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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중물의 은혜를 아십니까?
요한복음 4:14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한복음 7: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요즘처럼 삼복더위에는 지하 암반에서 길어 올린 지하수만큼 시원한 것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얼음처럼 시원한 지하수로 등목이라도 한 바탕하고 나면 더위가 영영 사라질 것만 같습니다. 모르긴 해도 거기다가 얼음 둥둥 뛰운 수박화채 한 사발이면 세상에 부러운 것이 없을 것입니다.
옛 날 시골집에서는 펌프로 지하수를 길어 올려서 사용했습니다. 깊은 지하에서 생수를 길어 올리려면 열심히 펌프질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 펌프 몸통에 한 바가지 물을 붓고 펌프질을 하면 신기하게도 시원한 생수가 꽐꽐 쏟아집니다. 펌프에 먼저 한 바가지 부은 그 물을 '마중물'이라고 부릅니다.
'마중'이라는 말은 영접하러 나간다. 는 뜻입니다. 즉, 깊은 곳에 있는 생수를 지상으로 길어 올리기 위해서 펌프 몸통에 물을 채워서 펌프질을 했습니다. 이때 펌프에 압력이 생겨서 그 압력으로 지하의 생수를 길어 올리는 원리를 이용한 것입니다.
먼저 한 바가지 부어서 펌프 몸통을 채웁니다. 펌프 몸통을 먼저 채웠던 그 물이 먼저 마중 나가서 지하의 생수를 영접해서 지상으로 끌어오는 길잡이 역할을 한다고 해서 그 물을 마중해 주는 마중물로 부르게 된 것입니다.
펌프 마중물의 원리는 우리가 주님으로 부터, 주님의 은혜를 받는데 좋은 가르침이 됩니다. 펌프 마중물의 원리를 통하여 우리 주님께 은혜 받는 비결을 한 수 배우고 가면 좋겠습니다. 마중물을 통해 배우는 몇 가지 은혜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 사모함입니다.
주님의 은혜는 사모한 자의 것입니다.
<은혜>라는 말은 헬라어 "카리스"라는 말인데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노력이나 어떤 행위나 공적 때문에 주님이 은혜를 베푸신다면, 그것은 은혜가 아니라 대가라고 불어야 할 것입니다.
<은혜>는 아무 대가없이, 그냥 값없이, 아무 공로 없이, 어떤 전제 조건이 없이, 그저 한량없이 부어 주시니까 <은혜>인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도, 죄 사함을 받은 것도, 구원의 반열에 서게 된 것도, 모두가 일방적으로 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다. 말로다 표현할 수 없는 만 가지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우리가 그냥 이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고 더 큰 은혜의 강으로, 아니 더 큰 은혜의 바다로 나아오기를 바라십니다.
고린도전서 12:31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 은사 ⇒ 카리스
야고보서 4: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셨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하게 받는 비결은 오직 <사모함> 뿐입니다. 시편 107:9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심이로다." 고 하셨습니다.
<사모함>은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여서 하나님의 것을 내 것으로 취하는 최고의 비결입니다. 오직 우리가 하나님 앞에 다할 수 있는 자세는 <사모함> 뿐입니다.
시편 119:131 "내가 주의 계명을 사모함으로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
시편 70:4 "주를 찾는 모든 자로 주를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모하는 자로 항상 말하기를 하나님은 광대하시다 하게 하소서"
복음성가(851장)에 이런 찬양이 있습니다.
똑바로 보고 싶어요. 주님 온전한 눈짓으로 똑바로 보고 싶어요. 주님 곁눈질 하긴 싫어요. 하지만 내 모습은 온전치 않아 세상이 보는 눈은 마치 날 죄인처럼 멀리하며 외면을 하네요. 주님 이 낮은 자를 통하여 어디에 쓰시려고 이렇게 초라한 모습으로 만들어 놓으셨나요.
주님께 드릴 것은 <사모하는 이 마음>뿐, 이 생명도 달라시면 십자가에 놓겠으니 허울뿐인 육신 속에 참 빛을 심게 하시고 가식뿐인 세상 속에 밀알로 썩게 하소서“
먼저 한 바가지의 물이 마중물이 되어 큰물을 길어 올리는 것처럼, 우리가 주님께 드릴 것은 한 바가지 마중물처럼 <사모하는 마음>뿐입니다. 그 <사모함>을 받으신 주님은 우리에게 넘치도록 부어 주십니다.
둘째, 선감사입니다.
어쩌면 우리들의 현실이 아직은, 도저히 감사를 하려고 해도 <감사>할 수없는 그런 상황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좋게 하시는 하나님, 반드시 잘 되게 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미리 감사>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선진들은 한 결 같이 하나님께 <먼저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했습니다.
그 캄캄하고 차디찬 감 옥 안에서도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목숨이 촌각을 다투는 그런 상황에서도 스데반은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것을 기쁨으로 여겼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었을까요?
지금까지 받은 은혜가 너무 크고 놀랍기만 하기 때문입니다. 한 번도 실수하지 않으시고 실망 시키지 않으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분명히 살아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박국 3:17~18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한 바가지 마중물이 먼저 펌프의 몸통에 부어질 때, 펌프는 이제 더 이상 빈 통이 아닙니다. 그 한 바가지의 마중물이 펌프 깊숙이 들어있는 생수와 한 통속으로 연결을 시켜 놓은 것입니다. 한 바가지의 마중물이 먼저 길을 예비한 것처럼, 우리 삶속에서 <감사>는 우리와 주님과 깊숙이 연결하는 매개체가 되는 것입니다.
미리 하는 감사를 <선 감사>라고 합니다. <선 감사>를 하나님께 드릴 때마다, 우리 주님께서는 주님 속에 있는 은혜도, 기쁨도, 평안도, 생명도, 사랑도, 영광도, 축복도, 강건함도, 승리도 풍성하게 허락하여 주십니다. 특별히 도저히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감사>를 드릴 때, 주님의 놀라운 은혜들은 몇 갑절이나 증폭되어 우리에게 부어 주십니다.
셋째는 희생입니다.
한 바가지 마중물이 희생해서 생수를 품어 올림으로 수많은 목마른 자들의 갈증을 해갈합니다. 요셉 한 사람이 애굽으로 팔려가는 <희생>으로 야곱과 그의 식솔 70명의 온 가족이 생명을 건질 수 있었을 뿐만이 아니라 2백만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살려 냈습니다.
한 사람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게 하셨습니다. 목숨까지도 아끼지 아니하신 그리스도의 순고하신 그 희생은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는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창세기 45: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로마서 5:19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넷째는 희망입니다.
빈 펌프라도 마중물만 있다면 풍족하게 생수를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습니다. 성경은 또 다른 이름은 Hope the book 희망 책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영원한 <희망>이 되십니다.
사망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 하신 우리 주님은 모든 죽은 자들에게 부활의 희망이 되십니다. 12해 혈루 증으로 절망하던 여인에게는 주 예수님의 옷자락이 <희망>의 마중물이 되었습니다.
밤새 헛 그물질로 빈 배 뿐이었던 베드로에게 주 예수님이 누가복음 5:4절에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라.” 고 하신 그 한 말씀이 베드로에게는 <희망>의 마중물이 되었습니다.
사렙다 과부에겐 빌려온 기름병이 <희망>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다시 오신다." 고 하신 우리 주님이 우리의 <희망>인 것입니다.
다섯째는 합력입니다.
한 바가지 마중물은 펌프와 <합력>하여 깊은 생수를 길어 올려서 우리를 시원하게 합니다. 한 바가지 마중물이 없다면 그 시원한 지하수는 그저 언감생심일 수밖에 없습니다.
역시나 저 깊은 곳에서 지하수를 끌어 올리는 펌프가 없다면 한 바가지 마중물은 무익할 뿐입니다. 두 가지 모두가 있음으로 시원한 생수를 맛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모세는 아론과 미리암과 함께 <합력>하여 역사적인 출애굽의 대업을 성사시켰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함께 모세가 이루지 못했던 가나안 정복의 대업을 <합력>함으로 성취했습니다.
다윗은 아둘람굴에 까지 함께 동거, 동락 했던 400명의 용사들과 함께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그 <합력>을 통하여 강력한 통일 왕조를 이뤘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 실라, 브리스길라 부부, 뵈뵈 자매 등 수많은 일꾼들과 <합력>하여 수많은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모두가 <합력>한 결과인 것입니다. 하나는 천을 당하지만 둘은 만을 감당합니다. 한 바가지 마중물, 한 사람의 목마름도 해갈 시킬 수 없는 미미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함께 합력함으로 측량할 수 없는 풍부함을 길어 올립니다. 한 바가지의 작은 힘이 <합력>한 숨은 공로인 것입니다.
여섯째는 예비함입니다.
펌프가 있는 샘 곁에는 항상 마중물이 준비 되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펌프가 있다고 해도 마중물이 없다면 무요지물이요 말짱 헛것일 뿐입니다.
선지생도 중에 한 사람이 죽었습니다. 남편이 죽고 과부가 된 여인이 엘리사를 찾아왔습니다. 빚 때문에 자식이 노예로 팔려가게 되었다고 엘리사에게 호소했습니다. 엘리사가 그 과부의 호소를 듣고, 그 과부에게 그릇을 있는 대로 빌려 오라했습니다.
정확하게 빌려온 그릇 만큼만 기름이 찼습니다. <예비>된 만큼만 역사 하십니다. 우리가 날마다 오실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예비>해야 합니다. 언제나 축복은 <예비>된 자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곱째는 가치입니다.
작은 한 바가지의 마중물이 목마른 자들에게 갈증을 해갈하는 생명수가 되니 얼마나 귀한가요?
이스라엘 민족은 갈대아 우르에서 아버지와 함께 우상이나 만들어서 장사하며 살았던 별 볼일 없이 하찮은 존재였던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시골 촌 동네 베들레헴에서 양치기 목동의 팔형 제 중, 말째인 다윗을 통하여 이스라엘 통일 왕국을 이룬 다윗왕조가 시작되었습니다.
요한복음 1:46절에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 고 했던 그 나사렛에서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 주 예수님께서 나심으로 죄인 구원의 마중물이 되셨습니다. 그리스도야 말로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엄청 난 <가치>를 지닌 인류의 <최고의 마중물>이십니다.
여덟째는 겸손입니다.
작은 한 바가지의 마중물이 생수를 길어 올린다고 해서 까불거리거나 교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펌프가 있고 펌프질 하는 사람이 있었기에 그 모든 것이 가치가 있었으니 <겸손>하라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겸손>으로 허리를 부러트리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고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서 <겸손>하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 5:5~6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에서 겸손 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허리에 수건을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던 우리 주님의 그 <겸손>은 오늘도 여전히 살아서 역사하는 힘이 큽니다. 우리 주님의 <겸손>하심을 본받아 우리 모두가 섬기는 자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어느새 올 여름도 초복이 지나고 중복을 향해 가는데, 아직도 시원한 펌프가 길어 올린 생수가 더욱 그리워지는 이때입니다. 펌프에서 쏟아지는 생수처럼 오늘도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 주님의 은혜가 펑펑 쏟아지길 기대해 봅니다. 그 생수로 삶에 지쳐있는 수많은 영혼들의 기갈을 해갈해야겠습니다.
할렐루야~! 주님께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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