대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의 같은 원작 "오디세이아"를 원전으로 하고 있는데 누 영화간 72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영화제목 율리시즈(Ulysses)는 호메로스의 그리스어 오디세이아의 주인공 오디세우스를 로마가 라틴어로 표기한 것이며 이 표기가 영어에도 전해졌습니다. 커크 더글러스, 안소니 퀸이 미국 배우이기도 하지요.
따라서 21세기 영화 오디세이와 1954년 영화 율리시즈는 같은 제목의 영화입니다.
1960년대 부산 대영극장에서 영화 율리시즈를 봤는데 커크 더글러스, 실바나 망가노, 영화의 마지막에 오디세이의 활 시위를 채우는 도전 장면에서 도전했다가 실패한 안소니 퀸까지, 오래 된 영화인데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그 영화장면 중에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선원들을 유혹하여 바다에 빠지게 하고 배를 위험에 빠뜨리는 바다의 요정 사이렌이 나오는데 오디세우스는 배의 마스트에 자신을 묶어 노랫소리에 이끌리지 않게 합니다.
세월이 흐른 뒤 이 요정 사이렌은 커피맛으로 사람을 유혹하여 커피에 빠지게 하겠다는 이념으로 커피숍 스타벅스의 로고로 채택되었습니다.
영화 오디세이 개봉 이후 세이렌으로 표기되고 있는데 사이렌이 경적을 뜻하는 현실에서 표기에 변동을 준 것 같은데 스펠링은 Siren입니다.
서양의 고전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원전으로 한 두 영화, 시간 나면 일람해 보시길.
1954년 영화 율리시즈는 인터넷에서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의 영화제목 오디세이는 그리스어 원작의 제목을 따른 것입니다.
원작자 그리스의 호메로스는 기원전 8세기에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라는 대서사시를 인류유산으로 남겼습니다.
트로이전쟁이 끝나고 고향 이타카왕국으로 귀환하는 오디세우스의 10년에 걸친 과정, 고난, 모험, 풍파, 신들과의 싸움, 마녀와 요정과의 만남, 오만, 겸손, 인간의 온갖 성격이 10년. 동안 펼쳐지며 5일이면 닿을 수 있는 이타카까지 10년이 걸리는 귀환의 과정이 이어집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20년민에 고향에 돌아온 오디세우스가 거지로 변장하고 두건을 눌러 쓴 채 20년동안 그를 기다려 온 왕비 페넬로페와 격자문을 사이에 두고 대화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거지는 트로이전쟁에서 오디세우스뫄 함께 전투를 했다고 말하고 왕비는 그에게 오디세우스가 전투에서 어땠느냐고 묻습니다.
거지는 오디세우스가 트로이와의 10년 전투끝에 마침내 성을 함락하고 남아있는 적군을 살인, 방화, 겁탈,문명파괴를 하는 것을 지켜보며 인간이 할 짓은 무엇인가라며 고통스러워했다고 말합니다.
거지의 입을 빌린 오디세우스의 독백이 아니었을까요.
이 장면은 영화의 각본을 쓰기도 한 크리스토퍼 놀란감독이 의도적으로 삽입한 장면으로 보이며, 원작에는 이런 묘사가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오늘날 21세기 문명의 시대에도 인류는 여전히 전쟁과 파괴를 반복하는 퇴행적인 현실에 경종을 울리기 위한 메시지를 담은 것으로 보입니다.
오디세우스가 기억을 잃기도 하다가 고행과 난관을 뚫고 10년만에 고향 이타카에 마침내 표류하듯이 귀환한 것은 결국 사랑하는 아내와 가족을 재회하기 위한 머나먼 여정이었다면, 삶의 고난은 결국 전쟁과 문명파괴를 뚫고 평화와 사랑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데 귀착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21세기의 전쟁폭력은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인가.
우리 모두가 결국 돌아가야 하는 마음속 이타카는 어디인가.
10년의 귀환과정 중에 외눈박이 식인거인, 포세이돈의 폭풍우, 거인족, 마녀 키르케, 바다의 요정 칼립소 등을 만나면서 고난과 안락함이 교차되는데 칼 립소는 오디세우스에게 로토스를 먹여 기억을 잃게 하고 오디세우스가 7년동안 안락한 생활에 빠지게 합니다.
이 고난과 안락함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과정에 대비되는데, 결국 오디세우스는 병사들을 다 잃고 홀홀단신 왕이 자리를 비운 20년동안 위험해진 고향 이타카로 뗏목을 타고 귀향하는 장면에서 인간이 추구해야 하는 가치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고, 위험에 빠진 왕비 페넬로페와 아들 텔레마코스를 구해냅니다.
이타카에서 혼란을 수습하고 평정을 되찾은 오디세우스는 왕위를 아들 텔레마코스에게 물려주고 페넬로페와 함께 서쪽으로 항해하여 남은 생을 공유하고 희생된 생명을 기리겠다고 합니다.
그 서쪽에 서방정토가 있을까요?
인간의 삶은 평화와 사랑에 귀착됨을 오디세이의 의지를 통하여 인류에게 호소하는 장면이 아닐까 합니다.
2800년전의 원작이 주는 사극과 21세기 문명의 부조리가 오버랩되는 영화 오디세이, 일람하면 느끼는 바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영화속에는 오디세우스가 전장으로 떠나면서 친구 멘토(Mentor)에게 어린 아들을 잘 성장하도록 부탁하여 멘토가 왕자에게 검술을 가르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기에서 오늘날의 멘토라는 용어가 파생되었다 합니다.
요즘 인사말에는 이런 표현도 있다네요.
"아직 오디세이 안 보고 오디세요?"
첫댓글 해박한 지식과 경험으로 올려주신 "오디세이" 읽고 또 읽었습니다. 매우 감사합니다. 곧 "오디세이" 보러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