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3대 성지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신대원 시절 학교 수업으로 성지순례를 구약의 출애굽 경로로 여행하고 왔습니다. 예루살렘에 도착해서 버스로 이집트에 가서 기차로 룩소르에 구경하고 다시 버스로 시내산을 거쳐 배 타고 요르단에 갔다가 다시 버스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여정이었지요. 그런 제 경험 탓인지 ‘기독교 3대 성지’ 하면, 예루살렘, 고센, 요르단쯤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마치 3대 절기가 성탄절, 부활절, 추수감사절인 줄 알고 있는 것과 비슷했지요.
기독교 3대 성지는 예루살렘, 로마, 산티아고입니다. 예전에 걷기 명상을 하던 목사님들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자주 이야기하곤 했었습니다. 저에게는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연금술사 덕분에 산티아고(책에 나오는 주인공)에 대해 어렴풋이 낯이 익은 정도였지요. 완전히 다른 거긴 하지만요. 그 뒤에 지도로 산티아고를 찾아보니 칠레의 수도였습니다. 저는 산티아고 가자는 말을 칠레의 수도로 여행을 가자는 말로 이해해 버렸습니다. 무식이 충만했지요.
산티아고는 스페인에 있는 기독교 성지입니다. 이곳에서 야고보의 유해가 발굴되는 바람에 그의 이름을 따서 ‘산티아고’라고 합니다. 성 야고보를 라틴어 표기 야코부스(Iacobus)에서 유래한 ‘이아고(Iago)’라 하였는데 앞에 성인을 뜻하는 '산토(Santo)'가 붙으면서 ‘산토 이아고’, 이것이 변하여 ‘산트 이아고(Sant Iago)’, ‘산티아고’가 되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성 야고보’라는 뜻입니다.
스페인은 지브롤터 해협을 사이에 두고 아프리카와 마주 보고 있는 나라입니다. 지브롤터 해협은 지중해와 대서양의 출입문입니다. 헤롯에 의해 순교한 야고보가 왜 이 먼 나라 스페인에 가서 묻혔는지 그 과정은 잘 모르지만, 야고보의 유해 덕분에 스페인은 엄청난 관광 수입을 올리고 있습니다. 관광 수입이 세계 2위라네요.
야고보의 제자들이 야고보가 순교한 후 그의 시신을 관에 담아 로마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스페인의 어느 작은 마을로 가져와서 장례를 치렀다고 합니다. 이후 제자들이 열심히 선교해서 기독교가 상당히 일찍 전파된 곳이 스페인이었습니다. 이방인 선교에 대해서는 바울이 최초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이야기가 존재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야고보의 순교 당시 스페인은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로마가 점령한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6세기 이슬람의 무함마드가 지중해 아래 동네를 다 잡아먹었을 당시 아프리카에서 지브롤터 해협만 건너면 나오는 스페인까지 쳐들어와 점령해 버렸습니다. 스페인은 피레네산맥이 프랑스와 마주 보고 있어서, 유럽이라고 하면 피레네산맥 넘어 북쪽이 유럽이고 스페인은 유럽대륙에 속하면서도 이슬람에 점령당해 아프리카 취급을 받았습니다. 스페인으로서는 기독교 국가임에도 이슬람에게 당하고, 유럽이면서도 아프리카 취급 받는 게 싫었습니다.
우리나라 광복군 같은 스페인 광복군이 조직이 되어서 이슬람 세력과 더불어 700년 넘게 전쟁을 치르고 오늘의 스페인을 회복했지요. 이걸 ‘레콩키스타’ 곧 ‘국토회복운동’이라 부릅니다. 이런 레콩키스타에 확 기름을 부어 준 것이 야고보의 유해였습니다. 이슬람에게 점령당한 후 세월이 흘러 8세기경 마을 주민들이 하늘의 별들이 춤을 추듯 움직이는 것을 보고 그 주변 들판을 조사한 끝에 야고보의 무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후 야고보는 레콩키스타의 상징이 되었고, 스페인의 수호성인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곳에 야고보를 기념하여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을 세웠습니다. 스페인이 완전히 이슬람을 몰아내고 국토를 회복했을 때가 15세기 말쯤이었고, 이 시기 유럽은 종교개혁의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이런 일련의 여파로 이슬람에 아직도 매여있던 예루살렘으로 가기보다 야고보를 만나러 피레네산맥을 넘는 기독교 순례객들이 생겨났지요. 이들이 밟았던 길이 오늘날의 산티아고 순례길이 되었습니다.
산티아고는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요한 바오로 2세가 방문하면서 주목받았고, 이후로 많은 사람이 이 길을 걸었습니다. 1993년 산티아고 순례길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되었고, 엄청난 관광 수입을 올리는, 그야말로 스페인의 수호성인이 되었지요.
걷기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지리산 둘레길, 제주도 올레길을 걸어보셨을 것입니다. 걷기 명상을 같이하시던 목사님들처럼 이 산티아고는 걷기 파의 로망이 되었고 기독교 성지라는 장점까지 겹쳐서 거기 가는 것을 목표로 돈을 모으는 사람들이 많아졌지요. 프랑스 국경에서 시작해서 산티아고까지 800킬로미터에 이르니 웬만한 실력자가 아니면 완주하긴 힘들겠더군요. 단순 평지가 아니라 피레네산맥을 넘어야 하는 관계로 단순히 걷기만 잘해서는 갈 수 없는 곳이기도 합니다.
스페인을 ‘서반아’로, 스페인어를 ‘서바나어’라 부르기도 하지요. 스페인이 식민지로 삼았던 남미 대부분의 나라가 스페인어를 쓰고 있습니다. 스페인어가 우리나라에서는 별 인기가 없지만, 중국어 다음으로 가장 많은 사람이 쓰는 언어가 스페인어입니다. 현대에 들어서 오랜 시간 독재자에게 시달렸다가 최근에 민주화가 된 나라이기도 하고, 여전히 국왕이 존재하는 영국 비슷한 느낌을 주는 나라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