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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남북 관련 기사
/특/별/대/담/
리 성봉, 최 옥희씨를 통해 알아본 북한의 종교.
〈일시> 1991년 6월 21일
《장소) 헐리우드 유니버설 하야트 호텔
<첨석자) 리성봉(평양봉수교회 담임목사), 최옥희 (평양신학교 2학년, 전도사) , 김형근(사회, 본지 편집인)
김형근: 피곤하고 바쁘신 중에도 시간을 내 주셔서 고맙습니다. 우선 첫번째 미국을 방문하면서 느낀 소감을 말씀해 주십시오.
리성봉:선 형제들이 열렬하고 뜨겁게 맞이하여 동포애 속에서 아주 기쁜 감정을 느낍니다. 또 우리 동포들이 타향에 와서 당당하고 활기있게 살아가는 것을 볼 때 같은 민족 성원 으로서 조선 민족으로서의 자부심, 민족적 긍지를 자랑스럽게 느낍니다.
반면 미국에 있는 동포들이 북부 조국에 대하여 잘못 알고있는 측면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예를 들면 북부 조국은 잘 살지 못한다든가, 신앙의 자유 문제에 대해서도 차별 있고 탄압 받는다는 식의 표현들이 그것입니다. 수령 즉, 김일성 주석에 대해서도 재미 동포들의 생각과 우리들의 생각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다시 말하면 수령에 대한 이해를 정확하고 깊이 있게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외에도 우리들의 무료교육, 무상치료, 세금이 없는 것, 백만장자는 없지만 먹을 것이 없는 사람과 집이 없 는 사람이 없다는 것 등에 대한 인식이 실제와 너무나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고 미국에 있는 동포들이 조국을 단 한번이라도 방문해서 봐야 올 바른 인식을 하겠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올바로 이해해야 서로 대화도 하고 오해도 풀리고 하겠는데 해방 후45년 동안 방송, 출판, 교육 등과 관련하여 북부 조국에 대한 인식이 잘못되게 굳어졌습니다. 북부 조국에 대해서 좋게 평가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대로 와서 보고 이해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여기 와서 많이 들었습니다.
최옥회 :미국에 와서 동포들을 많이 만났는데 먼 타국에 와서도 자기 본질, 즉 조선 민족이라는 넋과 얼을 버리지 않고 한 조상의 핏줄을 이어 온 것을 볼 때 감격 스러웠으며, 맨손으로 이민을 와 빈 터전에서 오늘날과 같은 생활 터전을 마련하면서 가는 곳마다 예배당을 짓고 살아가는 것을 볼 때 지혜롭고 능력이 있는 민족이라 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을 구석구석 많이 돌아 볼 기회는 없고 차 타고 다니면서 외형적으로 본데 불과하지만 이 미국 은 돈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사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국이 돈 많은 사람에게는 천국이지만 노동 계급을 비롯한 하층 계급에게는 돈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나라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또 미국 동부에서부터 쭉 대륙을 횡단하면서 이 광활한 대지와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으며 잘 살고 있는 미국의 모습과 우리 조국을 비롯한 세계에서의 미국의 행동을 생각했습니다.
김형근: 지난 6월 19일 LA관음사에서 북부 대표단 환영 대회'를 가졌는데 그 간담회에 참석하고 난 후의 인상은 어떻습니까?
리성봉: 불교신자와 스님들과 자리를 같이 한 것은 처음입니다. 관음사에서의 행사는 경건하고 복잡하지 않아서 행사의 흐름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또 불교 교리가 대자대비해서 그런지 사람들이 인자하고 순수했습니다. 기독교를 믿건, 불교를 믿건 종교는 다르지만 사랑한다든가 자비를 베푼다든가 인간에 대한 사랑 측면, 자비 측면 등은 기독교, 불교 다같이 공통점이 많다고 생각합 니다. 이런 신심을 가지고 앞으로 다 같은 한민족으로서 민족공동 이익을 위해 손잡고 모임을 가지며 교류하면 전체 민족이 단결하는데 상당히 좋겠다는 느낌을 가졌습니다.
최옥회: 미국에 올 때는 불교 행사에 참여하리라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관음사 행사에 참석하고 난후 우리가 종교를 믿으려면 이렇게 믿어야 한다고 새로운 것을 발견했습니다. 여기에 온 이후 20여개의 교회에 나가고 간증도 많이 했지만 불교도 행사처럼 새롭고 좋은 인상을 받아보기는 처음입니다.
나는 불교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불살생 교리 즉, 생명을 가진 것은 모든 것을 다 사랑한다는 좋은 사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생명체에 대하여 이런 정도인데 인간에 대하여는 더 말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기독교와는 다른 것을 느꼈으며 여기서 정말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느낌이었습니다.
김 형근: 잘 알았습니다. 북부 조국의 불교계에 대하여 아는 것이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리성봉: 불교계에 대하여 정확하게 모릅니다. 불교계 사람들은 가끔 만나는 정도 입니다. 사찰이 약 60여 개이고 일부는 현재 복구 작업중이며 신도는 약 1만명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홍화두 스님과는 1942년부터 친구입니다. 김정구 스님은 용화사 주지로 있다가 지금은 광법사에 있는데 이 스님은 해방 후 부터 나의 친구입니다. 용화사에 5-6차례 간 적이 있고 지금도 자주 만납니다. 길주에 ***사가 있는데 신재성 스님은 불교도 중앙위원이며 불교의 권위자입니다. 저하고는 다정한 사이입니다. 이 분하고 여러번 절에 갔습니다. 청진의 낙하사의 정천등스님도 불교도위원장이며, 정선군의 남궁전, 장재원 스님 등과 친밀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함경북도 길주에는 절이 없고, 길주 부근의 칠보산에 개심사와 쌍계사가 있다. 청진에도 절이 없다.—편집자 주
최옥회: 정확한 학교 이름은 모르지만 기독교 신학원 처럼 불교에서도 10명을 뽑아 교육시키고 있습니다. 올해도 10명을 선발할 것 같습니다: 우리 조국에서는 불교 교세가 더 강합니다. 불교도들이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고 영향력이 강합니다.
김형근:북부조국의 기독교의 현황에 대하여도 알고 싶습니다.
리성봉: 전쟁 전에는 교회가 1,400개 있었고 교인도12만명이었으며 교단 별로는 장로교가 다음이 감리교 순이었습니다. 현재는 교인이 1만명쯤 되는데 전쟁 전 보다 적은데는 그 이유는 몇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전쟁 3년 동안에 폭격과 함포 사격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기독교인이라 예외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 다음에 원자탄을 투하한다는 바람에 남하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세째는 우리나라에 기독교를 미국인들이 전파했기 때문에 당시 기독교인들은 미국에 대하여 호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선교사에 대하여도 좋은 인상을 가졌는데 3년 전쟁 기간에 미군의 폭격에 의하여 1,400개의 교회가 모두 파괴되었고 숱한 교인들이 죽었습니다. 십자가를 붙인데는 폭격을 안한다고 해서 비행기가 뜨기만 하면 교회당에 들어갔는데 교회당이 폭격을 맞아 그 안에 있던 수 십명이 한꺼번에 죽은 것 등으로 해 서 미국인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지게 되었습니다. 즉 선교를 통한 미국인들의 좋은 인상이 사라지게 되었으며, 우리를 폭격하고 교회당을 부수고 숱한 백성들을 죽인 미국인들이 전파한 기독교를 안믿겠다고 하여 스스로 기독교를 버렸습니다. 네번째는 전쟁이 지나고 40년이 지나는 동안에 그 당시 30-40대가 지금은 70~80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이 사람들 중 상당수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1만명이라는 숫자는 85년도에 대충 조사한 숫자입니 다. 산골짝에 사는 사람, 집에서 가정예배 보는 사람 모두 다 파악하기는 어렵습니다. 실제로는 1만명이 훨씬 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목사는 현재 약 30명인데 봉수교회에 2명, 기독교 연맹에 10명, 그 다음은 도, 시, 군 연맹에 나가 있습니다.
목사가 되는 과정은 신학원 졸업하고 아주 공부 잘하는 실력있는 사람은 한두 달 내에 목사 시험쳐서 합격하면 인차 목사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보통 전도사로 3년쯤 있다가 실력이 높아지면 목사가 됩니다. 신학교에서는 가르치는 교과 과목은 성서신학(성경). 조직신학(종교이론, 철학, 신과 예수에 대한 관점과 입장, 성경론, 내세론, 구원등), 역사신학(세계 기독교 사,조선 기독교사), 실천신학(설교학, 설교를 어떻게 할 것인가?) 교회 정치학, 예배이톤, 교회음악, 조선사, 세계사, 종교철학, 외국어, 기타 등등을 3년간 합니다. 불교 천도교 등은 간단하게 참고로 보는 정도이며 주체사상은 신학원에서 하지 않습니다. 독립된 잡지나 신문등 출판물은 없고 특별히 보도할 것이 있으면 통일신보, 민주조선을 이용합니다.
김형근: 예, 잘 알았습니다. 최 전도사께서 신학원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최옥희 :신학원도 1972년에 생겼으며 3년에 한번씩 신입생을 선발하는데 일반 대학 졸업생 이상의 학력으로 사회생활 경험이 있고 신앙심이 높고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6기생인데 열 명중 두 명이 여자입니다. 나이 는 제가 35살로 제일 낮고 남자들은 40~50대입니다. 기독교를 신앙하게 된 동기는 할아버지가 기독교인 이어서 그 영향 때문입니다.
리성봉: 교회당이 2개, 전국적으로 가정예배가 약500개 있습니다. 가정예배라는 것도 유동성이 많습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없어지기도 하고 한 동네 살다가 이사가면 없어지 기도 하고 이사가서 생기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500개에는 탄력성이 있습니다. 기독교 연맹은 초교파이며 장로교파가 80%, 그 다음이 감리교파 입니다. 기독교 연맹은 중앙, 도시.군에 있습니다.
김형근: 오늘 아침 여기 로스 엔제레스에서 발행되는 신문을 보니 북부조국에서 1년에 약 100명씩 기독교인이 증가한다 하던데 증가 요인은 주로 무엇입니까?
리성봉: 우리 봉수교회는 88년에 교회가 돼가지고3년 동안에 새 신도가 25명입니다. 증가 요인을 분석해 보면 지난 시기에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목사나 장로를 했다던지 기독교 출신 가정의 자녀들입니다. 우리도 전도는 합니다. 시장 골목에 나가 북을 치면서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개별적으로 자기의 다정한 친구, 친척, 가족들을 대상으로 많이 합니다. 또 저녁에 가정예 배도 하지요. 이렇게 전도를 많이 하지만 열매는 많지 않습니다. 전국적으로 1년에 100명이라는게 얼마 됩니까? 많지 못한 것에 대하여는 두 개의 큰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11년의 무료교육입니다. 이 과정에서 주체철학 교육을 받습니다. 저는 체계적으로 주체사상에 대하여 공부를 못해 봤지만 책을 읽어보면 인간을 가장 사랑하고, 인간을 위해 복무하라는 사상입니다. 그러니까 기 독교에서 인간을 사랑하라는 사상이나 주체사상에서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을 귀중히 여기고, 인간을 위해 복무하라는 사상과는 상당히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체사상의 진리성과 관련하여 어릴 때부터 대학까지 16~17년을 이 교육을 쭉 받은 결과 학생들이 자연과학에 흥미를 많이 가지게 되고 자연과학을 전공하여 조국의 새사회 건설에 이바지 하겠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또 일요일에도 소년궁전, 대학등에서 자동차도 몰고, 축구, 탁구, 음악, 수영, 서예등 각자 이런 과외 활동을 합니다. 그러니까 어릴때부터 약17년 동 안 이런 교육과 과외 활동을 통해서 주로 공부하겠다 생각, 자연과학 연구하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기 때문에 이런 것과 관련하여 젊은 층들이 종교에 큰 흥미를 못 느낍니다.
둘째는 전쟁의 영향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전쟁의 피해 결과와 관련하여 우리 젊은 사람들 가운데 20-30 대에 자기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미군의 폭격에 의하여 죽은 사람, 후퇴시기에 학살 당한 사람이 적지 않습니 다. 신천에서는 3만5천명이 죽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미군에 대한 인상이 나쁩니다. 그러니 미국 사람들이 전파한 기독교에 대하여 좋은 감정을 안가집 니다. 불교나 천도교는 이러한 사정은 없는데 기독교는 이러한 사정이 있습니다. 이런 사정과 관련하여 새로 증가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현재 우리 생각도 우리나라에서 교세가 급격하게 일어나리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 그럴 가능성도 없고.
김형근: 북부 조국에서는 기독교는 주로 어떠한 활 동을 합니까?
리성봉: 첫째는 복음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복음 을 전파해서 직장에 나가 예수님 말씀대로 정의롭고, 선하고 크리스챤으로서 높은 덕성을 보여 줘 사회 사람들에게 감동, 감화를 일으켜 다시 말하면 죄악을 범하지 않도록 영향을 주는 것을 주로 합니다. 다음이 사회 봉사, 구제사업인데 조국에서는 국가에서 실업자 문제, 고아문제 등을 다 하기 때문에 구제 대상이 없어 할 필요가 없습니다.
김형근: 우리는 현재 분단시대에 살고 있습니다.이 시대에 종교인들이 분단 극복을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리성봉: 저희는 KNCC와 상담히 밀절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동안 동경, 워싱터 DC등에서 3번 만나 중요하게 논의한게 뭐냐하면 통일문제입니다. 중요한 동일문제가 잘 진척되지 않으니 복음정신에 따라 평화를 사랑하고 전쟁을 반대하는 정의의 목소리, 민족적 사랑과 화해로 민족이 단합하자는 목소리를 우선 울려야 합니다. 주로 우리 종교인들이 앞장서서 군사적 긴장도 풀고, 평화협정을 체결하여 불가침 선언, 외국군대 철수, 핵무기 없애는 것 등을 복음정신에 따라 해야 합니다. 이런 것들을 국내외로 알려 세계적으로 연대성을 도모하여 그 세력을 확대해 나가야 합니다. 평화의 목소리 자주 울리는 것이 종교인들의 중요한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하려면 남북 교우 형제들이 자주 만나서 마음과 뜻을 합쳐야 합니다.
최옥희: 나는 기독교를 배우면서 생각하는 것은 "정의와 사랑이 강물처럼 흐르는 하나님 나라를 건설한다" 입니다. 이게 뭐냐 하면 하나님 나라란 통일된 조국과 같은 나라입니다. 이것은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하나님께서 말하는 이 나라는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 다. 조국에서는 분단된 우리 나라가 하나가 되는 것이고 세계적으로 보면 전 인류가 평화스럽게 하나가 되어 서로 사랑하는 평화의 세계를 건설하자는게 그리스도의 목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라는게 환상적으로 생각하여 하늘에 있는것이 아니라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이 땅위에서 이루어 달라"는 성경 구절과 같이 이 지구상에서 평화로운 세계를 이루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저는 이 시대에 종교인들은 이러한 일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김형근: 리 목사님도 아까 잠깐 말씀이 있었고, 또 뉴욕에서도 박승덕 주체사상 연구소장이 ‘주체사상과 기독교’에 대해서 발표를 하여 현재 ‘주체사상과 기독 교’가 많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주체사상과 기독교의 관계’와 목사와 전도사로서 주체사상에 대한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리성봉 :기독교 뿐 아니라 종교와 주체사상은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기독교는 하나님 중심의 철학이고, 주체사상은 사람중심의 철학입니다. 이런면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이것 가지고 100년 토론해야 합치지 못합니다. 주체사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서 신성은 인정 안합니다. 기독교에서는 내세의 하나님 나라를 목표로 합니다. 주체사상은 내세보다 현세에서 복지사 회를 건설하자는 겁니다. 반면 이 양자의 공통점을 가지고 대화할 수 있고 손잡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조국통일하자" 이것은 주체사상 신봉자나 기독교인이나 누구에게나 좋은 것 아닙니까?
기독교와 주체사상은 이런 공통점을 찾아서 나가야 합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목사로서 주체사상에 대한 내 견해와 입장인데 기독교의 중심사상이 사랑입 니다. 제가 이해하는 주체사상도 사람을 가장 이해하 고, 사랑하고, 사람을 위해 복무하라는 사상입니다. 이런점에서 주체사상과 기독교는 공통점이 있고 손잡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 주체사상도 인간을 사랑하는 측면에서 훌륭한 사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주체사상을 이런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최옥회: 나는 주체사상 교육을 많이 받고 자란 신세대이고 또한 가정적으로는 대대로 기독교를 신앙하던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때문에 자기 가풍을 잇는다는 것도 후손된 도리로서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하나님올 믿겠다는 신앙을 신념으로 택했기 때문에 옳은 길을 택했다고 생각합니다. 주체교육을 받고 주체사상과 기독교를 배우면서 이 양자의 차이점을 알고 공통점을 찾았습니다. 주체사상은 인민대중을 중심으로 놓고 생각하는 인간 사랑이 중심인 사상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 주체사상이 기독교 못지 않게 훌륭한 사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독교의 핵심사상은 사람사랑, 하나님 사랑입니다. 차이점은 주체사상은 인민대중의 힘이 역사발전의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관점입니다. 반면 기독교사상은 인간의 힘으로는 안된다, 오직 하나님 힘으로만 모든 것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신을 철저하게 믿으라고 합니다. 이런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습니다. 저는 이 양자간의 차이점을 자꾸 찾아 배제하기 보다는 공통점을 찾아 인류의 복지 증진을 위해 복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신자에게는 두개의 고향이 있다. 하나는 하늘 나라의 고향, 다른하나는 자기가 사는 땅(조국)이 있는데 자기가 사는 땅의 지도자를 잘 모시는 것이 결국 하나님을 잘 모시는 것과 같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나는 조국에 살면서 조국에서 국가의 혜택을 받고 내가 이만큼 행복하게 자랐기 때문에 우리 조국을 받들어 나가고 영도해 나가는 자기 수령에 대해서 충실하는 것이 하나님께 충실한 것으로 생각합 니다.
김형근: 같은 시대를 사는 종교인으로서 불교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 주십시오.
리성봉: 신앙의 대상에 차이가 있지만 불교도 정의, 사랑, 평화로 관통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불교의 이러한 이념에 따라서 의롭고 선하고 인간을 가장 사랑하고 인간에게 행복과 자유를 주는 그런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기 위하여 우리와 손잡고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최옥희: 관음사 행사 참여 후에 느낀 것은 기독교와는 정신면에서, 행사면에서 차이가 있었습니다. 민족의 통일을 원하는 소망에 있어서도 아주 열렬하고 진실하 고 적극적인 이런 좋은 점을 발견했습니다. 나는 신세대이기 때문에 진취적이고 새 것에 민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세계를 대할 때 옳고 그른 것 을 정확히 분별합니다. 자기가 신앙하는 종교도 나쁜 것은 나쁘다고 하고 좋은 것은 좋다고 말해야 합니다. 이런 견지에서 볼때 불교인들이 높은 차원에서 민족통일을 위해 일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변함없이 이런 관점을 견지하면서 일을 열심히 하면 통일이 불교인들을 통해서 더 빨리 실현될 수 있지 않겠나 하는 희망과 기대가 아주 큽니다.
또 기독교의 나쁜것을 보면 누구보다도 먼저 애정어린 비판을 해주고 우리 민족이라는 공통점을 찾아가지고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들을 교양하여 계몽시켜 민족 대단합을 시켜서 통일을 앞당기자고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김형근: 개인의 소원은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리성봉: 봉수교회의 담임목사로서 이 세상에 빛을 뿌리는 교회로 성도들이 세상에 빛이 되고 소금이 되는 본분을 다할 수 있도록 이 양무리들을 키워야겠다는 책 임감이 하나 있고, 둘째는 이 분단 조국을 가까운 시일내 에 통일시켜 1천만 이산가족을 비롯하여 우리 7천만 겨레의 가슴아픈 고통을 덜어 줘야겠다는 것입니다. 나는 분단된 조국을 하나로 만드는 것도 나의 큰 소망입니다.
최옥회: 예, 저는 남부 조국에 나가서 전도도 하고 그 곳 사람들과 대화도 하고 싶습니다.
김형근: 예, 그때는 교회 뿐만 아니라 절에도 와서 설교를 하십시오 (일동웃음)
김형근: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을 위해 리 목사님과 최 전도 사님의 신상을 소개해 주십시오.
리성봉: 저는 평양 봉수교회 담임목사로 1923년 함남 정평에서 태어났습니다. 7살때부터 기독교인이 되었고 교파는 감리교입니다. 1945년에 결혼을 하여 아들 두명, 딸 두 명이 있습니다. 큰 아들과 딸 두명은 결혼을 하였고 손자는 여섯 명입니다.
최옥희: 저는 35살이며 평양에서 태어났습니다. 남편은 체육대학 교수이며 빙상을 잘합니다. 남편과는 대학에서 만나 눈이 맞아 연애결혼했습니다. 딸이 두 명입 니다. 딸들이 크면 하나는 남부조국에, 또 하나는 미국에 시집을 보내고 주례는 스님을 세우고 잔치는 평양에서 하고 싶습니다.(일동 웃음)
김형근 :최 전도사님 미주현대불교 발전을 위한 한 말씀을 해 주십시오.
최옥회:분단된 조건에서 서로 만나기가 어려운게 현실입니다. 이런 조건에서는 남,북, 해외 어디든 이런 잡지를 통해서 교류할 수 있고 모든 것을 전할 수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잡지의 역할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힘이 들더라도 민족성을 지켜나가면서 불교인들 뿐만 아니라 기독교인들까지도 많은 경우에 통일 사업을 불러 일으키는 그런 일들을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더 좋은 글을 실으셔서 남북에도 많이 보내주어서 서로에게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김 형근: 늦은 시간까지 좋은 말씀을 해주셔서 고맙 습니다. 빠른 시일내에 서로 다시 만나기를 바랍니다.
1991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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