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이 모두 차를 타고 나주에서 원주로 해서 홍천 인제를 거쳐 원통으로 해서 양구군 해안면까지 가는데 이제는 검문하는 곳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보안이 느슨해 진것인가? 북한이 남침 야욕이 없어진 것인가?
장인어른의 집은 읍내에서도 조금 벗어난 외딴 집입니다. 그러네 마당이 한 300평이나 될만큼 넓었고 마당에 심어진 오래된 돌배나무에 돌배가 많이 열린것이 보입니다.
우리는 차에서 내려 장인어른께 인사하려 장인이 누워있는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장인어른이 침대에서 벌떡 상반신을 일으켜 세우며
"어서와요. 먼길에 힘들었지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헉 !"
그것은 기절하고도 남을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동안 장인 어른은 누가 일으키지 않으면 혼자의 힘으로는 전혀 일어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장인어른이 말은 장모님외에는 아무도 알아들을 수가 없을 만큼 혀가 잘 돌아가지를 않았던 것인데 그날의 장인어른의 말을 마치 아나우서의 그 정돈되고 억양에 품위가 서린 그런 말투였고 발음이 너무 깨끗하고 정확 했던 것입니다.
`이럴수가! 이건 기적이구나 !`
"얼마전 나주를 다녀온 후로 좋아졌어요."
장모님의 말씀입니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아 그때 율리아님을 빕고 갔더라면 치유가 되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뼈에 사무쳤습니다.
"장인께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가서 옛날에 간첩을 잡았던 무용담을 들려달라고 해 봐요."
장모님이 내게 귀띔을 해 주었습니다.
장모님도 무척 기쁜가 봅니다.
그래서 나는 두 아들을 데리고 장인어른의 방으로 들어가서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장인어르신 ! 우리 아들에게 장인어른이 옛날에 간첩을 잡았던 무용담을 이야기 해 주시면 고맙겠어요."
그러자 장인어른의 얼굴에 생기가 돌며 나를 바라봅는데 눈의 시력은 극도로 나빠져 거의 실명 단계 였습니다.
그러나 마치 눈에 보이는것처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 간첩 잡은 이야기를 시작 하였습니다.
굳어버렸던 혀가 풀려 아주 자유자재로 제스쳐 까지 써 가면서 너무나 조리있게 이야기를 하는데 손에 땀을 쥘 정도로 아슬아슬하고 무시무시한 순간들을 실제로 느끼는것같이 이야기를 이끌어 갔습니다.그무렵 장인어른은 경찰직을 막 내 놓고 제재소를 할때 였습니다. 그때 간첩이 나타났는데 경찰들은 오히려 겁이나서 도망치던지 혹은 몸을 숨기고 벌벌 떠는데 장인어른이 경찰의 총을 빼앗아 간첩 하나는 사살하고 한명을 잡았던 것입니다.
나는 장인어른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내내 놀라고 또 놀라며 하느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무뚝뚝하던 장인의 표정과 말투가 저렇게 부드럽고 확신에 찬 소리를 내는 것을 보고 나는 오히려 마음이 아팠습니다. 내가 아니었더라면 오히려 병이 그렇게 악화는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때문입니다.
한참 후에 장인어른의 무용담이 끝이 났고 우리들은 안도의 숨을 내 쉬었습니다.
+ + +
나는 이것이 장인 어른과의 마지막이 될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우리는 하루를 더 쉬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 우리는 모두 장인어른의 곁에 모여 손에 손을 잡고 기도를 하였고 서로 포옹을 하고 헤어졌던 것입니다.
(계속)
첫댓글 잘읽고 또 기다리겠습니다
처가댁이 양구 해안이군요. 그곳에서 군대 생활을 했었는데...38선때에는 그곳이 북한땅이었죠? 제 4땅굴 발견한 곳. 맞아요. 검문소에 근무도 해보았고, 해안주민들에게 김치도 많이 얻어먹곤 하였는데...낯익은 지명이 나와 잠시 옛날 생각해봅니다. 다음 이야기 기대할께요
마지막 만남이었군요...장인 어른이 마지막으로 자기의 무용담을 손자들과 형광등님께 들려 줄 기회를 가져 너무 행복 하셨겠네요.....정말 잘 하셨어요....
장인 어른께서 마지막 가시는 길에 맑은 정신이 돌아 오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