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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영취산 진달래꽃밭에서
봄이다. 봄 하면 진달래가 떠오르고 진달래 하면 소월의 영변 약산이 연상작용으로 지나갔다. 그런데 요즈음은 영변 하면 소월의 진달래보다는 원자로가 스쳐간다. 북한의 핵과 전쟁의 위협이 떠오르면서 으스스하다. 평화롭기만 했을 영변이 어느 날 전쟁의 상징처럼 뒤바뀐 것이다. 어제는 끝내 원자로 재가동에 개성공단 근로자에게 귀경을 재촉하며 다시는 공단에 들어오지 말란다. 전쟁으로 치닫듯 그만큼 심각한 상황까지 왔다. 그래도 어김없이 봄은 오고 야릇한 기분으로 여수 영취산 진달래를 보러간다. 진달래는 우리나라 산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꽃이다. 예로부터 개나리와 함께 봄을 알리는 대표적인 꽃으로 듬뿍 사랑을 받아왔다.
많은 꽃이 다투어 피어나고 있다. 이 꽃 저 꽃 이야기를 하다 보면 서로 시기할지도 모른다. 이 여자에게 저 여자 이야기를 하면서 매력 넘친다고 하면 질투가 충동질할 것이다. 오늘은 진달래꽃 이야기나 할 일이다. 사실 진달래만큼 까다롭지 않고 소탈한 나무도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한 귀퉁이에 아무렇게나 옮겨 심어도 잘 자란다. 그냥 몰라라 내버려 두어도 은혜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이른 봄날에 서둘러 곱게 꽃을 피운다. 그냥 잊혔다가 봄이 오는 길목 꽃이 피어 모나지 않은 순수함이 묻어난다. 우리네처럼 겨우내 웅크리고 조바심에 떨다가 툭툭 털어내고 꽃불을 피워 봄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는 친밀감이 정서적으로 맞아떨어진다.
하지만 진달래는 볼품없는 나무다. 나무가 눈에 띄도록 번듯하게 자라 그럴 듯싶은 좋은 기둥 재목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열매가 먹음직스럽다거나 씨앗이 유용하게 쓰이는 것도 아니다. 작달막한 관목이다. 일 년에 이른 봄날 한 번 며칠쯤 겨울을 사르듯 환하게 분홍빛 꽃을 피우는 것이다. 그 꽃으로 진달래는 대개의 다른 나무들도 그렇지만 한 해 동안 우리에게 그 존재 가치를 기억에 담아두게 하면서 사랑을 받는다. 바람이 분다. 여수 앞바다에서 봄바람이 분다. 꽃이 핀다. 영취산 자락에 진달래가 벌겋게 피었다. 겨우내 서러움을 한꺼번에 토해내듯 무더기무더기 피어 모닥불 타오르듯 활활 불을 지폈다. 꽃불이 이글이글 거린다.
저 바람이 진달래나무를 괴롭히면서 또 다독거려 저리 고운 꽃을 피게 하였을 것이다. 개나리가 양지바른 곳에서 잘 자란다면 진달래는 약간 그늘지면서 습기가 있는 곳에서 추위에도 끄떡없이 견뎌내며 잘 자란다. 바람이 불고 있다. 차갑기보다 시원함이 묻어난다. 짭조름한 바다냄새가 묻어나기도 하지 싶다. 바람이 겨우 내내 초목을 괴롭혔지 싶어도 이를 앙당물고 단련하여 봄이 오는 길목에 고운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다. 말 그대로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멀리 꽃잔디 같던 능선의 꽃불은 활활 타올랐으나 다행히 열기는 없어 화상을 입지는 않는다. 삼삼오오 사진을 찍느라 바빴다. 그러나 꽃보다도 아름다운 것은 아무래도 사람이다.
꽃은 몇 송이씩 모여 피는데 통꽃으로 끝이 다섯 갈래로 조금 갈라졌다. 암술 하나를 열 개의 수술이 감싸고 있다. 두견새가 밤 새워 울며 피를 토하고 그 피로 꽃이 분홍색으로 물들었다는 속설에 두견화라고 한다. 진달래와 철쭉은 얼핏 겉보기에 비슷하지 싶어도 철쭉은 독기를 지니고 있는 개꽃으로 다르다. 진달래꽃은 꽃잎을 날로 먹을 수 있어 참꽃이라고 한다. 화채나 전을 붙이고 술을 빚어 두견주(백일주)로 먹기도 한다. 진달래의 꽃말은「절제」,「청렴」,「사랑의 즐거움」으로 불린다. 그만큼 관심이 있다는 이야기도 된다. 자신을 억제할 줄 알고 지저분하지 않고 깨끗하면서도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가를 알고 즐길 줄을 아는 것이다.
주위에 잡목은 자꾸 제거시키며 진달래나무와 억새만이 보호를 받지 싶다. 억새는 이미 대궁이 희뿌옇게 바라고 그루터기에서 새싹을 밀어 올릴 준비를 하고 있지 싶다. 능선 나무들의 연초록 새싹이 몽실몽실 댄다. 어찌 영변 약산에만 있다더냐. 보내야 할 이 있다면 아름 따다 뿌리는 것도 좋지만 함께와 거닐어보렴. 그래도 못 잊어 생각나거든 훗날 슬그머니 혼자라도 찾아와 푸념이라도 맘껏 늘어놓아 보렴. 영취산 진달래야. 여수 앞바다 시퍼런 물결과 붉은 진달래꽃 산자락이 하모니를 이루며 정감이 넘쳐흐른다. 서로 보완하며 의지하듯 산은 나무와 함께 꿈을 키우고 바다는 거칠게 출렁거리는 성급한 성정을 누그러뜨려 가다듬는가 보다. - 2013. 04.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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