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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년∼1827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과학교실 / 조수철
인류의 역사는 바로 음악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역사 적으로 어느 나라, 어느 문화, 어느 시대에도 음악이 존재 하지 않았던 적은 없다. 음악의 역사는 편의상 로마네스 크(500∼1000), 고딕(1100∼1430), 르네상스(1430∼1600), 바로크(1600∼1750), 고전주의(1750∼1820), 낭만주의 (1820∼1900), 20세기 현대 음악으로 시대적인 분류를 한다. 베토벤(1770∼1827)은 시대적으로는 고전주의와 낭만 주의에 걸쳐 활동하였다. 고전주의 이전의 음악이 베토벤에 의하여 집대성되었으며 낭만주의 이후의 모든 음악의 뿌리를 이룬다는 점에서 가장 위대한 음악가 중의 한 사람으로 평가된다.
베토벤은 1770년 12월 16일 독일의 본에서 태어났다.
조부 루드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은 성악, 오르간연주, 합창지휘 등을 하다가 나중에는 궁정악 장이 되었다. 베토벤은 조부의 이름을 그대로 이어 받았 다. 아버지 요한은 어려서부터 좋은 음성을 지니고 있었 다. 10세 때에 정기적으로 학교에서 개최되는 연극에서 가수로 뽑혀 노래를 부른 적이 있으며, 이 후에 조부 루드 비히가 직접 요한의 음악 공부를 담당하였다. 주로 성악과 피아노를 가르쳤으며 바이올린에 대한 교육도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나중에 궁정음악가가 되어 테너가수로 일하게 되는데, 비교적 훌륭한 음악선생이었던 것으로 기록이 되어 있으나, 말년에는 술중독증에 걸려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베토벤의 나이 22세 때에 사망하였다. 베토벤의 어머니 마리아는 원래 시종무관과 결혼하였는데, 남편이 사망한 후에 베토벤의 아버지인 요한과 1767년에 재혼하였다. 베토벤이 17세 때에 페결핵으로 사망하였다.
어린 본 시절 베토벤은 많은 스승을 사사하였다. 이덴, 파이퍼, 로바티니, 코흐, 리이스, 젠저, 네페등을 사사하는데 특히 네페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 시기를 본 시절이라고 한다. 하이든의 초청으로 1791년 비엔나로 유학을 떠나게 되는데 비엔나 시절은 3기로 구분하여 베토벤 음악의 발달단계를 설명한다.
베토벤의 제1기(1793∼1802):
모방의 시기(Period of Imitation)
모차르트, 하이든 등 선배음악가들의 음악적인 경향을 모방하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 베토벤은 하이든, 쉥크, 알브레헤츠버거, 살리에르를 사사했다. “피아노 소나타 제1, 2, 3번” “가곡 아델라이데”, “피아노와 첼로를 위한 두 곡의 소나타”, “피아노, 오보에, 클라니넷, 바순 그리고 혼을 위한 5중주곡”, “피아노 협주곡 1번”,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 “피아노 소나타 제9번과 10번”, “교향곡 제 1번”, “피아노 협주곡 제 3번” 등이 이 시기에 발표된 곡들이다.
“발레 음악,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 “바이올린 소나타 제5번, 봄”, “피아노 소나타 제14(월광)” 등이 이 시기의 곡들이다.
1802년 하이리겐스타트에서 요양 도중 베토벤은 심각한 고민에 빠져 죽을 결심을 하게 된다. 그 너무나도 유명한 “하이리겐스타트의 유서”가 이 때에 쓰여진다. 이 유서에서 베토벤은 왜 자신이 자살을 포기하는가에 대한 답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이 사건이 베토벤의 정신적 발달, 인격적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즉 자신에게 주어진 ‘가혹한 운명’에 대하여 좌절하고, 수동적으로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하여 ‘가혹한 운명’을 통하여 보다 높은 인격적인 성숙을 성취하고또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성취할 것을 스스로에게 다짐한 계기가 되었으며, 이것이 이후의 그의 작품에 잘 반영된다.
베토벤의 제2기: 외향화시기, 1802∼1814, period of externalization)
하이리겐슈타트의 유서 이후 약 12년 동안을 제2기라고 이른다. 모차르트나 하이든 등 선배 음악가들의 영향 에서 완전히 벗어나 베토벤 자신의 음악세계를 펼쳐나가는 시기이다. 정신적인 위기를 벗어난 베토벤의 심리상태가 잘 묘사되어 있는 시기이다. 소위 ‘걸작들이 숲을 이룬 다’고 일컬어지는 시기가 바로 이 시기이다. 자신이 처한 운명이나 정서적인 상태를 외부로 표출시키는 특징이 있다고 하여 외향화 시기라고 부른다. 감미로운 2곡의 로만 스(F장조,G 장조), “교향곡 2번”, “오라토리오, 감람산의 그리스도” 최고의 바이올린 소나타로 알려진 “바이올린 소나타 9번(크로이체르 소나타)”, “피아노 소나타 21번”, 교향곡의 역사에서 혁명을 일으킨 “교향곡 3번(영웅교향 곡)”, 피아노 소나타로는 최고의 걸작으로 일컬어지는 ‘피 아노 소나타 제 23번(열정소나타)’가 이 시기에 작곡되었 다. 교향곡의 대명사로 불리는 “교향곡 제 5번, 운명교향 곡” 인간과 자연이 하나가 되는 “교향곡 제 6번, 전원교향 곡”, “피아노와 합창과 관현악을 위한 합창 환상곡”, 피아노 협부곡 분야의 황제, ‘피아노 협주곡 제 5번’, ‘에그몬드 서곡’, “피아노 소나타 제 26번(고별)” 등 그야말로 걸작 들이 잇달아 작곡되었던 시기였다.
베토벤의 제 3기의 삶과 음악세계(내향화시기, period of internalization)
1815∼1827년까지를 제3기라 이른다. 제2기의 격동적인 감정의 표현과 외적인 힘(External power)에서 점차 내성과 성찰을 특징으로 하여 내면적 힘(Internal power) 을 갖는 형태로 변화가 일어난다. 1816년에 이르러서는 베토벤의 관심이 다시 바로크시대로 되돌아가서 바하와 헨델의 음악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다. ‘피아노와 첼로를 위한 2개의 소나타’, ‘멀리 있는 애인에게’가 작곡되었다.
1820년부터 1822년까지는 피아노 소나타가 집중적으로 작곡되어 최후의 피아노 소나타 제30번, 31번, 그리고 32번이 작곡된다. 이 곡들은 모두 깊은 성찰과 명상에 잠긴 상태에서 작곡된 곡들로서 외적인 힘보다는 내적인 힘을 느끼도록 해 주는 곡들이라 할 수 있다. “장엄미사”, ‘교향곡 제9번(합창교향곡)’도 이 시기의 곡이다. 1825년과 1826년은 주로 현악 4중주곡을 작곡하였다. 현악 4중주곡 제12, 13, 14, 15, 16번이 잇달아 발표되었다. 이 곡들 모두 극도의 성찰을 통하여 “완벽한 자유와 심적인 평화”를 성취한 작품들이다. 조용히 흐르나 그 속에서 엄청난 “내적인 힘”을 지닌 곡들이라 할 수 있으며 모든 복합적인 감정이 하나로 통괄된 곡들, 인격적으로 성인의 경지에서만이 나올 수 있는 음성이라 할 수 있다.
악성으로서의 베토벤, 그 교훈
베토벤은 “樂聖” 즉 “음악에 있어서의 성인”이라고 불리고 있다. 베토벤이 어떻게 성인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는가에 대하여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유전적인 요인을 들 수가 있다. 베토벤의 조부와 아버지가 성악가로 활동한 사실은 베토벤이 태어나면서 음악적인 재능을 보통 사람들보다는 우수하게 가지고 태어났을 가능성을 추정할 수 있다.
두번째는 조기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베토벤의 아버지 요한이 말년에는 술중독증으로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정상적으로 할 수 없는 지경까지 되었지만, 베토벤이 어렸을 때부터, “제2의 모짜르트”로 만들겠다라는 야심으로 베토벤의 조기 교육을 시킨 것이 또한 베토벤의 음악가로서 대성할 수 있는 기틀이 되었음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베토벤의 아버지는 성악가였지만 피아노와 바이올린에는 상당한 재능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고, 이것을 바탕으로 비교적 체계적인 음악교육을 시킬 수 있었다.
세번째는 어렸을 때부터 많은 선생님들로부터 다양한 각도에서 음악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본 시절에는 이덴, 파이퍼, 로바티니, 리스, 네페를 사사하였으며, 비엔나에서는 쉥크, 알브레헤츠버거, 살리에르, 드라 고넷티, 하이든, 푀르스터 등 그 당시의 훌륭한 음악선생 님들로부터 음악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물론 배움의 과정에 있어서 단순히 수동적인 자세가 아니라 아주 능동적으로 자신의 부족한 점을 잘 파악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노력을 한 것은 일반 사람들의 자세와는 많은 차이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네번째는 많은 후원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두롤프, 킨스키, 로프코비츠, 라주모프스키, 리히노프스키등 많은 귀족들, 음악애호인들이 한 마음이 되어 베토벤을 정신적 또는 물질적으로 도와주었다는 점이다.
다섯번째는 그 당시의 시대정신의 영향을 들 수가 있다. 영국에서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정신으로 노예해 방운동이 일어나고 있었으며, 프랑스 혁명으로 “자유, 평등”사상이 전 유럽을 휩쓸었으며, 칸트와 헤겔의 철학 사상이 꽃을 피웠다. 이외에도 괴테. 쉴러, 워드워즈, 바이 런, 유고, 키츠, 푸쉬킨 등 불멸의 명작과 시를 남긴 많은 문학가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기였다. 이러한 시대정 신이 베토벤의 사상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고, 베토벤 내부에 잠재되어 있던 창의적인 부분이 그 표현범위가 엄청나게 확대가 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하였다고할 수 있다.
여섯번째는 베토벤 자신의 부단한 노력과 자신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성찰이다. 정규 교육의 과정이 국민학교 과정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본 대학의 철학과에 청강생 으로 등록하여 자신에게 부족했던 부분에 대하여 스스로 보충하려는 노력도 이미 청소년기에 시도하였다. 자신이 작곡한 곡에 대하여도 철저한 비판을 하고 부족함이 있으면 끊임없이 고치고 이렇게 하여도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곡 자체를 새로 작곡하는 강박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었다. 음악에 대한 베토벤의 이러한 태도 때문에 음악 이라면 흔히 인간의 감정을 연상을 하지만 베토벤의 음악에 대하여는 “音樂的 思考(musical thinking)”라고 표현 한다. 그 당시에 발표되던 철학서적, 문학작품, 희곡, 시뿐만 아니라, 그리이스. 로마 신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호머, 쉐익스피어, 유리피데스 등 고전의 탐독에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이러한 베토벤의 노력이 그의 사상의 깊이를 더해 주었으며. 이것이 베토벤이 불멸의 작품들을 작곡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베토벤이 앓고 있었던 여러가지 질병들을 들 수가 있다. “청력장애” 등 신체적인 고통, 이로 인한 정신적인 고통을 통하여 인격적 또는 음악적으로 성숙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베토벤의 좌우명이 ”Durch Leiden zu Freude(고난을 헤치고 환희로)“였다. 베토벤은 음악을 통하여 완벽한 자유와 평화를 성취할 수 있었다.
베토벤 음악의 핵심사상-대극의 합일(Gegensatzvereinigung)
제1기에서 3기에 이르는 과정에서 베토벤이 지속적으로 추구한 음악적인 사상은 “대극의 합일사상(Gegensatzvereinigen)”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베토벤은 일생동안 480여곡에 이르는 곡을 작곡하였다. 대표적인 분야는 9편의 교향곡, 32곡의 피아노 소나타, 16곡의 현악4중주곡, 3편의 종교음악, 10곡의 바이올린 소나타, 5곡의 첼로 소나 타, 7곡의 피아노 3중주곡, 5곡의 피아노 협주곡 등이 대표적인 곡들이며, 이외에도 많은 성악곡들과 작품번호가 붙어 있지 않은 277곡이 있다. 이러한 곡을 작곡하는 과정에서 베토벤의 기본적인 개혁정신은 “인간 내부에 존재 하는 眞.善.美를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만 있다면 깨뜨리지 못할 규칙이나 법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였다. 인간의 내부에 존재하는 진선미를 표현하기 위하여 베토벤이 취한 방법은 “대극의 합일(Gegensatzvereinigen)” 이었다.
첫째, 베토벤은 “성악과 기악”이라는 대극적인 관계를 하나로 통합하였다. 베토벤 이전의 모든 작곡가들은 “성 악과 기악”이라는 대극적인 모델로 작곡에 임하였다. 즉성악을 위한 곡과 기악을 위한 곡은 서로 독립적인 상태에 있었다. 그러나 베토벤은 “합창환상곡”과 너무나도 유명한 ‘제9번 교향곡’에서 마지막 4악장에 “합창”을 포함시 킴으로서 성악과 기악을 하나로 통괄하고 있다.
둘째, 베토벤은 “강함(强)과 부드러움(柔)”을 하나로 통합하였다. 이러한 정신은 교향곡에서 가장 극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베토벤은 모두 9곡의 교향곡을 작곡하였다.
이 중 홀수번호(1,3,5,7,9번)는 강렬하고 남성적인 곡들이 며, 짝수번호(2,4,6,8번)는 부드럽고 여성적인 곡들이다.
전체 9곡의 교향곡들에서 “남성적인 요소와 여성적인 요소” 즉 “强과 柔”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하나’가 되고 있다.
셋째, 베토벤은 “투쟁(鬪爭)과 평화(平和)”를 하나로 통합하였다. 전형적인 예가 ‘제5번 운명교향곡’과 ‘제6번 전원교향곡’이다. 제5번 운명교향곡은 가혹한 운명과의 처절한 투쟁, 이 투쟁 끝에 이끌어내는 인간승리“를 그리고 있는 곡이다. 그러나 제6번 전원교향곡은 ‘자연에 순응 하며 더불어 사는 인간의 평화로운 모습, 이에서 느끼는 환희, 자연에 대한 끝없는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이 두곡은 거의 동시에 작곡된 곡들이다. 투쟁과 평화라는 대극적인 가치가 베토벤의 마음 속에서는 하나로 통합되고 있는 것이다.
넷째 베토벤은 인간과 자연을 하나로 통합하였다. 제6 번 교향곡에서 전형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전원교향곡에 서는 자연과 더불어 사는 인간의 평화로운 모습을 절묘하게 그리고 있다. 실제 베토벤은 자연예찬론자였다. 자연을 사랑하고 산책을 즐기고 산책하면서 자연으로부터 깊은 음악적 영감을 받았다. 베토벤의 삶과 음악에서 인간과 자연은 하나였다.
다섯째 베토벤은 조화로움과 부조화로움을 하나로 통합하였다.
베토벤은 초기시절부터 불협화음을 많이 사용하여 작곡하였다. 특히 현악4중주곡에서는 많은 부분이 불협화음 으로 이루어져 있다. 조화로움은 부조화로움이 존재해야 지만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베토벤의 음악에서는 이러한 대극적인 가치가 하나로 통합되고 있다.
여섯째, 베토벤은 “聖과 俗”을 하나로 통합하였다. 베토벤은 종교음악으로는 중기의 C장조 미사곡(Op. 86, 1807), 후기의 장엄미사곡 D장조(Op. 123, 124), 오라토리오 ‘감람산의 그리스도’(Op. 85, 1803)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종교음악에서 상당부분은 세속적인 음악으로 이루어져 있다. 베토벤 이전의 음악가들은 ‘종교와 세속’을 대극 적인 관계로 인식하고 작곡하였다. 그러나 베토벤에게 있어서는 종교와 세속이 서로 분리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왜냐하면 세속이 없는 종교란 존재할 수 없고, 종교가 없는 세속이란 존재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즉 聖과 俗은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존재로 본 것이다.
일곱째 베토벤은 “전통과 개혁”을 하나로 통합하였다.
베토벤처럼 완벽하게 개혁을 성취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베토벤은 전통(보수)적 가치를 무조건 배척하지 않았다. 전통적인 가치를 무시하는 개혁이란 있을 수 없다고 본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후기 현악4중주곡’들이다.
이 곡들에서 한 악장은 반드시 모차르트나 하이든 풍의 악장으로 작곡하였던 것이다. 개혁을 시도하였지만 전통을 중요시한 베토벤의 ‘대극의 합일사상’을 느낄 수 있는 곡들이다. 교향곡의 작곡에 있어서도 3-7번까지 개혁적인 곡을 쓰다가 8번에 이르러서는 다시 전통적인 모델로 되돌아가고 자기 9번 교향곡이라는 음악역사에 있어서 최대의 개혁을 단행하고 있다. 개혁을 하기 전에 전통을 중요시 여기는 베토벤의 정신을 엿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베토벤은 삶과 즉음을 하나로 통합하였다.
베토벤이 일생동안 가장 애착을 가진 주제는 “영웅주제(Hero theme)"였다. 영웅주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모든 사회 모든 종족에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주제로서 인간 심성의 원형(archetype)이라고 할 수 있다. 영웅주제는 공통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탄생(Birth)-죽음(Death)- 재생(Rebirth)의 3구조이다. 즉 영웅이 태어나는 과정이 있고, 상징적 의미에서의 죽음을 경험하고 이를 통하여 부활의 과정을 거침으로써 영원한 삶을 얻는 존재를 이른다, 즉 보편타당한 가치를 위하여 스스로를 버림으로써 영원한 삶을 얻는 존재가 영웅이다. 작곡 분야에 있어서는 제3번 영웅교향곡이 대표적이다. 이 교향 곡은 제1악장이 ‘영웅의 탄생’, 제2악장- 영웅의 죽음(장 송행진곡), 제3악장- 영웅부활의 준비단계, 제4악장- 영웅의 부활, 재생의 구조를 갖는다. 같은 주제를 가지고 베토벤은 피아노 변주곡으로 만드는데 바로 ‘영웅주제에 의한 피아노 변주곡(Op. 35 1802)', 발레음악인 ’프로메테우 스의 창조물(Op. 43, 1801)이다. 이 외에도 코리올란 서곡 (Op. 62, 1807), 애그몬트 서곡(Op. 84, 1810), 웰링톤의 승리(Op. 91, 1802) 등이 영웅을 주제로 한 곡들이다.
베토벤인 경우 실제 자신의 실질적인 체험(1802년의 하이리겐슈타트의 유서를 이름)을 통하여 거듭나는 계기가 된 바 있다. 즉 베토벤 자신의 삶 자체가 영웅적인 삶이라고 할 수 있다. 1827년 3월 26일, 이 위대한 음악가는 세상을 떠나고, 29일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베토벤은 자신의 삶이나 음악에서 “삶과 죽음”이라는 인간의 궁극적인 과제를 합일시킴으로써 “영원한 삶”을 얻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베토벤은 과거의 인물이 아니라 현재 이며 또 미래의 인물이기도 하다.
첫댓글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기억하면서 그가 작곡한 천상의 선율을 오직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이 땅위에서 꽃을 피운 아름다운 영웅으로 기억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