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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산림 대법회 154강 – 3 – a
大方廣佛華嚴經 卷 第五十二
如來出現品 第 三十七之二
三. 普賢菩薩의 說法
6. 如來出現의 行
(1) 如來의 無碍行과 眞如行
(2) 如來의 眞如行
(3) 如來無碍行
(4) 二行의 重頌
가. 眞如行
나. 無碍行
7. 如來出現의 正覺
(1) 正覺의 體相
(2) 三世一切法의 了知
이번 시간에는 288페이지 6번 “여래 출현의 행”입니다.
여래출현의 경계는 끝났습니다. 그렇지요? 여래 출현의 경계는 끝났고,
‘여래의 행은 일단 두 가지 행이 있다. 하나는 無碍行(무애행)이 있고,
하나는 眞如行(진여행)이 있다.’ 이렇게 봅니다.
“無碍行이라고 하는 것이 뭐고, 眞如行이라고 하는 것이 뭐냐?”
무애행이라고 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卽理之事行(즉리지사행)이라.
이에 즉한 사의 행이다.” ←이렇게 얘기하고요.
진여행은 “卽事之理行(즉사지리행)이라. 사에 즉 한 이치의 행이다.”
무슨 말인가 하니, 바깥으로 나오는 행동 하나ㆍ하나가 사건 사물을 바라
보는, 견물! 사건ㆍ품격을 대하는 것이 “卽理라.” 반드시 진리에 맞춰서
하는 것을 “무애행이라.” 무애도 아무나, 망장무애 해버리면 골치아픈...
허망하게 그냥 “아~ 이 무애행인데” 하고, 막행막식 하고는 다르잖아요.
안쪽에는 거지노릇을 하든지 똥을 밟든지 뭘 하든지 간에,
욕을 하든지 간에, 무애행을 하더라도 안쪽에 뭐에 딱 부합돼야 됩니까?
卽理! 사리 분별. 理事冥然無分別(이사명연무분별)이 바로 여기에 해당
하는 것이되겠습니다.
理事冥然無分別은 부처님만 가능한 여래 출현을 “理事冥然無分別이라.”
합니다.
그러니까 “이에 즉해서 사가 나온다.” 하는 것은 쉽게 말씀드리자면,
요즘 단풍이 들고 낙엽이 지고 이런 것은 사가 보이고,
봄에 새싹이 돋아나고 여름에 꽃이 피고 열매가 맺혔다가 가을에 다 떨어
지고, 겨울에 앙상하게 되는 것이 사가, 事實(사실)이 그렇게 보이는데,
안쪽에서는 理實(이실)이 돋아났다가 꺼졌다가, 理實이 움직였다가 왕성
하다가 잠잠하다가 하잖아요. 그렇지요? 안쪽에요.
그것을 “理隨事變(이수사변)이라.” 또 “事得理融(사득이융)이라.” 그러
지요. 이치는 사가 변하는 데에 따라서 이제 그 크기만큼 나오는 것이지요.
여름에 따뜻해지니까 안쪽에 理도 더 크게 쭉~~ 밀어내주고, 바깥에 추우
니까 事가 추우면 어때요? 오그러드니까 理도 안쪽으로 쪽~~ 오그러들어
있고요.
산꼭대기에 올라가 보면 어떻습니까?
나무 키가, 코스모스도 작아요. 事가 작잖아요. 그렇지요?
그런데 理가, 지가 ‘나는 니가 아무리 작더라도 내 혼자 크고 싶다.’ 해서
안쪽에서 막 밀어내버리면 코스모스 열 받아 죽어버립니다. ㅎㅎㅎㅎㅎㅎ
ㅎㅎ 그러니까 자기가 사는 환경만큼 안에 理가, 事와 理가 받쳐 주게 되
어있습니다.
事가 지 혼자 설수는 없잖아요.
바깥의 잎이든지 뭐든지 안에... 사람도 왕성해서 ‘말소리가 크다.’
‘아~~ 저 사람 안쪽에 지금 기운이 넘치는구나.’ 이러면 됩니다.
아픈 사람한테 가서 “목소리 좀 크게 내라.” 이러면,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아파 죽겠다고 앓는 소리를 낸다면 ‘아~~ 이 사람 안쪽에 받히는 理가 시원
치 않구나. 법신이 조금 맛이 갔구나.’ 이렇게 보는 것이지요.
색신이 이렇게 활발발 하지 못하는 것은 법신이 찌그러져 있다는 겁니다.
이해 가시잖아요. 그렇지요? 理라고 것은 하는 보려고 해도 도저히 볼 수는
없지만, 事를 통해서 그 사람의 理를, 원리를 이렇게 보는 것이지요.
예로써 안쪽으로 뭉쳐 있는 것을 精(정)이라 하고, 신명이 나서 바깥으로
쫙~~ 펼치는 것을 神(신)이라 하잖아요.
精과 神. 體와 用이라고 하잖아요. 그 중간에 왔다 갔다 기운을 받혀주는 것이 理택으로 되거든요. 원리가... 그런 것들을 자꾸 심각하게...
지금 여래출현 하는데요.
부처님의 행이 바깥으로 나오는데 사로 나오느냐? 이로 나오느냐?
좀 복잡하기는 한데, 우리처럼 계속 글을 보던 사람은 굉장히 수월 한데요.
글자 ‘이도 모르고 사도 모르겠는데 왜 이렇게 골치아프게 하나?’ 이러면
생각하지 마세요. 골치아프니까 그냥 읽고 넘어가세요.
언젠가는 알아질 날이 있을 것입니다.
아니, 젖도 덜 떨어진 아이한테 대놓고,
“자~ 이리와 봐라 이것이, 이 위스키 30년 짜리야.ㅎㅎㅎㅎㅎㅎㅎㅎ
이것이 20년 짜리야.” 이래 봤자 젖 맛도 모르는 사람이... 그렇잖아요.
그렇지요? 그것은 본인에 해당되는 사항이 아닙니다.
6. 如來出現의 行
(1) 如來의 無碍行과 眞如行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應云何知如來應正等覺行고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應知無碍行이 是如來行이며
應知眞如行이 是如來行이니라
如來出現의 行(여래출현행)
如來의 無碍行과 眞如行(여래무애행진여행)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應云何知如來應正等覺行고?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應云何知, 어떻게 알아야 됩니까? 누구를요? 부처님을요.
如來의 應正等覺行. 부처님의 정등각의 행을 알아야 합니까?
부처님의 행을 어떻게 알아야 됩니까? 부처님의 행은 어떻습니까?
부처님의 행은 “理事冥然無分別이라.”고 그랬습니다. 그렇지요?
이사명연무분별이라 해서, “無碍行하고 眞如行이 있다.”
부처님은 허망한 행이 없는 겁니다. 분별심이...
그러니까 卽理之事行을, 이치에 딱~~ 부합해 맞춰서 바깥으로 事를,
인절미를 만들어 내든지, 시루떡을 만들어 내든지, 절편을 만들어 내든지, 쑥떡을 만들어 내든지 반드시 理에 맞춰서 事가 나타나는 겁니다.
제사 상에 올리는데 거기에 팥떡해서 올려서 될 일도 아니고요.
신중단에 가야될지, 그렇지요? 이치에 맞춰서 해야됩니다.
요즘은 무슨 떡 먹어야 됩니까? 겨울쯤 되면 모도배기. 그렇지요?
여름에는 기주 떡. 여름에는 쉬기 쉬우니까, 부품하게 하는 술 떡 있잖아요.
봄에는 쑥떡. 요즘에는 ?? 떡 먹을 차례네요.
고물을 안에 넣을 것인가? 바깥에 넣을 것인가? 이런 것들이 그 이치를
생각해서 事를 드러내놓는 것. 또 그 계절에 맞춰서, 사의 공간에 맞춰서,
그렇지요? 잔치 떡인지, 그냥 막 먹을 떡볶이해 먹을 떡인지, 사에 맞춰서,
사건에 맞춰서 그 이치를 적당히 심는 것. “事得理融(사득이융)이라.” 고
하지요? 事라고 하는 것은, 지혼자 버틸 수가 없으니까 뭐가 와야 융통이
됩니까? 理가 적당하게 붙여줘야되지요.
“理隨事變(이수사변)이라.”
理는 혼자 고집피우면 안 되고, 어떻게 변해야 됩니까?
事가 = 현상이 = 시절이 흘러가는 대로 거기에 수준을 맞춰줘야 됩니다.
쪼잔한 사람이 오면 쪼잔하게 같이 고스돕 쳐주고, 그러니까 거룩하신 분
오면 거룩하신 분 맞춰주고, 법문을 같이, 법담을 주고받고 해야지요.
쪼잔한 사람한테 법문해버리면 머리터져 죽어버리는 수가 있습니다.
그때는 먹는 것 주고, 짜장면 사주고 이렇게 해야되잖아요.
그렇지요? 안그래요? 그것이 理隨事變입니다. 아이고, 넘어갑시다. ㅎㅎ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불자야, 보살마하살이 어떻게 응 정등각의 행을 아느냐?
보살마하살이 應知, 마땅히 알아야 한다. 無碍行이
是如來行이며, 이 여래의 행이다.
應知眞如行이, 또 응당히 알아야 진여의 행이 또
是如來行이다. 여래의 행인 줄 알아야 한다.
(2) 如來의 眞如行
佛子야 如眞如가 前際不生이며 後際不動이며
現在不起ㄴ달하야 如來行도 亦如是하야
不生不動不起니라
佛子야 如法界가 非量非無量이니 無形故ㄴ달하야
如來行도 亦如是하야 非量非無量이니 無形故니라
佛子야 譬如鳥飛虛空에 經於百年하야도 已經過處와
未經過處를 皆不可量이니 何以故오
虛空界가 無邊際故ㄴ달하야 如來行도 亦如是하야
假使有人이 經百千億那由他劫토록 分別演說호대
已說未說을 皆不可量이니 何以故오
如來行이 無邊際故니라
如來의 眞如行
佛子야 如眞如가 前際不生(전제불생)이며
後際不動(후제부동)이며 現在不起(현재불기)ㄴ달하야
如來行도 亦如是하야 不生不動不起니라.
여기서 생했다ㆍ움직였다ㆍ일어났다. 이것은 글자만 바뀌어 있지 다 똑
같은 字(자)입니다. 똑 같은 字입니다. 그렇지요?
불생이다ㆍ부동이다ㆍ불기다. 이 말은 生 字나ㆍ動 字나ㆍ起 字나 같은
말입니다.
금강경에서는 통일적으로 묶어서 얘기했습니다.
“과거심 불가득ㆍ미래심 불가득ㆍ현재심 불가득.”
중국에서 번역보다 먼저, 인도에서 싼스크리티어 원문소스 같습니다.
중국에서 번역했으면, 前際不生, 現在不起, 後際不動. ←이렇게 해야 하
거든요. 구마라지바는 ↑이렇게 번역을 합니다.
현장법사는 저렇게 번역 안합니다. 싼스크리티어 순서대로 그대로 번역합
니다. “과거ㆍ미래ㆍ현재.”
구마라집은 중국의 형편에 맞게 “과거심 불가득ㆍ현재심 불가득ㆍ미래심
불가득” 하잖아요. 그렇지요? 그런데 화엄경에는 보면,
心不妄取過去法(심불망취과거법)
亦不貪着未來事(역불탐착미래사)
不於現在有所住(불어현재유소주)
‘아~! 이것은 싼스크리티어. 인도에서 보는 현실이다.’
현재를 제일 뒤에 두고, “과거ㆍ미래.” 미래에 두는 것은 인도방식입니다.
인도방식... 그러니까 중국사람들 이해하기 편하게 번역해놓은 구마라지바
는 상당한 분이지요.
佛子야 如眞如가 前際不生이다.
불자야, 이진여가 전제불생이다. 그러니까 ‘아~! 眞如라고 하는 것이 뭐냐?’
우리 반야심경에 갖다 붙이면 뭡니까?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허공이 더 이상 불어날 것도 없고, 허공이 쪼그라들 것도 없고, 부증불감.
空인데 무슨 더러워서 때묻을 것도 없고, 때 벗길 것도 없고, 부증불감 불구
부정. ‘아~! 그것을 眞如라고 하는구나!’
능엄경 구절에서 장수 자선선사가 이렇게 해놨지요.
“三際(삼제), 과거 현재 미래 求心(구심), 마음을 찾아봐라.
心不有(심불유)라. 진짜 마음은 없다. 眞空이다. 三際求心에 心不有라.
心이 不有故로, 마음이 본래 없기 때문에 일체 법이 있을 수가 없다.
心不有故로 妄元無(심불유고망원무)라.”
기신론에는 어떻게 나옵니까?
“일체법은 개유망념으로 이유차별이라.
일체법이란 법은, 유위법, 무위법은 전부다 망념으로 말미암아서
차별이 일어난다.” 이랬습니다.
그렇지요? 그런데 금강경에는 어떻게 했습니까?
일체현성은 망념이 없으니까,
“一切聖賢은 = 3현 10성은 = 3현보살 10지보살은 皆以,
모두 다 무위법으로 이유차별이라.
부처님의 불생불멸로서 차별한다.” ←이렇게 해놨지요.
無爲法으로 而有差別이라.
이것이[前際不生] “三際求心의 心不有라.” 능엄경 장수 자선선사!
송나라 시대 때, 그 분이 화엄경이든지 기신론의 공부에 대해서 굉장히
많이 해놨지요. “과거 현재 미래 아무리 찾아봐라. 마음은 없다.
心이 不有故로, 마음이 있지 않기 때문에, 心不有故로 妄元無라.
망상이 붙을 자리가 없다.”
망상은 어디에 붙어 있습니까?
“마음에 붙어서 일어난다.” 하잖아요?
기신론 같은데, “의여래장하여 유생멸심이라. 여래장을 의지해서 생멸심이
일어났다. 불생불멸을 의지해서 생멸이 일어났다.”
생멸과 불생불멸이 화합된 것을 우리는 “아뢰아 식이라고 한다.” 이렇게 하
지요?
“心不有故로 妄元無라. 망심 자체도 일어나지 않는다.
妄心無處가 卽菩提(망심무처즉보리)다.
망심이 사라진 그 자리가 즉 보리다.” ‘허망한 분별망상이 없는 자리가,
遠離顚倒夢想(원리전도몽상)해버린 자리가 究竟涅槃(구경열반)이다.
그 자리가 우리 견성성불의 자리다.’ 그래서
“生死涅槃이 本平等(생사열반본평등)이라.
생멸 법과 열반. 불생불멸의 법이 본래부터 평등해서 둘 다 없는 것이다.”
이것이 장수 자선선사가 했던 대목들인데요. 이런데 다 해당이 되는 겁니다. 옛날 어른들은 아주 치밀하게 해놨지요.
진여는 앞에서 나지도 않고, 뒤에서 나지도 않고,
“나지도 않고” 계속 하겠습니다. 단어의 반복을 피하기 위해서 해놨습니다.
後際不動(후제부동)이며,
現在不起(현재불기)ㄴ달하야, 현재에 나지도 않는다.
如來行도 亦如是하야 不生不動不起니라.
부처님의 행도 그래서 나지도 않고 동하지도 않고 일어나지도 않고,
‘부처님의 행은 본래 없다.’ 이 말씀입니다.
佛子야 如法界가 非量非無量이니 無形故ㄴ달하야
如來行도 亦如是하야 非量非無量이니 無形故니라.
佛子야
如法界가 非量非無量이니 無形故ㄴ달하야,
마치 법계가 한량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한량이 없는 것도 아니니,
형상이 없는 연고이니라.
如來行도 亦如是하야 非量非無量이니 無形故니라
여래의 행도 그와 같아서 한량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한량이 없는 것도
아니니, 형상이 없는 연고이니라.
妙體는 湛然하여 無處所(묘체담연무처소)라.
佛子야 譬如鳥飛虛空(비여조비허공)에 經於百年하야도
已經過處와 未經過處를 皆不可量이니 何以故오
虛空界가 無邊際故ㄴ달하야,
佛子야
譬如鳥飛虛空에, 비유컨대 마치 새가 허공을 날면서,
經於百年하야도, 100년을 지냈다 하더라도,
已經過處와, 이미 지나온 곳과,
未經過處를, 지나오지 못한 곳이나,
皆不可量이니, 모두 헤아릴 수 없으니,
何以故오? 왜냐하면 虛空界가 無邊際故니라.
如來行도 亦如是하야 假使有人이 經百千億那由他劫토록
分別演說호대 已說未說을 皆不可量이니 何以故오
如來行이 無邊際故니라.
如來行도 亦如是하야, 여래의 행도 그와 같아서,
여래의 행은 어떻습니까?
假使有人이 經百千億那由他劫토록 分別演說호대,
어떤 사람이 100천억 나유타 겁을, 숱한 세월을 지내면서 분별하여 입이
닿도록, 혀가 빠지도록 연설한다 하더라도
已說未說을 皆不可量이니,
이미 말했고, 앞으로 말할 것을 측량할 수 없나니
何以故오? 왜냐하면
如來行이 無邊際故니라. 여래의 행은 끝이 없는 연고이다.
앞에서는 행이 깊은 것, 행이 넓은 것. ←이런 것을 쭉~~ 쭉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 다음에 “여래의 무애행” 봅시다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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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습니다♬♪♩ 환희롭습니다♬♪♩ 감사합니다♬♪♩ 진수성찬입니다♬♪♩ 감미롭습니다♬♪♩ 꿀맛입니다♬♪♩
대♩ 방♩ 광♩ 불♩ 화♩~~ 엄♩~~ 경♩~~~
아름다워라 환희로워라 감사하여라 대방광불화엄경 _()()()_
🙏🙏🙏
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 _()()()_
<요즘에는 ?? 떡> 제가 들어보니 <두텁떡>으로 들립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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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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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텁떡이 궁금해서 네버사전에서
사진과 설명을 보았습니다
ㅎㅎㅎ
녹취록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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