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션 영화는 기분이 꿀꿀할 때 보면 그 맛이 좋다. 대리만족이라고 할까? 과격한 행동을 하거나 고함을 질러대면 기분이 풀릴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렇다고 집안 살림을 때려 부수거나 길가는 사람을 붙잡고 싸움을 걸 수는 없지 않은가. 액션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날고 기면서 악당을 총으로 쏴 죽이고, 때려잡고, 약을 올린다. 아슬아슬하게 도망가거나, 극악의 고문 끝에 도망을 치면서 잡힐 듯 말 듯 하는 순간의 심장박동은 꿀꿀한 나의 기분을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린다. 주인공이 얼굴까지 잘생기면 금상첨화다.
나는 왜 이런 쫄깃함의 매력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을까?
언제부터인가 영화를 보면 재미가 없어짐을 느꼈다. 그 영화가 그 영화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줄거리가 같았다. 액션 영화를 즐겼다. 보다 보니 줄거리가 같았다. 처음에는 주인공 가족이 행복하게 산다. 혹은 과거 킬러였던 직업을 숨기고 평온한 삶을 산다. 그러다 가족이 예전에 죽였던 악당의 형에게 무참히 살해당한다. 주인공은 복수를 다짐하며 비밀의 공간에 숨겨놓았던 총을 꺼내들고 악당을 찾아다닌다. 다니면서 악당의 부하들을 보는 쪽쪽 죽인다.
악당 두목을 남겨두고 곤경에 처한다. 두목이 선량한 시민들을 볼모로 잡고 흥정을 한다. 항복하고 시민들을 살릴지, 죽일지를. 주인공은 잠깐 망설이다가 결국 시민들도 살리고 복수도 한다. 그리고 경찰에 쫓기며 사라진다. 이런 뻔한 재료에 양념만 조금 변경하는 액션 영화에 싫증을 느꼈고 영화를 보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 그리고 신선하거나 특이한 영화를 찾게 되었다.
얼마 전 키아누 리브스의 존 윅 3가 상영되었다. 나는 지인에게 싸우기만 하는 영화의 재미를 물었다. 그는 한마디로 대답했다. 1초에 여러 명을 죽이는 키아누 리브스가 '존 윅'의 매력이라고.
영화의 매력을 다시 느끼고 싶었다. 집에서 편안하게 '존 윅 리로드'를 보았다. 역시 내용은 변함이 없었다. 주인공은 백 명이 덤벼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암흑가의 모든 사람들이 오직 그 만을 무서워한다. 아내 죽음 뒤의 평온한 삶, 찾아오는 두목, 딜레마 뒤 선택, 살인 그리고 다시 쫓기는 삶이었다. 어떻게 때려도 악당은 죽는다. 총을 쏴도 키아누 리브스는 죽지 않는다. 잡는 쪽쪽 무기가 된다. 힘들어하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고 죽인다. 역시 액션 영화는 내용을 배반하지 않았다. 작가는 액션 영화 대본 쓰기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어보니 정 반대다.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이다.
'시나리로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책에서는 액션/모험 장르가 작가가 글을 쓰기 어려운 장르라고 한다. 이유는 그동안 너무 많이 써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내용이 뻔한 액션 영화를 쓰기 위해서 작가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 같은 관객을 어떻게 끌어들여야 할까? 책에서는 말한다. 영웅이 악당의 손에 잡히는 상황은 반드시 반전시켜야 한다고 말이다. 이 장면은 액션 영화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장면이라고 한다. 이 설정에서 주인공이 침착함과 지혜, 의지력을 보여주어야 관객이 만족한다고 한다. 책은 말한다. 이런 규칙 속에 상투성은 마치 빵에 피는 곰팡이처럼 자라나지만 해결 방법이 신선한 것이었을 때 이야기는 한층 수준 높은 것이 된다고 말이다.
책에서 영화는 주인공의 심정을 디테일하게 글로 적을 수 없다고 말한다. 책은 주인공의 심리상태 행동 하나하나를 글자에 담아내어 읽는 독자로 하여금 상상하며 책의 내용에 동화되게 씀 해야 한다. 반면 영화는 대사로 처리하지 않는다. 존 윅 리로드'에서 주인공 존은 표정과 행동으로 자신의 심리를 나타낸다. 많은 말은 하지 않는다. 그의 배경과 몸짓이 그의 현재 상황을 나타내 주고 있다. 만일 그가 자신의 상황을 말로 일일이 설명한다고 생각해 보라. 보던 영화를 끄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을 것이다. (그건 존이 아니라 수다쟁이 그냥 아저씨일 뿐..)
그럼 '존 윅 리로드'는 무엇으로 다른 액션 영화와 차별화를 둔 것일까. 우선 주인공이 흥행 보증수표라고 말할 수 있다. 내가 처음 키아누 리브스의 영화를 본 것은 산드라 블록과 나왔던 '스피드'라는 영화로 기억한다. 폭탄이 설치되어 있는 버스에서 승객들을 구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그는 멋있음 그 자체였다. 액션 영화의 결말처럼 이 영화도 결국 승객을 구하는데 성공하고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그 이후로 '콘스탄틴', '매트릭스 시리즈' 등 나오는 영화마다 흥행을 했다.
다음은 일당백이다. 지인분이 이야기해 준 것처럼 이 영화에서 키아누 리브스는 일당백이다. 열 명이 덤벼도 눈썹도 까딱 안 한다. 표정 변화도 없다. 그렇다고 날쌘 것도 아니다. 묵직하게 싸운다. 보통 킬러가 날쌘 사람으로 나오는 반면 존 윅은 날쌔지는 않다. 그리고 자신을 괴롭힌 악당을 죽이고 모든 악당들의 표적이 되어 도망을 간다. 도망을 가면서도 누가 자신을 죽일지 두리번거리면서 부지런히 도망을 간다. 다리까지 절뚝거리면서. 신선하다면 신선한 결말이라고 해도 될까? 그래도 굳지 이 영화의 매력을 이야기하자면 지인이 말해 준 일당백이다.
셋탑박스에 조용히 앉아있는 먼지를 쫓아내고 본 영화는 나의 영화 보는 즐거움을 살려주었다. 아무리 내용이 뻔한 액션 영화라고 하더라고 장면 장면이 주는 색다름과 주인공이 주는 매력은 뻔함을 상쇄시키고도 남음이다.
혹시 당신도 그렇고 그런 영화를 보는 데에 흥미를 잃었는가? 그렇다면 다시 시도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영화는 내용에 얼마의 신선함을 추구했는지에 따라서 보는 맛이 달라진다. 똑같은 사람이 캐주얼한 복장을 할 때와 정장을 입을 때의 느낌이 다르듯이 영화도 대사의 감각과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읽어야 하는 배경을 해석하는 재미를 느낀다면 숨은 그림 찾기 하듯 영화의 재미를 하나씩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영화를 보는 방법조차 모른다고 말한다면 이 책을 보는 것도 괜찮다.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
책을 볼지 말지는 당신의 마음이다. 나처럼 기가 막힌 액션의 화면이나 키아누 리브스의 잘생긴 얼굴만으로도 만족을 한다면 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위에서 말했듯이 영화의 숨은 그림 찾기의 재미를 느끼고 싶거나 주인공의 대사에 숨어있는 의미 등을 찾는 방법을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면 도움이 된다.
만일 당신이 작가의 꿈을 글쓰기의 꿈을 꾸고 있다면 반드시 읽어야 함은 당연한 것이고. 왜냐고? 읽어보면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