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태복음 24장 1-2절 파괴될 성전
마태복음 24장은 종말의 포문을 여시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종말에서 시작하여 온 세상의 종말까지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종말에 대한 예언의 시작이 묘하게도 성전에 대한 대화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 아이러니 합니다.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로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항상 성전을 원했습니다. 과거에는 그들의 조상들이 그렇게도 외면했던 성전이었습니다. 그런데 선지자들의 예언대로 나라가 망했고 성전을 잃어버리게 되자 그들은 성전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미 바벨론에 의해 돌 하나 위에 돌이 올려진 것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완전히 무너뜨려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그들이 예루살렘에 70년 만에 돌아왔을 때 그들은 성전을 짓기 시작하였습니다. 대적자들의 공격으로 말미암은 많은 우여곡절 끝에 성전을 다시 지었지만 그 성전은 솔로몬의 성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빈약했습니다. 하지만 학개선지자는 이렇게 예언을 합니다. 학개 2장 9절입니다.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나중에 나타날 영광이 솔로몬 때의 영광보다 크다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솔로몬 왕보다 크신 분이시기 때문에 성전에 임하는 영광도 다릅니다.
그런데 헤롯은 주전 19년에 그 성전을 더 크고 화려하게 증축하고자 공사를 시작하였습니다. 이는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헤롯이 이방인으로써 자기의 권력 유지를 위하여 짓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공사가 예수님이 오신 후 계속 지어져서 46년 동안 지은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당시에도 역시 성전은 완공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디. 그 성전은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후 62-64년이 되어서 완공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 떠나신 그 후에도 30년 동안 공사가 게속된 것입니다. 무려 83년 동안이나 계속해서 지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오랫동안 지은 성전도 완공한지 6-7년 정도 후에 로마에 의해 완전히 무너지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완전히 헛수고를 한 샘입니다. 결국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은 허상과 같아서 때가 되면 사라지게 됩니다. 예루살렘을 정복한 로마군대는 성전을 완전히 부수었습니다. 돌 위에 돌 하나 얹어진 것이 없을 정도로 황폐화시킨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그것을 미리 다 보시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앞으로의 일을 알지 못했던 제자들은 예수님께 외모로 보이는 그 아름다움에 대하여 말씀드리려고 예수님 앞으로 나왔던 것입니다. 1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2절입니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너희가 이 성전의 미래를 보지 못하느냐고 물으십니다. 돌 하나도 돌 위에 넘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부숴져 폐허갈 될 것이라는 것이 예수님이 보시는 성전의 미래의 모습입니다. 제자들은 지금 눈에 보이는 것만을 보았고 예수님은 미래에 이루어질 모습을 보신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들의 눈과 예수님의 눈이 다른 점입니다.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현재 주어진 것을 토대로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여러분들의 눈을 하나님이 이루실 미래로 향하게 하십니다. 그 은헤를 입었던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성령에 사로잡혀서 장해일을 예언했던 것입니다.
이를 볼 때 여러분들은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우선 그렇게 오랫동안 성전을 재건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을까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오늘날도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않는 것보다 눈에 보이는 일에 더 신경을 씁니다. 예를 들면 가정보다는 가족에게 신경을 씁니다. 또한 기정이라는 집을 세우기 보다는 눈에 보이는 건물집에 더 신경을 씁니다. 더 넓은 평수, 아름다운 건물, 사람들이 볼 때 부러워하는 집과 차, 그리고 옷들, 그리고 명품들을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내면의 아름다움보다는 외모에 더 신경을 씁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내면보다는 외모에 더 점수를 주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치 바라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이나 그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이 무덤에 회칠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리고 옷술을 길게 해서 자신의 경건성을 포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성전 제일 앞에 나가서 거룩한 척을 했습니다. 제일 앞에 나간 것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제일 앞에 나간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부흥해서 새로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라 부흥하기 위해서 교회 건물을 짓는 경우가 있습니다. 왜 그렇게 건물을 짓는데 혈안이 되어 있을까요? 겉으로 보이는 것에 세상이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서울의 어떤 교회는 될 수있으면 많은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해 지하 예배당을 더 크게 확장했다가 불법으로 건물을 확장했다고 해서 18년째 소송을 하고 있는 교회도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소송은 언제끝날지 알수가 없습니다.
많은 불신자들이 자기 영혼의 곤고함으로 교회를 찾습니다. 그런 반면에 교회는 불신자들이 멋지게 지어진 교회를 선호하기 때문에 교회를 멋지게 지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렇지만 교회건물을 지어놓으면 새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새신자들보다 다른 교회에 다니던 사람들이 옮기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또한 목회자의 꿈을 따라 더 크고 아름답게 교회 건물을 짓기도 합니다. 전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를 짓는 목표를 가진 목회자의 꿈을 따라 건축헌금을 내어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 건물을 짓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하여 감사예배도 드리고 자랑도 합니다. 그리고 많은 목회자들이나 교인들이 그런 교회를 부러워합니다. 세상 사람들뿐 아니라 목회자와 교인들 역시 외적인 것에 너무나 많은 신경을 씁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다 무너뜨려 질 것입니다.
그렇다고 건물이 필요가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거기에 붙들리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여성을 빗대어 이 세상의 헛된 것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성경 짐언 31장 30절입니다.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이것을 교회로 설명한다면 겉으로 나타나는 화려함도 거짓되고 웅장함도 거짓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교회가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요한일서 2장 17절에도 역시 이와 유사한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이 세상은 지나갑니다. 인간의 정욕도 지나갑니다. 인간이 평가하는 아름다움도 다 지나갑니다. 그것들은 모두 들의 꽃과 같아서 풀은 시들고 꽃은 떨어지지만 하나님 말씀은 영원합니다. 베드로 전서 1장 24-25절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여러분 영원하지 못한 것들은 살아가면서 잠깐만 필요할 뿐입니다. 그런 것들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런 것들은 삶을 위한 필요물일 뿐이지 영원한 나라를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절대적이고 영원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혼동합니다. 그래서 절대적이지 않고 영원하지 않은 것에 목숨을 겁니다. 예를 들면 돈이나 학위나 이 세상 명예나 권력이나 화려하게 입는 옷이나 어느 정도 타면 낡아질 수 밖에 없는 차나, 모든 것을 갖춘 집이나 가지고 있으면 사람들에게 과시하거나 자랑할 만한 것들에 목숨을 겁니다. 그러나 그것을 잃어보았을 때에야 그것이 참으로 자신에게 필요했던 것이 아님을 깨닫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러분에게 있어 소중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100세나 되어 하나님의 약속대로 태어난 아들을 자신에게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아들을 낳지 못하던 아브라함 부부에게 아들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셨기에 진정한 이삭의 주인은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것인 이삭을 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것도 번제로 잘라서 드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순종했습니다. 그는 이삭이 자신의 아들이기 이전에 하나님이 주신 아들임을 잊지 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흘 길을 가야하는 모리아 산으로 가서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묶어 놓고는 칼을 들어 올렸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막으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들을 십자가에 달리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 가운데 그것을 막으려고 나선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본 사람들은 아마도 이런 예수님의 모습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2절입니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모든 사람이 흠모하며 우러러볼 만한 모습을 가지고 오신 것이 아니라 연한 순같고 마른 땅을 헤치고 올라온 줄기같아소 고운 모양도 풍채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사야 선지자는 말합니다.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여러분 건물의 규모나 아름다움에 속지 마십시오. 세상이 누리는 부귀영화에 속지 마십시오. 솔로몬 왕은 그런 모든 것들을 다 누려본 왕으로써 그 모든 것들이 헛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지 않습니까?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언젠가는 사라질 것들입니다.
그러나 영원히 아름다우신 영광과 아름다움을 가지신 분은 삼위일체 하나님뿐입니다. 그래서 그 나라가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여러분! 영원하신 하나님께 마음을 맞추고 사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 속한 영원한 것에 여러분들의 마음을 맞추고 사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는 것, 영원하다고 하시는 것, 진정으로 가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에 여러분들의 초점을 맞추십시오. 그것을 성경에서 찾아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헌신하십시오.
헤롯은 자신의 권력을 위해 성전을 증축했지만 예수님은 자신의 죽으심으로 인해 자신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생을 허락하셨습니다. 진실로 영원한 것을 주시기 위해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드리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성전이신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을 구하십시오, 그러면 에수님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며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하며,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과 그의 뜻을 알아가며 예수님 안에서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하시는 일에 온전히 쓰임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복이 여러분들 모두에게 임하시길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