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의 첫째 계비 장경왕후는 인종을 낳고 둘째 계비문정황후는 명종을 낳았다.
장경왕후의 오빠 윤임을 대윤, 문정왕후의 동생 윤원형을 소윤이라 하였다.
인종이 죽고 명종이 즉위했던 그해(1545) 소윤 윤원형이 대윤 윤임 일파를 모반죄로 몰아
형조판서 윤임, 좌의정 유관, 이조판서 유인숙 등 10여명을 죽였다.
이 후 5,6년에걸쳐 100여명이 유배 혹은 처형되었다.이를 을사사화라 한다.
많은 인재들을 죽였으니 비분강개하지 않는 이가 어디 있을까.
송순이 시조 한 수를 지었다.
꽃이 진다하고 새들아 슬허마라
바람에 흩날리니 꽃의 탓 아니로다
가노라 휘짓는 봄을 새와 무슴 하리오
「을사사화가」이다.
어떤 잔치 자리에서 기녀가 이 시조를 불렀다.
소윤의 일파인 진복창이 이 노래를 듣고 누군가를 비방하기 위해 이 노래를 지었다 생각하여 기녀에게 캐물었으나
기녀는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하마터면 필화를 당할뻔 했다.
얼핏보면 꽃이 지고 봄이 가는 것을 슬퍼하는「상춘가」로 보일지 모르지만 속뜻은 그렇지 않다.
'꽃이 진다고 새들아 슬퍼하지 말아라.바람에 못이겨 흩날리는 것이니 꽃의 탓이 아니로다.
떠나가느라고 훼방하는 봄인데 이를 어찌 미워 하겠느냐'는 것이다.
꽃이 진다는 것은 죄 없는 많은 선비들의 죽음을 뜻한다.
새들은 이러한 세상의 꼴을 바라보고 있는 백성들이다.
바람은 을사사화를, 꽃은 선비들을 지칭하며, 휘짓는 봄은 득세한 소윤 윤원형의 일파를 말한다.
새와 무삼하리오는 이를 어쩌겠느냐 하는 것으로 탄식과 체념이 섞인 당시의 사회상을 대변해주고 있다.
송순은 1519년(중종 14년)별시문과에 급제하고 승무원권지부정자를 시작으로 홍문관부제학,사간원 대사간을 거쳐
전주 부윤, 나주목사 등을 지냈고 70세에 기로소에 들었다.
1568년(선조1) 한성부윤이 되어『명종실록』을 찬수했으며 77세에 의정부 우참찬이 된 뒤 50년만에 벼슬에서 물러났다.
이 후에도 송순은 선조의 부름을 받았지만 14년동안 면앙정을 오르내리며 유유자적한 생활을 하다
90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송순은 성격이 온화하면서도 강직했다.
음률에 밝아 가야금을 잘 탓으며 또한 풍류를 아는 호기로운 재상으로 벼슬살이 50년동안 단 한 차례
서천에서 1년 6개월을 귀양살이 했을뿐으로 이황은 그를 일컬어 '하늘이 낸 완인(完人)'이라고 했으며
송강 정철은 '조정에 있는 60여년을 대로만 따랐다.'고 흠모했다.
송순의 문학은 고향인 담양 면앙정을 중심으로 호남 문학을 찬란하게 꽃피운 누정문학의 산실인 호남가단의 중심 무대로
면앙정(免仰亭)은 "허리를 구부리니 땅이요, 우러러보니 하늘이라"하는 제목에서 따온 것으로 송순이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고 사람에게 굽어도 부끄럽지 않다"라는 다짐으로 지은 이름이다.
어느날 명종이 황국을 분에 담아 옥당관에게 주며 시를 지어 올리라고 했다.
옥당관이 갑자기 당하는 일이라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 참찬으로 숙직하고 있던 송순에게 부탁하여 시를 지어 올렸다.
풍상이 섞어친 날에 갓 피온 황국화를
금분에 가득 담아 옥당에 보내오니
도리야 꽃이온냥 마라 님의 뜻을 알괘라
임금님이 놀라며 이 시를 누가 지었느냐 물으니 옥당관이 송순이 지었다고 말했다.
왕이 감탄하여 송순에게 상을내렸다.이것이 「자상특사황국옥당가(自上特賜黃菊玉堂歌)」,일명 「옥당가」라고 한다.
옛 선인들은 서리에도 꼿꼿하게 피는 국화를 군자의 덕에 비유했다.
이 시조에는 어떤 역경에 처해도 국화와 같이 기개있는 선비가 되어 달라는 임금님의 뜻이 들어있다.
이에 복사꽃,오얏꽃처럼 쉬 변절하는 일 없이 지조를 지키는 신하가 될 것임을 다짐하고 있다.
송순은 왕의 마음을 이렇게 잘 읽어냈다.
십년을 경영하여 초려삼간 지어내니
나 한간 달 한간에 청풍 한간 맡겨두고
강산은 들일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리라
10년간 애써서 초가삼간 마련했지만 문틈으로 바람이 지나가고 지붕 틈으로는 달이 보인다.
한 간은 내게, 한 간은 달에게, 또 한 간은 청풍에게 맡겨두고 강산은 들일데가 없으니
병풍처럼 둘러두고 보겠다는 것이다.
안빈낙도의 경지이다.
초가삼간에 청풍과 명월 그리고 강산까지 들여놓고 사는데 무엇이 부러우랴.
세상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가난하지만 즐기지 못할 뿐이지 누릴수 있는것이 너무 많다.
그는 이렇게 자연과 함께 유유자적하게 살았다.
천수를 누리며 산 이도 흔치 않지만 일생 관은이 좋은 이도 흔치 않다.
온후하면 강직하지 못하고,
강직하면 온후하지 못한 것이 일반적인데 송순은 온후하면서도 강직했다.
보이지 않는 위대함은 이를 두고 한 말이 아닐까.
첫댓글 어느 제자에게 이 글을 보낸 모양이군. 그 제자 행복하겠다 ㅎㅎㅎ
네, 시조시인.평론가이며 서예를 겸비하고 계시는 서예가 석야 신웅순님의 글 입니다.
행복함이 어찌 제자에게만 있으오리이까.^^
나는 엘리트를 좋아합니다 ㅡㅡㅡ나는 라스포사 누이 같은 엘리트를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