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스피에르와 문재인의 닮은 꼴>
1789년부터 시작된 프랑스 혁명은 1793년 1월 21일 부르봉 왕조의 막을 내리는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를 혁명광장에서 단두대로 목을 자르는 잔인한 처형으로 외형적으로는 종결되었다.
수많은 사람들, 적게는 2만 명 많게는 10만명 이상을 희생시킨 과격 좌파 자코뱅당의 혁명은 그렇게 막을 내림과 동시에 또 다른 막을 올리는 시작이 되었다. 루이 16세가 단두대에서 목이 잘린 바로 그날 로베스피에르는 루이 16세의 처형을 직접 보고 프랑스의 실권을 쥔 집정관으로 취임하였다.
고등학교 때였던가 보다. 역사와 문학에 관심이 많았든 나는 한국사를 끝내고 서양사를 읽기 시작하였다. 학교 교과 과정이 아닌 혼자서 책을 찾아 읽는 독학이었다. 그때 관심 있게 읽었던 부분이 프랑스 혁명사였다. 왕정이 무너지는 과정에서 벌어진 다이내믹한 혁명 역사는 변화를 지향하는 소년기의 나에게 무척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변변한 역사의 분석서가 없던 그 시절에 통사 형태로 서술된 책만 있어도 감지 덕지였다.
프랑스 혁명의 주역이었던 로저스 피에르, 마라, 당통, 이 세 사람의 이름은 언제나 프랑스 혁명이라는 단어와 함께 떠오르는 이름들이다. 과격 좌파인 자코뱅당의 리더였던 이 세 사람 중 마라와 당통은 결국 로베스피에르에 의해 제거되어 암살되거나 단두대에서 죽게 되고 로베스피에르가 혁명의 종결자가 되었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이제 왕정을 끝내고 혁명정부를 이끌어가야 하는 로베스피에르는 혁명을 지지해준 농민과 노동자에게 어떤 형태로라도 보상을 해주어야 했다. 그들의 욕구인 잘 먹고 잘 살게 해 주어야만 그의 지위가 견고해지기 때문이었다.
파리가 아닌 지방도시 출신인 로베스피에르(Robespierre)는 파리의 명문대학교에서 법률을 공부하여 변호사가 되고는 파리에 머물지 않고 고향으로 내려가 서민을 위한 변호사 활동에 주력하였다.
그는 서민인 노동자와 농민의 권익을 위하여 귀족들과 영주들을 상대로 변론하면서 인기를 얻었고 그 인기를 발판 삼아 삼부회의 평민 대의원으로 선출되었다.
삼부회란 프랑스 특유의 비상임 의회제도로 귀족과 성직자와 평민, 이 세 부류의 대표로 구성되어 필요시 왕이 소집하여 의제를 토론하고 결의하는 의회제도이다.
평민의 대표가 된 로베스피에르는 왕정을 공격하는 파격적인 연설로 인기몰이를 하게 되고 왕정에 반대하는 과격 좌파 그룹인 자코뱅당의 리더가 되어 왕정을 무너 뜨리고 공화정인 국민회의를 여는 프랑스 혁명을 이루게 된다.
법률가이지만 경제에는 문외한인 로베스피에르는 최고 실권자가 된 후 "모든 프랑스 어린이들은 우유를 마실 권리가 있다"라고 선포하고 우윳값을 반값으로 내리라고 지시한다.
이것이 그가 서민을 위한 정책이자 혁명을 이루는데 절대적인 지지를 한 노동자와 농민을 위한 중요한 경제정책이었다. 한동안 우윳값이 내려가서 우유를 마시는 서민들이 많아졌다.
그런데 낙농을 하던 농민들은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우유를 공급하느니 아예 소를 도살하여 고기로 파는 것이 이익이라고 생각하여 소를 죽여 고기로 팔자 우유는 품귀 현상이 발생하여 이전보다 몇 배 이상으로 폭등하게 되었다.
그러자 로베스피에르는 농민들을 불러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물었다. 낙농 하는 농민들이 건초 가격이 비싸서 할 수 없이 소를 죽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자 로베스피에르는 이제 건초 업자들에게 건초를 반값으로 내리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건초 업자들은 건초를 헐값에 팔아 생산가도 못 건지니 아예 불태워버렸다. 그러자 건초값이 폭등하였다.
낙농 하는 농민들은 이제는 정말 우유 생산을 하지 못하게 되고 우유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아, 우유는 귀족들이나 마시게 되고 서민의 자녀들은 우유 구경도 못하게 되었다. 결국 처음 우유값에 손 대지 않은 것보다 못한 결과를 가져왔고, 결과적으로 로베스피에르의 첫 번째 경제정책은 실패로 돌아가버렸다.
프랑스의 1793년 1월 21일의 일과 대한민국의 2017년 3월 31일을 반추해 보면서 2018년 11월에 로베스피에르와 문재인의 닮은 꼴을 대비해 본다.
첫째, 문재인은 로베스피에르처럼 서울이 아닌 변방 거제도에서 태어나 지방 도시 부산에서 자랐다. 둘째, 두 사람 법률을 공부하였으나 서울에서 판사나 검사가 되지 않고 변호사가 되어 자기 고향으로 가서 소위 서민을 위한 변호사를 하면서 일정한 부류의 사람들에게 알려진 사람이 되었 셋째, 두 사람 모두 서민을 위하는 정치인으로서 알려지면서 국회(의회)에 입성하였다. 넷째, 사회적 분위기가 무르익자 로베스피에르가 앙상 레짐(ancien regime: 구체제)을 타파하기 위한 혁명을 주도하였던 것처럼, 문재인은 촛불 혁명이라고 하면서 적폐 청산을 그 기치로 내세웠다. 로베스 피에르의 앙상 레짐 타파와 문재인의 적폐청산은 같은 맥락에서 지난 시대를 갈아엎는 혁명의 시도이다. 다섯째, 두 사람 다 노동자 농민을 그 지지 기반으로 삼고, 도시의 젊은 세대를 그 외곽 지원부대로 삼은 것도 같은 전략이다. 이들은 언제나 기득권을 가진 부류에 대한 반감이 팽배해 있는 그룹이다. 여섯째, 로베스피에르가 혁명을 성사 시킨 후 소위 빚을 진 그룹에 대한 일종의 보상으로 우유 반값 지시를 한 것과 현재 문재인의 경제정책은 같은 맥락이다.
문재인이 기업에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모두 전환하라고 지시한 사항만 보자. 이는 불합리한 정책이다. 채용공고와 입사시험을 통과하여 정규직이 된 사원들과 이 과정에서 실패한 사람들과 동일한 지위를 억지로 가지게 하는 것이 과연 평등한 사회로 가는 길인가? 그렇다면 누가 힘들게 정규직으로 입사하려고 노력하겠는가?
상대적으로 쉬운 비정규직이 되어 정치권 언저리에서 빈둥대다가 정규직으로 점프하면 된다는 기회주의자들만 양산하게 될 것이다. 경쟁이 없이 평등만 강조하면 결국 혁신과 발전이 사라진 낙후된 사회가 될 것이다. 로베스 피에르가 자기의 혁명 지지 기반이었던 서민을 위한 우유 반값 사건은 일시적인 현상으로 성공한 것 같았으나 결국 더 악화된 상황을 초래하고 말았다.
촛불 세력이 추구하는 반값 등록금, 반값 아파트 등의 공약들은 결국 있는 자의 것을 빼앗아 모두가 평등하게 나누어 먹고 살자는 사고인 것이다.
로베스피에르가 자기 지지 기반인 농민, 노동자, 서민과만 대화하고 협의한 것과 문재인이 기업인들은 배제하고 노조 하고만 대화하여 만들어 내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지시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전제적 사회주의 체제에서나 있을 수 있는 지도자의 행태이다.
작년 대통령 선거 두 달 전 나는 촛불세력을 등에 업은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면 한국은 더 이상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아닌 민중 민주주의, 즉 사회주의 국가로 방향을 바꿀 것이라고 블로그에 글을 쓴 바 있다. 이제 비정규직 문제 해결 방안이 사회주의로 가는 첫걸음이다. 앞으로 문재인의 정책을 보면서 프랑스 대혁명 시대와 비교해 보겠다. 1793년 1월 21일 루이 16세를 파리의 혁명광장에서 단두대로 처형하면서 앙상 레짐을 무너뜨린 후 프랑스의 집정관이 된 로베스피에르는 과격한 정책을 계속하다가 1794년 7월 28일 자신도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 사람이 먼저다?라는 빨갱이 신윤복과 문재인 생각,북한 헌법 전문과 같음>
문 재인은 프랑스 방문 시 교민들 앞에서 촛불시위를 프랑스 혁명에 비유했다. 로베스피에르는 프랑스 혁명 당시 공포 정치를 이끈 급진파 지도자다. 로베스피에르는 왕과 왕비를 비롯한 수많은 왕정 시대 인사들을 기요틴(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게 했고, 문 재인은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한 지난 정권 10년을 부정하면서, 100여명 이상의 고위 인사들을 적폐 청산의 미명 하에 감옥에 보냈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직권남용과 명예훼손... 법은 예나 지금이나 같지만 왼쪽 눈과 악의 맘으로만 보니 똑바로 보일 리 없다.
그것도 모자라 아직도 민주노총·전교조 등 혁명 전위대들과 친여(親與) 매체들을 이용해 적폐 청산 위원회를 만들어 한국 사회 전체에 대해 인민재판을 자행하고 있다. 경제정책도 로베스피에르가 취했던 방식 그대로 시장 기능을 무시하고 국가 갑질·국가 간섭 경제 정책으로 일관해 프랑스 혁명 정부가 폭만한 길을 그대로 가고 있다.
이 시점에서 한국에는 테르미도르의 반동을 꿈꾸는 사람들이 과연 없는지?. 보이지 않는 사람은 빼고 토요일 서울역 광장에 가면 자기의 이 목숨을 걸고 박근혜 대통령 구출과 문재인 퇴출을 외치는 분들이 수만 명이 모인다. 테르미도르의 반동은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에 반발한 시민들이 기습적으로 로베스피에르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고 처형시킨 사건이다.
18세기 프랑스 혁명은 테르미도르의 반동으로 온건 보수파가 완성했듯이, 한국판 로베스피에르가 폭주하는 세상을 언제까지 계속 갈 수 있을지 자문해본다 역사는 예언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교훈을 준다. 공자의 말씀 온고지신, 溫故知新 새겨야 할 때이다.
줄을 긋는다고 까치가 될 수 없고 콩 심은 곳에 콩이 나는 법. 불가의 연기법과 인과 업보를 생각하게 한다.
2018.11.6. 제3탄 |
첫댓글 로베스피엘과 언론인 마라는 수많은 정적을 길로틴으로 죽였습니다. 마라는 우리나라로 치면 손석희 같은 놈인데 아주 교활한 놈이지요 이놈을 반대당인 여자가 벌거벗은 몸에 난자를 해요 그게 그림으로 남아있어요.로베스피엘은 사형선고를 받자 권총으로 턱주가리를 쏴 자살하려했는데 총알이 빗나가 턱이 그냥 달려있어요 참수할때 집행관인 상송(프랑스 4대째 집행가)의 아들이 턱을 맞춰서 길로틴 구멍에 넣었어요 마지막 말이 뭐냐고 묻지 옹알옹알 하더래요.문가야 이거 남의 얘기 아니다. 남을 해치면 자기도 ㅎ꼬지 당한다 만고의 진리이다.
네. 사필귀정, 정의가 불의를 ,빛이 어둠을 이기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계속 학습하게 지도하여 주십시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