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하늘이 맑다. 겨을 헷살이 내려와 뒷마당 과수원에 서 있는 나무들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고 있다. 제 몫의 삶을 감당해낸 나무들 위에 내리는 하늘의 빛줄기가 아름답다.
햇살의 손길을 따라가던 눈길이 나무의 밑동에 머문다. 밑동쯤에 나무를 꼭 붙들고 있는 그림자가 보인다. 한입 베어 물면 단물 뚝뚝 흘리며 녹아들던 빨간 자두 맛에 감동하던 날에도, 입안 가득 퍼지던 사과 향으로 마음까지 상큼해지던 가을날에도 보이지 않았던 그림자가 차가운 겨울이 되어서야 눈에 들어온다. 나무는 그림자와 함께 계절을 나고 있는데, 나는 왜 일찍이 깨우치지 못했을까.
한 장의 사진이 떠오른다. 지난 봄 튤립 축제에 다녀온 친구가 보내온 것이다. 오래 전에 보았던 그곳, 튤립과 수선화가 끝없이 펼쳐진 마운트 버논의 들판을 그리며, 친구 덕에 가만히 앉아서 꽃구경을 하려나 했다. 그런데 기대와는 달리 사진 속에는 꽃이 없다. 얼핏 보기엔 뚜렷한 모양조차 드러나지 않는 수묵화처럼 보인다. 자세히 보니, 튤립의 민낯이 오롯이 담긴 사진이었다. 거대한 꽃물결이 넘실대는 들판에서 그녀는 밭이랑에 누워 있는 꽃의 그림자를 놓치지 않았다. 사람들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 숨어 있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것을 사진 속에 곱게 담아둔 친구, 그녀의 깊은 눈길을 빌려 사진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그림자가 살아 숨 쉬고 있다. 그림자 꽃에서 그녀의 온화한 미소가 피어나고 있다.
어렸을 때, 친구들과 그림자밟기를 하며 놀았다. 아이들은 그림자를 잡으려고 쫓아가고, 잡히지 않으려고 내달렸다. 태양이 그리는 커다란 그림자 시계 속에서 뛰어다니던 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도 시곗바늘에 매달려 함께 돌았다. 석양녘에는 내 키보다 훨씬 큰 그림자가 따라다녔고, 겨울이 되면 여름보다 긴 그림자가 붙어 다녔다.
겨울밤이면, 빛이 어둠 속에서 불러낸 그림자들과 놀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백열전구 아래서 두 손을 모아 손가락을 움직이면 벽에 나비가 날고 개가 컹컹 짖어대는가 하면, 오리가 긴 목을 빼고 이리저리 두리번거리기도 했다. 그림자 놀이를 히면서 눈에 보이는 것과 실제가 다를 수 있다는 세상의 이치를 어렴풋이 깨우쳤던 것 같다.
어느 밤길에서 마주친 내 그림자가 무서워서 있는 힘을 다해 골목길을 뛰어나왔던 적이 있다. 떨어져 나간 줄 알았던 그림자를 큰길에서 다시 만났을 때, 그 그림자가 얼마나 무서웠던지, 그림자는 결코 떼어낼 수 없으며, 내가 드리운 그림자가 나를 두렵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어쩌면 나는 지금껏 감춰두고 싶은 삶의 파편들을 그림자 속에 가둬놓고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때로는 날카로운 모서리에 찔려 아파하면서도 어둠에 가려져 있다는 사실만으로 아픔을 견뎌내면서, 어리석은 삶이었다. 외면하고 싶은 그 순간들 중 어느 것 하나 내 삶이 아니었던 것은 없다. 밝은 빛 아래서 더욱 또렷이 나타나던 그림자를 생각한다. 이제, 등불을 환히 밝히고 내 안의 그림자를 불러내야겠다. 그림자놀이를 하던 유년의 겨울밤을 생각한다.
며칠 동안 겨울비에 씻긴 그림자가 성큼 다가와 곁에 선다. 반갑다. 가슴을 열어 그림자를 안아본다. 숨결이 느껴진다. 그림자를 벗 삼아 노을 고운 지평선을 바라보며 걸아가고 싶다. 가는 길 어딘가에 그늘 드리워진 작은 쉼터 하나쯤 만들었으면 좋겠다. 작으면 작은대로 크면 큰대로 그늘이 되어 그 품에 생명이 깃드는 것을 볼 수 있다면 행복하겠다. 그림자가 자라나 누구에겐가 그늘이 되어줄 수 있다면 가슴 벅차오를 일이다. 내 그림자와 함께 이 겨울을 걷는다. 추위를 이겨낸 그림자가 뜨거운 여름 한날 시원한 그늘로 다시 태어나기를 꿈꾸며,
겨울 햇살이 맑다. 모처럼 내 그림자를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