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천리 정승골 이야기
민 정 순
정승골 아랫마을에 사셨다는 구십이 다 되신 할머니
-나물 캐러 정승골 가는데
-굽이굽이 돌아서 가야 하는데
참내배기, 큰모독수나무, 마당지공동산, 이씨 바탕 세미약수,
마지막 굽이 당고개, 여기서 다시 정승골 내려가려면
서른세 고개를 또 넘어야 했어
산속에서 동무들하고 밥을 먹을 때 큰 방구*에서
물이 졸졸 새어 나와서 만개 이파리 받쳐 놓으면
물이 고여 숟가락으로 떠서 먹었고
모심기를 하는데 보니 도랑물을 바가지에 담아서
모를 담그고 모가 동동 뜨면 그것을 손으로 갈라서 심대
아낙들이 검을 치마에 흰 저고리를 입고
앞치마를 두르고 다니는 것도 봤는데
그 당시 마을 사람들이 몽땅
어디론가 잠시 사라졌다가 나타났거든 왜 그런지는 몰라
난리가 났다 하기도 하고
골이 너무 깊어 손바닥만 한 하늘만 보여
산 만데이 올라가면 저 멀리서 허옇게 뭣이 보였는데
그것이 낙동강 물이라 하대
간짓대로 이 산 저 산 걸치면 빨래 널겠다고도 했거든
해가 너무 빨리 져서 어둑해지면
아부지가 항상 마중을 나왔어
아부지가...
소싯적 이야기를 풀어내시다가
한참을 감회에 젖어 계신다
한 고비 넘을 때마다 잠시 숨을 돌렸다는 할머니
오래된 빛바랜 일기장은 다시 서랍으로 들어가
봉인되는 순간이다
*바위의 경상도 방언.
첫댓글 아름다운 시 감상 잘 했습니다.
좋은시 감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