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에서 줄포까지의 30번 국도는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아름다운 해안도로이다.
동해 바다가 장엄하고 남해 바다가 정겹다면 서해바다는 스산하다.
회색 빛의 하늘과 안개, 금방이라도 가슴 깊숙이 있는 무언가를 쏟을 것 같은 바다가 서해이다.
오늘 같이 바람 불고 눈이 나리는 날의 서해는 정말이지 외롭고 높고 쓸쓸하다.
갯벌은 수평선을 만나고 염전은 지평선을 만나다. - 곰소에서
줄포 나들목을 벗어나 얼마간을 달리자 곰소가 다가 왔다.
바람 속에 묻힌 염전을 뒤로 하고 찻길을 건넜다. 물이 빠져 벌거 벗은 갯벌이 있는 포구로 향했다.
포구는 적막하였다. 아니 을씨년스럽기까지 하였다. 서해안의 포구는 온통 잿빛 하늘에 둘러 싸여 있었다.
이따금 눈발이 바람에 날리기 시작하더니 아예 퍼 붓기 시작하였다.
갯벌에 다가 서자 "광은" 이라고 새겨진 배 한 척이 갯벌 위에 누워 있었다.
포구를 드나드는 작은 어선들을 자세히 보면 각기 자기 이름이 있다. 이 이름들엔 선주들의 소망을 그대로 담고 있을 것이다.
이 배의 주인은 어떤 꿈을 담아 배이름을 "'광은' 이라고 했을까?
새로 조성된 상가 쪽을 향했다. 등대와 갯벌, 고만고만한 배들이 있어 풍경이 좋으리라 생각되었다.
카메라를 들고 차에서 내리는데 바람이 아니라 광풍이 몰아 친다. 눈과 바람에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카메라를 움켜 잡고 갯벌로 다가 섰다. 서 있기도 힘들었다.
횟집 주인이 안스러워 보이는지 식당으로 들어 오라고 한다. 괜찮다고 사양을 하니 몇 번이나 들어 오라고 한다.
"이 폭설에 웬 사진이냐고. 아무 것도 사먹지 않아도 되니 들어 와서 몸을 좀 녹이라고."
우물쭈물 하고 있는데 일순 바람이 잦아 들고 햇빛이 두터운 구름 사이를 비집고 내리쬐기 시작하였다.
황홀하였다. 카메라 렌즈에 내린 눈을 급히 닦아 내고 갯벌과 해를 향했다.
갯벌을 뒤로 하고 염전을 향했다. 곰소는 소금을 이르는 은어이다.
한때 번성하던 줄포항이 쇠퇴하여 1938년 곰소항을 서해 어업의 전진기지로 만들면서 바다를 막을 때 생긴 것이 바로 곰소염전이다.
질좋은 천일염으로 인해 젓갈이 발달했다. 쇠퇴한 곰소를 살린 것이 바로 젓갈의 상품화였다.
지금은 많이 쇠락했으나 한때는 뒷골목 개도 지폐를 물고 다녔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로 번성했던 어장이었다.
서해안의 싱싱한 해산물을 곰소 천일염으로 염장한 곰소 젓갈은 가지 수도 다양하거니와 맛도 있어 인기가 좋다.
곰소염전 낡은 판자로 된 소금창고와 더 없이 넓은 소금밭이 여행자에게 색다른 풍광을 보여 준다.
곰소의 한 식당에서 젓갈백반을 먹었다.
곰소젓갈 곰소에는 곰소젓갈을 직접 판매하는 가게가 많이 있으며 택배 주문도 가능하다.
오른쪽 아래부터 오징어젓갈, 황석어(조기과)젓갈, 청어알젓, 토하젓, 낚지 젓갈, 창란젓, 어리굴젓, 수태젓(갈치살), 갈치속젓이다.
스산한 일몰의 포구 - 왕포마을에서
왕포마을의 포구는 거대한 콘크리트 부두이다.
잘 나가던 황금시절은 가고 텅텅 빈 배의 슬픔이 이 육중한 콘크리트 부두에 묻혀 버린듯 하였다.
물이 빠진 갯벌에는 지친 배 한 척이 폭풍속에서 마지막 햇빛을 쬐고 있다.
왕포마을은 300 여년 전 조선 숙종때 김해 김씨가 정착하여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한다.
예전에는 수백 척의 어선들이 모여들 정도로 황금어장을 주름 잡았다고 한다.
왕포(旺浦)란 마을 이름도 말 그대로 '고기가 많이 잡혀 번성한 포구'란 뜻으로 붙여졌다.
1970년대만 해도 잘 나가던 어촌 마을이 이후 동력선에 칠산 앞바다 어장을 빼앗기면서 점점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어자원도 고갈되어 주민들이 하나 둘 마을을 떠나면서 150여 가구에서 지금은 40여 가구로 줄어 들었다.
바람도 배도 쉬어가는 곳 - 작당마을에서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겠으나 마을 이름이 재미가 있다.
바람이 제법 거세어진다. 작당마을의 포구는 부두 양 옆으로 있다. 큰 바다쪽 부두의 배는 이미 바람에 날려 땅으로 기어 오르기 시작하였다.
배들이 바람을 피할 작당을 해야 할 듯하다. 이웃 왕포마을과 더불어 한때는 황금어장으로 주름 잡았던 이 포구도 적막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조기잡이 배로 북적거렸을 포구를 추억하기에는 파도가 너무 드세다. 이 드센 파도가 잦아 들면 고만고만한 배들이 포구를 들락날락 할 것이다.
서해 바다의 스산함과 적막감을 배에 가득 싣고 안개 속으로 뱃길을 떠난 배는, 어둠 속에 하얀 불을 밝히면 어머니 품같은 포구로 돌아오리라.
모항으로 가는 길 안도현의 시 중에서
모항 가는 길은 우리 생이 그래왔듯이
구불구불하지, 이 길은 말하자면
좌편향과 우편향을 극복하는 길이기는 한데
......(중략)......
저 잘난 세상쯤이야 수평선 위에 하늘 한 폭으로 걸어 두고
가는 길에 변산 해수욕장이나 채석강 쪽에서 잠시
바람 속에 마음을 말려도 좋을 거야
.......
솔바람에 치는 파도 - 모항에서
바람을 피하여 다시 작은 포구 마을에 들어 선다. 모항이다. 많은 시인들에게 영감을 주었던 아름다운 포구 마을이다.
눈과 바람이 잦아 든다. 하늘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오늘은 장엄한 일몰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 같다.
아담한 해수욕장과 울창한 솔숲이 잘 어우러진 곳이다.
소나무와 함께 일몰을 보다. - 솔섬에서
솔섬에 도착하니 제법 날씨가 맑아지는 듯하다. 혼자 있기에는 너무나 넓은 백사장.
일몰의 해변을 보기 위해 여행자 혼자 해변을 전세낸 셈이 되었다. 소나무 이십여 그루가 섬의 주인인 솔섬에 해가 지기 시작하였다.
애초 눈을 기대하고 온 여행이었는데도 날씨가 맑아지니 멋진 일몰까지 욕심을 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해는 간데 없고 먹구름과 어둠이 바람에 실려 오기 시작했다.
외진 곳에도 바람은 분다 - 궁항에서
채석강과 격포를 거쳐 궁항 언저리 까지의 해안이 적벽강이다. 다소 외진 곳인 궁항은 하얀 등대와 바람 조그마한 배들이 전부였다.
포구라고 하기에도 너무나 작은 바다 위에는 그 옛날 적진을 향해 돌진하던 배들처럼 등대를 향해 소선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격포에서 바다를 껴안고 하룻밤을 자다.
옛 수운(水運)의 근거지로 조선 시대에는 전라우수영이 관할하던 격포진이 있었던 곳이다.
당나라 이태박이 배 타고 술마시다가 물에 뜬 달을 잡으려다 빠져 죽었다는 채석강과 비슷하다 하여 채석강이라는 이름이 붙여 졌다.
격포해수욕장 일대의 2km 가량의 해안선을 적벽강이라고 한다. 이 역시 중국의 적벽강을 닮아 경치가 좋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바람과 추위, 흩날리는 눈에 여행자의 몸은 만신창이다. 파도가 숙소까지 휘몰아치는 격포의 한 모텔에서 여행자는 바다를 껴안고 그렇게 잠이 들었다.
너, 문득 떠나고 싶을 때 있지?
마른 코딱지 같은 생활 따위 눈 딱 감고 떼어내고 말아야
비로소 여행이란,
인생의 쓴맛 본 자들이 떠나는 것이니까
세상이 우리를 내버렸다는 생각이 들 때
우리 스스로 세상을 한 번 내동댕이쳐 보는 거야
오른쪽 옆구리에 변산 앞바다를 끼고 모항에 가는 거야
............
안도현의 모항으로 가는 길 中에서
첫댓글..좋군요 울 와이프랑 다녀와야.....
네두분..오붓한 시간을..가지시길요
연리지님 이쪽을 어찌 그리 잘 아시는지여??
좋아하니까...끌림이죠 ㅎㅎ
제가 외가가 부안이거든요 ㅎㅎ 행안면이라 어릴절 자전거 타고 많이 다녔던 길이거든요 ㅎㅎ
아~항 그러시구나 ㅎ 유년의 추억 한자락 ..꺼내보시기를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