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거리, 이민자에 점령당하다
올해만 10만명 유입, 호텔 내줘도 감당 못해 범죄.위생문제 확산
다양성.포용의 상징 뉴욕, 이젠 이민자가 정치.사회 최대 이슈로
2023/08/02
1일 오후 2시, 하루 75만명의 승객이 이용하는 뉴욕 맨해튼 중심가인 그랜드 센트럴역 옆 루스벨트호텔 앞은 난민 캠프를 방불케 했다. 호텔 외벽을 따라 세워진 철제 펜스 안쪽엔 폭염에 땀에 전 옷을 입은 사람 200여 명이 길바닥에 붙어 앉거나 누워 있었다.
이들은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콜롬비아, 페루 등 중남미에서 미국으로 넘어온 이주자들이다. 자국의 암울한 현실을 피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겠다는 생각에 미국 땅을 밟았다. 그러나 현재 그들이 맞고 있는 상황은 기대와 전혀 다르다. 뉴욕시의 대표적 이주자 수용 시설인 루스벨트호텔은 이미 가득 차 더 이상 밀려드는 사람을 감당하지 못한다. 이전 거주자가 나가 방이 빌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이주자들은 씻지도 못하고 인도(人道)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검은 비닐봉지 하나가 이들의 유일한 사적(私的) 공간이다.
루스벨트호텔 주변은 중앙역 격인 그랜드센트럴과 록펠러센터, 명품 거리인5가(Fifth Avenue) 바로 옆이다. 미국 최대 도시 뉴욕 한복판의 어지러운 풍경은 다른 문화에 대한 관용과 다양성을 중시해온 뉴욕이 쏟아지는 이주자 문제로 겪는 사회적 혼란과 정치적 갈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호텔 옆 인도는 이주자들이 점령해 시민이나 관광객은 제대로 걸을 수가 없다. 차도로 보행자가 내려가 걷는 탓에 차들은 엉켜 경적을 울려댔고, 경찰 수십 명이“차가 지나다니니 거리로 내려오지 마시오”라고 고함을 질렀다. 뉴욕시청 직원과 경찰이 피자 다섯 판씩을 들고 이주자들에게 나눠 주기 시작하자 여기저기서 음식을 달라고 갈구하는 손이 튀어나왔다.
‘미국의 심장’이라기보다 전쟁터의 난민 수용소 같은 풍경이었다. 피자를 먹는 세 명의 무리에게“어디 출신인가요”라고 묻자 이들은 쏘아보며 한 문장으로 답했다. “노 잉글리시(영어 못 해)!”
1일 뉴욕 맨해튼 중심가의 루스벨트호텔 밖 보도에 설치된 경찰 펜스 안쪽으로 이민자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앉거나 누워 있다.
<미주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