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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恁那里倭賊, 定害那不定害, 我待將軍船搶解倭賊海島去, 徑直過海到那里, 不知他那里水脉. 金州裝粮, 過恁地境, 著知路人指路, 到那里搶解了呵, 回來他來的口子裏, ()營守禦."
고려사 권135 우왕11년 12월
위 고려사 기사는 보통 "홍무제가 일본을 정벌하겠다"면서 고려에 향도가 될 것을 명령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에 대한 한국사데이터베이스의 번역은 아래와 같습니다.
“너희 나라에 쳐들어온 왜구들이 위협적이든 위협적이지 않든 나는 장차 군선(軍船)의 편성이 완비되면 왜구가 있는 섬으로 가서 토벌하겠다. 그러나 곧장 바다를 건너 그 나라(那里)에 가려고 해도, 그 나라(他那里)의 뱃길을 잘 모른다. 금주(金州)에서 군량을 싣고 그대의 나라를 지날 것이니, 길을 잘 아는 사람을 시켜 길을 안내하도록 하라. 그 나라(那里)에 도착하여 (왜구를) 무찌른 후, 이들 군함들은 귀환하면서 요충지에 군영을 세우고 왜구를 방어할 것이다.” 라고 하였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근데 이 기사가 "일본을 치겠다" 고 한 것이 확실한지에 대해선 약간 의문이 있습니다. 홍무제의 명령에서 일본(日本)이라는 글자가 구체적으로 나타나지 않은채 홍무제가 가겠다고 한 " 倭賊海島"와 그리로 가는 뱃길에 대해서는 매우 애매모호하게 써놓았으니까요.
"그러나 곧장 바다를 건너 그 나라(那里)에 가려고 해도, 그 나라(他那里)의 뱃길을 잘 모른다..... 그 나라(那里)에 도착하여 (왜구를) 무찌른 후...."
사실 "那里"라는 글자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 곳" 즉 약간 먼 지방을 가리키는 대명사 입니다. 어쨌든 저"那里"들이 앞문장의 " 왜구가 있는 섬(倭賊海島)"을 지칭하는 건 확실하니 대충직역을 해보면
"그러나 곧장 바다를 건너 섬(那里)으로 가려고 해도, 그들(왜적)이 있는 섬(他那里)의 뱃길을 잘 모른다..... 섬(那里) 에 도착하여 (왜구를) 무찌른 후.... " 라는 문장이 됩니다.
즉 섬(那里)과 " 그들(왜적)이 있는 섬(他那里) " 부분의 해석에 따라 문장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게됩니다.
근데 한가지 생각해 봐야 할게 있는데, 홍무제가 말한 "那里"와 "他那里"가 일본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홍무제가 고려에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 되는 겁니다.
" 그러나 곧장 바다를 건너 일본(那里)에 가려고 해도, 일본(他那里)의 뱃길을 잘 모른다.... 일본(那里)에 도착하여 (왜구를) 무찌른 후....."
이러한 문장이라는 이야긴데, 명나라는 건국한 그 해부터 일본에 사신을 파견하였고, 일본과 외교를 진행 하였습니다. 즉 바다를 건너서 일본으로가는 길을 훤히 꿰뚫고 있다는 이야기죠. 더구나 건국이전에 원래 일본과 교류가 많았던 절강성을 점령하고 그 일대를 주름잡던 방국진세력까지 항복시킨 상황인데(그래서 이 친구들 잔여세력이 반란 일으키고 급기야 왜구를 끌어들이기 까지 함, 난수산의 난) 일본으로 가는 길을 모른다는 건 말이 안된 다는 이야기죠.
홍무제는 이 명령을 내리기 몇 년전에 고려에 하던 것 처럼 일본에 불만이 있을때마다 "여차 하면 우리 너네 칠거야"라는 국서를 두어 차례 보냈습니다(안에서 새는 바가지 바깥에서는 안새랴). 그러자 일본에서는 고려(그리고 훗날의 조선)와는 다르게 "올테면 와보시던가"라는 내용의 답서를 아주 고급지게 표현해서 보냈습니다. 이에 화가 끝까지 났으나, 몽골의 전철을 생각하여 정벌을 포기한 적도 있었고요. 그렇기 때문에 이 시점에 와서 고려에 "일본을 정벌하려는데, 뱃길을 모른다"고 할 이유도 없습니다.
뭔가 정치적으로 고려를 압박하기 위해서 이런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겠습니다만, 홍무제는 고려에 과장을 많이하고 허위로 위협을 많이 하기는 했지만(우리 군대가 수백만이고 함대가 수만척이야, 여차하면 너네 친다), 불만이 있으면 불만을 직접적으로 이야기 했지(너네 나하추랑 교류하던데, 이러면 안좋다?) 이런식으로 다른 정치적 카드를 들이미는 방식으로 고급지게(?) 고려에 엿을 먹인 적은 없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저 "那里"가 일본일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근데 우선 대체 왜 이런 발언을 했을까요?
저는 얼마전에 김득경 사건의 시말과 사건이 일어난 배경에 대해 간략히 소개 한 바 있습니다(https://cafe.daum.net/shogun/1Db/9579)
고려사 임견미전에는 하륜이 김득경을 죽이는 계책을 낼때 "지금 왜구가 온 땅에 깔려있는 판에(當今倭寇充斤), 어찌 도적을 만나서 죽는 자가 없겠는가." 라고 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임견미등이 하륜의 계책을 따라서 철주(지금의 평안북도 철산군)에서 몰래 죽여버리고는 황제에게 왜구만나서 죽었다고 보고를 했는데, 이때 아마 "지금 왜구가 고려 온땅에 깔려 있어서(當今倭寇充斥)", 김득경이 오다 죽었다고 이야기를 했을 겁니다. 그렇다면 홍무제는 "고려에 왜구가 가득해서 고려가 호송하는 죄인까지 죽는다"는 상황을 들었다는 이야기고, 이후에 홍무제의 "정왜" 발언이 나왔으니 두 사건간에는 연관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홍무제가 가려고 한 곳이 일본이 아니라면 어디를 표현 한 것일까? 전 두가지 가능성이 있다 봅니다.
1. 대마도?
이건 전기왜구 전문가이신 이영교수가 추정을 하기는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논증을 하지는 않았지만요. 근데 확실히 저 문장에 부합하는 곳이기는 합니다. 아까도 이야기 했지만, 명나라는 일본 큐슈 다자이후(太宰府)에 사신을 보내기도 했습니다만, 대마도에 사신을 보낸 적은 없습니다. 이전의 원나라때 사신들이 일본을 갈때 대마도를 거쳐 갔지만 당연히 다들 고려를 거쳐갔습니다. 심지어 남송정벌이후 항주에서 출발한 사신까지 말이죠. 훗날 16C 중반에 왜구가 창궐했을때 일본으로 사신을 보냈을 때에도 오도(五島)열도를 거쳐갔지 직행한 적은 없습니다.
즉 "왜구가 있는 섬(倭賊海島)"이자, " 바다를 건너 바로 가려 해도, 바닷길을 몰라서(徑直過海到那里, 不知他那里水脉)"에 "고려를 지나가야(過恁地境)" 한다는 문장에 부합하는 곳이긴 하죠.
“(너희들이 보내려던 김득경이 왜구에 의해 죽었다고?) 너희 나라에 쳐들어온 왜구들(恁那里倭賊)이 위협적이든 위협적이지 않든 나는 장차 군선의 편성이 완비되면 왜구가 있는 섬으로 가서 토벌하겠다. 그러나 곧장 바다를 건너 그곳(대마도, 那里)으로 가려고 해도, 왜적들이 있는 그곳(他那里)의 뱃길을 잘 모른다. 금주에서 군량을 싣고 그대의 나라를 지날 것이니, 길을 잘 아는 사람을 시켜 길을 안내하도록 하라. 그 곳(대마도, 那里)에 도착하여 (왜구를) 무찌른 후, 이들 군함들은 귀환하면서 요충지에 군영을 세우고 왜구를 방어할 것이다.”
근데 당시까지 여-명왜교 혹은 명-일 외교 석상에 있어서 대마도가 왜구의 거점으로서 구체적으로 거론된적이 없는데, 갑자기 이제와서 여기로 가겠다고 했을까에는 의문이 있습니다.
2. 고려 서북연해 도서?
아까 위에서 고려사 임견미전에 하륜이 김득경을 죽이는 계책을 낼때 고려사에는 지금 온땅에 왜구가 깔려있다고 표현 했다고 했습니다. 근데 고려사 절요에서는 좀더 구체적으로 "지금 서북에 왜적이 가득하니(當今西北,倭寇充斤), 어찌 도적을 만나서 죽는 자가 없겠는가." 라고 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즉 고려에서 "지금 서북에 왜적이 가득해서(當今西北,倭寇充斤)", 김득경이 오다 죽었다고 이야기를 했을 가능성도 있죠. 그렇다면 홍무제는 "고려의 서북지방에 왜구가 가득해서 고려가 호송하는 죄인까지 죽는다"는 상황을 듣고 이런 발언을 했다는 건데, 이러한 상황을 감안한다면 아래와 같은 식으로도 해석을 할 수도 있습니다.
“(너희들이 보내려던 김득경이 왜구에 의해 죽었다고?) 너희 나라에 쳐들어온 왜구들(恁那里倭賊)이 위협적이든 위협적이지 않든 나는 장차 군선의 편성이 완비되면 왜구가 있는 섬으로 가서 토벌하겠다. 그러나 곧장 바다를 건너 그곳(고려 서북연해 섬, 那里)으로 가려고 해도, 왜적들이 있는 그곳(他那里)의 뱃길을 잘 모른다. 금주(金州, 요동 금주위(金州衛))에서 군량을 싣고 그대의 나라를 지날 것이니, 길을 잘 아는 사람을 시켜 길을 안내하도록 하라. 그 곳(고려 서북연해 섬, 那里)에 도착하여 (왜구를) 무찌른 후, 이들 군함들은 귀환하면서 요충지에 군영을 세우고 왜구를 방어할 것이다.”
금주(金州)는 요동 반도의 금주위(金州衛)를 이야기 하는 것 일텐데, 실제 명나라 사신들이 남경에서 바닷길로 왔을때에는 전라도를 경유해서 개경으로 온 사례는 있어도, 남경에서 바로 다이렉트로 한반도 서북연해 지역으로 오거나, 요동에서 배 타고 고려 서북연해지역을 거쳐 개경으로 온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 지역의 뱃길은 잘 몰랐으므로 "뱃길을 잘 모른다"는 말과도 어느정도 부합합니다(요동하고 한반도 서북연해 지역은 가까워서 뱃길을 잘 알지 않았을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훗날 임진왜란때 요동에서 한반도까지의 수로를 잘 몰라서 식량보내기 힘들다고 투덜(;;)대는 명나라 관리들의 발언이 많이 등장합니다).
다만 고려 서북연해를 지칭 한 거라면 "恁(그대, 너)" 글자를 붙였을 가능성도 있는데 그러지 않았으니 이 또한 애매~ 하고요.
아 참고로 보통 이와 같이 회자되는 정지 장군의 발언도 "중국이 왜적을 정벌한다고 공언하고 있다(近中國聲言征倭)고 했습니다 만약에 "征倭"가 아니고 "近中國聲言征對馬島" 등의 구체적인 지명을 명시했으면 좀 더 명확했겠지만....;;
홍무제는 공민왕시기 국교가 성립 한 직후부터 고려의 해안방어에 관심을 많이 가졌고, 왜구를 잘 좀 토벌하라는 요구와 비판을 지속적으로 해왔습니다. 이것이 단순히 홍무제가 고려를 폄하했다는 식으로만 회자되곤 하는데, 고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왜구의 침입이 중국 연해지역에도 심각했었던 만큼, 홍무제는 고려의 해안방어가 명나라의 해안방어와 밀접하게 연관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러한 요구를 줄기차게 해왔던 것이겠죠.
두 지역 중 어느쪽이 되었건 간에 홍무제가 고려와의 국교재건을 하고 바로뒤에 왜구의 고려 침입에 신경을 쓴 기록인 만큼, 홍무제가 고려의 해안방비 상황에 그만큼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명확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첫댓글 ???:황상의 시선(과 감시)는 고려에도 있다!!!
"감시" 측면도 당연히 있겠지만, 명나라의 "해상안보"에 고려가 "실제적으로 필요"했다는 이야기도 되긴 합니다 ㅎㅎ
@배달의 민족 주원장의 편집증을 생각하면 고려가 그걸 편하게 받아들였을지는 의문일거 같네요...
주원장한떼 쪼이는 신하처럼 고려도 쪼여서요(...) 심지어 주원장이 내부 사정도 어느정도 잘 알고있다!!
@노스아스터 뭐 대충 한국이나 일본(;;)이 트럼프시절 받았던 압박 정도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ㅎ