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THIS IS TOTAL WAR
카페 가입하기
 
 
 
카페 게시글
동양사 진국(辰國)은 왜, 어떻게 중국으로 가려 했을까?(뇌내 망상 & 뻘글주의)
배달의 민족 추천 0 조회 374 23.09.28 14:51 댓글 19
게시글 본문내용
 
다음검색
댓글
  • 23.09.28 14:54

    첫댓글 크고 작은 많은 국가를 중원에서 진국으로 퉁친걸로 볼수있나요?

  • 작성자 23.09.28 14:55

    저도 지식이 얕아서.... 애초에 "연맹왕국" 체제이지 않았을까요?

  • 23.10.02 22:50

    @배달의 민족 전혀 어떤 구심점도 없고..... 그냥 중국하고 무역할 때 적당히 그때그때 대표 세워서 간 건 아니었나 그런 생각은 듭니다. 노스아스터님 말씀이 보다 실상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 23.09.28 15:51

    잘 읽었습니다. 읽어보니 꽤 타당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나라가 백제를 멸망시키기 이전에는 대체로 연안항해로 오갔다는 것이 통설인 만큼, 평양에 중심지를 둔 고조선이 연안항해의 항로를 차단함으로써 중국과 진국의 교통을 막았다는 해석이 가장 자연스럽게 보이네요. (뭐, 저야 고대사는 문외한인만큼 가지고 있는 지식이 한정적입니다만...)

  • 작성자 23.09.28 15:54

    뭐 저도 얕은 지식으로 추정해 본 것 뿐이니까요 ^^

  • 23.09.28 16:07

    동시대 로마나 더 오래된 시기의 그리스, 혹은 페니키아 등은 서해보다 몇배는 더 큰 지중해 흑해 이런 바다를 제집 드나들듯 왔다갔다하며 곳곳에 도시세우고 무역망 세우고 그랬는데 동아시아는 그게 안되었군요.

    평균 1000m 수심의 동해는 그렇다치고
    서해가 지중해보다 항해하기 껄끄러운 곳이여서 그랬을까요

    어찌보면 서해도 반지중해인데
    제주 상해 아래는 대양이라쳐도 그 이북은 대륙붕이라 상대적으로 얕았을텐데
    왜 해상무역이 활성화되지 못한건지 궁금하네요
    유사이래 주요 문명권 중 하나이고 무역 수요가 생각보다 없다쳐도 딱 바다 가운데두고 해상무역하기 좋아보이는 지리인데....

    무슬림 인도 상인들도 저기 아프리카 케냐 모잠비크 이런 곳까지 갔던거 생각하면 동아시아 해상 무역은 참 소극적인 느낌이에요.

    생각해보니 또 화교들은 인도네시아까지 잘만 갔었던거 같고...아리송하고 호기심이 생기네요 ㅎ

  • 작성자 23.09.28 16:22

    근데 역으로 말하면 그 지역들은 어떻게든 해양으로 나가야만 할 동기가 있었던 반면에, 동아시아 특히 중원지역은 해양으로 진출할 이유가 동기가 상대적으로 적었다는 이야기죠 명나라 홍무제가 죽으면서 "비용대비 수지타산이 안맞으니까 절대로 중원 외부지역에 군사 파견하지 말라"고 했다던가, 정화의 남해원정이 돈만 잡아먹어서 폐지 시켰다던가, 건륭제가 "우리는 서양 물건 필요 없는데?" 등등의 표현이 그냥 나오는게 아닌 것이죠. 실제로 아편 전쟁 직전까지 서양의 대중국 무역은 손해가 심했다죠.

    다만 한반도나 일본의 경우는 (정치적인 동기던 경제적인 동기던 간에) 황해를 건너서 중국과 활발히 교류를 하려 시도 한 편이기는 합니다. 처음에는 한반도 연해를 따라서 한사군이나 그 너머 산동을 통해 중국과 교류를 했지만 백제가 전라도에서 다이렉트로 중국 남쪽으로 가는 황해 사단항로를 개발하고 한동안 일본도 백제를 통해 남조와 교류하게 되죠. 나중에 통일 신라시기에 신라방들과 이를 활용한 장보고가 출현하는게 이러한 상황하에서 이루어진 것이겠죠.

  • 23.09.28 21:40

    태풍이나 자연재해가 훨씬 심하지 않나요??

  • 23.09.29 08:17

    그쪽은 내해고 여긴 아니라 난이도가 높음

    동해바다 지랄 맞은거야 원체 유명하고

  • 23.09.28 20:44

    흥미롭네요 잘 보고 갑니다

  • 23.10.02 22:50

    한씨조선의 준왕이 전북 서해안을 통해 익산 일대에 건마국을 건국하고 이른바 '韓'의 수장이 된 것은 고고학적 발굴로 실증된 사항입니다. 문헌 사료상 기록된 위만조선 건국기인 BC194년도에 거의 들어맞게 기원전 2세기 초반경으로 추정되는 대규모 한씨조선계 남래 집단이 문득 익산에 등장해서 지배 세력이 되고 이들의 지배력 관찰에 반발하는 세력이 침미다례로 빠져나갑니다.

    또한 백제 건국 설화는 주로 비류계와 온조계가 집권할 당시 백제 국내 사정에 맞춰져 윤색되었고 주로 고구려 건국 설화에 맞춰 가공된 얘기기에 마한이나 조선과는 전혀 무관합니다.

  • 작성자 23.10.03 14:27

    - 아하 그럼 준왕남천설은 고고학적으로 증명이 되는 이야기로군요. 역시 꺼무위키발에 있는 논란 어쩌고는 씹어도 되겠네요.

    - 제가 표현을 제대로 못한 것 같네요. "유이민 집단이 들어와서 기존의 있던 집단이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는 구도"가 백제 전승에도 나타난다는 표현을 하려던 것 뿐이지, 준왕남천이야기가 직접적으로 백제 건국설화에 영향을 주었다고 주장하려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표현을 수정해야 겠네요.

    여러 지적 감사합니다 ^^

  • 23.10.04 09:39

    @배달의 민족 준왕 남천은 나무위키에 제대로 들어가 있습니다. 1년전에 제가 수정해놓았습니다.

  • 작성자 23.10.04 13:20

    @마법의활 그러나 여기에는 수많은 논란이 따른다. 준왕남천설에 대한 비판 중 몇가지만 열거해보면 다음과 같다. 1). 준왕이 남천해서 한반도 남부로 가서 마한을 건국했다는 얘기는 진수가 <삼국지> 위서동이전에서 처음한말인데, 편찬연도가 A.D 280년이다.삼국지 위서동이전에 따르면 준왕이 마한을 건국했다는 시점은 B.C194년인데 그로부터 무려 500여년이나 지나서 쓰여진 책이다. 사건과 무려 500여년의 시차가 난다. 2). 준왕과 동시대 인물인 사마천이 지은 <사기>나 <한서> 등에 위만에게 쫓겨난 준왕의 행보가 나타나야 정상인데 준왕이 반도로 향했다거나 마한을 건국했다는 기록은 찾아 볼 수 없다. 3). 준왕이 위만에게 쫓겨난 후 마한에 가서 왕이 되었다는 것은 역사적 서술이 아니다..........준왕이 마한의 지도자가 되어 문화를 전파한게 사실이라면 마한 지역의 고인돌 문화와 고조선 지역의 고인 그러한 일부의 유물들은 고조선 지역과 연속성이 없으며 또 준왕의 것이라고 단정지을 근거도 없다.

    https://ko.wikipedia.org/wiki/%EC%A4%80%EC%99%95

    여긴 이렇게 되어있더라고요 ^^;; 나무위키는 아니고 위키백과기는 합니다만...

  • 23.10.04 14:17

    @배달의 민족 옛날 책만 보고 헛소리만 기입해놨네요. 기원전 2세기 고조선 묘제는 토광묘지 고인돌이 아닙니다. 그리고 뭔 마한이 고인돌이여? 쥐롤하고 자빠졌네요.

  • 작성자 23.10.04 14:22

    @마법의활 그렇군요. 어쨌든 준왕의 남천설이 고고학적으로도 증명된다는 사실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몰라서 그러는데 준왕 남천설 관련 연구에 대해서 알려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 23.10.04 15:02

    @배달의 민족 나무위키 건마국 및 준왕 항목을 보시면 되겠습니다.

  • 23.10.04 15:08

    @배달의 민족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2985115

    저의 주장과 견해는 주로 이 책에 근거합니다.

  • 작성자 23.10.04 15:09

    @마법의활 옙 감사합니다 ^^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